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문학예술정책
오양열 /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조사연구부
북한은 금년 4월 최고인민회의 제9기 3차회의에서 경제부문을 중심으로 그들의 사회주의 헌법을 수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직 구체적인 법조문이 알려져 있지 않아 확인 할 길은 없으나 북한 언론매체에 해설되어 있는 내용으로 보아 문화예술부문에 관한 규정은 변함이 없는 것으로 일단 판단된다. 따라서 「공민은 과학과 문화예술활동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하는 개정전 헌법 제60조도 조가 바뀌어 현행 헌법에 그대로 남아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북한 헌법상의 이러한 규정은 적어도 법제상으로나마 북한사회에 예술창조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불러 일으켜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이 주장하는 자유의 개념을 먼저 파악하지 않는 한 이 규정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한다는 것은 거이 불가능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북한에서 발간된 한 이론서 (「주체사상에 기초한 문예이론」)에 의할 것 같으면 북한은 예술창작의 자유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노동계급의 혁명적 입장에서 볼 때 문학예술의 창작의 자유란, 작가·예술인들이 사람의 자유성을 짓밟는 착취 계급에 반대하여 정의의 필봉을 높이 들 수 있는 자유, 혁명과 건설의 주인인 인민대중에게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생활을 보장하는 사회주의·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역사적 위업에 복무하는 혁명적 문화예술을 창작할 수 있는 자유이다.」(사회과학원, 1975:42)
여기서도 확인되는 것처럼 북한의 작가·예술인들에게 허용된 자유의 범위는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위한 혁명원리에 국한되며 사회적 기능 역시 혁명화의 무기 이상일 수 없다. 그리고 사회주의 미학으로 첨예화된 무기를 만들어 내는 국가적 시책이 바로 북한 문예정책의 큰 테두리를 이루는 철칙이며 그 핵심에는 주체사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문학분야를 중심으로 북한 문예정책의 기반이 되는 문예이론 중 주요한 것을 살펴보고, 문예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기관·단체의 연혁과 구조, 임무와 기능 등을 알아본 후 정책학적 관점에서 북한의 문예정책을 개괄적으로 분석하고 유형화를 시도함으로써 그 성격을 분명히 하고자 하였다.
북한 문예정책 중 문학분야에 주로 초점을 두게 된 것은, 북한 노동당이 모든 예술장르 중에서 영화 및 혁명가극과 더불어 대중성이 강하고 인민 교양(敎養) 및 선전·선동 효과가 뛰어난 장르로 문학을 중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문예정책의 기조(基調)를 형성하는 문예이론이 가장 체계적으로 발달되어 있는 분야로서 여타 분야 문예이론의 원류를 형성하고 있고, 현실적으로 관련자료나 기존의 연구실적이 풍부하여 상대적으로 입수가 용이하였기 때문이다.
1. 북한의 문예이론
일반적으로 문예작품과 이론은 본질적으로 개인적이고 개별적인 성질을 갖는 반면 문예정책은 집단적 또는 국가적 차원에 놓여 있어 이러한 양자간의 대립, 긴장 관계가 오히려 상호 보완을 가능케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양자의 발전적 긴장관계는 완전히 거세되고 오직 집권자의 통치수단 내지 공산주의적 혁명과 건설을 다그치기 위한 수단으로써만이 그 존재 의의가 부여되고 있는 것이 북한의 문예이론이고 문예정책이다. 공산주의 국가에 있어 문예이론은 그것이 곧 문예정책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양자는 표리(表裏)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문예 정책을 알기 위해서는 그 근저에 자리잡고 있는 문예이론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북한의 문예이론 중 문예정책과 직접 관련이 있고 보다 중요시되고 있는 이론으로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주체 문예이론, 종자론 등 3가지를 들 수 있겠다.
가. 사회주의 리얼리즘
사회주의 리얼리즘(Socialist Realism)은 당초 1930년대 초반 소련작가 동맹이 규정한 창작 슬로건으로, 종국에는 공산권 국가의 중심적인 문예창작 이론으로 정착된 것이다. 구 소련 국가정치 서적출판사가 간행한 「막스-레닌주의 미학원리」(1960)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예술을 「사회주의적 내용과 민족적인 형식을 가진 예술」로 정의(홍기삼, 1981:31에서 재인용)하고 있는데, 인민대중이 선호하고 각 민족의 구미와 정서에 맞는 고유한 형식에 혁명적이고 계급적인 사회주의 이념 내용을 담는 것을 말한다.
북한의 한 문학개론서는 마르크스, 엥겔스의 주장을 이어받아 「전형적 환경에서 전형적인 성격을 역사적인 구체성과 혁명적 발전과정 속에 진실하게 묘사하되 공산주의적인 긍정적 주인공을 주도적인 입장에 세워 형상화하는 창작방법」(정석홍, 1986:9에서 재인용)이라고 하여 이를 보다 구체화하고 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 예술 창작방법상의 요건으로는 당성, 계급성, 인민성 이라는 세 가지가 거론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북한 문예이론에서는 계급성을 특히 노동계급성이라 바꾸어 부르고 여기에 적대주의(敵對主義)를 새로 추가시키기도 한다.
우선 사회주의 리얼리즘에서 말하는 당성(黨性)이란 일반적으로 사회주의적 경향성 내지 이념성, 즉 당 노선과 정책에 입각하여 작품의 소재를 선택하고 사회의 발전과 생활의 근원을 당 정책과 관련시켜 묘사하고 반영하는 것을 말한다. 북한에 있어서는 김일성 저작선집(제3권)에서 이를 「당에 대한 끊임없는 충실성」이고, 「막스-레닌주의 세계관에 기초한 높은 계급적 각성」이며, 「당과 혁명을 보위하며 당 정책을 관철하기 위하여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백절불굴의 혁명정신」으로 표현하고 있고, 이론서(사회과학원, 1975:73)를 통해 당성은 수령에 대한 충실성에서 가장 철저하게 구현된다고 거리낌없이 주장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든 공산주의 사회든 사회적 의식의 한 형태인 모든 문학예술은 필연적으로 한 계급의 입장을 대변, 지지, 옹호하는 계급적 성격을 지니게 되는데, 이러한 계급적 성격은 자기 계급의 이익을 옹호하는 예리한 사상적 무기라고 보는 것이 북한 문예 이론의 기본 시각(視角)이다. 즉 「계급성은 가장 선진적·계급적인 노동계급의 이해관계를 옹호하며 사회주의, 공산주의 건설을 목적으로 하는 노동계 급성으로 발현된다」(사회과학원, 1970:237)고 보고, 노동계급성을 계급투쟁의 무기임과 동시에 근로대중의 계급교양 수단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한편 인민성은 사회주의 문학예술은 공산주의를 완성하는데 이해관계를 가진 인민대중의 이익을 반영하고 인민에게 복무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 인민성은 의식적으로 표현되는 강한 계급성, 즉 당성 및 노동계급의 이익을 지지·옹호하는 노동계급성과 통일되어 있는 개념으로서, 인민대중에게 쉽게 이해되고 이에 복무하여 인민을 공산주의적 인간으로 형상화하고 혁명과 건설에 궐기시켜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 인민성은 또한 예술의 특질, 이념적인 요소, 사회적 기능이 함께 만나는 지점이며 사회주의 문예의 본질적 부분으로서 통속예술론이나 군중(집단)예술론 정립의 단서(端緖)를 이룬다고 할 수 잇다. ‘인민이 이해하지 못하므로 해서’ 추상화는 자취를 감추고 ‘인민이 좋아하지 않으므로 해서’ 수묵화(전문미술인들 사이에서 기량전시 방식으로만 소개된다)는 일반에 전시되지 않으며 예술무용 외에 여흥무용이라는 군중무용이 보급되는 등 이 이론을 반영하고 있는 예술정책의 예는 많다.
「온갖 반동적 문예조류 및 반혁명적 문예사상과의 비타협성」을 의미하는 적대주의는 「생활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다는 명목 밑에 비본질적이며 의의없는 잡다한 생활적 사실 등을 기계적으로 복사하는」(사회과학원, 1975:99) 자연주의 문학, 예술을 위한 예술을 지향하는 예술지상주의, 기타 형식주의 등과 같은 관념론 철학과 부르주아 사상에 의해 생겨난 문예조류에 반대하여 비타협적으로 투쟁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나. 주체 문예이론
주체(主體) 문예 이론은 사상에서의 주체, 정치에서의 자주, 경제에서의 자립, 국방에서의 자위의 원칙을 주장하는 주체사상에 바탕을 둔 문예이론이다. 주체 문예이론은 문학예술에서 주체 확립의 본질적인 내용을 과학적으로 밝혀 그것이 문학예술을 시대의 현실적 조건과 문학예술 자체 발전의 요구에 맞게 창조 발전시키는 가장 올바른 길임을 천명한다는 목표를 지니며, 문학예술을 민족적인 정서와 감정, 역사와 현실에 맞도록 하여 혁명과 인민을 위해 적극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무기가 되게 한다는 것(권영민, 1988:161)으로, 결국 그 논리적인 성격으로 볼 때 이념적 보편성과 형식적 특수성을 포괄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에서의 사회주의적 내용과 민족적 형식의 결합으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여기서 말하는 문예의 민족적 형식이라는 것이 바로 일제 식민지 시대에 김일성에 의해 지도, 창작되었다는 항일혁명 문예형식이고, 사회주의적 이념내용이라는 것도 당의 유일 사상인 김일성 혁명사상이라는 이론을 펴고 있음을 볼 때 이 이론 자체가 결국은 김일성 우상화를 위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변형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이는 주체 문예이론에 따른 결과로 홍기삼(1981:47∼48)이 지적한 다음의 세 가지 문예현상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첫째, 모든 문예작품과 이론에 김일성의 주장이나 모습을 어떤 형태로든지 다루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대적인 요청이다. 따라서 북한 문예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창작 비중은 김일성에 대한 칭송과 예찬을 위해 바쳐진다.
둘째, 김일성의 절대화, 우상화에 따라 그의 가계(家系) 전체도 마찬가지로 신성한 차원으로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이다. 「조선문학사」는「…위대한 혁명적 가정(家庭)에 대한 빛나는 형상」이라는 항목을 설정하여 40면이 넘게 그 일가의 생애를 신성화, 우상화한 작품들을 언급하고 있다.
셋째, 김일성주의에 철저히 귀의, 순응, 복종, 실천하는 인간상의 구현이다. 모든 인간과 사회현상은 김일성의 의지대로 이루어져야 하고 김일성과 똑같이 생각하여야 하며 「그이의 심려를 덜어드리기 위하여」살아가야 한다는 등등의 표현을 가장 자주 쓰이는 것으로 되어 있다.
다. 종자론
종자론(種子論)은 북한이 주체 문예이론과 함께 북한만의 독창적 문예이론이라고 자랑하는 것으로, 주체 문예이론이 미학원리라면 종자론은 주체 문예이론에 입각하여 예술창작에 임하도록 요구하는 일종의 실천강령(권영민, 1988:166)이라 할 수 있다. 종자란 작가가 말하려는 기본 문제이자 작품의 사상·예술적인 핵(核)으로서, 북한사회가 공동의 이념과 가치로 규정하는 일체의 가치체계를 하나의 이데아로 첨예화(尖銳化)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종자는 이를 똑바로 잡아야 자기의 사상·미학적 의도를 정확히 전달할 수 있고 작품의 철학성을 보장받을 수 있으므로, 종자는 작품의 가치를 규정하는 근본요소로서 모든 문학예술 작품에는 반드시 작가의 개성적이고도 독창적인 종자가 드러나 있어야 하고 이를 통해 예술적인 형상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된다. 또한 종자에 관한 사상은 「문학창작의 어느 개별적인 범주에 대한 사상이 아니라 소재의 선택과 구상으로부터 작품의 얽음새와 구성, 성격, 창조와 양상 등 창작의 전과정에 전일적(全一的)으로 작용하는 근본 고리에 대한 사상이며, 작품의 사상·예술적 질을 규정하는 결정적 요인을 밝혀주는 기초에 관한 사상」(홍기삼, 1981:49에서 재인용)이라고 주장된다. 결국 종자란 작품속에 담겨져 있는 가장 핵심적인 미적인 요소이자 사상적 요소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두 가지 요소 중 물론 사상성의 문제가 보다 중요한 요소로 간주된다. 여기서 사상성이란 바로 당의 정책을 정확히 반영하고 당의 노선과 정책에 철저하게 의거하여 시대가 제기하는 사회정치적인 과제에 올바른 사상적 해답을 제기할 수 있는 것(권영민, 1988:164)을 뜻하므로, 종자론 또한 김일성 우상화로 귀납된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즉 「주체사상에 기초한 문예이론」은 「종자에 있어 기본은 사상에 두어야 하고 소재와 주제의 요소들은 사상적 알맹이에 의하여 제약되며 거기에 복종된다. 종자의 선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수령님의 교시와 그 구현인 당 정책의 요구에 맞는 것」이라고 못박고 있어, 종자론이 김일성주의의 실천적 미학임을 밝히고 있다.
라. 기타의 이론들
앞에서 언급한 사회주의적 리얼리즘, 주체 문예이론, 종자론은 북한 문예이론의 기본 줄기를 이루는 핵심적인 이론이다. 이외에도 보다 구체적인 차원에서 몇가지 문예이론이 주장되고 있다(홍기삼, 1981:52∼94 참조).
우선 가장 북한다운 이론으로 문학을 전투행위의 하나로 간주하는 「속도전 이론」이 있다. 빠른 속도로 전투를 감행하는 것과 같이 창작도 속도를 내어 목표량을 초과 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형화 이론」은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의 골격을 구성하는 이론이나 전형적인 인물의 대표적인 인간형으로 김일성을 명시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요구 때문에 특별히 강조된다. 앞에서 약간 언급하였으나 실천적 차원에서 인민성과 관련을 갖는 문예이론들로는 인민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평이하고 통속적으로 되어야 그들의 염원과 투쟁의 방향이 옳게 반영될 수 있다는 「통속예술론」, 창작의 주체는 개인이 아니라 군중 또는 집단이 되어야 한다는 「군중 예술론」, 「예술에서 추상성은 죽음이다」라는 극단적인 명제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문예의 추상주의적 경향을 미학적 자살이자 반예술적인 것으로 매도하는 「반추상주의」, 문학예술작품은 철저히 생활체험과 현장체험을 바탕으로 하여야 한다는 「체험론」등이 있다. 이밖에 김일성 우상화 정책과 직접 관련되는 것으로는 개인 숭배를 통해 영원불멸의 길을 지향한다는 「영생주의 예술론」등이 있고, 문예이론의 차원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북한의 문학예술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실마리가 되는 「혁명적 낙관주의」, 「혁명적 낭만주의」,「혁명적 대작주의」 등의 거론된다.
2. 북한의 문예조직
북한의 문화예술관련 기관과 단체로는 정부기관으로는 노동당 문화예술부, 정무원 문화예술부, 대외문화연락위원회가 있고, 사회단체로 조선문학예술 총동맹(문예총), 문예소조 등이 있다. 이를 문예정책 수행의 주체라는 관점에서 정병덕(1989:119∼130), 김경웅(1990:16∼20), 홍기삼(1981:18∼22), 권영민(1988:170∼171), 이기봉(1986:366) 등의 글을 참고로 하여 살펴보도록 한다.
가. 노동당 문화예술부
당 중앙위원회 부속기구인 문화예술부에서 제도적으로 무슨 역할을 담당하는지에 관한 실증적인 자료는 없다. 그러나 문예총과 관련한 자료를 통해 유추해 볼 때 노동당 문화예술부는 문화정책, 즉 문화예술부문에 대한 당의 기본 정책방향을 설정하고, 전문 일선조직(一線組織)이라고 할 수 있는 문예총(특히 각 산하동맹)을 직접 지도, 감독, 통제하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다시말해 문예총이 작가·예술인들에 대한 사상예술적 교양사업에 주력하고 정무원 문화예술부가 기타의 여러 사업과 함께 창작분야에 대한 행정적인 조직사업과 지도사업을 수행한다면, 노동당 문화예술부는 이 모든 사업을 정치적, 정책적으로 총괄지도하는 입장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나. 정무원 문화예술부
정무원(政務院) 문화예술부는 1957년 8월 교육문화성으로 통합되어 있다가 1960년 12월 문화성으로 독립하였으나 다시 문화예술부로 개편되었으며, 북한 문학예술의 정치선전 도구화를 반영하듯이 당 중앙위 선전선동부(宣傳煽動部)와 문화예술부의 직접적인 지도·감독을 받고 있다. 직제상으로 남한의 문화부에 해당하는 정무원 문화예술부는 창작사업에 대한 행정적인 지도와 집행을 주로 하는 기관으로 북한 사회주의제도의 우월성 선전과 김일성 우상화 시책에 다른 대인민(對人民) 정치, 사상, 교양사업 활동도 아울러 수행하는 임무가 부여되어 있다. 위와 같은 정무원 문화예술부의 부서조직을 통해 그 기능의 대강과 성격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다. 대외문화연락위원회(對外文化連絡委員會)
이 위원회는 북한이 1955년 4월 반둥회의를 계기로 대공산권(對共産圈) 일변도 외교에서 중립권 및 신생독립국과의 다변 외교공작을 위해 1956년 4월 창설하였다. 이 기구는 당과 내각의 외곽단체로 정부간의 접촉에 앞서 민간외교 또는 친선단체들의 교류나 문화활동을 통해 선전공작을 벌이고 있고, 그 산하 단체로 각종 친선협회와 김일성 연구소조 및 북한지지 연대성 위원회를 두고 있다. 이 기구를 순수 문화예술단체로 보기는 어려우나 실제에 있어서는 외국 공연단의 초청과 문화예술을 통한 대외 선전사업에 광범위하고 깊이있게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라. 조선문학예술총동맹
문예총은 북한의 작가·예술인들을 망라하여 결성된 통일적인 조직이자 사회단체이다. 문예총은 당초 1946년 3월 북조선 문화예술 총연맹으로 발족하였다가 6.25 동란중에 1951년 3월 조선 문학예술 총동맹으로 개편되었으며, 1953년 9월 이를 발전적으로 해체하여 작가동맹, 미술가동맹, 작곡가동맹으로 분리·개편되었다. 현재의 문예총은 1961년 3월 재발족된 것으로 중앙위원회에 위원장(1명)과 부위원장(5명)을 두고 조직부, 선동부, 교양부 등의 부서가 있으며 그 산하에 작가, 음악가, 미술가, 무용가, 연극인, 영화인, 사진가 등 장르별 동맹이 있는데 동맹별로 분과위원회가 각 도(직할시) 지부가 있고, 본부 직속기관으로 문예총출판사가 있다.
「문학예술사전」(사회과학원, 1972:696∼699)에 의하면 문예총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에 의하여 이룩된 혁명문학예술의 빛나는 전통을 계승하며 그이의 주체적인 문예사상과 그 구현인 우리당 문예정책을 관철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것」을 사명으로 하고 있으며, 그 기능은 ①당의 영도 밑에 모든 작가, 예술인들을 충실한 문예전사(文藝戰士)로 키우기 위한 사상교양사업 수행 ②당 문예정책을 관철하기 위한 창작사업을 진행하도록 협의, 조직, 집체적 지도를 보장 ③인민의 생활과 감정에 맞는 혁명적인 문학예술을 창작하며 문학예술을 시대의 참다운 혁명적 문학예술의 본보기로 만들기 위하여 투쟁 ④반당적이며 반동적인 사상의 침투와 발현을 반대·투쟁하여 노동자·농민을 비롯한 광범위한 군중 속에서 문학예술의 새세대들을 체계적으로 육성하기 위하여 노력 ⑤세계의 모든 진보적이며 혁명적인 작가·예술인들과 연대성과 단결을 강화하기 위한 사업수행 등으로 되어 있다.
북한의 문예총은 남한의 예총(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이나 민예총(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과 그 조직 구성이 상당히 유사하나 기능상으로는 많은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예총이나 민예총이 예술단체 내지 예술인들의 자발적인 의지로 결성되어 가입과 탈퇴가 자유롭고 기능상으로도 예술인의 권익과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조직된 이익 단체적 성격의 민간단체임에 비해, 북한의 문예총은 사실상 노동당 문화예술부의 정책 집행기관 내지 작가·예술인들을 지도, 통제, 감독하기 위한 행정기구로서, 이를 통해 국가배급과 작품발표의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가입이 의무화되고 맹원(盟員)은 공무원 신분을 갖는다는 점 등에서 차이가 드러난다.
마. 조선작가 동맹
문예총의 산하단체인 작가 동맹은 1946년 3월 북조선문학예술총연맹의 산하단체로 발족하였다가 몇 차례의 개편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고 있는데, 중앙위(위원장 1명, 부위원장 2명), 서기장, 조직부, 신인지도부, 시·소설·문학·희곡·아동문학·평론·고전문학·외국문학 등 각 분과위, 문학신문사, 각 잡지 편집부, 각 도지부로 조직되어 있다.
작가동맹의 임무와 기능은 ①작가들이 노동당의 문예정책을 잘 알며, 그를 관철하도록 지도, 통제 ②작가들이 당이 요구하는 작품을 적시에 창작해 내도록 창작지도 ③작가들 속에 당의 유일사상체제를 확립하며, 공산주의 교양을 실시 ④맹원 또는 후보맹원의 출맹(出盟)과 가맹(加盟) 권한을 통해 문단 등용 및 축출문제를 결정 ⑤정맹원(중앙공급대상 8호)들에 대한 식량과 의복 배급 ⑥당위원회를 통해 작가들에 대한 당적인 통제를 실시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작가동맹은 「창작지도」라는 명칭의 사업을 통해 작가 개개인의 창작생활을 속속들이 검열·통제하는데, 작가동맹이 맹원에 대해 갖고 있는 막강한 권한, 특히 맹원으로의 가입·축출과 식량·의복 배급 권한만으로도 모든 작가들이 동맹의 권위에 철저히 예속되고 통제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북한 작가 동맹원들은 소속 작가동맹 창작실에서 8시간 일상근무하며 일과(日課) 종료 후에는 2시간의 사상학습과 1일 사업총화(總和) 토론을 거치게 되어 있다. 현지 파견작가는 일정기간 작업 현장에 가서 노동자나 농민과 어울려 노동하지 않으면 안되며, 직장을 가진 현직작가는 「창작휴가」를 얻어 필요한 글을 「생산」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다. 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산하단체중 특기할 만한 단체로는 「4.15 문학창작단」이 있는데, 그 명칭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주체형의 공산주의적 인간형의 전형으로 삼고 있는 수령(김일성)의 형상을 창조하는 작업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집체 문학창작단체이다.
바. 문예소조
문예총이 전문작가, 예술인들의 조직이라면 문예소조(文藝小組)는 아마추어 작가, 예술인 내지 동호인들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다. 문예소조는 「여러가지 문학예술 활동에 참가하기 위한 노동자, 농민, 인민군대, 청년학생들의 자원적인 대중조직」으로 문학소조, 연극소조, 음악소조, 무용소조, 미술소조, 사진소조, 교예소조 등 장르별로 구성되어 있다. 이 문예소조는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 각급학교, 인민군대 및 가두(街頭)들에 조직되어 직맹, 사로청, 농근맹, 여맹 등 근로단체들의 지도밑에 활동」(사회과학원, 1970:242)하며, 예술작품들을 창작하여 군중들 앞에서 공연한다. 그러나 문예소조의 첫째가는 임무에 대하여 「문학예술사전」은 김일성의「혁명적 문예사상을 깊이 연구하며 그에 기초하여 문예작품을 감상하고 연구토론함으로써 자기들의 사상리론수준을 부단히 높이는 것」(사회과학원, 1972:375)이라고 규정하여 소조운동의 정치교육적 성격을 명확히 하고 있다. 문화예술의 대중화를 겨냥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남한의 동호인 문예서클인 「문화가족」과 비견될 수 있는 문예소조는 문예정책을 포함한 북한 노동당의 정책노선을 일반 인민대중에게까지 파급, 확산시키는 유력한 수단이 되고 있다.
3. 북한의 문예정책
해방 이후 북한 문예정책의 변화와 시대구분은 여러 가지 단계로 나누어지기도 하나(홍기삼, 1981:22∼28, 자유평론사, 1976:79∼87 참조), 1967년 12월 최고회의 제1차 회의에서 제시된 10대 정강을 통해 김일성 우상화 정책의 구현과 더불어 모든 작가·예술인들에게 유일사상(唯一思想)으로 무장(武裝)할 것을 노골적으로 강요하기 시작한 것을 분기점으로 하여 우상화 이전의 문예정책과 우상화 이후의 문예정책으로 단순화 시켜 볼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문예활동이 사회주의 이념의 선전(宣傳)을 위해 바쳐졌던 해방 직후부터 1960년대 후반까지는 해방과 6.25 전쟁, 전후의 복구사업 등으로 이어지는 혼란상태가 지속되었던 시기이다. 이 시기의 문예정책은 순수 사회주의 문예이론의 수용·확립·적용·문화 예술인의 결합과 조직 강화, 문화예술을 통한 사회주의 이념의 고취(人民敎化) 및 선전·선동활동(인민경제계획(1949∼50)에의 부응, 전시체제의 심리적 지원, 전후 복구건설의 고취, 사회주의 경제관리제도 선정 등), 당의 유일사상 체계라는 명목하 김일성 우상화 정책의 시동(始動) 등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1960년대에 들어 북한 문예당국은 사회주의 리얼리즘 창작벙법의 준수와 당성, 계급성, 인민성 원칙의 관철을 더욱 강조하였으나, 그 실천적인 작업에 있어 김일성을 우상화하기 위한 혁명전통물, 천리마운동의 경제부흥 성과를 고무 찬양하기 위한 사회주의 건설물, 남한에 대한 적화통일의 과제를 그려낸 조국통일물 일색이 된다. 특히 60년대 후반 이후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주체사상을 결합시킨 주체 문예이론, 이의 문예창작상의 실천론이라고 할 수 있는 종자론의 대두와 더불어 김일성의 행적 자체가 혁명전통의 규범이며 사회주의적 전형으로 칭송되고, 70년대에 들어 시작된 족벌 세습체제의 확립문제와 맞물려 더욱 노골화되었으며, 창작수법상에 있어서도 집체창작 방법으로 전환되어 작가 개성에 의한 작품은 소멸하게 된다.
이상 문예이론과 문예조직에 대한 간단한 논의와 시기구분을 통해 북한 문예정책의 대강은 밝혀진 것으로 생각되나, 여기서는 문학분야를 중심으로 정책학적 관점에서 북한의 문예정책을 횡단적(시계열적이 아닌)으로 살펴보고 이를 체계화함으로써 정책유형론(政策類型論)을 적용할 기초를 마련하고자 한다.
가. 정책 환경
북한에 있어 문화예술은 그 자체가 목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대중에 대한 정치·사상적 세뇌(洗腦)의 수단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문예정책은 당(따라서 김일성) 통치정책에 예속된 하위정책으로 전락될 수밖에 없으며, 정치·사상적 이데올로기가 문예정책의 동인(動因)이자 환경으로 작용하므로 이것이 변할 때 문예정책이 뒤따라 변하지 않을 경우 정책의 적실성(適實性, Relevancy)에 문제가 야기된다. 이같은 사실은 북한의 정치·경제·사회 변동 상황과 문예이론 내지 문예정책의 변동이 약간의 시차(時差)를 두고 거의 일치한다는 객관화된 사실로도 증명된다. 특히 주체 문예이론과 종자론에 기초한 문예정책은 북한이 소련을 종주국으로 한 국제 공산주의 위성국가의 대열에서 벗어나 주체사상을 바탕으로 한 민족적 공산주의 내지 김일성 유일사상 체제로의 전환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하겠다.
나. 정책목표
북한의 문예정책은 인민적이고 혁명적인 사회주의 민족문화의 건설에 그 기조를 두고 있으며, 보다 구체적으로는 제국주의적 사상·문화의 침투를 막고 수령의 주체사상에 입각하여 혁명 위업에 힘있게 복무하는 혁명적 문학예술의 발전을 추구하는 것을 근본 목표로 하고 있다. 그리고 그 하위목표라고 할 수 있는 문학예술의 임무에 있어 문학예술은 반드시 노동당의 노선과 정책에 의거하여 창작되어야 하며 혁명 발전의 매(每) 시기에 당의 정책을 높은 예술성을 가지고 진실하게 반영하여야 한다. 그리고 당대의 가장 절실한 사회 정치적 문제들에 예술적 해명을 줌으로써, 당의 유일사상, 김일성의 혁명사상으로 인민대중을 무장시키고 혁명화, 노동계급화의 과정에 참여하도록 당의 정책을 관철시키는 데서 선봉이 되어야 한다고 제시되어 있다.
남한의 문예정책이 개개인의 내적 욕구에 의한 미적 가치의 창조, 예술적 정서생활을 통한 인간 삶의 질적 향상, 민족문화와 전통예술의 창조적 계승·발전 등을 근본 목표로 하고, 이를 위해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이상으로 하는 예술창조 지원, 국민의 문화향수권 신장을 위한 고급 문화의 대중화와 지역 문화시설의 확충, 유형·무형의 전통문화재 보호관리와 전승 등을 실천 목표로 하고 있음에 비해, 북한의 문예정책은 조선노동당이 규정, 제시하는 문예정책의 근본 목표와 임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체제 유지를 위한 유일사상적 통치 내지 정권 세습을 위한 우상화 수단으로서의 존재 의의가 더 강조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정책수요를 창출하는 이상과 현실간 괴리에 대해 계량화 내지 현재화(顯在化)가 쉽지 않고 유형적·물질적 가치를 투입해도 성과 자체는 무형적·심리적 형태로 나타나는 문화예술의 본질적 속성으로 인해 남한의 경우 문예정책의 목표가 우선순위상 국방, 경제 등 여타분야의 정책목표에 항상 밀리고 있는 현실에도 불구 본질적으로는 같은 차원에 놓여 있는 동급의 상위목표로 간주되고 있음에 비해, 북한 문예정책의 목표는 최상위 목표인 통치지배목표 및 적화통일목표(특히 과거 냉전 대치시)와 차상위목표인 혁명사상 고취라는 사상교육목표 및 경제건설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수단적 차원의 예술적 하위목표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내세우는 문학예술과 문학시설의 대중화 등 우리의 관점으로도 일견 문예정책의 본질적 목표로 생각되는 것들도 실질목표라는 측면에서 남한과 비교해 보면 상대적으로 통치지배 내지 체제유지목표 등 상위목표를 보다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수단적 차원에 보다 정책중심을 두고 있다고 판단된다. 물론 민족적 형식에 사회주의적 내용의 결합이라는 공산주의 문학예술의 속성상, 문학예술의 수단화에 대한 이와 같은 규범적 비판은 무의미하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겠으나, 북한의 문예정책이 정치체제와 정책 대상집단(Target Group)의 유형이나 종류에 상관없이 모든 공공정책이 마땅히 지향해야 할 최고의 궁극적 목표인「인간 존엄성의 실현」과는 분명히 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다. 정책수립
문예정책 수립은 노동당 문화예술부에서 담당하고 있다는 것 외에 동 조직이 구체적으로 무슨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지에 대해 알려져 있는 것은 별로 없다. 더욱이 정책의제(政策議題, Agenda)의 설정, 정책목표의 구체화, 관련 정책대안의 탐색, 탐색 정책대안의 평가, 최적 정책대안의 선택에 이르는 정책결정 내지 정책수립의 내적인 과정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서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만 노동당 문화예술부에서 결정하고 수립할 수 있는 문예정책이라는 것이 북한 문예정책이 수단적 차원에 머물러 있는 한 그 재량범위에 있어 매우 제한되어 있으리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짐작해 볼 수 있다. 「예술적 형상과 생활화폭을 통하여 작품에 당의 유일한 지도사상인 수령의 혁명사상과 그 구현인 당의 로선과 정책이 정확히 반영되도록」(사회과학원, 1975:20) 문예정책의 방향이 기속(羈束)되어 있고, 「유일무이(唯一無二)의 가장 위대한 문예이론가이며 가장 뛰어난 문학예술인」인 김일성의 가르침이 곧 창작의 기초이고 창작 전(全) 과정의 지침이며 창작총화(創作總和, 창작결과에 대한 공동의 분석, 검토, 반성, 학습 등의 의미를 총괄하는 용어이다)의 기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라. 정책집행
문예총(본부)은 당초 문학예술분야의 각 사회단체를 통합하여 지도하기 위한 연합사회단체로 출발하였으나 그 실상에 있어서는 산하 사회단체들에 비해 유명무실한 존재로서, 산하 단체들이 각 지방에 설치하고 있는 도(직할시) 지부도 없고 산하단체를 강력히 지도할 권한도 주어져 있지 않을뿐더러 지도 또한 미온적으로 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 까닭은 각종 사회 단체를 노동당 중앙당 문화예술부 해당과에서 직접 지도, 감독, 통제하기 때문으로, 작가동맹의 경우 문학과가 문예총(본부)을 거치지 않고 직접 관장하고 따라서 당의 문학분야 정책집행도 문예총(본부)의 간섭없이 작가동맹이 직접 행한다. 결국 문예총의 산하 단위동맹들은 실질적으로 행정기관의 역할을 수행하며, 도(직할시) 지부는 그 일선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동맹 본부의 임무와 기능은 이미 살펴보았으므로 작가동맹 도지부의 조직과 임무, 기능을 살펴보도록 한다(정병덕, 1989:121 참조). 작가동맹 산하에는 함남, 함북, 평남, 평북, 황남, 황북, 자강, 양강, 강원도의 9개 도소재지에 도지부가 있고, 각 도지부에는 지부장과 지도원 2명이 상주하고 있다. 임무와 기능은 본부와 거의 비슷하나 출맹과 가맹을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이 없는 대신 도내 작가들을 신인 지도사업에 동원하고 창작실을 운영할 책임을 지고 있다. 본부에 있어서나 도지부에 있어서 정책집행의 실효성을 담보해 주고 동맹 자체에 권위를 부여해 주는 정당성의 근거가 맹원에 대한 식량과 의복의 배급권이라는 생존적 차원에 있다는 사실을 공산주의자들의 기본전술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된다.
마. 정책 평가
집행된 문예정책이 어떠한 과정과 단계를 거쳐 누구에 의해 어떻게 평가되며 이것이 어떻게 차기 정책수립단계에 환류(還流, Feedback)되는지, 또는 이러한 정책평가와 환류과정 자체가 존재하고 있는지 여부에 대한 것조차 알려져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단지 최종적인 단계의 정책평가는 그것이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당 중앙위(내지 그 소속부서)에서 이루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추정해 볼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총괄(성과)평가가 아닌 과정(형성)평가의 관점에 서서 당과 동맹의 지도감독과 검열평가를 통해 문학작품 자체가 확인점검(monitoring)되는 과정을 창작과정과 출판과정으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한다(권영민, 1988:171∼173, 정석홍, 1986:16∼17, 한만영, 1985:53, 자유평론사, 1976:95∼99).
창작과정에서의 확인점검과 통제는 다시 창작계획의 지도, 창작실천의 지도, 창각평가의 지도 등 세 단계로 나누어지는데, 첫 단계는 노동당 문화예술부가 직접 또는 동맹을 통해 「창작(및 공연활동)계획」을 시달(示達)하면서 시작된다. 시달된 계획을 놓고 작가동맹은 작가들에게 각자의 창작계획을 년, 분기, 월별로 제출받아 당의 비준을 받는다. 이때 창작실천해야 할 작품의 주제와 비율은 ①혁명전통주제(과거 김일성의 항일 투쟁업적을 찬양하고 김일성을 우상화) 30% ②전쟁주제(인민군의 영웅성을 찬양하고 전투의식을 고취) 30% ③사회주의 건설주제(북한의 발전상을 과장하고 노동의욕을 제고) 20% ④조국통일주제(남한의 현실을 왜곡선전하여 적화통일 목적에 이바지) 20%등이다.
두번째 창작실천의 지도는 작가를 현장 파견작가와 현직작가의 두 가지 부류로 나누는 작업에서부터 시작되는데, 현장의 체험을 통해 사회주의혁명 건설에 앞장서는 긍정적인 주인공을 형상화할 수 있으며 작가 자신도 노동계급의 혁명적 계급정신을 터득하게 된다고 믿기 때문에 현장 파견작가들의 작품활동에 상당한 의의를 부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모든 창작활동은 분기별로 각 동맹의 조직을 통해 「당생활총화회(黨性活總和會」에서 검토, 비판된다. 주로 「집체적 유일심의방법」(당이 광범위하게 전문가를 동원하여 창작에 대한 집체적 지도를 강화하여 창작사업에 성과를 거두도록 한 통제방법)이라는 검열방식을 통해 작품의 실천과정과 그 성과를 검토하는데, 모든 작품에 대한 심의는 우선 당의 정책적인 지도를 거치게 되어 있다.
출판과정에서의 확인점검과 통제는 그 계획단계에서부터 시작된다. 즉 출판에 대한 주체할당은 일정한 비율로 정하고 각 출판사가 제출한 연간계획서는 동맹 상임위원회를 거쳐 노동당 정치위원회의 비준을 받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부와 중앙의 작가동맹합평회와 당 문화예술부로부터 평가·지도를 받은 작품의 출판에 대한 통제·감독은 대체로 세 단계로 구분할 수 있는데, 우선 작품 회부단계(回附段階)에서는 출판사 편집부에서 편집원과의 검토과정을 통해 작품의 사상예술성 여부를 두고 수정을 요구받게 된다.
편집부를 통과한 작품은 정무원 출판총국 검열국의 엄밀한 검열을 받으며, 이때 검열·평가의 기준은 ①작가의 성분과 사상경향 ②김일성 유일사상체계 확립에 대한 기여 가능성 ③사회주의 리얼리즘 창작원칙 ④군사기밀 노출부분 여부 ⑤사회주의 사회에 대한 부정적 측면 묘사 여부 ⑥자본주의적 사상요소 여부 ⑦대중의 공산주의 교양에 도움이 되는지 여부 ⑧전투성, 혁명성, 계급성이 충분한 발양(發陽) ⑨예술적으로 지나치게 졸렬(拙劣)하지 않은지 여부 ⑩단어 및 어휘표현의 정확성 여부 등이다.
원고에 검열인을 받아 출판에 회부되면 출판과정에서 조판(組版), 교정지(校正紙) 등은 검열국과 편집국에서 재차 검토를 하게 되며, 출판 이후에도 사후심의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5. 결론
Hasan Ozbekhan이 이분화(二分化) 시켜 놓은 기획모형론(Jantsch, 1970:33 참조)을 정책유형론으로 유추해 볼 때 자본주의사회의 미학원리가 아닌 사회주의가 나타나기 이전까지의 미학원리에 의한다 하더라도 그 본질상 문화예술정책은 어느 분야의 정책보다도 창조적 인간행동모형(Human Action Model)에 가장 가까워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문예정책은 그 수단적 성격상 ①가치를 선택하고 규범을 탐색하며 목표를 발명·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화된 목표가 외부로부터 주어지고 특정 유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계된다는 점 ②자기규제와 자기적응보다는 외부정책에 의해 통제되고 외부로부터 부과된 산출 결과를 향해 해동이 프로그램화된다는 점 ③행동대안의 실현 가능성(Feasibility)내지 적실성(Relevancy)을 강조하는 점 등을 감안할 때, 합리적·창조적 인간행동모형과는 상반되는 모형인 기계론적모형(Mechanistic Model)쪽에 보다 근접해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G.A.Almond와 G.B.Powell은 「비교정치론(Comparative Politics」에서 정치체제의 산출, 즉 정책을 업적(Performance)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면서 이를 배분정책, 규제정책, 추출(抽出)정책, 상징정책 등의 네 가지로 유형화(정정길, 1990:73∼74에서 재인용)시킨바 있는데, 남한의 문예정책이 상대적으로 배분정책적 성격이 강하다면 북한문예정책은 상징정책적 성격이 특히 강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Almond와 Powell의 설명에 의하면 상징정책(Symbolic Performance)은 정치지도자들이 역사, 용기, 과감성, 지혜 등이나 평등, 자유, 민주주의, 공산주의 등의 이념에 대해 호소를 하거나 미래의 업적 또는 보상을 약속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러한 상징적 산출물들은 다른 정책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서 이용된다는 것이다. 이 상징정책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로, 첫째는 국민들 사이에 정치체제 및 정부의 정통성에 대한 인식을 좋게 하고, 둘째 다른 정책 (특히 규제정책)에 대한 순응(compliance)을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설명된다.
요컨대 북한에 있어 문학예술은 당과 인민에 대한 복무를 근본적인 사명으로 하고 있으며, 문화예술 창조의 개인적 역량과 성과 대신 집단화의 논리를 내세워 엄격히 지도, 통제하는 정책을 계속해 오고 있다. 결국 작가·예술인들은 자유직업인들이 아니라 공산정권에 고용된 선전요원으로서 존재하며, 당적(黨的) 통제하에 계획적인 작품활동에 종사하고 있다. 우리의 관점으로는 이러한 상황이 문학과 예술로 하여금 비예술화, 비인간화의 과정을 걷도록 만들며 그 결과로서 문학예술의 존재의미를 파괴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근래 영화·문학·가요 등 여러분야에서 작품주제와 소재가 복합화하고 다양해졌다는 점을 들어 북한문학예술의 변화가 운위(云謂)되고 있으나, 적어도 아직까지는 이것이 전략차원의 변화라기 보다는 전술상의 변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판단된다. 물론 북한에 순수 문학예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지금까지 북한의 문학예술은 미학적 의미를 위해서가 아니라 김일성 부자의 우상화와 당의 정책노선을 선전하기 위해서 존재하여 왔고 존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전통민요, 전통문화재의 발굴과 보호관리 등 사상성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몇몇 분야를 논외로 한다면 이와같은 이데올로기 편향(偏向)은 문학분야뿐 아니라 모든 예술분야에 한결같은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하다못해 교예분야까지도 막간풍자교예라는 ‘사회주의적 내용’에 충실한 교예종목을 개발하여 남한과 미국사회의 부패상을 신랄하게 과장 풍자하고 있는 것이 바로 북한의 예술인 것이다.
이제까지 살펴 본 바와 같이 이즘(ism)과 체제의 차이로부터 배태된 남북한 문예현상간의 이질성은 분단 40여년간 점점 깊은 골을 형성하여 같은 민족이면서도 서로의 예술을 이론적으로 이해할 수 없고 심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오늘날의 이와같은 남북 문화예술상황은 작년 12월 중순에 맺어진 「남북 합의서」에 의한 상호 문화예술교류와 협력(제16조)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때 심각한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것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남북간 원활한 문화예술교류와 협력을 가능케 할 뿐 아니라 그러한 교류와 협력이 민족 재통합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방향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이에 대한 정책방향 설정과 정책방향 마련이 시급하다고 하겠으며, 재통합 과정에서 문화예술이 목표로 삼아야할 이상적인 역할과 현실적인 제약에 관한 이론적 연구, 민족악기 개량, 자모식 무용표기법, 무대미술과 무대기술 등 그들의 예술적 성과에 대한 학술적 차원에서의 편견없는 연구, 정치경제적 통일이 이루어진 후 가장 단기간내에 문화적·심리적 통합을 이루기 위해 문예정책이 갖추어야 할 기본조건과 접근방법 및 그 구체적인 프로그램, 과거 동서독간 문화교류의 경험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것 등에 대한 연구도 절실하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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