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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후반 라틴아메리카 현대시

- 포스트 아방가르드? 포스트 모던?




황병하 / 문학평론가, 백제예대 교수

20세기 후반 들어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의 범세계적인 쓰임새는 라틴아메리카 문학사 기술에 있어 많은 문제점들을 야기시켰다. 이 사조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보여지는 미국의 경우 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 사이의 문화사적 구별이 없기 때문에 이 용어가 혼란을 불러일으킬 소지를 내포하고 있지 않지만, 이두 사조의 구분이 뚜렷한 라틴아메리카의 경우 사정은 매우 판이하다고 볼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에 있어 모더니즘이란 미국과는 달리 19세기 중반에서부터 20세기 초반을 강타했던 어떤 문학사조를, 그리고 아방가르드는 1920년대부터 1960년대 사이에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유럽과 유사한 미학지평을 가진 어떤 문학운동을 가르키는 용어이다.

포스트아방가르드는 곧 포스트모더니즘인가?

라틴아메리카가 가진 이러한 문학사적 특수성은 모더니즘이 아방가르드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과정을 지칭하기 위해 미국보다 먼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를 쓰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사실은 미국의 포스트모더니즘 논자인 이합 핫산조차도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가 최초로 쓰여진 것은 이러한 시기의 스페인 및 라틴아메리카의 시작품들을 포스트모던 시(Poesla Posmoderna) 라고 명명한 페가리꼬 오니스(1930년대) 였다고 말한 데서 증명될 수 있다. (The Dismemberment of Orpheus : Toward a Postmodern Literature, 1982. P260)

보다 엄밀히 문학지정학적 조사를 수행해 가보면 세계문학사 속에서 19세기부터 20세기 초 사이에 어떤 문학 운동에 대해 「모더니즘」이라고 지칭했던 곳은 라틴아메리카와, 라틴아메리카의 영향을 짙게 받았던 스페인뿐이었다.

부분적으로 모더니즘이라는 용어가 애매모호한 톤을 가지고 쓰여지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여타 유럽국가에서 그 당시 자신들의 지역내에서 표출되었던 문학양식에 대해 주로 사용했던 용어들은 인상주의니, 상징주의니 빠르나스니 하는 것들이었다.

따라서 신학, 철학 등이 아닌 문학운동과만 관련지어 모더니즘이라는 용어를 쓴 곳은 스페인어 권역밖에 없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특수한 사조적 배경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가 세계적 지배력을 획득하기 이전까지는 라틴아메리카로 하여금 1950년대 이후의 자신들의 문학에 대해 포스트모더니즘이 아닌 포스트아방가르드를 보다 적절한 용어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끔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요즘 자주 쓰는 포스트모더니즘이 1950년대 이후 자본주의 체제하에 있는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목격되는 문학양식에 대한 일반적 용어로서 수용되고 있음을 볼 때 라틴아메리카의 경우에 있어서는 포스트 아방가르드=포스트모더니즘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특히 지역주의, 코스모폴리타니즘, 끄리오이즘, 유니셜리즘 등과 같이 다른 여러 가지 이름들을 차용하고 있던 소설장르와는 달리 시장르에서는 아방가르드(스페인어로는 방과르디아, vanguardia)라는 용어가 완전히 고착되어 있었기 때문에 라틴아메리카의 경우 이렇듯 용어에 얽힌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아방가르드 시기 고갈되기 시작하는 50년대 이후 라틴아메리카에서 생산된 시를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 것인가? 20세기 후반에 들어 마치 유행처럼 번졌던 접두사 「post」와 전 시대의 시양식이었던 아방가르드를 붙여 포스트 아방가르드(스페인어로는 뽀스방과르디아, posvanguardia)로 불러야 할 것인가? 그러기 위해서는 마치 미국의 포스트모더니즘이 모더니즘에 대해 그러하듯 1950년대 이후 라틴아메리카 시들이 전 시대의 아방가르드와 어떤 특수한 관계를 노정하고 있어야 하는데 실제로 그러한 것인지에 대한 검증적 물음과 응답이 선행되어야 한다. 아니면 전세계적으로 통용력을 획득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로서 그것들을 불러야 옳은 것인가? 물론 그렇게 부르기 위해서는 1950년대 이후 라틴아메리카 시들이 일반적으로 공개 검증된 포스트모더니즘 시 양식들과 명백한 공유부분을 소지하고 있어야 한다. 이 두 용어조차 적절하지 못하다면 몇몇 스페인·중남미 학자들에 의해 쓰여지고 있는 신바로크(neobarroco)가 보다 적합한 이름인가? 이 경우에 있어서도 앞의 예들과 마찬가지로 16-17세기의 바로크문학과 이 시 작품들 간에 어떤 전향적 관련성이 있음을 밝혀야 함은 당연한 이치이다.

중남미학자 알베르또 훌리안 뻬레스(Alberto Julian Perez)는 미국에서 발간되는 스페인, 중남미 학술지 「Hispania」1992년 3월호에서 1950년 이후 라틴아메리카 시의 경향을 다섯가지로 분류해 보였다. 그는 이 논문의 제목을 「라틴아메리카 포스트 아방가르드 시의 경향들에 관한 논급, Notas sobre las tendenoias de lapoesia post-vanguardiae en Hispanoamerica」이라고 적고 있다.

우선 이 논문은 「post」라는 어휘에 귀신들린 20세기말적 유행을 쫓아 「20세기 후반의 시」라는 시간적 관점이 아닌 「포스트아방가르드 시」라는 문학사조적 맥락에 의거해 분류를 하고 있기 때문에 몇가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첫째 「post」를 붙이고 있는 어떤 사조가 자신과 선행적으로 접합되어 있는 사조와 어떤 변증법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접두사를 쓴 것인가? 만일 그렇다면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 또는 낭만주의와 사실주의 사이에는 그러한 변증법적 관계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포스트네오클래시스즘, 또는 포스트낭만주의라고 부르지 않고 전혀 선행사조를 연상케 만들지 않는 낭만주의, 또는 사실주의로 불렀단 말인가?

둘째로 분류의 척도가 아방가르드에 있었기 때문에 소위 리얼리즘, 또는 이야기시 계열에 속하는 에르네스또 까르데날의 시를 아방가르드의 반동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 등은 합당한 접근 태도로 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발표된 논문 중 가장 체계적으로 20세기 후반 라틴아메리카 시의 경향들에 대해 분류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분류에 몇가지 경향들을 첨가해 1950년대 이후 라틴아메리카 시를 조망해 본 다음 용어에 얽힌 문제점들을 파헤쳐 보기로 한다.

1. 본격시 속으로의 대중성의 이입

라틴아메리카 아방가르드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유럽의 문학사조는 초현실주의였다. 미래주의, 표현주의, 다다의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프랑스판 아방가르드인 초현실주의가 보다 보편적이고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까닭에 라틴아메리카 아방가르드의 주된 흐름은 소위 자동기술법과 내면독백에 기초한 무의식의 탐구였다. 그러나 라틴아메리카에 있어서의 무의식이란 유럽에서는 그것이 개인의 무의식을 가르키고 있는 것과는 달리 집단무의식을 가르키고 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한 이질적 현상에 대한 대답은 오랜 시간에 걸쳐 아주 복합적인 계급분화 및 계급간의 헤게모니 싸움을 거쳐 부르조아의 패권획득으로 귀결된 서구의 경우와는 달리 여전히 변형된 봉건지주(라틴아메리카의 용어로 지방 토호제,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그것의 보다 조직화되고 근대적 옷을 입게 된 독재) 사회체제 속에 함몰되어 있던 라틴아메리카의 사회구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즉 농노, 일일 농촌 노동자, 소작인, 도시노동자, 소규모의 상업자본가, 중산층, 지식인 등은 상호간을 격리시키는 계급의 문제보다는 자신들에게 있어서의 고통의 적인 지방토호제(독재)의 타파에 심정적 의견일치를 보고 있었고,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대변하는 문학은 자연스럽게 「나」보다는 「우리」라는 복수적 태도를 견지하게 되었다.

이 공동체적 목소리는 그 어떤 서구의 신사조와 접합되어서도 원래의 집단적 성격을 잃지 않게 되어, 개인의 내면 세계에 내장되어 있는 깊은 심층을 탐구하는 초현실주의조차도 라틴아메리카에 들어와서는 대상을 개인이 아닌 집단의 내면세계로 지향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우이도브로(칠레, 1893―1948), 네루다(1904―1973)와 더불어 라틴아메리카 아방가르드를 대표하는 바예호(페루, 1892―1938)의 시이다.

그의 두 번째 시집 『뜨릴세, Trilce』에서부터 강렬히 표출되는 초현실주의적 장치들은 결코 한 개인의 내부세계를 조감하기 위해 도입되는 게 아니라 인류의 내적 질곡을 현시해 내기 위해 조치된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그러한 시들은 정치적 함유가 내포된 형이상학적 파노라마를 연출하게 되어 극도의 난해성(초현실주의 관점에서 보자면 해독을 거부하는)으로 치닫게 된다.

이에 반해 첫 번째 그룹으로 지명된 「본격시 속으로의 대중성의 이입」을 중추적 카테고리로 가지고 있는 이 계열의 시는 바로 이러한 아방가르드의 고도로 전문화된 문화시 속에 대중시의 여러 가지 운율 및 소재를 투사시킴으로써 아방가르드로부터 자신을 확연히 구분시킨다. 여기서 대중시라 함은 민요, 전통적 가락 및 노래, 시골의 가요 등을 가르친다.

이 계열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거명되는 사람은 쿠바의 니꼴라스 기옌(Nicolãs Guilln, 1902)이다. 그는 바예호, 우이도브로, 네루다 등과 함께 아방가르드를 대표하는 시인이지만 여기서 우리가 관심을 갖는 부문은 그의 후기작인 『흔히 날아다니고 있는 비둘기, La paloma de vuelo popular, 1957』, 『땡고, Tengo, 1964』등과 같은 작품이다.

「검은 시」(poesiã negra)라는 그의 시에 붙여진 상징적 호칭이 가르키듯 그의 시 전체를 조율하고 있는 중심적 틀은 아프리카 후예들이 많이 흩어져 살고 있는 카리브해의 전통음악 및 가사에 대한 관심과 그것의 스페인어 시에로의 이입에 있다. 그는 놀랄만한 운율의 배합과 의성어들의 스페인어 알파벳으로의 환치를 통해 작금까지 그 어떤 시인도 해내지 못한 라틴아메리카―아프리카 문화권에 속해 있는 카르브해의 정서를 시적으로 표상해 내는데 성공했다. 이렇듯 고도로 문화화된 스페인어 시구조 속에 원시적 운율과 가사를 내재화시켜 놓았기 때문에 그 어떤 언어로 이 시들을 번역한다해도, 그것들이 가진 원래의 시정서를 전혀 재생해 낼 수 없음은 매우 당위적인 것이다.

2. 아방가르드의 창조적 계승 및 부분적 개혁

아방가르드에 의해 젖 먹여지고, 키워진 이 그룹은 아방가르드의 일반적 카테고리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적극적으로 그것의 미래지향적 좌표의 설정을 위한 실험에 경도되어 있는 일군의 시인들을 가리킨다. 이 그룹의 대표적 시인은 노벨상 수상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옥파비오 빠스이다.

3. 아방가르드와의 완전한 난절, 그리고 리얼리즘 시학의 확립

라틴아메리카의 정치·사회 현실과 분리시켜 고려될 수 없는 이 시운동에는 일찍이 아방가르드에 속하는 바예호(그의 시집 『인간적 시들, Poemas Humanos). 네루다 (『총가, Canto general』)의 후기작에서부터 그 태풍의 몸짓이 발견된다. 이 그룹에는 우루과이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마리오 베네데띠(Mario Benedetti, 1920∼), 엘살바도르의 로께 달뜬 (Roque Dalton. 1935∼1975), 페루의 안또니오 시스네로스(Antonio Cisneros, 1942∼)등이 있는데 외면주의(exterlorismo)라는 이름과 더불어 전세계적으로 알려진 니카라과의 산다니스타 시인 에르네스또 까르가날(Ernesto Cardenal)이 그 대표적인 시인이다. 20세기 중반에 들어 라틴아메리카뿐만 아니라 전세계 문학에 최초로 등장하기 시작한 리얼리즘 시들이(리얼리즘 소설은 이미 19세기 중반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추적한 미학적 지평은 리얼리즘 소설이 그러했던 것처럼 현실의 반영이었다. 까르데날의 「마나구아 오후 6시 30분, Mangua 6:30 P.M.」이라는 시의 부분을 번역해 보기로 한다.

저녁이 되자 네온사인들은 감미롭고/수은등 들은 창백하면서도 아름답다…/그리고 황혼이 찾아든 마니구아의/하늘에 치솟은/라디오 송신탑의 붉은 별은/샛별만큼이나 어여쁘다.//(…)//그리고 나로 하여금 이 시대에 대한 증언을/해보라고 한다면 다음과 같다./야만적이고 원시적이었다고/그러나 시적이었다고

까르데날의 시학은 리얼리즘시 탄생과 관련지워 볼 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무리 리얼리스트들이 꿰맞추기 억지주장을 한다 할지라도(특히 우리나라의 몇몇 리얼리스트들) 리얼리즘 시의 태동은 1950년대 중반으로 봐야 한다. 까르데날은 「구어체」의 도입 및 현실의 반영이라는 새로운 시적 테제와 함께 줄기차게 시가 가진 미학적 성격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었다. 그는 이러한 논지의 배경 아래에서 소위 외면주의 시의 토대 확립에 있어 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 미학은 필수 불가결한 의무적 과정이라고 이해했다.

보다 면밀히 문학사의 궤적을 훑어보면 리얼리즘시는 프랑스의 빠르나스와 회화적 상징주의, 그리고 20세기 영미권의 이미지즘을 전제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상기해 볼 때 왜 가르데날이 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 미학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그러한 그의 시학관으로부터 리얼리즘 시가 태동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4. 아방가르드와 리얼리즘을 동시에 회의하는 언어의 유희

이 그룹에 일반적으로 붙여져 잇는 이름은 소위(Anti-poesia)이다. 라틴아메리카 반시운동 계열에 속하는 대표적인 시인은 칠레의 니까노르 빠라(Nicanor Parra, 1914∼)와 페루의 까롤로스 헤르만 베이(Carlos German Belli, 1927∼)이다.

라틴아메리카에 있어 반시라 하면 보통 니까노르 빠라의 이름을 떠올린다. 빠라로 대표하는 라틴아메리카 반시의 가장 특징적인 요소는 그때까지 끊임없이 계승, 고양되어 왔던 부르주아 미학에 대한 정면 대응으로서의 구어체의 도입, 그리고 현실에 대한 심리학적 접근이다. 반시가 똑같이 구어체를 도입하고 있는 앞의 리얼리즘 시와 구별되는 것은 바로 두 번째의 이 「현실에 대한 심리학적 접근」이라는 특수한 규정방식 때문이다.

까르데날의 경우 구어체의 도입은 그것이 문어체보다 현실의 반영에 있어 보다 더 진실하고, 또한 효과적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빠라의 경우에 있어 구어체는 전혀 다른 미학적 지평으로부터 창달된다. 현실에 대해 사회학적 채찍을 가격하고 있는 리얼리즘 시인들과 달리 빠라가 현실속에 투척하는 것은 심리학적 그물이다. 이 자연과학적 방법론의 투망에 걸려든 인간현실의 입자들은 모순, 범죄, 고통, 절망, 무의미, 허구, 좌절, 염세 등이다.

빠라가 구어체를 도입하게 된 동기는 그것만큼 바로 이러한 허무의 허상속에 구축되어 있는 인간세계에 대한 조소, 풍자, 냉소, 비판, 유머를 반추해 주기 위해 적절한 담론 양식이 없다고 보여졌기 때문이었다.

그는 우선 미학적 차원에서 이러한 허상 위에 끝없이 쌓아올려진 부르주아 시학의 중심적 언어체계인 문어체를 조롱하기 위해 구어체를 채택한다. 그리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그러한 미학 체계를 통해 구축된 그 헛된 탑 밑에 내장되어 있는 인간 본질의 환영들을 통렬하게 해부하고, 이제까지 문어체에 의해 미화되어 있던 허구적 의미지층을 잔인하게 해부시켜 버린다.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개인의 독백, Soliolquio delindividuo」은 그러한 빠라의 반부르주아 미학적―허무주의적인 시세계를 잘 드러내주고 있다.

나는 개인이지,/먼저 동굴속에서 살았었어/(거기에 몇 개의 그림을 그렸었지)/그런다음 나는 보다 적절한 주거지를 찾아 다녔지.//......(중략)//나는 강에 근접해 있는 한 계곡으로 내려갔지,/거기서 나는 내게 필요했던 것을 발견한거야,/나는 원시의 마음을 발견한 거야,/한 종족,/나는 개인이야,//......(중략)//나는 개인이야,/자물쇠 구멍을 통해서 보았어,/그래, 보았다니까, 내가 뭐라고 했어 보았다니까,/커튼 뒤에 숨어서,/나는 개인이야,/그래, 아마 차라리 그 계곡으로 돌아가는게 나을지도 몰라,/내가 집으로 사용했던 그 동굴로,/그리고 다시 벽화를 그리기 시작하는 거야/뒤에서부터 앞으로/세계를 거꾸로 그리기 위해,/그러나 아냐! 인생은 의미가 없어.

구어체보다는 장르의 혼합, 의미층의 단절 등과 같은 구조적인 차원에서 아방가르드를 해체하고 있는 베이의 경우에서도 빠라에게서 보여지는 인류에 대한 이러한 회의적 시각은 상존하고 있다. 그 한 예가 「아빠, 엄마, papã, mamã」라는 시이다.

아빠, 엄마/나, 뽀쵸, 그리고 마리오를/계속 인류의 대열 속에/참가시키기 위해/얼마나 발버둥을 치셨나요/뻬루의 그 열악한 월급 사정에도 불구하고 말이예요./“오라, 죽음이여,/이 인간의 혈통을 버리기 위해, 그리고 다시는 인간의 종족으로 되돌아오지 않기 위해,/그리고 다른 종족들 가운데서 나의 존재를 고르기 위해//바위의 형체,/느릅나무의 형체,/왕지렁이 새의 형체.”

5. 아방가르드의 무비판적 계승

이 그룹의 시인들은 아방가르드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지만 시간적으로 탈 아방가르드의 시대에 살고 있으므로 흔히들 네오 아방가르드(스페인어로는 네오 방과르디아, Neovanguardia)라고 불리운다. 이 그룹의 대표적인 시인은 아르헨티나 사울 유르끼에비치(Saul Yurkievich, 1931∼)이다. 그가 아방가르드 문학에 대해 어떤 시각을 투척하고 있는지는 「부싯돌과 굴레, Yesoa y yugo」라는 시를 보면 금세 알 수 있게 된다.

부싯돌과 굴레 비상경보

오한

몸을 움추리고 척추

너희 불똥들

척추의 이완들

맥박이 뛰고/얼큰히 취하고/

떨고/ 안간힘을 쓰고/

......(후략)

이 시는 완전한 문장이 아닌 음절, 단어, 구, 절과 같은 발화 방식의 전략을 통해 단어들의 연쇄적 고리에 의해 창출되는 의미전달을 거부하고 있는 초현실주의 기법이 최고조로 극대화되어 있는 여러 예들 중의 하나이다.

6. 간텍스트성(Intertextuality)

60년대 이후 라틴아메리카 시에 새롭게 등장한 가장 특징적인 양식들 중의 하나로 우리는 간텍스트적 구조의 차용을 들 수가 있다. 앞에서 네 번째 그룹으로 분류한 까를로스 헤르만 베이와 멕시코의 호세 에밀리오 빠체꼬(Jose Emilio Pacheco, 1939∼)에게 있어 간텍스트성은 그들 시의 근간을 결정하는 가장 중심적인 구조적 틀로서 기능하고 있다.

특히 후자인 빠체꼬의 경우, 간텍스트성은 1963년 발표한 『밤의 요소들, Loselementos de la noche』 이라는 첫시집에서부터 근작시집인 『나는 땅을 본다, Miro la tlerra』에 이르기까지 그의 시세계 전체를 조율하고 있는 지배적 패러다임으로 자리잡고 있다.

우선 대부분의 그의 시집들 말미에는 「Aproximaciones」이름과 함께 번역시들이 실려 있다. 우리말의 「번역」에 해당하는 「Traducoiones」대신 「근접」이라는 이 단어의 선택 뒤에 도사리고 있는 의도의 함축성은 매우 시사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실려있는 시들은 그리스, 로마시대, 동양의 고대시, 콜롬부스 대륙 발견 이전 라틴아메리카 대륙의 시, 타 언어권의 고대·중세·근대·현대시 등등 여러 지역적, 시간적 층위들을 두루 섭렵하고 있다. 이 「근접」에서는 문자 그대로의 직역이 있는가 하면 이른바 의역, 윤문이 가해져 있는 것들 등 다양한 형태가 목격된다.

더욱더 흥미로운 것은 이 「Aproximaciones」란 안에 거의 알려지지 않고 묻혀버린 스페인어로 쓰여진 무명시인의 시들도 실려 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빠체꼬에게 있어 번역이란 영원히 불가능한 그 어떤 것이며, 설사 가능하다 할지라도 그것은 마치 영원히 과녁에 닿을 수 없는 제논의 화살 같은 것이다.

그러나 빠체꼬 시의 간텍스트성을 보다 확연히 드러내주고 있는 부분은 「Aproximaciones」가 아닌 그의 창작시들이다. 그의 시에 접하게 되면 독자들은 그 속에 들어 있는 기존의 많은 문학, 역사, 철학 작품의 목소리들과 조우하게 된다.

대표적인 한 예가 「서인도에 대한 연대기, Crõnica de Indias」이다. 이 시의 행간들은 베르날 디아스 델 까스띠요(Bernal Diaz del Castillo, 1492∼1584)가 자신이 직접 참여했던 멕시코, 정복의 경험을 토대로 쓴 『멕시코 정복에 관한 진정한 역사』라는 책의 한 부분을 약간 윤문해 옮겨왔음을 금세 간파하도록 만든다.

...왜냐하면 우리들 모두가/다 매우 좋은 사람들은 아닌 것처럼/베르날 디아스 델 까스띠요/무시무시하고 어두운 대양을/오랫동안 항해한 후/우리들은 상상력을 가지고서도/묘사할 수 없는/그런 땅과 만났다.//......(후략)

미국 문학을 예로 들면서 간텍스트성, 또는 혼성모방이 소재의 고갈, 빈곤으로부터 도출되었다는 견해를 피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빠체꼬와 간텍스트성을 작품의 구조적 근간으로 채택하고 있는 다른 시인들에게 있어 간텍스트성은, 랑그(langue)와 빠롤(parole) 사이에 내재하고 있는 어떤 괴리에 대한 인식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구조주의는 문학의 보편적 법칙을 발견해 내기 위해 문학연구의 대상을 랑그에 고착시켰다. 그러나 후기 구조주의자들은 곧 음성언어가 됐건, 문자언어가 됐건 일단 그것이 독자를 가정하게 되면 랑그가 아닌 빠롤의 형태로 변해버리게 된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시간과 독자의 개별성은 텍스트의 의미 지층 결정에 있어 절대적 변수로 바뀌게 되고, 마치 양파 껍질처럼 동일한 텍스트 또는 약간 변형된 텍스트는 그 자체로서 새로운 텍스트로 재출현하게 된다. 20세기 후반에 들어 간텍스트적 구조를 가진 작품들의 빈번한 등장은 바로 그러한 후기구조주의의 미학인식의 보편화를 증거하는 현상이라 말할 수 잇는 것이다.

이외에 20세기 후반 라틴아메리카 시에 있어 또 다른 경향들로서 우리는 페미니즘, 까르데날의 구어체와 빠라의 구어체의 종합, 언어를 그 시적 대상으로 삼고 있는 언어시, 좌우내전이 치열했던 엘살바도르와 니카라과 등지에서 주로 목격되었던 증언시 등을 들 수가 있다.

세계 보편 용법과 다른 한국의 「포스트모더니즘」

비록 여러가지 다형적인 양식들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복합적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은 구미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에 있어서의 대중소비 문화의 발전과 그에 따른 전통적 리얼리티 개념의 파괴로부터 그 출발점을 가지고 있다.

소비문화의 발전은 상품가치를 효용성으로부터 교환성으로 전차시켜 놓았고, 자연히 교환가치에 주도되어 있던 그러한 사회에서는 잉여 현실들이 발생하게 되었다. 상품의 생산 및 소비자 교환가치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일차적 잉여현실로서 광고가 등장하고, 이어 마치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체인을 이루며 부소적 잉여현실들인 이미지들(사진, 영상, 인쇄), 기호들, 환상들이 세계를 부유하게 되었다.

이러한 잉여현실들 때문에 현실은 전통적으로 받아들여 왔던 감각적 인지의 경계를 잃게 되고, 현실과 이미지 사이, 현실과 기호 사이, 현실과 환상 사이의 한계선이 무너지게 되었다. 이러한 즉각적 혼란의 양식은 이미 고착되어 있던 보다 본질적인 그리스―크리스쳔 문화권의 이분법적 인식체계를 균열시키면서 역사와 신화 사이, 말과 글 사이, 존재와 부재 사이, 주체와 대상 사이의 경계 또한 무너뜨리게 되었다.

정신세계에서 보여지는 이러한 결정적 지각변동은 문화, 사회, 정치, 경제에서 그 구체적 실물을 드러내게 된다. 문학에 있어 그러한 전통적 가치평가의 붕괴는 장르의 해체, 현실의 반영이 아닌 현실의 인식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 서사구조의 침몰, 페미니즘의 활성화, 쓰기와 텍스트 사이의 경계혼란(메타 텍스트), 텍스트와 읽기 사이의 경계 혼란(열린 구조), 텍스트와 텍스트 사이의 경계 파괴(간텍스트성, 혼성모방), 중심의 해체에 따른 비인과론적 구조의 당위적 수용, 고양된 부르조아와 문학과 대중문학의 사이의 경계해체 등으로 표현되었다.

멕시코, 아르헨티나, 칠레, 코스타리카와 같은 개발도상국들을 제외하고 대부분 저계발 국가들로 구성된 라틴아메리카가 소비문화라는 보들리야르의 사회학적 명제를 적용할 수 있는 적합한 케이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만일 그렇지 않으면 라틴아메리카 시에 있어 그러한 소비문화의 문학적 표현으로 이해되는 간텍스트성, 열린구조, 본격문학 속으로의 대중문학의 이입, 페미니즘 등의 존재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만일 그것을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불러야 한다면 그외의 리얼리즘 시, 증언시 등의 존재는 어떤 각도에서 이해되어야 하는가?

거의 대부분의 학자들은 빈부 격차에 따라 소수 상층계급 속에서 진행된 소비문화의 부분적 존재와, 경제발전의 굼뜬 속도와의 현저히 다르게 극도로 고양되고 있는 라틴아메리카의 문화적 선진성에서 그 해답을 찾고 있고, 많은 사람들 또한 그것을 타당한 진단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이 말에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서구적 용어가 라틴아메리카를 규정하기에 아주 부적절하다는 단어법이 함축되어 있다는 점 또한 상기해야 한다.

20세기 후반 라틴아메리카 시는 포스트아방가르드 시이다. 이 용어는 라틴아메리카 문학사가 고유로 가지고 있는 규정방식에 적합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대륙에서 산출된 20세기 후반의 시 등이 가진 다양성을 끌어안을 수 있는 포괄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 문학의 경우는 다르다. 먼저 우리에게는 라틴아메리카의 아방가르드라는 용어처럼 20세기 중반에 생산된 거의 모든 시들을 통틀어 일컬을 수 있는 총칭적 용어가 없었다. 대신 참여문학·순수문학, 모더니즘·리얼리즘과 같은 두 개의 이름이 있었다.

후자가 보다 가깝게 20세기 후반의 시와 접촉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것에 「포스트」라는 접두사를 붙여 본다면 작금의 한국 현대시에는 포스트모더니즘 시와 포스트리얼리즘 시, 두가지 경향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용어의 지정학적 측면에서 후자인 이 한국적 「포스트모더니즘」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포스트모더니즘과는 전혀 다르다. 이 양자가 동일한 현상에 대한 동일한 이름이 되기 위해서는 양자 사이에 거의 절대적인 동질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검증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