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리뷰 / 연극

거대한 힘과 투쟁하는 두 여자




이상우 / 연극평론가

한 여름의 무더위가 입추를 고비로 한 풀 꺾여들자 새로운 연극들이 극장가에서 가을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극단 한강의 「산타 히로시마」, 극단 성좌의 「찌꺼기들」, 극단 민중의 「M. 나비」, 극단 민예의 「스타열전」등이 그러한 작품군을 이루고 있다. 이 중에서 「M. 나비」는 올해로 창단 30주년을 맞는 극단 민중의 기념공연으로 올 가을의 서울연극제 참가작인 「영자와 진택」(9.13∼26)을 앞두고 시간벌기를 위한 재공연이라는 혐의(?)가 짙다. 「스타열전」은 최근에 공연된 일인극 「하늘 텬 따지」의 원작자인 김영무의 작품인 바, 역시 그의 작품인 「선녀는 땅위에 산다」(9.29∼10.5)가 이번 서울 연극제에 또 다시 올려질 예정이어서 일약 화제의 극작가로 떠오르게 되었다. 「선녀는 땅위에 산다」가 상연되면 김영무의 일련의 극작술이 명확한 평가대상으로 주목을 받게 되리라 생각된다. 따라서 필자는 김영무 극의 섣부른 평가는 추후로 미루어 두고, 「산타 히로시마」와 「찌꺼기들」이라는 두 작품에 일단 관심을 기울여 보기로 한다.

이 작품들은 다분히 사회극적인 요소가 강하다. 「산타 히로시마」(홍가이 작, 정진영 각색, 위성신 연출, 예술극장 한마당)는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인 최영주의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치료 요구 투쟁사건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전쟁의 야수성과 강대국의 자기 합리화의 허구, 원폭의 처참한 인간 파괴 등의 주제의식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8.15 민족 해방의 의미를 새로운 시각에서 조망해 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적절한 시의성을 갖기도 하려니와, 2차 세계대전의 세계사적 의미라는 거시적 틀 속에서 약소민족의 피폭자인 최영주가 전쟁의 실존적 아픔을 고발하고 있기에 반전(反戰)의식과 평화주의, 환경주의 등의 사회극적 주제를 그 토대로 깔고 있는 셈이다.

「신데렐라」가 투쟁하는 번역극 「찌꺼기들」

반면 번역극인 「찌꺼기들(Cinders)」(야뉘쉬 그와브스키 작, 김아라 번역, 김영환 연출, 성좌소극장)은 폴란드의 한 갱생원을 배경으로 사회주의 체제의 전체주의적 공명심과 개인적 야심의 피해자인 소녀 죄수 「신데렐라」가 이에 맞서 투쟁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 그러하다. 국가의 획일적 정책에 대한 경직된 충성심으로 가득찬 교도주임과 충격적이고 자극적인 다큐멘타리 영화를 제작해 개인적 공명심을 만족시키려는 영화감독에 맞서 인권과 자존심을 수호하려는 신데렐라의 처절한 투쟁은 전체주의적 경직성의 비인간화에 대한 고발과 더불어 인권의식의 수호라는 사회적 맥락을 확고하게 새겨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작품이 지니는 이러한 작품 내적인 사회극적 성격보다 더욱 관심이 끌리는 대목은 최근 몇 년 동안에 크게 달라진 세계질서의 변동과 이에 따른 예술작품의 사회적 응전력의 변모라는 작품 외적인 문맥에 있는 것 같다. 「신더스」라는 표제를 내걸고 ’87년에 처음 공연된 바 있는 「찌꺼기들」은 사회적 쟁점에는 늘 침묵해 왔던 「제도권 연극」이 당시 뜨겁게 달아오르던 민주화 분위기에 시의적절하게 편승한 작품이었다는 인상을 준다. 교도주임과 영화감독으로 대표되는 보이지 않는 억압체계에 의해 희생당하는 신데렐라의 비애와 이에 투쟁하는 그녀의 비극적 저항이 다분히 억압과 저항의 극적 갈등구조를 선명하게 드러낸 한국사회의 억압체계에 대한 비판과 민주화의 열망을 대리 충족시키는 기능을 일정 정도 수행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후로 5년이 지난 지금의 세계는 어떻게 달려졌는가. 이제는 민주화의 욕구가 부질없는 이념 논쟁의 수준에 머무는 공허한 미망이 아니며 보다 인간적인 삶이 질을 높여 나가는 실질적인 인간화 욕구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러한 마당에 한 시대에 「찌꺼기들」이 상징할 수 있었던 미묘한 정치성은 한꺼풀을 벗게 되었고 보다 깊이 있는 극의 내면적 갈등구조를 다시금 곱씹어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찌꺼기들」에 또다시 「김보은 사건」이라는 사회적 문맥의 과대포장을 씌우려는 의도는 상업주의적 상혼(商魂)이며 반(反)예술적 발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제도권 연극의 사회극이 시대적으로 민감한 사회적 이슈에 보다 정직하게 반응하지 못하고 얄팍한 시류에만 영합하려는 경향을 끊임없이 경계해야만 한다면, 비제도권의 「민족극」은 시대착오적인 경화된 이념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보다 가까운 삶의 문제에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만 한다. 이제 이러한 명제는 민족극의 경우에 당위적 명제에서 현실화된 실천 쪽으로 변화해 가는 듯 싶다. ’88년 「대결」을 시작으로 ’89년 「마지막 수업」, ’90년 「골리앗, 그보다 더높이」, ’91년 「노동자를 싣고 가는 아홉 대의 버스」등 일련의 작품들을 통해 노동운동, 전교조 사건 등을 치열하게 다루어 온 극단 한강이 최근에 부쩍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사실 극단 한강은 같은 민족극 계열 내에서도 마당극 양식을 지향하는 극단 현장이나 극단 한두레 등과는 미학적 입장이 달라 계급 모순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노동해방 운동」에 보다 집착해 오던 단체였다. 때문에 극단 한강의 사회극들은 그것이 다루는 연극의 소재가 무엇이든 이념적 지반은 매우 혁명적인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었으며 따라서 그 작품의 이념은 지나치게 무겁고 고집스러운 것이었다.

삶의 질적 향상에 관심 가진 한강의 「산타 히로시마」

그러나 최근 극단 한강이 내놓은 「산타 히로시마」는 이같은 민족극 계열의 사회극이 이념적 경직성의 무게를 훌훌 털어내고 보다 유연하게 삶의 질적인 향상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회주의의 몰락과 더불어 탈 이념화되고 있는 세계상의 변화에 발맞추어 전체운동이 사회주의적 계급 혁명을 포기하고 보다 대중적인 시민운동 쪽으로 방향을 선회함에 따라 민족극 운동도 방향전환을 시도하게 된 것이다. 때문에 「산타 히로시마」는 피폭자(히바쿠샤) 최영주의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성급하게 제국주의의 악탈성이라든가 민중계급의 진보성 등을 함부로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영주를 사랑하고 도우려는 두 남자, 미국인 신부 알버트와 일본인 변호사 야쓰에의 애틋한 애정의 삼각구도가 더욱 표나게 드러나고 있다.

「산타 히로시마」와 「찌꺼기들」이라는 두 편의 사회극을 더듬어 볼 때, 편견에 사로잡힌 제도권 연극과 비제도권 연극의 변별적 구분과 재단은 이제 적어도 외견상으로는 다소 무의미해져 버린 것 같다. 물론 민족극 계열이 앞으로도 우리 연극계의 진보적 양심세력으로 꾸준히 남아 있으리라 생각되지만 더 이상 체제의 혁명을 꿈꾸는 예술운동 세력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산타 히로시마」의 최영주는 제국주의와 부르주아 계급에 맞서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의 비인간적 참혹성과 진실을 은폐하려는 사회적 힘에 맞서 투쟁하는 여인일 뿐이다. 그러한 투쟁의 과정 속에서 그녀는 인간적 진실을 획득하려 하고 휴머니즘을 회복하려 한다. 때로는 좌절을 맛보고 고통스러워하며 때로는 사랑과 성취의 기쁨을 느끼는 그녀의 투쟁 목표는 단지 보다 높은 삶의 질을 요구하는 인간성 회복에 있을 뿐이다. 비록 그녀는 거대한 사회적 힘에 부딪쳐 결국 쓰러지고 말았지만 알버트와 야쓰에라는 두 사람의 주변인물은 그녀로 인해 새로운 삶의 각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한편 「찌꺼기들」의 신데렐라는 빼어난 이야기 솜씨로 갱생원의 동료 소녀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지만, 정부 시책에 적극 협조하는 갱생원의 충성심을 과시하는 싶어하는 교도주임과 자신의 명성을 높여 줄 충격적인 폭로성의 다큐멘타리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는 영화감독의 이해타산이 교묘하게 맞아 떨어져 그녀는 그들의 욕망의 제단에 희생양으로 바쳐지게 된 운명을 맞게 된다. 그것은 단순히 개인적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갱생원 안의 한 죄수에 불과한 신데렐라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도 거대한 구조적 폭력이 되는 셈이다. 음모에 의해 밀고자로 만들어지는 신데렐라는 동료 소녀들로 따돌림과 수모를 겪으면서도 결코 이들에게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인권과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죽음으로써 투쟁한다.

이 두 작품에서 삶을 짓누르는 거대한 힘에 맞서 투쟁하는 두 여자는 인간의 내면적 진실을 지키고 인간성을 회복하려는 힘겨운 싸움을 벌여 나가 결국 죽음에 이르고 말았다. 그러나 이들의 투쟁과 죽음은 거창한 사회적 이념을 내걸지는 않았지만 그 내면에는 평화와 환경, 그리고 인권과 자부심에 대한 신념과 열망을 한껏 담고 있는 아름답고 순결하고 고귀한 투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