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가 돈을 부른다?
이재형 / 외국어대 강사, 불문학
범죄자가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써서 책으로 출판, 돈을 번다면 그것은 도덕적으로 정당한 일일까? 또 그것은 법적으로 볼 때 합당한 일일까?
프랑스 출판계는 지금 이 문제를 놓고서 뜨거운 찬반논쟁을 벌이고 있다. 이 논쟁을 유발시킨 인물은 어린이를 살해한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지금 복역중인 파트릭 앙리와 뤼시앙 레제르라는 두 인물이다. 이들은 언젠가는 석방되리라는 기대하에 자신의 죄를 옹호하는 내용의 「회고록」을 집필하고 있으며, 이 「회고록」이 출판될 경우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될 당사자들 즉, 피해자의 부모들이라든가 출판업자들, 작가들 등은 이 문제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1976년 트루아라는 도시에서 원예용 농기구 회사의 외판원으로 일하던 파트릭 앙리는(당시 26세) 학교를 파하고 나오던 8세의 필립 베르트랑 군을 납치했다. 앙리는 몸값으로 백만 프랑을 요구하다가 경찰의 포위망이 점점 좁혀들자 2주일 뒤 베르트랑을 한 호텔방에서 목졸라 숨지게 했다. 현재 앙시스하임 교도소에서 15년째 복역중인(앙리는 그의 동료 재소자들로부터 어린애를 살해했다는 이유로 경멸, 혐오당하는 바람에 대부분 독방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는 「범죄 회고록」을 쓰기 위해서 파라오 시대의 이집트, 히틀러의 독일, 프랑스 혁명을 다룬 역사와 발작, 플로베르, 스탕달의 19세기 문학에 관한 책들을 읽는 한편 수학과 정보학까지 공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이 유괴 사건에 대한 재판이 시작된 지 겨우 3개월 후에 그는 여러 출판사들로부터 「회고록」의 출판 제의를 받았다. 하지만 그 당시에 그는 이같은 제의를 일축하였다. 『그건 도대체 있을 수 없는 일이요』라고 그는 말했었다.
살인범 파트릭 앙리의 회고록 출판에 관한 제의
그러던 그가 지금으로부터 수개월 전에 「회고록」을 출판하고 싶다는 제의를 여러 군데의 출판사에 해온 것이다.
또 다른 어린이 유괴살해범인 뤼시엥 레제르의 경우는 이보다 더 심각하다. 1964년, 당시 11살이었던 뤼크 타롱의 시체가 베르에르 숲 속에서 발견되었고, 그 이후로 1개월에 걸쳐 언론과 경찰에는 자기가 범인이라고 주장하는 「교살자」의 편지가 배달되었다. 결국 파리 근교의 한 정신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레제르는 체포되어 범죄사실을 순순히 자백했고, 2년 뒤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그 이후로 그는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재심을 요구하고 있고, 「회고록」을 출판하려는 것도 자신에 대한 여론을 환기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 54세인 레제르는 「내 침묵의 대가」라는 제목이 붙은 250페이지 분량의 원고를 써 놓았고, 그 복사본이 유출되어 읽히고 있다.
이 원고는 뤼크 타롱 군 유괴살해사건 자체보다는 레제르 자신의 심리상태에 더 많은 부분이 할애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레제르는 엉뚱한 시나리오에 따라 자신의 이야기를 기술하고 있다. 그 내용은 이렇다.
<나는 몸값을 노린 유괴 행위에 우연히 끼어든 것에 불과하다. 유괴된 아이가 사고로 부상을 당하자 진짜 유괴범들은 내게 아이를 치료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래서 치료를 하던 중 본의 아니게 아이를 질식시켜 숨지게 했던 것뿐이다. 필적감정 전문가들에 의해 그가 쓴 것으로 판명된 「교살자」의 편지로 말하자면 주범들의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쓴 것에 불과하다...>
주위 사람들에 의하면 이 사건이 일어나기 훨씬 전부터 뤼시엥 레제르는 병적으로 허황된 말을 했을 뿐만 아니라 과대망상증 증세를 보여왔다고 한다. 그는 아는 사람들에게 자기가 고등사범학교를 다녔다고 말하는가하면 정신과 의사라고 소개하기도 하고, 드노앨 출판사의 출판심의위원회 위원이라고 말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그는 자기가 「저주받은 시인」이기 때문에 자기 돈으로 책을 낼 수밖에 없다는 불평을 늘어놓았다는 것이다.
파트릭 앙리와 뤼시엥 레제르, 이들의 「회고록」을 출판하는 일은 과연 비도덕적인 행위일까? 라스네르라든가 작크 페쉬, 장 샤를르 윌로케, 메린 같은 범죄자들의 「회고록」도 이미 출판되지 않았는가? 라고 물을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은 어린이 살해범은 아니었다. 게다가 출판상황도 예전같지가 않다.
파트릭 앙리로부터 출판 제의를 받은 그라쎄 출판사의 편집부장인 장 폴 앙토벤의 반응은 일단 부정적이다. 앙토벤은 이렇게 말한다.
『파트릭 앙리가 어디서 구원의 가능성을 찾으려 하건 그것은 그의 자유다. 하지만 그런 범죄를 저지른 저자와 관계를 맺고, 그와 계약을 체결하고, 그를 한 작가로 간주하고, 원고를 가지고 그와 함께 작업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니… 게다가 희생된 아이의 부모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싫습니다. 저는 그런 책을 팔아서 장사를 할 수는 없습니다.』
파트릭 앙리 저서의 출판에 관한 토론
파트릭 앙리는 그라쎄 말고도 다른 여러 출판사에도 똑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중 한사람인 갈리마르 출판사 사장 앙토완 갈리마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물론 나는 그의 책을 출판할 생각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접 그의 원고를 읽어볼 생각이며, 출판심의위원회 위원들에게도 읽히려고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출판사의 책임이라는 문제에 대해 토론을 벌인 것이다. 이미 우리는 최근에 드리외 라 로셀의 「일기」를 출판하는 문제로 토론을 벌인 적인 있었다. 이같은 문제는 우리가 1973년에 「어머니와 누나와 형을 목졸라 죽인 나 피에르 리비에르」라는 책을 출간했을 때 이미 제기된 바가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경우인 그 저자들이 죽고난 뒤에 출판되었다는 점에서 이번 경우와 다르다. 물론 나도 도의적인 측면에서 그의 원고를 읽어보는 것을 거부하지는 않겠지만, 또한 도덕적인 원칙에서 그걸 출판하고 싶지는 않다.」
다른 출판사들도 대충 이런 식의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범죄 회고록」을 출판해야만 할 것인가? 이 문제는 얼마 전에 두 권의 책 즉, 드리외라 로셀의 「일기, 1939∼1945」와 쉐퍼의 「어느 살인자의 일기」로 출판할 당시에도 신중하게 검토된 바 있다. 드리외라 로셀의 경우 갈리마르 출판사 출판심의위원회 내부에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결과 결국 이 증오의 단장(斷章)들을 「증인들」이라는 총서에 끼워넣기로 결론을 내려 출판이 되기에 이르렀다. 「어느 살인자의 일기」를 출판한 작크 베르트왱이 직면했던 가장 큰 문제는 양심의 문제였다. 왜냐하면 이 책은 괴기소설에 가까울 만큼 끔찍한 내용이며, 출판을 할 경우 출판업자의 도덕적, 직업적 책임이라는 문제를 적나라하게 제기하기 때문이다.
쉐퍼는 처녀 두 명을 살해해서 목을 자른 혐의로 16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34명의 여성을 강간, 고문, 살해한 혐의도 함께 받고 있다. 물론 그는 범죄 사실을 부인하고 있지만, 그의 「일기」는 읽는 사람이 견뎌낼 수 없을 만큼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쉐퍼의 법정 대리인으로부터 5만 프랑에 이 책의 판권을 사들인 작크 베르트왱은 이렇게 말한다.
『원고를 읽었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그의 책은 심해를, 깊은 구렁을 비춰주는 투사기다.』
그는 신중을 기하려는 뜻에서 풍속 담당 판사인 이브 르므완에게 이 원고를 읽힌 결과 큰 문제가 없으리라는 말을 들었다. 그는 각 언론과 출판사에게도 자문을 구한 끝에 출판을 결심했고, 5페이지 분량을 삭제한 뒤 결국 원고를 책으로 묶었다. 그러나 쉐퍼의 원고는 가제본된 형태로 읽히고 있을 뿐 출판을 하겠다고 나서는 출판사는 아직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범죄 회고록」의 출판은 도덕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법적인 문제도 안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회고록」의 출판을 규제하는 내용의 법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태다. 만일 법률적인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될 경우 미국의 예가 참조될 것 같다.
미국의 경우 「샘의 아들」법이 있어서 범죄인이 「범죄 회고록」을 써서 돈을 버는 행위가 금지되고 있다. 지난 1970년대에 데이빗 버코비츠라는 인물이 여러명을 살해한 혐의로 뉴욕에서 체포되었다. 그런데 그가 체포된 이후에 그가 「범죄 회고록」을 써주는 대가로 수백만 달러를 주겠다는 제의를 받았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그러자 의회는 이런 일을 방치할 경우 돈을 노린 유사한 범죄가 발생할 것을 우려, 「샘의 아들」법을 제정한 것이다.
이 법은 범죄자가 자신의 범죄 사실을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출판업자, 신문업자, 영화업자, 방송업자 등에게 판매하는 행위를 일정기간 동안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 법은 일부 출판업자들에 의해 일부 개정이 끈질기게 추진이 되고 있다. 즉, 희생자의 가족이 요구할 겨우 「범죄 회고록」으로 생기는 수입을 그 가족에게 지불한다면 「범죄」가 상업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쪽으로 개정을 하려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 침해로 소기 제기한 「샘의 아들」법
그런 개정 움직임의 일환으로 지난해 10월, 뉴욕에 있는 사이몬 앤 서스터 출판사는 이 「샘의 아들」법이 헌법에 규정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대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들이 소송을 제기한 직접적인 이유는 「샘의 아들」법이 발효중인 40여 개 주에서 니콜라스 파일레기가 쓴 「교활한 녀석. 마피아 가에서의 생활」을 판매 할 수 있는 권리를 얻어내기 위한 것이다.
이 책은 헨리 힐 이라는 한 실존 인물의 얘기인데, 이 인물은 12살 때부터 강도, 마약 밀매, 살인 등 각종 범죄를 저지르다가 결국에는 자기가 속해 있던 범죄조직을 경찰에 밀고, 지금은 증인으로서 F.B.I의 보호를 받고 있다. 그는 작가에게 자신의 체험을 들려주는 대가로 10만 달러, 자기 얘기를 영화화하는 조건으로 50만 달러 중에서 상당 부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돈은 「샘의 아들」법에 묶여 그의 수중에 들어가지는 못하고 있다. 법원은 이 돈을 그가 저지른 범죄를 배상하는 뜻에서 뉴욕주의 범죄희생자 협회에 기탁하라는 명령을 내린 바 있다.
이 문제에 대한 견해는 당사자들의 입장에 따라 다르다. 이 책의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헨리 힐은 날강도다. 돈을 안 주면 나한테 인사도 안 할 위인이다.』
헨리 힐의 변호인이 취하는 입장은 물론 옹호적이다.
『「교활한 녀석」은 헨리 힐의 협조 없이는 쓰여지지 못했을 것이므로 당연히 그에게 사례금을 줘야 한다. 그에게 줘야 할 것을 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우리가 가지고 있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셈이 될 것이다.』
그러나 담당검사인 하워드 즈빅클의 입장은 단호하다.
『「샘의 아들」법의 목적은 범죄자들이 비난받아 마땅한 행동을 해놓고도 오히려 그걸 이용해서 물질적인 이득을 얻는 걸 막자는 것이다.』
결국 사이먼 앤 서스터 출판사는 이 소송에서 졌다. 비상한 관심을 갖고 이 소송을 지켜본 것은 출판사 측 뿐만 아니라 헐리우드의 영화업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영화업자들은 출판사가 승소한 경우 열일곱 명을 살해해서 그 시신을 먹은 혐의로 기소된 「밀워키의 식인종」제프리 다머의 이야기를 영화화할 계획이었고, 제프리 다머도 나름대로 여러 영화사를 경합시켜 값을 올릴 생각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영화 「양들의 침묵」이 전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둔 이후로 이 살인자의 「범죄 회고록」으로 돈을 벌어보려는 출판사나 영화사의 숫자는 대폭 늘어나고 있는 형편이다.
우리가 잘 아는 존 레논을 살해했던 마크 체프맨도 사이먼 앤 서스터 출판사가 승소하기를 기다려온 인물들 중의 하나다. 그는 「샘의 아들」법이 개정될 경우 한 잡지사와 인터뷰를 한 대가로 받았지만 법에 묶여 자기 손에 넣지 못하고 있는 수만 달러를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범죄 회고록」을 쓰고 싶어하는 이 범죄자들은 그 유명한 카일 체스맨의 경우를 늘 기억해야 할 것이다. 로스 엔젤레스의 한 공원에서 수십 차례에 걸쳐 강간을 한 혐의로 기소된 그는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그는 교도소에서 쓴 자전적 소설 덕분에 미국 전역에 걸쳐 다시 한 번 관심을 끌게 되었다.
그는 여덟 번이나 선고유예를 받았다. 그러나 이 사건에 대한 언론과 관심이 너무 과열되어 간다고 판단한 사법부는 체스맨을 사형대에 올림으로써 이 거추장스런 짐을 서둘러 치워버렸다. 그가 쓴 「범죄 회고록」은 그의 목숨을 구해주는가 했으나 오히려 그의 죽음을 재촉한 결과를 낳은 것이다.
소름끼치는 사가와의 범죄회고록 출판 계획
일본의 경우는 어떨까?
1981년 6월 11일, 파리. 당시 32세의 일본 유학생인 이쎄이 사가와는 25세의 네덜란드 여학생 르네 하트벨트를 파리 16구 에를랑제 가의 자기 스튜디오로 유인했다. 사가와는 그녀에게 독일어로 시를 읽어달라고 부탁, 시를 읽는 그녀에게 총을 쏘아 즉사시켰다. 그리고난 그는 전기칼로 그녀의 시신을 잘게 잘라서 그중 일부를 먹기까지 했다. 그는 그 나머지는 냉장고에 보관하고 뼈는 불로뉴 숲에 묻었다. 정신과 전문의들에 의해 범행 당시 「정신착란 상태」에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 사가와는 면소판결을 받고 풀려나서 결국에는 일본으로 추방당했다.
사가와는 일본으로 돌아오자 「범죄 회고록」을 출판할 계획을 세웠고, 출판사들은 군침을 흘리며 서로 덤벼들었다. 그가 역시 구치소 안에서 쓴 「안개 속에서」라는 제목의 이 「범죄 회고록」은 모두 30만 부가 팔렸다. 자기가 프랑스 언론들이 불렀던 것처럼 「괴물」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썼다는 이 책의 표지에는 『르네…는 내가 지금까지 한 것 중에서 가장 맛있는 식사였다』라고 쓰여 있다. 그리고 그는 일약 스타로 부상했다. 영화와 TV, 연극, 출판업자들이 대중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야 한다며 그를 만나러 몰려들었다. 사가와는 자기가 에를랑제의 젖가슴을 프라이펜에 튀기거나, 참치 냄새와 날생선 냄새가 나는 오른쪽 허리를 먹을 때 발기하는 걸 느꼈다는 얘기를 이들 앞에서 서슴없이 늘어놓았다.
이 사건은 아직도 프랑스인들의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가 일본인이었고, 식인행위를 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그가 자기나라에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매스컴의 시선을 한몸에 받는 스타가 되어 있는걸 보면서 프랑스인들은 어떤 기분을 느낄까. 그리고 이 「사가와 사건」과 두 어린이 유괴살인범인 「범죄 회고록」출판 계획 소식을 어떤 식으로 연관시킬까. 어쨌든 「범죄 회고록」의 출판과 관련된 도덕적, 법적 문제는 당분간 프랑스 문단과 출판계에서 뜨거운 논쟁을 유발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