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리뷰 / 음악

모테르합창단의 신선한 화음




조익현 / 음악평론가

해를 거듭할수록 듣는 이들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줄 뿐 아니라 직업합창단으로서의 훌륭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서울 모테르합창단의 제 10회 정기연주회가 지난 7월 2일(금)7시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박치용의 지휘로 열렸다. 음악을 연주하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 얼마나 많은 연주자 및 연주단체가 있는가. 거의 매일 서울의 모든 공연장은 비는 날이 없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음악을 음악답게 만들기는 그렇게 쉽지 않다. 특히 개인의 자질만 빼어나면 좋은 음악을 만들어갈 수 있는 독창이나 독주와는 달리 여러 사람이 동시에 같은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야하는 합창이나 합주는 그만큼 어려울 수밖에 없다.

간혹 뛰어난 자질이 있는 연주자들로 구성된 직업합창단이나 오케스트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연주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하나의 목표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의 목표라는 것은 지휘자의 음악적 추구에 단원들이 동조하지 않았다든지, 아니면 단원들이 지휘자의 해석을 이해하지 못한 경우가 있을 것이며, 또한 더 중요한 것은 최고의 음악을 만들어야 한다는 프로의 의식이 단원들 마음에 스며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프로」라는 어휘를 언뜻 생각해 보면 「돈」이라는 단어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직업 연주자들에게 있어서 시간과 재능은 곧 돈일 수 있지만, 진정한 의미의 프로인이라면 경우에 따라서는 돈과 상관없이 자신이 추구하는 「최고의 음악 만들기」라는 목표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노래를 세계 여느 나라 못지 않게 좋아하고 있음을 보여주기나 하듯이 각 시마다 직업합창단이 창설되고 있으며, 또한 아마추어의 테두리를 넘어서는 준프로합창단들이 창설되어 활동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합창단이 만들어 질 수 있는 이유는 합창이라는 장르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신경근육이 움직이듯이 악기가 움직여 줄 때

보통 악기를 배우는 학생들은 자신들이 다루는 악기가 자신의 몸의 일부가 되도록 연습만 하고 주문을 받는다. 마치 신경근육이 자신이 원하는 데로 움직여 주듯이 악기가 움직여 줄 때 훌륭한 음악이 나온다는 말이다. 성악가들에게 있어서 악기는 바로 몸이다. 따라서 어느 정도의 성악적 자질만 가지고 태어난다면 노래에로의 접근은 악기에 접근하는 것보다 한단계 빠른 과정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개인적인 모습이 드러나지 않으면서 노래의 훌륭한 맛을 느낄 수 있는 합창은 그만큼 노래를 사랑하는 일반인들에게 좋은 음악적 접근을 허락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종종 프로 못지 않게 아마추어 합창단들이 대단히 훌륭한 연주를 하는 경우가 있다. 얼마전 우리나라를 방문한 적이 있는 「킹즈싱어즈」의 경우도 모두 비전공자들로만 구성되어 있으면서도 가히 세계적임을 볼 때 개인적인 역량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합창은 단원 모두의 절대적 화합이 필요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이번 모테르합창단의 연주가 신선한 자극을 준 것은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문제, 즉 그들이 무엇을 위하여, 그리고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가를 청중들에게 진실 되게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지휘자 박치용은 창단 3주년을 맞이하여 창단 취지를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

「우리 사회와 음악계 전반을 둘러볼 때 실로 물질 만능주의와 경직된 사회 분위기 등으로 인해 문화적 풍경이 그리 좋지 않으며, 진정한 예술가적 정신이 사라지고 있어서 훌륭한 예술가 하나 양성해 낼 수 없는 열악한 환경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 교제의 교회 음악에 대한 관심이 이전에 비해 오히려 퇴보하고 있어서 교회음악이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으며, 청소년은 물론 기성 신앙인에 이르기까지 대중적인 복음성가의 범람으로 깊이 있는 교회음악의 감동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해 가고 있습니다. 위의 두 가지에 대한 우려와 관심으로 출발한 서울모테르합창단은 이와 같은 환경을 탓하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환경을 극복하고 나아가 그에 대한 바른 이상을 제시하고자 창단되었으며, 아울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실력 있는 합창단으로, 또한 우리 교제의 자랑이 될만한 교회음악의 대변자가 되고자 계속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3년전의 취지가 오늘에 이르러서도 어려운 여건을 헤치고 그들의 말을 실천하고 있음에 청중들은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느 시립 합창단 지휘자는 모테르 합창단이야말로 진정한 직업합창단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고 말한 것을 기억한다. 직업인이란 그들의 시간과 재능을 돈과 바꾸는 단순 교환 이전에 좀더 풍요로운 사회를 위하여 무엇인가 이바지해야 한다. 모테르합창단에는 바로 이것이 내재되어 있은 것이다. 다른 직업합창단에 비해 월등히 적은 보수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단원들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추구하는 것이 말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들이 연주하는 곡목이 교회음악의 테두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음은 창단취지에 기인하고 있는데, 한정된 레퍼터리에도 불구하고 여타 다른 합창단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음은 그만큼 그들의 소리가 성숙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또한 전문합창단이 어느 레퍼터리에 전문적이라는 것은 그만큼 프로의식의 표출이라서 좋다. 이날의 연주도 16세기 마드리갈을 제외하고는 모두 교회음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모테르 3곡의 르네상스다운 아름다운 흔적

첫 곡은 르네상스 작곡가 핫슬러(H.L.Hassler)의 모테르 3곡이 연주되었다. 모테르를 가장 아름다운 합창음악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에 의하여 연주되어서인지 르네상스다운 아름다움을 추구한 흔적이 역력하다. 돈 체인링의 기법이나, 절제 있는 표현력.

그러나 각 파트의 편성인원의 불균형으로 인하여 르네상스 음악 이상인 각 성부의 동질적 균형미가 깨져 있음이 조금 아쉬웠다. 두 번째 곡인 몬테베르디(C.Monteverdi)의 「라타루스 슘」은 기악앙상블의 협연으로 이루어졌는데, 특히 쳄발로를 담당한 양기훈의 바소컨티누가 돋보였다. 1부 마지막에는 모레이(T.morly)의 마드리갈 5곡이 연주되었는데, 앞의 두 작곡가의 연주보다도 훨씬 뛰어난 연주를 보여 주었다. 모두 자신감 있게 연주를 하였는데, 지휘자의 훌륭한 해석과 혼연일치되어 연주하는 단원들의 모습이 젊음의 상큼함 그대로였다. 이날의 연주에서 제일 좋은 기량을 보여주었다.

2부에서는 슈베르트(F.Schubert)의 G장조 미사가 연주되었다. 르네상스에서 바로크를 뛰어넘어 고전주의로의 행보가 얼마나 큰 음악적 차이가 있는가를 보여주는 훌륭한 연주였다. 두 번째 곡인 글로리아에서 약간의 음정이 불안했지만, 교회음악의 정수를 드러내는 영감 있는 찬양 그 자체였다.

마지막 부분은 한국 작곡가의 작품인 성가들로 구성되었다. 나무랄 때 없는 좋은 연주였다. 특히 남성의 박력 있는 톤이 매력적이었다.

서울 모테르합창단의 연주가 국내 유수의 합창단에 비해 더욱 신선한 감흥을 준 것은 그들이 만들어 가는 음악적 뉘앙스 속에 자신들의 의지가 충만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질 만능주의에 반기를 들면서도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또한 최고이고자 하는 직업 정신이 나타나 있는 것이다. 몇몇 합창단들의 지휘자와 단원들간 불협화가 공공연하게 표출되는 이때에, 지휘자 박치용과 단원들간의 잡음 없는 화합은 앞으로의 긴 여로에 커다란 지침목이 될 것이 분명하다. 후원회를 통하여 운영되는 열악한 조건이지만 그들이 고집스러운 프라이드를 갖고 있는 것은 자신들이 하는 음악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이날의 연주가 한국문화예술진흥회의 후원으로 이루어졌음은 그들에게는 제정적 의미 이외에 또 다른 힘이 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