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리 가락의 발상지를 찾아서
정태모 / 시인, 벗지문학동인회장
평창과 정선은 지리적으로 서로 이웃해 있는 인접 고을이어서 예로부터 그 문화권이 서로 비슷하다.
정선 아라리의 발상지를 평창군 미탄으로 보는 경향도 바로 이런 문화권이 비슷하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해 보는 것이 타당할 일일게다.
나는 여기서 평창과 정선에 인접해 있는 청옥산과 그 지맥을 중심으로 엮어져 내려오는 정선 아라리의 가사 몇 편을 발췌 그 발상지를 고찰해 보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
곤드레 만드레 우거진 골로
우리네 삼동네 보나물 가세
정선 아라리는 평창군 미탄면 평안리 한치동네에 위치해 있는 청옥산에서 산나물을 뜯던 이곳 한치마을의 아낙네들이 불러온 노래였다는데, 이 노래의 가락이 성마령을 넘어서 정선에 있는 선비들에게 옮겨져서 정선지방의 주민들간에 불리워 왔다고 한다. 그후 이 아라리 가락은 정선에 살던 선비와 관원들에 의하여 서울로 구전되어서 정선아리랑으로 정착이 됐다고 이곳 주민들은 말하고 있다.
미창 아래쪽 서천 명월아
술 한 잔 부어라
오복수 들가방에
돈 쏟아진다.
정선 아라리 발상지 청옥산으로 추측
민요란 본디 창제자와 발상연대, 그리고 발상지 등이 미상인 게 특징이지만 아무래도 정선 아라리의 발상지는 청옥산이 중심지가 아닌가고 추측이 된다. 그것은 아라리 가사 중에서 청옥산이 중심이 된 가사가 많기 때문이며, 이 민요곡은 본디 아라리였는데 정선 아리랑이라고 그 곡명이 붙여진 것은 이 가락이 전국적인 면으로 정립이 된 다음의 이야기고 보면 이 민요 가락은 그 발상지가 강원 남부 지역이지만 이 가락은 한민족의 정한을 담뿍 담고 있는 애조띤 가락임에 틀림이 없다.
한 치 뒷산에 곤드레 딱죽이
님의 맛만 같으면
고것만 뜯어 먹어도
봄 살아 나지
한 치 뒷산이 바로 청옥산인데 이 청옥산에는 곤드레라는 산나물이 많이 자생한다. 이 곤드레는 딱죽이, 참나물, 누리대등속과 함께 산나물치고는 고급에 속하는 귀중한 푸성귀이다.
이 야생의 산나물은 예로부터 유명하며, 이 지역 주민들의 식량의 일부로 보릿고개를 넘기는데 큰 구실을 해왔지만 지금은 이 귀중한 산나물이 서울 장사꾼의 농락에 남아나지 않고 뜯어지기가 바쁘게 서울로 팔려가기에 정작 생산지 주민들은 맛을 보기도 힘이 들 지경에 이르렀다.
정선 읍내 일백 오십호
모두 잠 드려놓고
꽁지 갈보 옆에 끼고서
성마령 넘자.
평창과 정선 사이에는 성마령이라는 높은 고개가 있는데 이 고개가 있는 곳이 바로 한 치를 못미쳐 가는 평안리라는 마을 뒤쪽으로 난 고개이다. 이 고개를 넘으면 정선 동면이 나서는데 이 길은 예로부터 정선서 평창을 통과해서 서울로 가는 중요한 도로이다.
이 도로는 새로 도임하는 정선 원님이 서울에서 내려와서 평창을 거쳐 이 성마령을 넘을 때 산 험하고 물 거칠어 정선 벽지에 귀양가는 기분이어서 언짢아 울고, 정선에서 삼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갈 때 이 고개를 넘으며 인심 좋고 물색 고운 정선에 정이 들어 퇴임할 때 또 한 번 언짢아 울고 넘었다는 고개이다.
당신이 날 마다고 물치고 담치고
열무김치 소금치고 오이김치 초치고
칼로 물치듯이 뚝 떠나가더니
평창 팔십리 다 못가서
왜 또 돌아왔오.
정선은 물색 곱기로 유명한 고장이다. 평창에 사는 어는 놈팽이가 물색에 반해서 남 몰래 정을 통하고 다니다가 어느날 문득 본 집 가족이 생각나서 이를 버리고 둑 떠나 왔지만 아무래도 아리따운 정선 여인이 마음에 걸려 차마 성마령을 넘지 못하고 되돌아갔다는 전설같은 이야기이다.
아, 이 말아!
성마령에 해 떨아진다.
아흔 아홉구비 해 떨어지기 전에
어서 빨리 넘어가자.
옛날에는 정선에 논이 없어 정선 아가씨들이 잡곡밥만 먹었는데 군량미 창고가 있는 미창(평창군 미탄)에는 쌀이 많다. 정선 아가씨들이 평창쪽으로 시집오기를 원하든 차 서로 혼행이 잦아 신랑쪽이 조망말을 타고 이 성마령을 넘으려 부르는 노래라고 전한다.
나이 어린 신랑 맞은 노처녀의 애환담아
정선 아가씨들이 중매에 의하여 어쩌다 평창쪽으로 시집에 오게 되었는데 열아홉 노처녀가 맞는 신랑은 겨우 나이 열두살―. 시댁이 부잣집이므로 의식은 그립지 않으나 늘 불만인 것은 긴긴 겨울밤의 잠자리였다. 그리하여 새댁이 시댁 식구 몰래 흥얼거리는 애달픈 가락이 있으니 그 애조띤 가락은 다음과 같다.
노랑둥 대가리
뒤 범벅 상투
언제나 길러 가지고
내 낭군 삼나?
그러다가 혹시 훗서방이라도 두고 보면 시댁 식구들이 다 잠든 다음에 찾아온 훗서방은 새댁이 깊은 잠에 빠진 다음 일거라. 그리하여 아무리 약속된 신호를 보내도 잠에 곯아떨어진 신부의 반응은 없었으리라. 할 수 없이 훗서방은 담장을 넘어 후원별당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담 넘어 갈 적엔 큰 맘 먹고
문고리 잡고서 발발 떠네.
이처럼 어렵게 들어온 서방을 맞는 신부는 설친 잠이 아쉬워서 어쩔줄을 몰라하며 다음과 같이 야유를 한다.
임자가 오시려거든
초저녁에 오시지
선잠을 깨고나니
아리고 골이 아파라.
사랑하는 연인을 찾아 성마령을 넘노라면 호젓한 마음은 그 누구의 가슴에도 느껴지는 일일 것이다.
산중의 까마귀 까악 까악
그이의 병환이 중한 줄 아네.
요즈음 성치않다는 소식을 듣고 사랑하는 연인을 찾아 성마령을 넘노라니 애닯게도 까마귀들이 나뭇가지 위에서 기분 나쁘게 울고 있다. 가뜩이나 근심에 쌓여 있는데 까마귀 우는 소리를 들으니 마음은 더욱 조급해지고 안타까와 진다.
애고야 지고야 통곡을 마라
죽었던 그이가 또 살아올까?
그러다가 연인을 찾아 그 앞에 서는 순간 눈앞에 벌어진 가슴 아픈 광경이 펼쳐졌을 때 가슴을 에이는 슬픔은 너무나 엄청난 충격이기에 울음조차 나오지 않으리라.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너주게
싸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
이처럼 얻은 동백 열매(생강나무 열매)를 따다가 기름을 짜서 머리에 곱게 발라 몸단장을 하고 총각을 기다리는 마음은 더 없이 간절했지만 대개의 총각들은 다음과 같이 이를 비꼬았단다.
아주까리 동백아 열지마라
산골의 큰애기 몸꼴 낸다.
그렇지만 어쩌다가 미창(평창)쪽 청년이 정선아가씨와 정을 통해두고 다니다가 어떤 경우 간다는 날 못가면 아가씨는 기다리다 지쳐서 부르는 노래가 있다.
비행기재 말랑이 자물쇠 형국인지
한 번만 넘어가시면 넘어올 줄 몰라요.
그런 중에 절개 굳기로 유명한 정선 두메 아가씨들은 그의 절개를 다음과 같이 노래 불렀으니
청옥산이 무너져서
평지 되기는 쉬워도
임께 바치는 깊은 정이야 변할 수가 있나?
정선과 평창은 산이 높고 험하여 이 고장 출신들은 비교적 우직한 면이 있으나 이 고장 연인인 경우는 그 성격이 나긋나긋하여 보드라운 기질들이다. 그러므로 그 음성적인 면 또한 다정스러우며, 독특한 악센트의 언어를 가지고 있기에 정선 아라리쪼는 한국인의 깊은 정한이 서린 가락으로 다분히 애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