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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셀도큐멘타」와 21C 藝術의 방향감각




육근병 / 화가

오늘날 세계 현대미술계는 공동(空動)의 상태, 즉 특별한 유파나 그룹차원에서 이야기 되어졌던 이전의 시대미술(미니얼 아트, 컨셉츄얼아트, 플럭서스(Fluxus), 포스트 모던 등에서 보여졌던 것과는 달리, 매우 무작위적으로 개성이 깃든 질퍽한 표현이 나오는 그야말로 자기주의 미술시대가 열리고 있다고나 할까.

이러한 현상은 지극히 바람직스럽고 독특한 개성표현이 돌출되고 있다는 점에선 긍정적인 평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우려가 된다는 부분적 평들은 예술의 한계성이 아니냐 라는 비관적인 이야기 또한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점들을 좀더 구체적으로 이해 하고자「세계 미술 올림픽」이라 불려지는 카셀 도큐멘타(Kassel Documenta) ’92에 출품된 작품들을 살펴보면서 이해 해보기로 하겠다.

미술인들의 유토피아 「카셀도큐멘타」의 전통

「카셀도큐멘타」는 독일 중부로의 인구 20만의 작은도시, 그리고 그림동화에 자주 등장되는 일곱 난장이와 백설공주의 무대이며 헤라클래스의 신전이 있는 곳이다. 바로 그곳에서 금세기 최고의 미술행사인「Documenta」를 이루어 내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독일은 연합군의 강력한 응징으로 패망한 뒤, 정치 경제적으로 매우 심한 타격으로 인한 사회불안과 전쟁을 발생시켰다라는 자패감 등이 당시 국민들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한다. 이러한 현상을 진정으로 우려한 문화 예술인들이「정신적인 안정감을 되찾아야 살아갈 수 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탄생시킨 것이 바로 도큐멘타이며 창시자는 아놀드 보데(Arnold Bode)라는 인물이다.

제1회 카셀 도큐멘타는 1955년에 드디어 개최되는데 그 자원은 정부의 정책, 즉「도큐멘타 세금」이라는 세금을 국민들로 하여금 지출케하여 시작이 된다. 놀라운 사실은 거두어들이는 세금이 100원이라면 그이상의 자금이 모아졌다라는 사실인 것이다. 당시의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전 독일 국민들의 속앓이와 이 도큐멘타의 취지가 일맥상통하였기에 가능하였을 것이다.

제1회 참여 작가들중에는 잘 알려진 피카소(Picasso), 몬드리안(Mondrian)이 있다. 제1회 도큐멘타가 개최되자 전세계 문화 예술인들은 그 기획능력과 운영체계 그리고 놀라운 포용력에 놀라움과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한다. 일순간에「도큐멘타」는 그 명성과 영향력을 얻게 되었고 각국의 예술인들은 꿈의 미술행사에 참여되어지기를 기대하는 그야말로 최고 미술행사로서 그 자리를 선취하고 있었다 한다.

도큐멘타의 특성은 순수예술 지상주의와 새로운 예술이념의 전폭적인 수용, 더불어 전위예술을 과감하게 유도함으로써 신미술을 지향하는 작가나 평론가들에겐 그야말로 유토피아 같은 것으로 인식되어진다. 물론 완벽한 작가지원은 기본인 것이다.

또한 다른 국가의 상파울로 비엔날레, 베니스 비엔날레, 파리 비엔날레와는 전혀 그 운영체제가 다른 것이 특징이다. 보통 2년마다 개최되는 것에 비해, 「도큐멘타」는 4년마다 개최함으로써 시간과 공간의 맥잡기와 터울을 충분히 남겨 작가나 평론가 그리고 저널리스트, 각국의 기획자(Director)들에게 새로운 메시지를 정리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이러한 까닭에 회를 거듭할수록 세계적인 거장들은 바로 이 도큐멘타에서 배출되기 시작한다.

1회 출신으로 피카소, 몬드리안 등이 있으며, 2회에는 미국의 데 꾸닝(De Kooning), 3회, POP ART의 거장인 로버트 라우센버그(Rovert Rauschenberg), 제4회, 로이 리크텐쉬타인 그리고 거대한 천으로 산이나 섬을 쌓거나 대형건물을 감싸면서 작업을 하는 미국의 크리스토(Cristo), 제5회, 파울 텍(Paul Thek), 제6회, 한국인 백남준(Nam Jun Pack), 7회, 플럭서스를 완성시킨 요셉보이스(Joseph Beuys:독일), 제8회 헤밀톤 핀레이(Hamilton Finley)등을 들 수 있겠다. 그 외에도 그간의 도큐멘타 작가들은 거의 100%가 세계 미술계에 큰 거목들로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으며 이들의 메시지는 앞으로 영향력으로 남겨지게 될 것이다.

올해로 9회를 맞은 「도큐멘타 9」는 전세계에선 선정된 187명의 작가가 참여하였고, 이들의 작품 역시 앞으로의 미술계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킬 것이다. 이번 도큐멘타는 관람객 수 65만 명에 이르고 파견 기자단만 1890명, 평론가 디렉터를 합하여 2만명에 가깝다는 현지 언론 보도가 있었다. 그리고 운영 자금 또한 방대하다.

도큐멘타 세금으로 시에서 제공한 82억원, 그리고 세계 각국의 기업에서 스폰서를 제공한 자금이 자그마치 212억원, 합하여 294억원이라는 운영자금으로 운영되어졌다.

이렇게 방대한 자금과 탁월한 기획능력으로 예술세계를 주도해 가는 독일인들의 의지와 능력에 그저 멍할 정도였다. 분명 그들의 그만큼 투자 뒤에는 그 만큼의 손익 계산이 있을 것이나 인정할 것은 그들이 예술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중요성에 체질적으로 적용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이러한 현실현상을 지켜보는 많은 작가는 물론, 평론가, 저널리스트, 디렉터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예술은 세상을 변화 시킨다」라는 말이다. 필자 역시 이번 도큐멘타에 한국에서는 처음 참여하면서 그들과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러면, 이번 도큐멘타에 내놓여진 작품들의 표현방식과 특성을 살펴본다. 전반적으로 「어디까지가 예술이고 어디까지가 예술이 아니냐」라는 말부터 꺼내야 할 판이다. 우선 난해한 표현들과 혼잡할, 과연 예술의 선을 명확하게 그어야 되느냐 마느냐에 대한 갈등과 모순의 연속성이었다는 현재의 평으로 일단 감을 잡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 작가를 예로 들어보자. 「부루스 나우만」(Bruce nawman)은 비디오 매체를 이용한 작품으로써 수상기에서는 대머리를한 한 남자가 계속 돌면서 부르짓고 있다. 「나를 살려줘」, 「나를 지켜줘」, 「나를 먹어줘」, 「나를 사랑해줘」라고 말이다. 그리고 호모섹스를 하는 장면을 리얼하게 조각작품으로 내놓은 「켈리」라는 작가, 「조나단 브롭스커」의 하늘로 가는 사람은 보는 사람들에게 숙연하게 한다.

네온사인을 이용, 큰 빌딩이나 거대한 지표면위에 아라비아 숫자를 늘어놓은 이탈리아 작가 「마리오 마리즈」(Mario Marz) 그리고 독일의 작가인 「모 에도가」(Mo edoga)는 전시가 시작되기 100일 전부터 전시 기간인 100일 기간을 합한 200일간 하루도 쉬지 않고 주위의 버려진 나무나 돌들을 이용해서 끝날 때까지 하늘로 하늘로 집을 짓는 작가의 작품, 그외의 마치 인공위성같이 만들어진 기계가 있는데 사람이 접근하면 그 작품은 마치 숨을 쉬듯 길게 팽창되었다가 큰 신음소리를 내며 폭 커지듯 주저 않는 작품, 기타 등등이 Kassel시 전체에 깔려져 있다. 9개의 대형 미술관(국립현대미술관 정도 크기)과 50만 평이나 되는 야외 전시장에 널려져 있는 것이다.

예술(ART)의 발전은 그 한계성 때문이다.

여기서 필자가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도큐멘타의 규모나 예산이 아닌 현장에서 나타난 작업들에 대해서 느껴졌던 것인데, 「아트는 그 한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발전이 된다」라는 생각이다. 작가는 그 한계성을 직시할 수 있을 때 그것을 뛰어 넘고자 몸부림치고 괴로워한다. 그래서 또 다른 경험으로 사냥을 떠난다고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대상이 필요할 것이며 그 대상을 사람으로 대적해야 한다고 말이다. 무슨 말인가, 사람이 가지는 속성을 다시금 살펴야겠다. 사람이 가지는 모든 것들 중 Sex 만큼, 훌륭한 가치 기회는 없다고 보면서, 또한 그 Sex에 의해서 사람은 애(愛)와 동(動) 그리고 행(行)함을 건질 수 있다라고 말이다.

이번 도큐멘타에 출품된 작업들 역시 위와 같은 개별적 성향으로 풀이한 진정한 의미로의 탐구적인 표현작들이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또한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었다. 「인간으로의 회귀」라고나 할까. 적나라한 성행위 묘사라든가 세속을 떠나고 싶어 떠나 버리는 작품들, 「아트는 똥」이다 라고 소리치는 작품, 대리만족의 한계를 떨쳐 버리려는 몸부림들이 사실 그대로를 표현하는데 우린들 어찌 하겠는가.

더욱이 거침없이 최첨단의 기계매체를 이용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정말 철저하게 실용시킨 그러면서도 휴머니즘을 찾고자 한 작품들을 잔잔히 지켜보았을 때 그 많은 관객들은 무엇을 얻으려 하였을까! 「조나단 브롭스키」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거대한 철봉을(50m) 대각선으로 세우고 그 끝 부분에 하늘로 걸어가는 사람을 설치한 작업을 보고 우리는 과연 무엇을 그곳으로부터 어떤 해답을 기대해야 하는가. 알면서도 모르는 것처럼 차라리 모르는 척 해야 하는 것인가 말이다.

위에서 설파해 본 작업들을 살펴보면서 그 윤곽만큼은 잡아 보아야 될 일이다. 오늘날의 많은 작가들은 바로 이러한 문제성과 직면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징표를 의식하고 있다고 본다. 그리하여 하게 되는 표정들이 바로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인가를 항상 유념해 보자. 이러한 현실현상이 우리 예술인들에겐 지극히 근본적인 소위 아트 컨셉트일 것이긴 하다.

분명한 것은 이번 도큐멘타에서는 바로 이점을 명확하고 분명하게 개별의 노래로서 제시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이는 결코 어떤 집단적인 성향의 흐름내지는 전체성의 메시지로서가 아닌 지극히 자신의 색과 명암이 분명한 언어로 제시되고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하면, 작가가 작가의 내성과 심성을 솔직 담백하게 토해내고 표출되어야 그것이 곧 「진실」이라는 표현어구에 걸맞다는 것이다.

예술은 대답보다는 그 질문만이 존재할 뿐

앞으로의 예술감각이 어떤 궤도로 진행될 것인가에 대해선 필자 역시 가늠할 수 없으며, 가늠하기도 곤란할 것이다. 다만 현재 우리가 상대해야 할 대상이 무엇이고 누군인가를 구체적으로 집고 넘어갈 필요는 있다고 생각된다.

매우 애매하고 추상적일 수도 있는 이 말이 어떤 오해도 야기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트가 감(感)과 지(知)로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이해도 가능할 일이다.

필자는 이번 Documenta를 참여하면서 또다시 감과 지의 중요함을 느꼈다고하면 다소 건방질 수도 있겠으나 사실임을 말할 수도 있다. 21C의 미술이 과연 어떠한 모양새로 마무리될까를 예감해보면 두려움 마저 든다.

아무튼 우리의 업보가 예술인 것처럼 「아트(ART)는 오로지 그 대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 질문만이 존재할 뿐이다」라고 말하는 디렉터 얀 휴트(Jan Hoet)의 말이 나에게 있어선 큰 공감대로 다가왔다고 이 글을 빌어 고백도 해 보면서 우리의 21C 예술방향 감각을 바로 하기 위하여 우리는 찾아 나서야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