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문예 / 영국

영국의 「문화학」




정정호 / 중앙대교수, 영문학

우리는 「문화」에 대한 정의나 개념조차 정립하지 못하고 있다. 작년에 타계한 영국 최고의 문화이론가인 레이몬드 윌리엄즈의 말마따나 「문화」란 용어는 정의내리기가 가장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문화부 발족도 벌써 몇 년 전의 일이 되었으나 국내에서 「문화」에 대한 포괄적인 논의는 별로 보지 못했다. 최근 국내에서 그나마 진보계열에서 「문화」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였으나 그들은 애초부터 마르크스주의의 「문화유물론」에 경도되어 있다. 알뤼세 이후의 마르크스주의에서 우리가 엄청나게 값진 통찰력을 찾아내는 것도 사실이지만, 보수계열은 (쁘티) 부르주아지적 문화개념에 집착하여 「문화」에 대한 논의나 반성은 거의 전무한 상태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도 「문화」에 대한 포괄적이며, 과학적이며, 생산적이며, 비판적이며, 미래지향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가 되었다. 이에 필자는 최근 영국에서 하나의 새로운 학제적 방법론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고 일반대학, 전문대학, 개방대학 및 기타 성인(평생) 교육기관 등에서 독립된 학과목으로 발전되어 나아가 학위과정도 생겨나고 수많은 학술발표회와 여러 종류의 학술잡지도 간행되고 있는 「문화학」(Cultural Studies) - 「문학 유물론」(Cultural Materialism)을 포함하여 -을 간략하게 소개코자 한다. 이를 통해 새로운 문화정치학으로서의 (주체적) 「문화학」을 수립을 위한 극히 일부의 문제제기로 삼고자 한다.

자본이나 권력과 연결되는 영국에서의 「문화」는 정치적이다.

영국의 「문화학」에서 「문화」라는 용어는 미학적이거나 인본주의적인 다시 말해 중립적이거나 객관적이 아니라 정치적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며 자신들의 삶의 형식들에 부과하는 다양한 사회, 역사, 경제와 관련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화학」은 서구에서 여권운동, 평화운동, 녹색당 등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필연적으로 자본이나 권력관계와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문화란 다시 말해 「계급」,「젠더」(성별), 「종족」, 「세대차」 등의 첨예화된 정치의식과 권력 관계 속에 생성, 형성, 확산 소멸되는 것이다. 문화란 위대한 예술에서 발견되는 미학적 이상이 아니며 가설적인 보편적 인간을 내세우기 위해 시간과 국가의 경계를 초월하는 「인간정신」의 목소리도 아니다. 문화란 더러운 산업유물론이라는 천박한 조류에 대항하여 방파제 역할을 하는 인간정신의 미학적 산물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경험의 모든 의미들을 포용하는 산업사회내의 하나의 삶의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영국의 「문화학」은 (후기)산업사회 내에서의 의미의 창출과 순환에 관한 연구이다.

영국에서의 「문화학」은 마이클 그린 교수에 따르면 영문학 연구에서 배태되었다. ’30년대와 ’40년대부터 시작된 F.R 리비스의 소위 「좌파적 - 리비스주의」는 당시 전통적인 영문학과의 교과과정을 벗어나 폭넓은 사회비평을 시도하는 텍스트들에 관심을 가지면서 예술, 교육, 정치학, 커뮤니케이션 문제를 주로 다룬 「스쿠르티니」지 등을 창간케 하였다. 이밖에 레이몬드 윌리엄즈의 「문화와 사회」(1958)와 「장구한 혁명」(1961)과 리처드 호가르의 「읽고 쓰는 능력의 유용성」(1957)도 「문화학」수립에 중요한 저작이다. 특히 호가르의 저서는 신문, 잡지 등을 통한 모든 층의 목소리들을 포용하면서 고급문화와 위대한 전통이 엘리트주의를 거부하였다. 이와 동시에 그들은 「속류 마르크스 주의」를 비판하여 「마르크스주의의 위기」의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이렇게 전통적이고 권위적인 영문학 연구에 문학, 정치학, 역사, 사회를 접목시키려는 새로운 접근법은 「문화학」에 토대가 되었다. 이에 따라 대중적인 문화형태들과 「문학적인」구성에 대한 반성과 이 과정에서 성별과 계급문제를 개입시키게 되었다. 나아가 일상적인 생활의 의미와 「하위문화」(Subcultures)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이러한 전통적인 학문경계의 해체와 혼합, 정치경제 사회적 의미의 삽입 등으로 「문화학」은 처음부터 순수하지 못한 「학제적인」것이 되었고 기존 학계의 「눈의 가시」로 등장하였다. 문화학은 이제 많은 다른 영역에 특히 영문학, 사회학, 매체와 커뮤니케이션, 언어학과 역사학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한 예로 종래의 「문학비평」은 「문화학」이후 어떻게 되었는가? 데이비스와 슈레이퍼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문학비평이 확장되어 문학 비평으로 이어온 이유를 잘 설명하고 있다.

현대 비평은 그 영역을 크게 확장하여… 여러 가지 문제들을 포함하게 되었다… 좀더 넓은 문화적인 문제들을 탐구하는 것이 근래에 와서 문학 「이론」으로 불리우게 되었다. (3쪽)…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비평 연구를 문화 연구의 한 부분 그리고 선도적인 한 부분으로 위치시키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하나의 체계적인 비평 활동으로 간주되는 문학연구는 다소 체계적이며 엄격하며 일반화된 방식으로 「의미화 체계」를 연구하는 비평 그 방법들과 관찰들을 의미 생산의 가장 넓은 지역들로 특수한 의미와 실행들로서 그리고 탐구의 일반적인 영역으로서의 문화 활동들로 확장시키는 위치에 있다. 사실상 우리가 통상 「문학」이라고 부르는 텍스트들은 가장 중요한 사회, 심리학적, 문화적 힘들이 합쳐지고 경쟁하는 특권적인 위치를 구성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할 수 있다. …〔따라서 이는〕문학연구의 당연한 관심의 초점이며 비평의 당연한 확장이다. (8∼9쪽)

이렇게 전통적인 영문학 연구가 이제는 자체의 고유한 영역으로 여겼던 것을 벗어나 후기 자본주의와 후기 산업 사회 우리 시대의 다양한 문화형식들을 포함하게 되었다. 따라서, TV, 영화, 비디오를 전자 매체와 방송 매체들은 물론이고 광고, 대중음악, 공상과학, 소설, TV연속극, 만화, 패션, 주간지, 여성잡지, 10대 잡지, 전자학, 정보기술, 컴퓨터, 청년문화, 반문화 등이 영문학 연구를 포함하는 「문화학」의 관심분야가 되었다.

마르크스주의가 깔려있는 「문화학」의 기본가설과 개념은

그렇다면 영국 「문화학」의 기본가설과 개념은 무엇인가? 그 기저에는 기본적으로 마르크스주의가 깔려 있다.

「문화학」이 마르크스주의에 영향을 받은 부분에 대해 리처드 존슨 교수는 다음 3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첫째, 문화적 과정들은 사회관계 특히 계급관계와 계급구성, 성별분리와 사회관계의 인종적 구조화, 종속의 형태로서 연령차이에서 오는 억압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문화는 권력과 관련이 있으며 개인과 사회집단이 그들이 필요한 것을 정의하고 인식하기 위해서 능력의 불균형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 문화는 가족적이거나 외부적으로 결정된 장이 아니며 사회적 차이와 투쟁의 장이라는 사실이다. (39쪽) (그러나 「문화학」이 받은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은 속류마르크스주의라기 보다는 안토니오 그람시와 루이 알뤼세 이후의 마르크스주의인 것이다. 이와 동시에 여기서는 자세한 언급을 할 수 없으나 자크 데리다, 미셀 푸코, 자크라 캉, 롤랑 바르트 등 불란서 포스트 구조주의와 해체주의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이와 같은 맥락에 토대를 둔 일종의 영국적(네오 또는 포스트) 마르크스주의가 영국의 「문화학」으로 발전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따라서 「문화학」은 단지 학문적인 목적으로만 수행될 때와 대중문화 형태들의 권력의 분석이나 사회의 가능성의 분석과 동떨어져 생기는 정치와 학문의 괴리를 거부해야 한다. 왜냐하면 문화의 과정들이 학문적 지식의 범위내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대부분의 경우 권력과 연계된 학문적 지식은 지배계급이나 기득권자나 제도권에 대한 비판보다는 오히려 봉쇄자 역할이나 안전판 구실이나 공모 관계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문화학」의 영역은 일정한 제한을 가질 수 없다. 문화란 우리가 지정 해줄 수 없는 것이며 문화란 언제나 우리의 희망이나 예측대로만 생성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모든 사회적 실행들을 문화적 관점에서 볼 수 있어야 한다. 심지어 공장일, 편의점, 언론 방송 매체, 과외수업, 아파트 문화, 소비 양식, 화장품 과대 선전, 자동차 문제도 문화적 관점에서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작업을 역동적이며 포괄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비순수」를 선언해야 하며 아주 복잡한 문화모델과 범죄를 지닌 「이론」이 필요하게 된다. (존슨 45쪽)

문화의 연구방법은 처음부터 총체적이거나 통합된 방법이 아니더라도 활기찬 그러나 단편화되거나 파편화된 연구의 필요성도 감내해야 한다. 이러한 잠정적인 전략은 지적이며 학문적인 분업과 문화자본의 전문가적인 형식들의 사회적인 재생산 과정에서 생기며 이론적이며 방법론적인 단편화들은 정치적, 사회적, 담론적 차이들에 의해 설명될 수도 있다. 여기에는 의미화의 주관적인 형태들과 수단의 상대적인 독립성과 효과적인 자율성을 강조하게 된다. 그러나 여기에 논쟁이 있다. 이같이 상대적이며 단편적인 「문화학」방법에 대하여 문화란 총체적 또는 유물론적 맥락에서 연구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추상화나 이론에 반대하여 문화주의적인 실제 이론을 주장한다. 문화를 삶 총체적 방식이나 투쟁의 총체적 방식으로 말하는 레이몬드 윌리엄즈 E.P. 톰슨의 방식들이 그것이다. 방법론적으로 이들은 특히 문화형식들과 물질적 삶의 통일성을 파지할 수 있는 복잡하고 주체적인 설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들은 문화나 문화운동의 사회 - 역사적 재창조, 민족지적인(Ethnographic) 문화설명 또는 사회적 맥락 속의 「경험」을 재창조하는 글쓰기(예를 들면 자서전, 구전역사, 리얼리즘계 소설 등)를 선호한다. (존슨 50쪽)

존슨 교수에 의한 「문화학」분석 세 가지

「문화학」의 구체적인 분석방법으로는 존슨 교수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첫째, 방법은 문화생산의 관점에서 문학, 예술 또는 대중 문화 형식들의 생산과 그 사회적 구성에 관심을 가진다. 이 방법은 문화의 「진정성」에 대한 생산의 자본주의적 상황과 문화상품들이 대중 시장에 끼친 영향에 관심을 가지면서 미학과 정치학의 논의의 경계를 넘어선다. 문화생산 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연구가 아닌 문화 정치학은 문화 생산품의 가장 강력한 수단을 통제하거나 변형시키는 투쟁과 또는 반헤게모니 전략이 추구될 수 있는 대안적 수단을 가져오게 하는 투쟁을 유도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생산적 관점의 한계는 두 가지이다. 그 하나는 「경제주의」이다. 문화적 생산품에 대한 자본주의적인 생산의 양식에만 관심을 두고 문화적 상품들의 순환의 연결구조와 영향이라는(문화적인) 이중적 속성에 대해서는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두 번째 한계는 「생산주의」이다. 생산주의의 문제점은 문화문제에 있어 생산만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처럼 생산의 상황으로 문화생산품과 그 사회적 유용성의 본질을 끌어내리려 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부르주아지의 소설」「부르주아지 과학」들과 같은 식의 문화 분석만이 나올 것이다. (53∼58쪽)

두 번째 방법은 생산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텍스트로서의 문화생산 쪽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이 텍스트 중심 문화 분석에는 문화 생산품들은 「텍스트」로 파악되며 그 「읽기」에 주력하게 된다. 문화 텍스트의 형식주의적 읽기는 가능하면 개방적이거나 다양한 층위의 구성을 가진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롤랑 바르트의 말을 빌린다면 단순히 수동적이고 동화적인 독서법이 아닌 생산 행위로서의 독서법에 의해 수동적인 「읽는 텍스트」가 역동적인 「쓰는 텍스트」를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따라서 주로 인문과학적 방법인 언어학 연구 그리고 문학 연구에 의존하는 문화 분석법이다. 구체적으로 말해 서술 형식의 문학적 분석, 다른 장르의 확인, 구문형식의 분석, 언어학의 가능성과 변형들, 언술행위와 교환의 형태적 분석, 문화이론의 기본형태 분석 등이다. 그렇다면 「텍스트」분석에서 텍스트란 무언인가? 앞서도 지적했듯이 문학적 기준에 의해 텍스트를 한정할 필요는 없다. 우리 문화가 만들어 내는 모든 종류의 「담론」(discourse)과 「서술」(narrative)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텍스트란 복잡하고, 다원적이고, 중첩되고 공존하고, 병치된 「텍스트-상호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담론」이란 말을 사용한다해도 모든 책읽기란 「담론-상호적」(또는 「서술-상호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주의적인 또는 (포스트) 구조주의적 텍스트 분석의 다른 계기들을 희석화시키는 한계가 있다. 다시 말해 문화형식들의 생산문제와 좀더 큰 사회조직의 문제를 무시하고 그 텍스트를 읽는 독자들은 무시하게 된다는 말이다. (58∼59쪽)

「문화학」에서의 문화분석의 3번째 방법은 「체험한 문화」(lived culture)에 대한 분석이다. 이것은 문화순환의 좀더 구체적이며 좀더 개인적인 계기들을 포착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개인적인 경험이나 사적인 기억에 의존하여 일상적 활동과 삶에 대한 구체적이며 체계적인 문화분석의 방식이다. 이 분석은 피지배사회 집단의 삶의 양식을 드러내주고 숨겨진 교훈을 통해 지배적이고 공공적인 형식을 비판하는 재현의 정치학을 보여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적 경험주의는 지나치게 단편화되고 사적인 것이 되어버릴 수 있는 것이 흠이다. (69∼71쪽)

문화적인 양상들을 무엇인가 분석해야겠다는 생각

어떤 의미에서 보면 복합적이고 붙잡기 어려운 문화현상을 제때에 적절하게 분석해 내기 위해서는 위의 3가지 방법들 각각의 장점을 살려가면서 궁극적으로는 그들간의 내면적 연계성을 찾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70년대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영국에서 생겨나 수행되어 온 독특한 문화분석의 방식인 「문화학」은 미국에서 사용되는 학제적인 방법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미국학」(American Studies)의 영국적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화학」은 「미국학」의 방법보다 훨씬 역사적이며 구체적이며 마르크스주의적이다. 이는 문학비평과 이론에서 최근에 널리 논의되고 있는 「신역사주의」(New Historicism)의 미국판인 「문화시학」(Cultural Poetics)과 영국식 신역사주의라 볼 수 있는 「문화유물론」과의 공통점과 차이점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난다. 「문화학」은 20세기 후반기 영국의 후기 자본주의와 후기 산업사회와 문화를 좀더 효과적으로 구체적으로 또는 좀더 총체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전통적인 문학연구에서 출발하여 역사, 정치학, 사회학을 끌어안으면서 자체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지평을 넓혀가는 탈방법적, 초장르적 새로운 「이론」이며 방법론이다.

우리는 철저하게 영국적 맥락에서 형성된 「문화학」을 좀 더 연구하고 점검하고 타작해야겠지만 후기 산업사회로 향하는 복잡하고 다양한 문화의 ― 민주화, 분단극복, 경제개발, 고도산업화 등의 ― 일대 「전환기」에 다다른 우리 한국의 상황에 맞는 새로운 과학적 문화론과 새로운 문화정치학의 분석도구로서 타산지석으로나마 원용할 수도 있겠다. 전환기에 흔히 나타나는 사상의 무서운 공백기도 문제이지만 전환기 문화의 현상과 논리를 분석하고 파악하는 잣대가 없는 것은 더 염려해야 할 일이다. 이는 분석을 비웃는 엄청나게 복잡하고 무질서한 우리의 문화 상황 속에 우리가 함몰되거나 프로가 되어 방향없이 이끌려 가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인식하고 분석하고 앞으로의 미래까지도 보여줄 수 있는 주체적 문화분석과 전망을 위해 어떻게 해서든지 문화 정치학을 수립해야 한다. 단일하고 경직된 낡은(오래된 것이 제아무리 편하다 하더라도) 방법론으로는 새롭고 중첩적인 문화판의 꼬여 있는 실가닥을 풀어낼 수 없다. 우리는 순수해서만은 안된다. 순진해서만도 안된다. 방법론적으로 이론적으로 교활하고 난잡해야 한다.

「사랑이 뭐길래」와 「서태지와 아이들」증후, 노래방문화, 시네 ― 콤플렉스(소극장), 편의점의 폭증, 패스트후드문화, 새로운 문학양식(해체시, 도시시, 생태시, 메타픽션 등), 팩스시대, 권력형 대형비리사건(수서사건, 오대양사건, 보안사부지 사기사건), 컴퓨터 미팅, 디카룸, 백남준의 비디오 예술 등등의 사회문화 현상들을 그대로 방치할 것인가? 우리 주위의 이러한 여러가지 문화적 양상과 실행들이 권력, 욕망, 역사, 자본, 무의식 등으로 얽히고 설킨 모습을 쉽사리 분석해 낼 수는 없더라도 무엇인가 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이라도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참고문헌>

Davis, Robert Con & Ronald Schlelfer, eds. contemporary Literary Criticism : Literary and Cultural studies, 2nd ed. New York : Longman, 1989.

Green, Michael, 『The Centre for Contemporary Cultural studies』in Re-reading English ed. Peter Widdowson, London : Methuen, 1982.

Johnson, Richard, 『What is Cultural Studies Anyway?』 Social Text:Theory/ Culture/ Ideology, No. 16(winter 198687)

MacCabe, Colin. 『Broken English』in Futures for English ed. Colin MacCabe Mancheste:Manchester UP, 1988.

Punter, David. ed. introduction to Contemporary Cultural studies London:Longman, 1986.

Small, lan and Josephine Guy. 『English in Crisis?』Essays in Criticism. Vol. 39, No.3(July 1989).

______. 『English in Crisis?(2)』, Essays in Criticism. Vol. 40, No.3(July 1990)

Williams, Raymond. 『The Future of Cultural Studies』, The Politics of Modernism:Against the New Conformists. London:Verso,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