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르포 / 제 16회 서울연극제 자유참가 공연 총평

우리 연극의 선자리와 그 문제점




이강렬 / 연극평론가

92년도 제16회 서울연극제의 자유 참가공연은 모두 12편이다. 그중에서 창작극이 5편이고 번역극이 7편이다.

창작극은 극단 대학로극장의 이만희작 강영걸 연출의 「불 좀 꺼주세요」. 극단 기역의 양일권 작·연출의 「연극만들기」, 극단 까망의 이문열 작 이용우 연출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극단 창고극장의 함세덕 작 리보라 연출의 「감자와 쪽제비」그리고 극단 로얄씨어터의 진원석 작 박상철 연출의 「큐피트여, 나에게도 화살을」이다. 이 가운데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번역극은 극단 실험극장의 죤 필네어작 윤호진 연출의 「신의 아그네스」, 극단 산울림의 아놀드 웨스커 작 임영웅 연출의 「딸에게 보내는 편지」, 극단 성좌의 야누쉬 그와브스키 작 김영환 연출의 「찌꺼기들」, 극단 민중의 데이빗 헨리황 작 김혁수 연출의 「M·나비」, 극단 모임의 샤론 폴록 작 박장순 연출의 「마지막 키스」, 환퍼포먼스의 머레이 쉬스갈 작 김철리 연출의 「루브」, 그리고 환퍼포면스의 사이먼의 「일어나라 알버트」를 각색한 김광림 연출의 「당신의 침묵」이 있다.

자유참가공연은 공식참가공연과는 달리 일체의 지원을 받지 않고 순수 극단의 재정에 의해 공연되고 참가되고 있다는데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이들 공연이야말로 한국연극의 실상을 짚어볼 수 있고, 발전의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고쳐나갈 수 있는 모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 공연 중에서는 오래전부터 흥행적으로 성공하여 현재까지 상연되고 있는 작품도 적지 않다.

장기공연되는 세 편의 작품들

「신의 아그네스」를 비롯하여 「불좀 꺼주세요」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등이 이에 속한다. 특히 「불좀 꺼주세요」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창작극으로서 지금까지도 관객들의 호응을 얻고 있는 무대로 연극의 질과 상업성을 모두 갖춘 좋은 무대였다는게 중론이다.

해마다 문예진흥원의 지원에 의해 공연되는 공식참가공연이 형편없는 관객으로 연극제 무용론까지 대두되고 있는 실정과 비교하면 좋은 대조를 이룬다.

「불 좀 꺼주세요」는 소재의 기발한 발상이 인상적이다. 즉 인간의 이중적(二重的)인 면을 만드는 것인데 분신(分身)의 등장이 그것이다.

예를들어 정신적 사랑을 운운하면서 속으로는 육체적 쾌락을 탐하기도 하고 청빈락도를 외치면서도 부(富)에 대한 동경을 떨쳐버릴 수 없다. 분신과 자신이 동시에 무대에 등장되면서 인간의 참 모습을 조망해 보고자 하는 의도이다.

「신의 아그네스」는 실험극장의 오랜 고정 레퍼토리로 초연 당시부터 내용의 충격성으로 인해 관심을 끌었던 작품이다.

수녀원에서 젊은 수녀 아그네스가 아기를 낳고, 탯줄로 목을 감아 살해한 사건에서 시작되는 이 공연은 플롯 자체가 유아살해 범인 추적이라는 수사극 형식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진행 방향이 아그네스의 심층 심리를 찾아들고 결국에 유아살해의 무의식적 동기를 찾아내는 과정으로 짜여져 있다.

이 극의 갈등 구조는 아그네스를 중심으로 하여 신앙의 힘으로 대처하고자 하는 미리암 수녀원장과 객관적 진실을 파악해 보고자 하는 정신과 의사 리빙스턴 박사, 이 세 여인의 축이 극을 이끌어 간다.

그러나 무대의 지나친 단조로움과 큰 극적 갈등을 이기지 못해 너무 크게 폭발되어지는 심리적 연기가 아쉬움으로 남지만, 지금껏 많이 공연되어 와서 인지 무르익은 앙상블과 시각적으로 어느 정도 극복된 무대디자인이 좋은 무대로 인식되어지게 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아이들의 세계를 통해 정치적 우의성을 풍자한 연극으로 보기드물게 장기공연을 하고 있는 연극이다.

전체적으로 병태와 석대를 중심으로 하여 주변 아이들의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는 이 작품은, 서울에서 전학 온 주인 공 병태의 출현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엄석대의 갈등에서 비롯된다.

엄석대를 중심으로 한 낯설고 억압적인 환경에서 병태는 경쟁, 추문, 폭로 등의 여러 방법으로 대응하려고 노력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되고 철저히 소외당하게 되자 석대의 밑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새로 부임한 선생님에 의해 석대의 신화는 한낱 물거품이 되고 또다시 변형되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불합리와 폭력의 거대한 불의 내지 합리와 자유의 대립을 재미있게 펼쳐보이고 있다.

국민학교 5학교 교실의 작은 군주로 군림하던 석대의 횡포가 드러나게 되는 장면은 석대에 대한 아이들의 배신과 아이들의 배신감에 입술을 깨무는 석대로부터 드러난다. 그 가운데서 무언가를 되씹는 석대와 무너져 버리는 병태의 생각들, 그리고 군주의 몰락과 그를 추종하던 아이들의 배신을 보고 우는 영팔의 모습에서 우리는 잃어버린 그 무언가를 찾을 수 있게 한다. 혹 우리가 알고 있는 올바른 진실을 스스로 왜곡한 채 지배권력 앞에 머리를 숙이고 병태가 느꼈던 굴종의 단맛을 맛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베스트셀러인 원작이 갖고 있는 장점이 각색하는데 최대한 활용되어 좋은 앙상블과 함께 연극의 재미를 만끽하게 해 준다.

토속성과 서구성, 대조적인 두 창작품

함세덕 작, 리보라 연출에 극단 창고 극장의 공연인 「감자와 족제비」는 일제의 농민수탈정책을 정면으로 고발한 연극이다.

일제 말기 진주 근교의 산촌에, 소학교 교원인 딸의 부친에 대한 설득과 꾀로; 숨겨두었던 감자를 굶주려 등교조차 못하는 학생들에게 준다는 줄거리이다.

거의 초근목피로 연명해 가는 농촌에 안덕상인들의 매점매석까지 성행하여 농촌은 기아선상을 헤매고 있었다. 1940년대 농민들의 상황을 리얼리즘에 담아낸 이 무대는 원로 연출가에 의해 재현되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감자를 케어 수확하는 계절, 군청으로부터 가가호호 공출량이 하달되고 농민들은 이를 피해 좀 더 나은 값으로 팔기 위해 감자 은닉의 숨바꼭질이 한창이다.

이 촌가의 가장인 진풍년의 딸 수방은 국민학교 선생인데 점심 끼니를 굶고 있는 아이들에게 끼니를 메꾸어 주기위해 동리에 숨겨놓은 식량 감자를 돈이 있는대로 구입하고 있다.

이때 산너머 우태는 감자를 수확하여 군청에 공출을 끝내고 돈 사십팔원을 받아 주머니에 넣어 허리에 찬 것까지는 좋았는데, 아침에 감자 삶아 먹은 것이 탈이 되어 하도 급해 허리끈을 산길에 놓고 급한 상태로 볼일을 보려는데, 족제비 한 마리가 나타나 허리띠를 물고 사라진다. 우태 처는 남편의 행실을 아는터라 일찌감치 진풍년의 집 앞 길목에서 우태를 기다리는데 괭이와 부삽을 얻으러 달려온 우태를 발견한 우태 처는 전후 사정을 묻고 끝가지 듣지도 않고 한바탕 쏘아댄다.

재미있게도 진풍년이 감자를 감추어 둔 오두막의 옆 바위가 족제비가 숨어살던 곳이며 수방과 방선생이 수확하려는 감자를 감춰 둔 곳도 여기며, 게다가 시장 잡배들이 노리는 감자가 감추어진 곳도 바로 여기이다.

진원석 작 박상철 연출의 「큐피터여! 나에게도 화살을」은 창작극임에도 배경과 극중 역들이 모두 외국인들로 되어 있어 번역극인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극의 구성에서도 매우 서구의 근대적 분위기를 내고 있다.

이 작품은 에피소드 여섯개로 나누어져 에필로그로 총괄하는 형식이다. 주인공 클라우스 렌들은 어렸을 적 제작자 탈리 아비의 누나가 옷벗는 걸 엿보았다는 도덕적 양심의 걸림돌로 제작자 탈리 아비 밑에서 애매한 계약 조건으로 연출 및 극작가 생활을 하고 있다.

한편, 탈리 아비는 예술작품보다는 흥행 위주의 작품만을 옹호하는 태도를 보이고, 그러는 가운데 적극적인 줄리 앤더슨과 짝사랑적인 니꼴 갱즈부르는 클라우스 렌들을 좋아하는 심정으로 토로하게 되지만 렌들은 무슨 의미인지조차도 파악하지 못한다. 그러던 중 렌들은 과거 도덕적 불양심으로 괴로운 나날을 보내게 된다. 결국 렌들은 어릴적부터 마음속에 만들어 놓은 헬레나와 렌들 백작의 환시로 인해 사랑하는 줄리 앤더슨과 탈리 아비와의 감정대립을 야기시키고 만다.

마침내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걸 느끼게 된 클라우스 렌들은 무당 왕 젱칭의 도움으로 마음속에 만들어 놓은 인물들의 환시작용을 물리치고 그로인해 제작자 탈리 아비와의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게 된다. 또한 주인공의 소홀했던 자기 자신의 내심을 되돌아 보게 된다.

결국 주인공 렌들은 줄리를 통해 사랑을 깨닫게 되고 탈리 아비와의 인간관계도 대등하게 이루어지면서 헬레나를 닮은 여기자 헬렌 버그만의 출현으로 어쩔줄 몰라하는 가운데 막이 내린다.

샘터 파랑새극장의 좁은 무대에서 극적으로 매우 까다롭고 복잡한 구성을 펼쳐 보이려는데 연출자의 노력의 흔적이 배어난 무대였다. 특히 의상이 인물의 성격을 명확하게 해 주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연극만들기」와 「당신의 침묵」의 경우

양일권 작·연출의 「연극만들기」는 놀이극 형식으로 오늘을 사는 소극장 연극무대의 이면을 재미있게 보여주고 있다. 연이은 흥행실패로 인해 최악의 위기에 처한 단원들은 기념공연을 앞두고 극단의 재정난과 단원의 이탈까지 겹쳐 재기불능의 지경에 처했다. 남은 단원들의 비장한 결의와 극단과 깊은 정신적 유대를 갖고 있는 연출가와의 만남을 통해 기사회생이 이루어지게 된다.

서커스 광대의 사랑과 애환을 극중극으로 만들어가는 단원과 연출의 모습을 통해 연극만들기의 현장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그러나 뒷부분에 가서 한 배우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 전개가 지루하게 펼쳐진 것이 흠이었다.

「당신의 침묵」은 애초에 「일어나라 알버트」란 외국작품을 각색하였지만 지금은 원작과는 상이한 모습이다.

즉 원작은 남아공의 인종차별을 극대화시킨 작품인 반면 「당신의 침묵」에서는 신과 인간의 구원 문제에 초점을 잡고 있다는 점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남편의 폭력을 이겨내지 못해 결국 정신이상 상태에서 남편을 도끼로 살해 한 사건을 정신과 의사와 함께 풀어가는 내용이다.

정신병원의 침대에서 의사와 함께 주인공의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통해 인간이 얼마나 현대 사회에서 소외되어 가고 기계화되어 가고 있는가를 보여 준다. 이 작품은 총 13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전개되는 내용은 구분없이 연속적이고 빠른 템포로 진행되고 있다.

막이 오르면 하나의 살인사건이 시작된다. 광적으로 예수교를 믿는 여인이 남편을 살해한 것이다. 넋을 놓고 밤을 지샌 여인은 다음날 아침 경찰서에 전화를 한다. 여인은 예수님의 뜻에 따라 자신의 남편을 심판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경찰은 이 여인의 정신상태를 의심하게 되어 여인은 정신과 의사에게로 보내진다. 의사가 살인 동기를 찾아내는 과정에서 여인이 벌이는 갖가지 상상극들이 하나씩 만들어진다. 여인의 김지숙과 정신과 의사 박동과의 연기가 자칫 혼란스럽게도 느껴질 수 있는 여러 관념적인 내용을 형상화하는데 중심을 이루었다.

번역극의 成敗 보여준 「M. 나비」와 「마지막 키스」

번역극에서는 먼저 민중극단의 대이빗 헨리 황 작, 정진수 역, 김혁수 연출의 「M. 나비」를 보자.

이 연극은 1986년 세계인을 놀라게한 충격적 실화를 소재로 한 연극이다. 이 극의 배경은 1960년대 초로 북경의 프랑스 외교관 갈리마르는 우연히 북경의 전통극을 하는 한 극장에서 프리마돈나로 출연한 중국배우 송릴링을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중국 오페라의 프리마돈나는 실상 남자배우가 여자역을 연기한다는 사실을 모른 갈리마르는 릴링이 여자인줄 믿고 25년간 동거생활을 한다. 릴링은 중국첩보원으로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갈리마르에게 접근하여 자신도 모르게 대역죄를 짓게 되었는데 문제는 동거인이 남자였다는 사실을 모를 수 있느냐에 쏠렸다.

갈리마르의 대답은 「난 그녀가 수줍어하는 줄 알았다. 그리고 남자 앞에서 옷을 벗지 않는 것이 중국의 관습인줄 알았다」는 것 뿐이다.

갈리마르역의 박봉서와 남·여 양성(兩性)의 역할인 송릴링은 한필수가 맡았는데 이 두 연기자의 극중 인물 파악 능력의 骡어남이, 좁은 소극장의 무대이지만 이 연극이 지녀야할 여러 제약을 극복하는데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원래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동양에 대한 서양인의 편견을 고발하고자 했다고 한다. 서양은 제국주의적 식민정책을 통하여 처음 동양에 본격적으로 체험하게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동양에 대한 우월 콤플렉스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갈리마르의 나레이션을 통해 자유자재로 바뀌어야 하는 장면전환의 단조로움과 두 사람의 기이한 사랑이야기가 강조되어 작가의 주제와는 조금 다른 진행이었던 게 흠이지만 번역극으로서는 좋은 무대였다.

극단 모임의 샤론 폴락 작, 김병주역, 박장순 연출의 「마지막 키스」는 번역극의 여러 문제들이 드러내지는 무대였다.

사실주의 번역극에서 무대장치나 의상 그리고 소품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자문에 따른 어설픈 모방에 머물 수밖에 없고 인물의 형상화에 따른 분장에서도 이러한 문제는 예외없이 드러난다. 특히 노인 내지 하인 등의 대사와 행동에 있어 유형화된 모습은 결국 진부하게 받아들이게 될 수밖에 없게 한다.

이 연극은 캐나다에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실존인물의 재판 사건과 관련되어 그려졌다.

1892년 뉴잉글랜드의 리찌라는 여인이 그 아버지와 계모를 도끼로 죽였다는 혐의로 기소된다. 결국 그녀는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그 사실 여부를 둘러싼 의문은 계속되어 왔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는 빅토리아 시대의 억눌려있던 독신여성 리찌의 모습을 감상적으로 재구성하려고 했는데, 작품의 전체를 이끄는 리찌와 여배우 두 여자 연기자들의 노력만큼 무대 완성도는 역부족의 느낌을 주는 공연이었다.

「사랑」, 「찌꺼기들」, 「딸에게…」의 경우

환퍼포먼스의 머레이 쉬스갈 작, 김철리 역·연출의 「사랑」은 그동안 여러 극단에서 공연된 적이 있는 작품으로 엘렌(강리나 분)이라는 여인과 해리(이호성 분)와 밀트(김학철 분)라는 두 남자가 벌이는 코믹한 사랑이야기이다.

연극에서 연기자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절실하게 체득하게 해 준다. 성실한 세 연기자들의 노력의 결실이 앙상블이 되어 자칫 우스꽝스러운 무대가 되고 말 여러 소지들을 연극적으로 순화시켜 주는 데 큰 역할이 되었다.

한적한 다리 난간 위에 자살을 시도하려는 해리가 자기 직업에 충실했던 밀트와 우연히 만남으로써 이야기는 시작된다. 15년 전 대학동창이었던 이들은 서로의 문제를 상대방에게 이야기한다. 해리가 주장하는 삶의 무의미성에 대해서 밀트는, 삶의 의미는 돈과 권력에 있다고 강변한다. 자살을 하려는 해리를 설득하기 위해 밀트는 사랑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밀트는 해리가 사랑에 기회를 한 번 더 주겠다는 말을 듣고서는 부부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자신의 부인 엘렌을 해리에게 소개시켜 준다. 사실 밀트는 린다라는 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말에서 이 작품은 진정한 사랑을 찾아 밀트와 엘렌이 재결합하여 행복한 끝을 맺는 것처럼 보인다. 이 연극에서 엘렌의 이중적 내면세계 즉, 겉으로는 고상하고 도덕적인 여인인척 하지만 내면에 도사린 인간적 욕망과 섹스 그리고 평범한 가정주부가 되고자 하는 이상과 현실의 두가지 행동을 보여주는, 어려운 역을 나름대로 잘 소화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짜임새 있는 무대장치와 공간을 최대 활용한 소품 등을 통해 밀도있는 무대를 창출해 내었다.

극단 성좌의 야뉘쉬 그와브스키 작, 김아라 역, 김영환 연출의 「찌꺼기들」은 어느 갱생원을 중심으로 그들의 삶을 통해 사회적 진실을 묻는 연극이다. 원생들이 펼치는 「신데렐라」공연 등을 통해 주제에 접근해 가고 있는데 연기자들의 좋은 앙상블과 무대 완성도가 만나 번역극에서 보기드문 수작으로 평가되어지는 공연이었다.

끝으로 극단 산울림의 아놀드 웨스커작, 정덕애 역, 임영웅 연출의 「딸에게 보내는 편지」는 노래할 수 있는 여배우를 위한 노래가 있는 다섯 대목의 연극이라는 작가의 설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배우(윤석화 분)의 모노드라마이다. 좋은 작곡과 음악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상업성에 치우친 듯한 아쉬움이 짙은 무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참가공연들은 무대의 다양성과 창의적 노력이 엿보인 긍정할 만한 공연들이 많았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어진다.

이제는 극단 나름대로의 개성을 갖춘 전문성과 공연 형태의 더욱 다양한 면들을 통해 관객과 만나야 하는 절실한 과제를 인식하는 일이 남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 분야에 종사하는 모든 연극인들의 장인정신과 창의성이 더 한층 요구되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