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 / 제주

한라문화제 마을·해변축제로 변신




허영선 / 제민일보 문화부 기자

향토문화축제는 일단 지역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내용과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지역의 고유한 주체성을 살려내는데 있다. 그 주체성을 지키며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일은 일단 지역민들의 삶 속에서 이 기간을 통해서 만이라도 다함께 신명을 끌어내는 것이어야 한다. 신나게 일하고, 흥겹게 마음을 풀고, 놀이를 즐길 수 있는, 자연스러움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지역문화자체가 우리 민족문화의 뿌리라는 점에서 향토문화축제를 전통의 계승 발전으로 삶의 질을 한 차원 높게 창출해나가야 하고, 그러한 기능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사회가 점점 문화사대주의 서구화로 달리면서 급속하게 우리 것을 잃어가고 소중한 전통정신을 소홀히 하고 있는 경향이 지역이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제주만의 향토색 살린 색다른 변모창출

시월 상달 문화의 가을. 제주지역 최대의 문화예술큰잔치인 제31회 한라문화제가 지난 10월 17일부터 24일까지 여드레 동안 펼쳐졌다.

올해 삼십 년 장년을 넘기면서 치러진 한라문화제는 이러한 의미를 심각하게 곱씹으면서 색다른 변모를 시도, 고답적인 「행사를 위한 행사」의 껍질을 깨고자 애쓴 흔적으로 귀결된다.

「느영나영 둥그데당실」(너랑나랑 덩실덩실) 제주문화풍요제란 주제처럼, 예전의 제주시내 중심권에서 치러지던 축제를 전도 단위별 마을축제를 승화시킨 것이 그것이다.

축제기간 일주일을 앞둬 미리 분위기를 만들어 간다는 뜻에서 각 마을마다 자조적인 축제를 벌이게 만들었다. 관내 초·중학교의 학예회·예술제·운동회 등과 연계시켜 윷놀이·줄다리기·걸궁 등 주민·학부모·학생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한 것이다.

마을축제는 농번기에 한창 바쁜 지역민들에게는 다분히 부담감과 일련의 저항감도 뒤따를 것이었지만, 문화축제의 한 단면을 맛보게 하고 공동체의식을 일깨워 주게한 부분적인 호감을 일으킨 행사라고 할 수 있다.

전통민속에서 현대예술에 이르기까지 각 장르가 총집결된 이번 문화제에는 출연진만 1천여 명에 달했다. 축제기간만해도 종전의 문화축전이 사흘이었던 것을 8일로 확대 다양성을 보여 주려했다.

올 한라문화제에는 처음으로 학생민속예술부문을 신설, (그동안 도와 예총도지회가 주최였는데 이번에는 도교육청까지 포함됐다)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한 학급에서 전통지역민요를 안다는 학생이 고작 2∼3명에 그치고, 지역 토속어를 제대로 구사할 수 있는 학생이 드문 현실에 비추어 전통민속을 접할 수 있게 기회를 연 학생부신설은 산뜻한 의미를 준다.

초·중·고 학생들은 모두 9개팀이 출연, 제주의 전설과 전통 선인들의 정신을 되살리게 하는 작품들을 보여주었다. 또 집줄놓기, 등돌들기, 물허벅경주, 씨름 등의 민속경비 부문에 중·고교생들이 출전했다.

제주민요·전설·민담이 갖는 가장 특이한 가치는 우선 사투리가 살아있고, 그 속에 우리 전통정신이 호흡하고 있다는데 있다.

삼십년을 꼬박 치러온 한라문화제가 한창 「치르기 위한 연례행사」로 도민들의 외면을 받아온 까닭은 이 축제에 진정 참여하고 느껴야 할 세대층들이 빠져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문화란 일시에 안목을 키워주고 정신을 계승시켜주는 것이 아니므로 장구한 세월 정신적 투자를 해야 하고, 후에 수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사투리축제는 「사투리로 말하는 세시 풍속」, 「우리 어릴 때 이야기」, 「할망말도 들어봅써」등 갖가지 소재를 들고 나온 학생부, 일반부, 관광부, 재외도민부팀이 열띤 경연을 벌여 폭소를 만발하게 했다. 또 사투리연극제도 벌어져 초·중·고학생들이 재미있는 연출로 관심을 끌었다.

말은 곧 넋, 사투리 축제 참신

무엇보다 이번 축제의 독특한 구상은 「사투리축제」였다. 우리말이 점점 묻혀져가고 있는 시점에서 「말을 잃으면 넋마저 잃게 된다」는, 뒤늦은 인식에서 출발한 「제주도말 찾기」는 그러므로 소중한 행사에 속한다.

이번 축제에서 또 하나 새롭게 시도한 것은 해변축제였다. 제주시내에 바다를 배경으로 한 탑동매립지에 가설한 야외무대가 그것이었다. 「해변축제」는 사람들은 닫힌 공간을 멀리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언제 「광장」에 사람들이 모여 흥겨울 수 있었는가. 「광장」은 사람들이 가장 쉽게 드나들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민속예술공연은 옛부터 열린 공간에서 이룩한 것들이다.

층층이 계단을 이뤄놓은 원형의 종합운동장에서 치러지는 민속예술공연은 진정한 의미에서 함께 주민들과 호흡할 수 없다. 숨결을 느낄 수 없다. 더구나 오랜 농경사회에서 일궈진 노래가락과 춤사위가 주가되는 이 고장의 전통민속은 그 체취에서 정신까지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처음으로 문화제에서 시도한 야외무대는 당초 상상보다 자연스럽게 주민들의 발길을 끄러 모으는 계기가 됐다.

이 야외무대에서는 짭쪼롬한 바다냄새와 어우러져 제주시립교향악단, 제주시립합창단의 연주회가 분위기를 한결 고조시켰다. 또 제주도립민속예술단의 무용 「무속의 군무」, 제주무속 「영감놀이」, 교악대 연주회, 연예제 등이 다채롭게 펼쳐졌다.

이번 야외무대를 계기로 탑동야외공연장 설립에 따른 구체적인 논의가 오간 것도 하나의 성과였다.

새로운 문화의 텃밭을 가꾸기 위해서는 「신명」을 체험할 수 없었던 도민들에게 과연 「놀이」란 어떤 것인가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해야 한다. 반응을 일으킬 수 있게 문화예술이 기능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일단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오랜 세월 노동에 길들여져 온 민중들에게 며칠 동안이라고 삶 속에 스며들어오는 놀이의 향유가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일것이다. 그러나 거리축제에서 올 한라문화제는 연도의 주민들을 향해 함께 신명이 나기를 기대했지만 「반응」이 미적지근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번 축제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민속예술경연을 역시 출연팀들 간의 경연에 그쳤다. 「축제」의 의미보다 「경연」의 이름을 띤 닫힌 공간에서의 의식은 전국민속예술경연과 다름이 없지만, 그동안 발굴되지 않았던 전통민속을 새롭게 개발, 전승했다는 점에서는 이러한 형태로라도 창출해내려는 의지가 엿보인다는 결론을 얻어낼 수밖에 없다.

이번 경연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남제주군팀의 「달구놀이」는 동헌터를 떠날 때 역군으로 나온 마을 사람들이 달구소리와 함께 국가민안과 고을재앙, 환란을 막아 복을 내려 주기를 기원하는 내용이다. 선인들의 순박함과 협동심을 느끼게 해 주는 이 민속놀이는 지금은 주변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는 민속예술로, 새로운 소개발굴 뿐 아니라 연출 면에서도 짜임새가 있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걸궁부문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콕박놀이」도 새롭게 발굴된 것으로, 제주민의 생활용구인 「콕박」을 이용한 민속이다.

올해 민속예술경연에는 제주도에서 초가집을 지을 때 일꾼들이 돌담과 벽체, 지붕 등에 흙을 바르면서 펼치던 민속놀이의 하나로 「흙싸움놀이」도 첫선을 보였는데, 전반적인 작품들이 새 소재발굴을 하는데 애를 썼으나 연출 기량 면에서는 떨어졌다는 평을 얻었다.

이밖에 바다축제, 조랑말경주대회, 향토풍물시장, 농·수·축산물직판장, 향토음식점운영 등으로 향토색이 물씬 풍기는 산업축제 등도 문화축제의 신명을 돋우었다.

또 연례행사의 하나로 열리는 한라문화제의 공연·전시·자조행사 음악제·시화전·미술전·사진전·서화전에 각 협회별로 문화예술인들이 참여, 작품들을 선보였다.

전국 시·도대표로 출전한 토속 및 통속민요경창들이 전국민요경창대회(24일)에 경연을 벌였다.

동원에서 참여로 닫힌 공간에서 열린 공간으로

일단 향토문화축전이 주민정서에 스며들어 생활 속에서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바람이 지나치리 만큼 반영된 올 한라문화제는 어디까지 성과를 올렸는가에 대해서는 평가가 내려지지 않았다.

향토색 물씬 풍기는 이번 축제는 다각적으로 변신을 위한 노력이 돋보였다. 「틀」을 깬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므로 「학생동원」에서 「학생참여」로, 「닫힌 공간」에서 「열린 공간」으로, 변화를 꾀했다는 것은 바람직한 전환이다.

문화수준은 그 지역민들의 주체적인 참여가 어디까지 왔는가에 따라 판가름난다. 사실 외형적인 이러한 성숙이 지역주민들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차원에서 치러졌는지는 다양한 측면에서 재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다. 전통예술에 대한 애정과 지역민 스스로가 이 전통문화전승의 주체자라는 의식의 촉발이 있어야 할 것이다.

또, 과연 축제기간은 적절한 선정이었나도 생각해 볼 일이다. 바쁜 가을걷이의 틈바구니에서 조금이라도 일손을 거둘 수 있는, 하나의 숨통같은 축제가 되려면 가능한 농번기는 피해야 한다.

이번 축제는 관광문화로 빛을 잃어가던, 제주다운 독특한 문화를 살려내는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의미는 새로운 가능성을 갖고 모든 의미있는 「제주적인 것」들을 잃지 말자는 정신에 보태진다. 더욱 다채롭고, 폭넓은 시야로 제주문화예술의 발전에 이 향토축제는 기여돼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욱 적극적인 「관변」사고의 탈바꿈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