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문화 교류의 새로운 인식
백승길 /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연구위원
1. 국제문화협력이란
문화교류의 활성과 진흥은 문화의 전달자와 수용자간의 소통 즉, 커뮤니케이션의 문제이다. 상이한 문화의 직접·간접적인 접촉의 총체적인 모습을 문화교류라고 정의할 때 이러한 문화의 만남은 생활주변에서 지역간, 계층간, 부문간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문화는 상징적인 의미와 함께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담은 언어이기 때문에 전달자와 수용자간의 공통적인 이해체계가 없을 경우 이질적인 문화는 도태되거나 곡해될 수밖에 없다.
전달자의 의도된 목적과 전달방법에 따라 문화교류의 전반적인 성격이 결정될 수 있으며, 교류되는 내용의 실체에 따라 그리고 수용자의 인식과 능력에 따라 문화교류의 특성이 결정될 수 있다. 따라서 문화교류를 분석하는 방법론도 전달자와 수용자에 초점을 맞추어 해석하는 방법과 전달되는 내용이 무엇이냐는 내용분석과 어떻게 인식하고 수용하느냐는 주관적 측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구를 가능케 하나의 문화교류현상을 완벽하게 증명해 낼 수 없다. 왜냐하면 문화교류는 기계적이고 산술적인 접촉이기보다는 유동적이고 가변적이기 때문이다.
문화교류를 총체적으로 조명하는데 유의해야 할 점은 상이한 문화와의 만남이 단순히 수요 공급에 의존한다고 단정하기에는 너무나도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동서문화교류의 역사적 중요성을 띠고 있는 실크로드(Silk Roads)에서 볼 수 있듯이 외래문화를 수용해야겠다는 욕구의 팽배보다는 신앙심에 투철한 수도승의 희생과 경제적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상인, 기타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회계층이 문화교류의 속도와 교류의 폭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문화교류가 집단의 의도적인 이익과 목적을 위해 오용된 사례는 역사적으로 많이 발견되고 있다. 유럽 제국들의 서세동점을 통해서,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을 즈음하여 자국의 세력을 공고히 하고 적대국을 고립시키기 위해 문화를 전략적으로 활용했었다. 문화를 통한 상호 이해증진과 선린관계의 유지 및 인간의 내외적 성장에 기여하는 예술진흥은 한낱 외형상의 목적일 뿐 실제로는 타민족의 문화를 침식하여 궁극적으로 자국의 국력을 신장시키겠다는 의도가 문화교류의 본질적인 목적이라는 극단적인 해석도 가능한 것이다. 문화종속화, 문화제국주의의 기본 입장에는 바로 문화교류가 일부 집단에 의해서 오용될 수 있다는 개연성과 무관하지 않는다. 진정한 문화교류는 상호간에 문화의 정체성(Cultural Identity)을 인정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문화의 일방적인 수용이나 무분별한 도입은 문화적 사대주의를 조성하여 자기문화에 대한 비하 내지는 맹목적인 추종과 모방을 야기시켜서 상대문화를 객관적으로 관조할 수 있는 노력을 말살시키기 때문에 왜곡된 시야에서 수용하게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문화를 전달하거나 수용하는 양쪽에서 모두 문화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선행되어야겠으며 특히 문화를 수용하는 측면에서 자기문화의 본질을 망각하지 않으면서 외래문화의 장점을 도입하여 우리문화화 하는 노력이 따라야 한다.
각국의 문화정책은 전세계적으로 문화교류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증대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비록 오늘날의 문화교류가 정부의 통제와 간섭하여 쌍방간 교류가 이루어지지 않을 정도로 복잡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문화교류는 상대성을 띠고 있으며, 교류의 결과가 문화정체성 그 자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에 국가차원에서 기능적으로 간접적인 통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많은 국가에서도 해외교류문화를 지원하는 특별기금을 운영, 포상제도의 실시, 세제상의 특혜, 문화협정의 체결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조작적인 부양책을 구사하거나 부분적인 통제를 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국가간의 문화교류가 정부의 외교정책에 따라 변하게 될 경우, 그리고 정치적인 이유로 해서 제한된 국가들과의 교류만을 허용할 경우, 문화교류를 통한 득보다는 편향된 문화관을 갖게 하는 실이 클 수밖에 없다. 이러한 폐해는 남북대치 상황에 놓여있는 우리로서는 결코 간과해 버리기에는 너무나도 심각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실제로 과거 우리의 국제문화 교류는 미국, 영국, 프랑스, 서독 등 일부 서방국가와 아시아지역에서는 일본과 대만에 지나칠 정도로 치중되어 왔다. 정부의 정책적 한계는 곧 바로 민간차원의 문화교류에 영향을 끼치게 되어 지역적으로 균형 된 교류관계를 형성치 못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따라서 앞으로의 대외문화교류정책은 제한될 수밖에 없었던 교류의 폭을 어떻게 확산시키고 그 실행원칙은 어떤 기준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합리적이고도 장기적인 관점에 의해 설정되어야 한다.
문화에 대한 정책적인 개념이 모호한 우리의 실정에 비추어 보면 문화교류는 결코 단순한 예술가의 작품을 전시하거나 공연하는 고급예술만의 교류에 집착해서는 안된다. 문화교류는 사회적 만남(social encounter)이며 새로운 가치관과 인식을 생성시키는 본질적인 접촉이다. 학술, 관광, 체육, 청소년분야, 문화산업 등 전반적인 영역에 걸쳐 순수예술의 교류를 보완해 주거나, 교류의 질적 수준에서 볼 때 순수예술보다 훨씬 효과적인 교류가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외교는 폭넓은 관점에서 입안되고 정책적 합의점이 도출될 때 국가간의 교류를 촉진하는데 일익을 담당하게 된다. 비록 순수예술이 문화의 정수와 고도의 예술성을 담고 있어 한나라의 문화로 대표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문화전반에 걸친 교류의 중요성을 망각한다면 순수예술의 이해를 결코 증대시킬 수 없게 된다. 1966년 채택된 유네스코의 「국제문화협력의 원칙에 관한 선언」의 제3조에 『국제문화협력은 교육, 과학, 문화와 연결된 지적, 창조적 활동 등 전반적인 영역을 다 함께 포괄해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는데 이 점이 바로 순수예술의 교류가 갖는 한계성을 암시하고 있다.
문화의 수용측면에서 보면 문화교류는 새로운 각도에서 입안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문화교류는 대중 모두의 권리이자 의무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대외문화교류사업은 주로 정책적 결정에 의해 이루어졌고 교류의 수도 몇 안 되기 때문에 일부 문화 예술인들만이 교류에 참가해 왔고, 예술적으로 탁월해야만 국제교류에 임할 수 있다는 선입관을 갖게되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문화교류는 궁극적으로 우리의 문화, 예술을 보다 수준 높은 단계로 향상시키기 위해 사상과 의견을 교류하는 하나의 교육과정이다. 완성된 상품을 판매함으로써 부의 획득을 취할 수 있는 경제교류와는 매우 다른 교류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문화교류는 아마추어 예술가, 전문예술가, 학생, 일반시민이 다 함께 교류되어야 한다. 문화향수면에서 볼 때 향후 문화정책은 다양한 계층이 문화교류에 참여하고 이로 인해서 문화적 생활을 진작시킬 수 있는 차원에서 입안되어야 한다.
또한 지역문화발전과 연계될 수 있는 문화교류가 시급히 요구된다. 지금까지 해외 공연단의 초청 및 국제전의 유치는 서울, 부산, 대구 등 몇몇 대도시의 일부 계층을 주대상으로 삼은 것이 사실이다. 이는 공연단 초청에 따르는 막대한 경비 등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예산측면과 대도시를 제외한 나머지 중소도시에는 미흡하나마 해외 공연단이 공연할 수 있는 종합문예회관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화교류는 초등학교, 중고등학교에서 작품교류나 해외문화예술의 VTR감상 등 소규모의 행사라도 가능하다. 지역의 예술인에게도 창작기법의 향상과 상호비교를 위해 타문화의 예술작품을 접하고 싶은 충동은 대도시의 예술인과 다를 바 없다. 지역의 문화를 진흥시키고 독창적인 문화권을 형성키 위해서는 비판적 안목과 시야를 가질 필요가 있다. 지방예술인의 국제적인 감각은 결과적으로 지역문화운동의 전개에 긍정적인 기여를 하게 되어 국가문화발전에 새로운 활력소를 주게 될 것이다.
국제문화교류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측면은 교류의 질과 내용이다. 획일적이고 고정적인 예술품의 교류를 지속할 경우, 자칫 외국인으로 하여금 우리문화에 대한 그릇된 시각을 조성케 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한 국가의 문화는 타문화와 상이한 속성을 갖게 마련이지만 우리 문화의 한 측면만을 계속적으로 교류함으로써 한국문화는 한의 문화 혹은 정적인 문화라는 고정적인 인식을 갖게 한다면 이는 양 문화간의 진실된 교류에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따라서 역사성, 전통성, 예술성이 높은 우리의 문화를 새로운 시각과 창의적으로 새롭게 창조하려는 열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미술, 무용, 연극, 문화, 음악, 영화 등 모든 분야에 걸쳐 학문적인 연구가 축적되고 활성화될 때 균형 된 문화교류를 성취할 수 있다.
2. 문화협력의 범위
문화협력은 넓은 의미의 대외관계와 좁은 의미에서의 외교정책이라는 맥락에서 파악될 수 있다. 보다 넓은 의미의 대외관계란 한 국가가 타국, 타국민과 갖는 모든 접촉양상을 포함한다. 예를 들면, 외국인이 우리를 어떻게 보며 또 어떻게 행동하는지,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보며 또 반응하는지, 또 그러는 사이에 어떤 반작용이 일어나는지 등이 포함된다. 이처럼 복잡한 관계는 정부와 개인을 포함한 많은 요소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 교수나 신문기자의 교환뿐만 아니라 심지어 민박을 제공하는 개인도 대외관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 반면에 외교정책은 정부가 국가와 국민의 안전, 복지, 기타 특수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개별국가, 국가집단, 그리고 전세계와 맺는 관계를 의미한다.
외교정책과 대외관계 사이의 구분이 외교정책의 문화적 측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왜냐하면 정부가 공공정책을 입안하지만 특히 문화분야에서는 이 정책을 수행하려면 민간분야의 자발적인 도움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공공정책과 개인의 정책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정부와 민간분야는 때로는 불편한 관계일지라도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외교능력과 수완의 발전과 경제력의 팽창은 외교정책을 과거와 같이 국민의 여망을 도외시한 채 정부 혼자서 독점할 수 없게끔 작용하고 있다. 모든 인간은 평화, 보다 좋은 생활환경, 기회의 균등, 인간의 존엄성을 갈망한다. 그런데 어느 정부도 이러한 갈망을 무시할 수 없다. 다시 말하자면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지식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정부의 형태와 운명을 형성하고 또 사회의 진로를 결정한다.
외교는 오늘날 정부간의 단순한 대화가 아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뒤에는 국민들이 정부에 대해서 갖는 증대된 힘 때문에 정부가 외교의 한 수단으로서 정교한 해외홍보사업을 수행하게 되었다. 이러한 홍보사업은 말을 바꾸어 하자면 외국정부를 제쳐놓고 외국국민들과의 직접적인 대화를 통해 해당정부의 정책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의도였다.
이제는 국민들이 점점 외교까지 자기들이 소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국경을 초월한 대화가 경제, 학술, 체육, 관광 및 문화교류와 TV, 라디오와 같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교류가 정부에 의해서 알선되고 또 한정된 경우에는 정상적인 외교통로를 넘어 보다 넓은 상호이해를 위한 융통성 있는 접근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우리는 1988년의 올림픽 때 문화를 외교의 수단으로서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한 실례를 소련의 경우에서 찾아 볼 수 있다.
3. 교육ㆍ문화의 위상
교육과 문화를 외교정책의 일환으로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미국, 프랑스, 서독, 일본, 영국, 소련의 경우에서, 특히 국내에 문화원을 운영하고 있는 국가의 경우에서 우리는 교육과 문화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전통적인 외교개념에 안위하고 있어 외교정책에서 인간적인 요소라고 말할 수 있는 이 부분을 등한시하고 있으며, 국제문화교류를 담당하고 있는 여러 민간인들과 그들의 아이디어, 지식을 십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미 진행되고 있는 대외적인 교육, 과학, 문화활동은 외교정책의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인 면과 서로 엇물려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분야들의 공통점은 넓게 보아서 배움이라는 절차와 본질을 다 포용하고 있기 때문에 교육적이라는 말로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
외교정책의 인간적인 면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개발을 뜻한다. 그들의 기술과 지식, 통찰력과 이해력, 태도와 가치관, 그리고 모든 창조적인 잠재력 등을 개발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학문적 연구와 과학적 발명을 통해서 그리고 예술과 인문과학의 연마를 통해서 지식과 창조적인 일을 개발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디어와 지식을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형태와 방법으로 전달하고 응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모든 국제적인 활동을 우리 외교정책의 교육적인 요소라고 지칭할 수 있다. 이때, 교육적이라는 용어는 학교, 교실, 선생, 교과서 등과 같은 좁은 의미에서의 교육이 아닌 보다 포괄적인 개념이다.
문화적 요소 혹은 넓은 의미의 교육적 요소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우리의 외교정책에 활용할 자원이 거의 무궁무진하다. 예를 들면 교육계 전반, 학술단체, 연구기관, 미술가, 작가, 공연예술가, 과학자, 발명가들 등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창조적인 두뇌와, 기관들을 활용할 수 있다. 사실 이러한 기관들이 수행하는 일들을 정부는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가 없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국가의 보다 큰 목표를 지원하는 이러한 교육과 문화를 국가별로, 사업별로, 그리고 기관별로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중요한 정책과제이다. 문화교류의 궁극적인 목표는 우리를 타 국가와 그들의 국민들에게 보다 넓고 깊게 이해시키는 것이며 그렇게 해서 우리의 정책과 의도를 남들이 보다 정확하고 동정적으로 이해하게 만드는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우리가 타국민을 이해하는 통찰력을 넓히고 또 국제문제에 있어서의 우리의 능력을 배양함으로써 우리의 정책이 보다 더 잘 이해되고 내외적으로 지지를 받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교육과 문화활동이 만병의 통치약이 아니며 또 지금 행해지고 있는 일들의 대용물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 경제, 군사적 접근방법에도 한계가 있다는 시실 또한 자명한 일이다. 교육과 문화적인 요소가 외교정책에 효율적으로 활용된다면 다른 면의 외교정책을 보완할 수 있고, 기대 이상의 것을 성취할 수도 있고, 외교정책에 새로운 활력소와 함께 외교의 깊이와 유연성을 제공해 줄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명확하게 정의된 정책의 목표가 있어야 하며 이를 집행할 수 있는 적절한 기구와 헌신적인 전문인력이 선결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