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양도세 파문
이재언 / 미술평론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미술작품이 두 개의 얼굴을 하고 있다. 인간의 고귀한 정신의 산물로 그 어떤 물질적 조건으로 환원할 수 없는 성스러움이 있는가 하면, 한편으론 유산계층의 허영심과 투기심리의 대상으로서 상품 이상도 이하도 아닌 최상의 상품 모습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어떤 면에서 우리에겐 후자의 인식이 더욱 노골화되어 있고 지배적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합할 것 같다.
사실 우리사회에서는 미술작품이 곧 투기의 대상으로 인식될 만큼 왜곡된 경제구조를 지녀온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지난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후반까지 미술작품은 부동산과 증권 못지 않은 재산증식과 은닉의 중요한 수단이 되었던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 되었다. 특히 80년대 후반에 이르러 증권은 침체된 실물경기가 그대로 반영되어 하향세에 접어들고 부동산은 강력한 법적 제재를 받으면서 침체국면에 빠져들어 미술작품에 대한 경제적 관심은 더욱 커지게 된 것이다.
사실 '80년대 후반부터 강남 일대에 자고 일어나면 화랑이 하나씩 생겨날 정도로 화랑이 난립했던 것은 이러한 사회·경제적 흐름을 그대로 반영한 것에 다름 아니다. 그리하여 수많은 화상들이 경쟁적으로 고객 확보에 나서면서 미술품 수요에 박차를 가하여 미술품에의 투기화를 더욱 부채질하게 되었던 것이다. 일부 언론도 작품의 공시가격이라 할만한 가격기사를 정기적으로 다루면서 소수 작가들의 고가화를 조장하는 부작용까지 발생하게 되었다. 물론 미술작품에 대한 순수한 애호심에서 소장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겠지만, 주변의 들끓는 분위기는 자연 미술작품을 재산증식 및 보전 내지는 은닉, 도피의 수단으로서의 기대심리를 가지게끔 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듯 지나치게 비정상적인 호황을 누린 미술시장의 분위기는 곧 적지 않은 사회문제를 야기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엄청난 부가가치가 발생하는 작품유통 자체가 과세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나돌면서 당국에서는 구체적인 법개정을 심의하게 된다. 그리하여 일차적으로 거래량에서 손꼽히는 몇몇 화랑들이 거래 소득에 대한 인정과세가 실시되고, 다시 소장자들의 재산소득에 과세를 하려는 모종의 법적 조치들이 검토된 것이다.
실물경기 악화로 타격 심한 미술시장
당시 비등한 미술계의 반대여론도 만만치 않았지만, 당국에서 내세우는 조세의 무차별 원칙 앞에서 도리없이 법개정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 국민들 상당수가 봉급자 생활을 하는 중에 몇푼 받지도 못하는 봉급에서도 소득세가 공제되고 있다. 그런데 사람에 따라서는 한번씩 작품들을 팔고 사는데 수억 수십억원의 차익이 발생하는 것에 대해 묵과한다면 조세형평의 원리에 위배되는 것이기도 하다고 보는 것은 당연한 처사일 수가 있는 것이다. 아무튼 결과는 조세원칙이 앞서 법개정에 착수하였으며, 결국 '90년 말 「서화 및 골동품에 대한 양도소득세」가 2년간의 유예기간을 두고 '93년 1월부터 시행되도록 조치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의 미술시장의 분위기와 당시 법개정 심의를 하던 '89년, '90년 당시의 분위기는 대단히 심한 격차가 있다는데 있다. 화랑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당시는 올림픽 분위기가 이어져 상당한 상승세를 타고 있다가 점차 실물경기가 극도로 악화되면서 제조업 못지 않은 심한 타격을 받은 곳이 미술시장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당시의 형편에만 근거한 입법이란 재검토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경기면에서 위축된 미술 시장이 이제 시행을 서너 달 남짓 남겨 놓고 있어, 화랑가를 비롯한 미술계 전체가 붕괴되기 일보 직전의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닌게 아니라 최근 그 많던 화랑들(특히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명문 화랑조차)이 그 흔한 기획전도 꺼려하며, 문닫을 구실만 찾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에 있는 것 같다.
특히 지난 2년간 유예기간 동안 미술시장은 현저하게 침체되었다는 점, 이는 앞으로의 미술시장 침체만이 아니라 심각한 문화적 파국으로까지 이어질 것을 여러 사람들이 우려해마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거의 작품에 대한 거래가 중단되다시피 한 것이 요사이의 미술시장 형편이고 보면 미술계의 자구적 대응은 당연하다고 보아진다. 그리하여 여러 미술단체들이 연합하여 이의 관련법 시행을 연기하거나 중단을 청원하고 나선 것이다. 이 단체들의 면면은 한국미술협회(이사장 박광진), 한국화랑협회(회장 김창실), 한국미술평론가협회(회장 오광수) 등으로 명실공히 한국의 미술계를 대표하는 기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이들이 함께 지난 9월초에 미술작품에 대한 양도소득세 부과를 10년 더 연기해달라는 청원서를 제출하였다. 한편 이와는 별도로 한국고미술협회(회장 김대하)도 문화재에 대한 양도소득세 부과를 규정한 이 법을 아예 폐지하는 것으로 개정해달하는 청원서를 작성하여 금명간 국회에 제출할 것으로 보인다. 각 일간지들에서도 문화면 기사를 통해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어 시행 연기의 불가피성을 강하게 표명하고 있으며, 이 문제가 여론의 힘을 얻기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게 드러나고 있다.
청원 당사자들의 주장을 대략 요약해보면 그 내용은 크게 네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다른 선진국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고세율의 과세조치는 문화발전의 양적, 질적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92년 9월 19일자 한국일보 문화면 기사에서 밝힌 외국 여러 나라의 미술품 양도소득세율을 보면 거의 없거나 경미한 것으로 부과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미술작품을 무슨 부동산과 같은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기계적 행정이라는 것이다. 사실 미술작품은 그것이 일반적인 소비재와 같은 유통질서에 의해 공급되고 수요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셋째, 현단계에서 무리하게 미술작품에 대한 고세율과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결국 미술시장의 지하화와 음성적 거래를 더욱 부추기는 역효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이렇게 될 가능성은 대단히 높으며, 또한 이렇게 되면 더욱 어지러운 유통질서와 문화사범 (위작, 도난, 밀반출)을 더욱 조장하게 된다는 것은 일리가 있는 사실이다. 이 모두는 그 일차적인 피해가 결국 소장자나 애호가들에게 미칠 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로서도 커다란 손실을 입게 된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넷째, 작품유통의 기능이 극도로 위축되어 작가들의 생업에 지장이 생긴다는 것이다. 사실 작품의 빈번한 거래야말로 작가들의 생업에 있어 중요한 문제가 된다. 물론 양도소득세 부과의 파장이 오히려 젊은 작가들에게는 거래가 더 왕성해지는 기현상도 일시적으로 나타나고는 있지만, 대체로 활발한 거래가 보장되는 데서 작가들이 보다 커다란 수혜를 입게 된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것이라 하겠다.
소유와 거래에 대한 인식전환이 근본대책
어찌 되었거나 대다수의 많은 관계자들은 이 법 시행이 적어도 일시 유예될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그도 그럴 듯한 것이 하필이면 시행 시점이 대통령 선거일정과 맞물려 있어, 오히려 아쉬운 쪽은 당국이 아니겠냐는 것이며, 실은 미술단체들의 청원 운운하는 것도 이미 정해진 유예방침 시나리오에 의해 서로가 명분과 생색을 갖추기 위한 요식 절차를 밟고 있을 뿐이라는 견해와 관측이 공공연하게 나오고도 있다. 만약 이러한 관측이 사실이라면 문화에 대한 법과 정치의 역기능과 해악의 한 단면이 드러나는 것이라 해야 할 것이다. 정말 사실이라면 이는 문화에 대한 가렴주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꼬리를 무는 여러 가지 일들에 비추어 볼 때, 이번 일을 그리 단순하게만 볼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혹 향후에 이러한 폐단을 척결하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미술계는 여러 가지 면에서 새롭게 대처방식과 해결방식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물론 그러한 흑막없이 순조롭게 양도세 문제가 해결된다 하더라도, 이제는 우리의 미술시장이 이제까지의 방식을 고수한다면 우리의 문화발전에 아무런 보탬도 되지 않는 그야말로 이해 당사자들의 이익을 위한 일시적 조치 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점은 명백하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미술작품에 대한 소유와 거래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일에 모두가 나서는 일이다. 사실 청원서를 제출한 단체들은 이해 당사자들의 일단일 뿐이지, 얼굴이나 이름이 나타나있지 않은 미술품의 소유대중은 아닌 것이다. 대중들의 인식적 전환이나 계몽을 위한 일체의 계획이나 프로그램도 없이, 여전히 종래의 유통방식과 왜곡된 인식에 의한 시장구조와 질서를 그대로 존속시키려는 안이한 의도가 뻔히 드러나는 측면도 없지 않다. 만약 이런 상태가 그대로 존속될 때에는 계속 문화 외적인 세력들에 의해 이용당할 소지가 너무나 많다. 뿐만 아니라 근본적인 불신들이 대중들에게 쌓이기 시작하여 미술시장 자체가 존립되기 어려운 국면에 처할 것 또한 분명하다 하겠다.
결국 근원적인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단순히 시행상의 유예만을 능사로 여긴다면, 그 모순구조의 해가 여러 당사자들에게 돌아갈 뿐이다. 한참 미술작품 매매가 호황을 누릴 때, 몇몇 화상들이 저지른 호황을 누릴 때, 몇몇 화상들이 저지른 비리가 이제야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어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상 미술작품을 투기의 대상으로 권장했던 것이 우리 유통에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미술시장의 불경기가 실물경기의 영향이기도 하겠지만, 일부 몰지각한 화상들이 저지른 행태에 대한 불신이나 반감 등이 그 원인으로 작용한 자업자득의 결과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일반 애호가들도 그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계층이나 신분을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나, 혹은 상속의 수단으로, 아니면 재산증식의 수단으로 미술작품을 매입한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그 어떤 유혹에도 현혹되기 쉽다. 바로 그러한 불순한 심리들이 우리의 미술품 가격을 비정상적인 가격대로 올려놓았으며, 작가들의 작품 양적 증가에 반비례한 질적 하락을 부채질한 것이다. 이제야 말로 작품은 그것 자체를 봄으로써, 혹은 즐김으로써 족한 것이지, 반드시 소유 자체로(그것도 모자라 밀실에 감추어 두고서) 만족을 주는 대상이라는 인식을 버려야 할 것이다.
언론이나 비평도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자주 특정 작가들의 작품가를 특종으로 다룸으로써 이해가 걸려있는 화상이나 작가들 위에서 군림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이번의 미술계 청원건에 대해서도 대부분이 한결같이 이해 당사자들의 입장만 대변했을 뿐, 근본적인 우리 문화의 구조를 치유하기 위한 대책이나 대안을 마련하는 데는 소홀히 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요컨대 미술품 양도 및 상속에 따른 중과세에 대한 입법이나 집행 당국도 우리의 사회문화적 현실을 감안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시중 자금의 왜곡된 흐름을 방지하고 거래가 있는 곳에 과세를 해야 하는 입장은 정당하다. 하지만 이제 불과 10여 년 사이 우리 미술이 이 만큼이라도 활성화될 수 있고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그러한 붐에 힘입은 바가 없지않다. 그러나 양도세 실시 여부를 떠나서 이제라도 미술계 스스로가 자정의 분위기를 만들어나가지 않으면, 미술시장이 문화를 운위할 자격 자체를 의심받게 된다. 가장 문화적인 영역에서 가장 비문화적인 실태가 이제는 필요악으로서조차도 없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문화가 비건설적이고 소모적인 데만 에너지를 허비할 것이 아니라, 더욱 투명하고 건전한데 힘을 쏟도록 해야 그동안의 미술시장이 얻은 불명예나 오욕을 씻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