전통기술 - 기예의 상업화노력
공종원 / 조선일보 논설위원
우리의 상품이 국제경쟁력을 잃고 있는 것은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으나 산업기술의 역사가 짧고 기술개발의 열의가 부족한 데도 원인이 있다. 이에 비해 우리의 전통기술-기예는 오랜 역사 가운데서 형성되어 산업화했던 것이었으나 오늘에 와서는 현대 산업의 위세에 눌려 거의 인멸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현대산업기술과 전통기예가 오늘 모두 궁지에 몰리고 있는 현상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현재 우리의 산업기술력의 낙후는 결국 우리의 전통기술-기예의 계승발전노력이 부족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현대적인 산업기술력이 제대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독자적으로 발전시켜왔던 전통기예의 가치를 철저히 인식하고 이를 오늘에 계승발전시킴으로써 우리상품의 고유한 가치를 세계화할 수 있을 뿐아니라 그것을 현대기술에 접목시켜 우리기술의 내용을 충실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일본자동차 도장(塗裝)기술에는 와지마도의 전통기술이 이용되고 있으며 생명과학기술의 발달에는 일본된장과 간장제조기술이 기여하고 있다는 얘기다.
불행하게도 우리의 경우 어떤 전통기예가 현대산업기술에 이용되고 있다는 얘기를 듣지 못하고 있다. 기술연계가 안 되고 있고 그런 노력도 부족하다는 뜻이다. 기술연계가 안 되더라도 전통 기술-기예자체라도 그대로 계승발전시키는 노력이라도 있다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우리전통기술-기예는 무형문화재보존이란 명목으로 그 기능 보유자에 대한 생계보조금지급제도로 체면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식의 문화재정책이나 전통산업지원을 지양할 때가 된 것 같다. 기능보유자에 대한 지원을 그만두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만하고 정작 전통기예의 활성화를 잊어버리고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것이다.
전통기예의 자생력 키워 상업화할 수 있게 한다
따라서 지금 요구되는 것은 전통기예의 자생력을 키워주어서 이를 상업화할 수 있게 하는데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6개 분야 '93개에 이르는 중요무형문화재 가운데 산업화, 상업화할 수 있는 분야를 골라 이를 적극 지원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한때 문화부가 서울근교의 자연부락을 이용해 30만 평에 이르는 공방촌을 만들겠다고 공언한 바 있지만 이는 예산확보의 어려움으로 좌절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엄청난 예산이 드는 사업을 당장 기대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몇 개 분야는 시범적으로 상업화하는 시도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문화재관리국은 '73년 이후 전국에 걸쳐 22개의 전수회관을 건립하고 있다. 이 중 특히 서울 강남, 북에 한 군데씩 세우는 전수회관은 상업성을 감안한 대규모시설로 마련하리라고 한다. 강북의 중구 필동에 세워지는 전수회관은 수도방위사령부 부지 2만 4천 평에 건립되며, '95년까지 강남 삼성동의 노른자위 땅에 세워질 전수회관은 문화재관리국 직영형태를 취할 것이라고 해서 상당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현재 우리의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는 음악 17가지, 무용 7가지, 공예 30가지, 음식과 무예 3가지, 놀이와 의식 22가지, 연극 14가지 등 93개 종목에 보유자 1백 81명 이외에 보유자 후보 83명, 조교 1백 31명, 이수자 9백 22명, 준수생 5백 88명이 있다. 우리의 전통문화를 계승발전시킨다는 의미에서 우리의 귀중한 인적자산이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도 인기종목이 있고 소외된 분야가 있다. 또 전통문화 전수회관들도 공연중심이 되고 있고 기예, 공예 중심이 되지 않고 있다는 우려감도 나타나고 있다.
우리의 무형문화재 가운데도 무용이나 판소리 혹은 가면극이나 음악은 인기 있는 예술분야다. 이들은 우리의 전통예술로서 세계시장에 내놓아도 하등 손색이 없는 뛰어난 예술성으로 높은 평가를 얻기도 한다. 때문에 이는 훌륭한 우리의 문화상품이기도 하다. 그간 여러 경로로 우리의 전통예술 특히 공연예술은 세계적으로도 많이 소개되었던 만큼 한국문화의 성격을 널리 알리는 면에서도 유용한 기능을 했다. 이에 비하면 공예기술, 산업기술은 우리의 특성을 나타낼만한 위치에 있는 것이 거의 없다. 무형문화재 중 공예가 차지하는 비중이 극히 미미하다는 것도 문제이지만 지정이 안 된 공예라도 관광기념품, 일상용품 등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전통기예, 공예를 상업화해야할 필요는 크다. 이를 위해 제조와 판매를 연결하고 관광객도 실체험할 수 있는 종합적 시설과 보조금 융자 등의 지원이 절실하다.
그런데 최근 전통적인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실용화하는 연구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반가운 소식이다. 과학기술처와 국립중앙박물관이 공동으로 전통기술의 실용화 연구에 착수하기로 하고 예비조사에 착수했다는 것이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전통예술 가운데 유망한 것은 한지와 옻칠, 그리고 모시와 활석 등 4가지라고 한다.
닥나무로 만드는 한지는 역사적으로 그 내구성이 증명되어 왔다.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한지가 아직도 변치않고 있으며, 과거 중국에서 한지의 명성이 자자했던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요즘도 탁본용 종이는 한지를 사용할만큼 내구성이 좋다. 우리 한지의 이같은 성과는 저절로 얻어진 것이 아니다. 우선 한국산 닥나무는 세계 어느나라의 닥나무보다도 섬유질이 길고 알카리성이어서 쉽게 산화되지 않는 장점이 있다. 보통종이는 중성이고 쉽게 변질되기 때문에 도서, 서화 등으로 사용되었을 때 보관문제가 제기되곤 한다. 다만 한지는 비교적 값이 비싸고 대량 생산이 어려운 것이 문제다.
우수한 품질로 알려진 한국산 옻나무
우리의 옻칠도 역시 세계적으로 우수성이 인정되고 있다. 옻나무는 인도 동쪽 아시아지역에서 나는데 이 중에도 한국산은 가장 우수한 품질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옻칠은 우리의 장롱이나 밥상 등에 많이 쓰여왔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아주 익숙한 소재다. 근래에는 나무뿐 아니라 금속에도 코팅제로 쓰이고 있다. 또 다양한 색감을 내는 옻칠도 개발되고 있다. 따라서 옻칠은 앞으로 색감이 아름다우면서 코팅효과가 큰 첨단도료로 이용될 가능성이 높다.
한산모시는 가볍고 시원한 섬유의 대명사처럼 알려져 있을 정도로 우리에겐 잘 알려진 섬유다. 하지만 일단 물만 묻으면 올이 풀리고 충격에 약해 쉽게 꺾이는 약점이 있다. 거기에다 색감도 단조로워 이를 극복하는 연구가 있어야 앞으로 모시의 시장성을 넓힐 수 있다. 활석의 경우는 주조에 이용되는 방안이 검토된다. 보통 주조할 때는 모래를 사용하지만 이것은 곧 흩어지기 때문에 반복 사용이 어렵다. 따라서 모래보다 단단하고 응집력이 강한 활석으로 거푸집을 제작하는데 응용할 가능성이 타진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과학기술처와 중앙박물관의 전통기술 실용화노력은 처음부터 난관에 봉착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런 전통기술에 대한 전문가가 없고 이를 과학적 방법으로 분석하고 변형시킬만한 과학적 지식을 가진 사람은 아주 희귀하기 때문이다. 지금 남아있는 인력은 전통적인 방법으로 물건을 만들거나 이를 이용하는 기능자에 그칠 뿐 전통기술의 내용을 개발하고 발전시킬만한 연구인력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따라서 앞으로 이들 4개 전통 기술을 현대적 실용성을 가진 제품으로 만드는 일은 전통기능보유자와 연구자들이 팀을 이루어 협동연구를 추진하는 과정의 성공여부에 달려있다.
그러나 그 성공여부에 관계없이 우리가 이제라도 또 다만 몇 가지만이라도 우리의 전통기술을 오늘의 상품 가운데서 되살리려는 노력을 한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어떤 면에서 반만년의 오랜 역사를 가졌다는 우리가, 남에게 뒤떨어지지 않는 우수한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우리가 오늘의 산업을 몽땅 외국에서 들여온 기술과 기예로 운영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수치이다. 그런 점에서라면 단 4가지라도 우리의 전통기술을 오늘에 되살릴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일까. 하지만 사실은 여기에 그칠 일은 아니다. 우선 어려운대로 당장 생각나는 것이 이것일 뿐 더 유용하고 더 현대적 적용성이 있는 기술이 분명코 더 없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아도 우리는 빛나는 과학기술의 전통을 가진 민족이다. 첨성대와 관천대, 측우기와 앙부일귀 등 우리의 천문관찰의 역사는 물론이고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만들고, 목판과 목활자를 이용한 훌륭한 인쇄문화를 창출했던 자랑스런 민족이다. 석굴암을 만들고 팔만대장경을 조성하였으며, 거북선과 사상의학을 발전시켰던 과학적 기술과 기예를 생각한다면 우리의 전통기술-기예의 재창출노력을 여기에 머물러 만족할 일은 아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우리의 전통기예를 입으로는 자랑하면서도 정작 오늘의 세계에서 이렇다할 수 있는 수준의 기술로 발전시킨 것이 아무것도 없으며, 적어도 그런 노력을 한 흔적이 지금껏 아무것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일본은 우리와 비슷한 간장, 된장을 먹는 문화를 유지시켜 왔으면서도 어느 단계에서 이를 산업화, 상업화하여 오늘날 그 전통을 보다 높은 수준에서 자랑할 수 있게 만들었다. 세계사람의 입맛에 맞고 세계사람의 기호에 적합한 간장과 된장으로 만들어 놓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산업화를 통한 대량생산기술을 꾸준히 연구 개발해왔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들은 이 과정에서 조미료 「아지노모도」를 만들 수 있었고 또 그것의 생물과학적 이용에도 빨리 접근할 수 있었다. 이에 비해 우리는 모든 것이 단절적이고 일회적일뿐 역사전통을 오늘에 구체적으로 살리는 지속적인 노력이 너무도 부족했다. 그건 반드시 무형문화재, 혹은 명인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는 비싼 예술품만이 아니라 기계 아닌 손으로 만드는 일용잡화의 계승에서도 마찬가지다.
경복궁 안에 마련한 전통공예관
근래 우리사회에서도 무형문화재의 명품이라든지 지역특산물의 성격을 가진 공예품들을 상품화하는 노력이 본격화하고 있다. 재단법인 한국문화재 보호협회가 경복궁 안에 마련한 전통공예관은 특히 우리전통공예품을 국내외에 보급하는데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 국내 무형문화재 38명과 중요전승공예작가들이 만든 40여 가지 5백여개 작품이 전시판매되고 있다. 여기서는 참빗이나 황모털붓외에 문갑세트나 자개장롱도 있다. 또 방짜 반상기도 있고 각종 도기와 연적, 수공놋반상기와 사각함 서안도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문화재관리국은 앞으로 주요백화점에도 무형문화재 공예품 판매장을 설치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고 한다.
이같은 전통공예품의 상업화노력은 우리 전통공예품의 유지와 보급을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아직 너무나 요원한 일이다. 이제는 전통공예를 지역발전과 연관시켜 유지발전 시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일본의 경우는 통산성이 1974년 제정된 「전통공예품 산업진흥법」의 운용을 최근 강화하고 있다. 일본의 문화전통의 계승과 산업, 특히 수공업발전을 기한다는 취지가 유난히 눈을 끈다. 이른바 남부철기, 산형수물, 악지소, 산악소, 가마구라조, 신주도물, 경우선 등 1백74종의 지역특산품이 전통공예품의 지정을 받고 있다. 지역의 자주성을 존중하고 지방문화의 특성을 살리는 방향에서 그 진흥방안이 마련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그런 진흥책이 발효하기도 전이지만 일본 전통공예품의 1990년도 총생산액은 약3백억원이나 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도 21만 명이나 된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이런 현실을 매우 걱정하고 있다. 종업원이 줄고 있고 특히 젊은이들이 고된 기술전수과정을 싫어하고 있기 때문에 후계자 부족이 우려된다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일본통산성은 후계자 육성센터를 세우고, 제조와 판매가 하나로 연결된 제품개발, 공방이나 전시장, 혹은 관광객의 체험시설을 복합적으로 구비한 회관의 설치 등을 추진하기 위해 보조금이나 융자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같은 일본통산성의 전통공예 지원정책의 이유는 무엇인가. 이상한 일이지만 사실은 해외에서 무역마찰을 일으키고 있는 현실을 타개하는 한 가지 수단의 측면이 강하다. 일본 통산성의 통산산업정책은 2차대전후 주력산업 육성을 축으로 해왔는데 최근은 경제마찰의 사후처리가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그 때문에 일본통산성은 규모나 경제효과는 작아도 전통산업을 중시하는 산업정책으로 선회하는 현상을 보이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그들의 이런 설명은 어디까지나 여유있는 나라의 행복한 고민을 반영하는 부차적인 설명일 것이라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일본인들은 새삼 통산성의 이번 계획이 아니라도 지금까지 그들의 문화상품을 개발하고 진흥시키기 위해 오랜 세월동안 꾸준히 노력해왔으며, 그것으로 대단한 성공을 거둬 왔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중앙정부의 노력도 있었지만 지역단위로도 각기 자신들의 지역특산물을 상품화하는 노력이 있었다. 1백74개 지역의 지역특산물이 이번에 지정될 때까지 아주 없었다가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일본인들은 이런 공예품만이 아니라 농산물에 있어서도 오이타겡(大分縣)의 「일촌일품(一村一品)운동」에서 보는 바와 같은 지역특산운동으로 생산성을 높이고 지역특산의 가치를 높이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단위 특산물을 상품화하는 노력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다른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바로 이같은 지역단위의 특산물을 상품화하는 노력일 것이다. 우리의 경우 과거에는 지역단위의 특산이 반드시 있었고 이것을 장려하고 고급화하는 노력이 있었다. 농산물이나 수렵, 광물 같은 자연물 외에도 반드시 지역의 수공예품들이 있었다. 안성의 유기라든가, 강화 화문석, 담양의 죽제품, 광주 이천의 도자기 같은 것이다. 지금도 물론 과거의 전통기술 명맥을 이어오는 곳이 적지는 않다. 그통에 지금 한산모시 같은 경우는 과학기술처에 의해 계승되어야할 전통기술로 선정되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이 전통이 단절되고 있다.
그것은 시대변화에 따른 현대산업의 영향이겠으나 이는 우리의 문화전통을 잃어버리고만 자기정체성 상실의 불행이다. 발전은 좋은 것이기는 하지만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남의 기술과 남의 문화에 종속된 발전은 결국 우리의 불행일 뿐이다. 또 그것은 지속적이고 영속적인 우리의 행복을 보장하지도 못한다. 우리의 행복은 우리의 독자적 특성을 지켜가면서 인류에 공헌할 때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일본의 경우처럼 심각한 무역마찰을 걱정해야할 형편으로 행복하지 않다. 무역적자가 심하고 우리의 경제적 퇴보가 걱정되는 그런 상황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문제를 푸는데 전통기술과 기예를 되살리고 이를 발전시키는 가운데서 찾으려하는 것은 역설적이지만 잘된 선택일 것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문화전통기술-기예를 되살리는데 국가적인 힘을 모아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