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 축제의 가능성
신찬균 / 문화재위원·국민일보 이사 논설위원
인간의 일상적인 삶은 한마디로 일과 놀이의 연속이다. 노동을 하는 때가 있는가 하면, 휴식을 취하는 때가 있다. 노동의 주기에 맞추어, 하루 중에는 밤이 있으며, 일주일 가운데에는 안식일이 있고, 일년을 단위로 하여 각종 명절이 있다. 서로 상반된 개념인 듯한 일과 놀이가 인간의 오랜 역사 속에서 서로 분리되어 존재해 오지 않았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일은 놀이에 의해서 그 능률을 향상시켜 왔으며, 또한 놀이는 일에 의해서 그 내용의 다양성을 이루어 왔다. 한마디로, 일과 놀이는 상호보완적이면서도, 상호 규제적인 관계를 이루면서 발전해 왔다는 것인데, 이러한 과정 속에서 인류는 일의 문화와 놀이문화를 발전시키고 축적시켜 온 것이다. 인류가 이뤄온 놀이문화의 전형적인 형태는 축제를 통해서 가장 잘 나타난다. 축제는 바로 생산과 노동을 함께 해 온 사람들이 벌이는 제사이자 잔치이며 놀이이다. 다시 말하면, 축제는 생활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구성원들이 노동에서 벗어나, 풍농과 풍어를 기원하며 벌이는 제의이며, 춤과 노래로 신명나게 즐기는 놀이의 마당이다.
축제와 함께 살아온 전통 일제 식민지 거치며 단절
우리 민족이 행해 온 축제의 역사는 우리 민족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3세기경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여러 부족의 생활상태를 기록한 『삼국지』위지동이전과 기타 중국사적의 단편적인 기록에 의하면, 어느 부족에서나 1년에 한두 차례 국중대회(國中大會)를 열고 제천(祭天)과 아울러 부족 의식을 연마하고 가무백희(歌舞百戱)를 연행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부여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同盟), 예의 무천(舞天), 마안의 춘·추제(春·秋祭) 등이 그 대표적인 원시적 축제의 형태에 속하는데, 아직 의례에서 분화되지 않은 단계였다.
이러한 제천의례의 전통은 신라의 팔관회와 같은 공의(公儀)의 형태와 민간의 마을 굿(도당굿, 별신굿, 단오굿, 동제 등) 형태로 전승되어 오면서 우리 나라 축제의 맥을 이어왔는데, 근세에 이르러서는 마을 굿에서 의례의 일부로서 놀이되던 놀이가 세시의 명절놀이로서 놀이되는 분화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의 전통사회에서는 그만큼 다양한 형태의 향토축제가 마을 단위로 행해져 왔던 것이다. 강릉단오제, 은산별신제 등과 같은 마을 굿을 비롯하여, 대화리 호미걸이, 밀양 꼼백이 잠놀이, 인지리 대동굿 등과 같은 두레굿, 그리고 전주 대사습놀이, 수영들 놀음, 해주 단오놀음과 같은 대동놀음 등 다양한 형태의 향토축제들이 연희되어 왔다. 실로 우리 민족은 축제와 함께 삶을 영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러나, 일제 식민지 시기를 거쳐오는 과정에서 우리의 마을 축제들은 대부분 그 전성이 단절되기에 이른다. 일제의 문화말살 정책에 따라, 마을 단위로 활발하게 전개되어 오던 부락제를 비롯한 각종 마을 축제들이 우리의 향촌 사회에서 하나씩 그 자취를 감추고 만 것이다. 더구나 해방 이후 근대화 과정 속에서 우리의 문화유산에 대한 무관심으로 마을 축제는 그 터전을 상실하여 거의 소멸되어 갈 지경에 이른다.
그런데, 오늘날 다시금 향토축제를 개최하는 지역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한 조사 보고에 의하면, 현재 전국 대부분의 도·시·군·구 단위로「00문화제」,「00예술제」,「00(축)제」라는 명칭으로 행해지고 있는 향토 축제의 수는 약 300여 개에 이른다고 한다. 물론 이들의 대부분은 관주도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이 어디에서 주관되고 있든지 간에 상당한 기간 동안 단절되어 온 이러한 향토축제가 오늘날 지역사회에서 자연 주민들의 참여 속에 지속적으로 개최되어 오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실은 근본적으로 향토축제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인식이 새로워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변화가 생겨나는 것일까 ? 그것은 한마디로 놀이공동체, 더 나아가서는 공동체 그 자체를 향한 현대인의 향수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오늘날 전세계는, 나라마다 그 속도에 있어서 차이를 보이기는 하지만, 산업사회를 향해 가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자본주의 사회이든지 사회주의 사회이든지 이 점에서는 마찬가지이다. 우리 나라도 1960년대 이후 산업화 과정을 밟아 가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산업화. 더 나아가서 근대화는 바로 전통사회의 와해를 의미했다. 전통적인 사고방식, 생활방식은 버려져야 될 것으로 인식되었으며, 그와 함께 공통체적 삶도 도시화의 물결 속에서 해체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마을 공동체가 해체되면서 그러한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여 연희되던 놀이문화도 소멸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는 놀이문화의 부재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청소년들은 놀 만한 것이 없어서 오락실에 모여 있고 노인들은 공원을 방황한다. 도시에는 칸막이된 노래방이 우후죽순처럼 번져 있다. 더구나, 명절을 맞아 고향에 집안식구가 모여서도 마땅히 놀만한 것이 없어, 텔레비전 앞에 모여 있거나, 화투놀이를 하기 일쑤이다. 오늘날 우리 나라 놀이문화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셈이다. 이러한 왜곡된 놀이문화는 근본적으로 놀이공동체의 부재에 기인한다. 다시 말하면 함께 어울려서 신명나게 놀아 볼 놀이공동체가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대중 사회화된 현대사회에서 원자화되고 분절화된 개인은 심각한 사회적 고립감을 느낀다. 이른바 인간 소외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개인이 추구하는 것은 결사체가 아닌 공동체이다. 공식집단 내에 자꾸 비공식집단이 생겨나는 것, 예컨대 이익사회의 대표적 형태인 개인회사에서 동창회나 향우회 등과 같이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공동체적 조직이 생겨나는 것은 근본적으로 그러한 공동체적 삶 속에서 비로소 진정한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 향토축제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것은 바로 신명나는 놀이공동체에 대한 인간의 희구, 더 근본적으로는 공동체적 삶에 대한 인간의 희구에 기인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향토 축제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며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하겠다.
축제의 주체는 주민들 향토 축제의 근본적인 문제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향토축제가 바람직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느냐 하는데 있다. 이와 관련하여 먼저 검토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은, 과연 축제에 참여하는 지역주민들이 그 축제의 주체가 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야 말로 근본적인 문제이다. 왜냐하면, 축제는 그 축제에 참여하는 구성원들이 주체가 될 때 비로소 그 축제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그 구성원들이 주체가 되어서 자발적으로 놀이되는 축제에서 비로소 신명나는 놀이판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며, 구성원들간의 일체감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각 지역의 향토축제에서는 일반적으로 그 지역주민들이 주체가 되고 있다고 말하기 곤란하다. 지역의 향토축제는 사실상 관의 주도에 의해서 치러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향토축제가 재정적으로 행정기관의 보조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다소 불가피한 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 결과는 사뭇 심각하다. 그것은 이 축제를 관이 주도함에 따라 자연히 의전행사 등의 요식 행사가 늘어나고, 그로 인하여 즐겁고 흥에 겨운 행사라기 보다는 형식적인, 행사를 위한 행사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백제문화제의 경우, 기관장과 그 일행은 높은 단상을 차지하고 지역 주민들은 단하에 도열해 있으면서, 축제의 행사와 관계없이 마련된 의식절차가 주행사처럼 거행되기 일쑤이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폐막식 및 각 행사의 의식절차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런가 하면, 최근의 화홍문화제에서는 타종식을 하는데 시민들과는 전혀 관계없이 성위에서 몇몇 유지들만이 행사를 진행시키고 있어, 아예 시민들은 그 광경을 볼 수조차 없게 되어 있다. 즉, 그 본질적인 것은 외면되고, 직업적인 것이 오히려 중시되는 전도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러한 현상이 비단 이 두 향토축제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데 그 심각성이 있다.
향토축제가 관의 주도에 의해서 진행되는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은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축제란 기본적으로 흥과 신명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 피동적으로 참여하는 지역주민들에게서 그러한 축제의 신명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 분명한 만큼, 결국 흥과 신명이 없는 형식적인 축제만을 만들어 내는 셈이 된다. 따라서 흥과 신명이 없는 축제에 지역주민들의 참여는 갈수록 저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악순환의 연속이다.
향토축제에 지역주민들의 참여가 저조함에 따라, 축제는 관에서 동원한 학생들에 의해서 치러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일부는 학생 위주의 문화제라고 비판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 공주 백제 문화제의 경우 「백제 가장행렬」에는 수천 명의 학생이 동원된다. 한 조사 보고에 의하면, 공주의 백제문화제에 참가한 학생들의 수는 무려 12,672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따라서 학생 위주의 행사라는 지적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공주 시내의 각급 학교에서는 백제문화제 때만 되면, 이 문제로 인해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학생들이 참여함으로써 교육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향토축제에 동참함으로써 향토애를 진작시키는 한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으나, 문제의 핵심은 학생들의 참여 여부보다 일반 지역주민들이 참여하지 않는 자리를 학생들이 대신하여 메우고 있다는데 있다. 따라서 보다 근본적으로 지역주민들이 이 향토축제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는데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향토 축제의 주체가 바로 지역 주민들이라는 사실이 지역주민들에 의해서 확인되고, 실제적으로 민간 주도의 원칙 아래 이 향토축제가 기획되고 진행되어야 할 것이며, 관에서는 민간 주도의 축제가 진행될 수 있도록 적절히 지원해 나가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 향토축제가 존재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 향토 축제의 특성이 충분히 부각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그 향토축제가 갖는 개성이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행해지고 있는 향토축제들은, 그 지역적 특성이 드러나지 않고 그 구성이 천편일률적이라는 점에서 문제점이 제기된다. 즉, 이들 축제의 행사내용은 제등행렬, 불꽃놀이 등 전야제와 가장 행렬, 기념식, 문화예술행사, 민속놀이, 체육행사 등으로 획일화되어 있어 지역환경과 전통의 맥을 살린, 특성 있는 축제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러한 행사들이 상호 연계성이 없이 단편적으로 모여 있는 경우가 많다. 향토축제가 그 지역적 특성을 충분히 살리고 있지 못한 것은 향토 축제의 역사가 일천한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향토축제는 강릉단오제, 은산별신제와 같이 전통 축제를 그대로 이어오고 있는 것도 있지만, 그러한 것은 몇 안되고, 대부분의 향토축제는 60년대와 70년대를 거쳐 새로이 만들어져 온 것들이다. 즉 그 역사가 짧다보니 다른 지방의 향토축제를 모방하여 치러지기 쉬웠을 것이다.
민간 주도에 지역성 살린 개성 있는 향토축제 기대
그러나 이러한 향토축제가 앞으로 지역의 향토축제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 지역적 특성에 맞는 특징적 행사를 발굴해 나가야 할 것이다. 백제문화제의 경우, 백제 병영을 설치하여 계백과 성충 등의 충절을 기리는 행사를 검토해 본다거나, 웅진으로의 천도사실을 고려하여 백마강 뗏목놀이를 검토해 봄직하며, 죽서문화제의 경우, 수로부인 설화의 수로부인 행차 및 철쭉 관련 행사를 축제에 도입하여 죽서문화제의 주제로 부각시킬 필요가 있으며, 삼국 유사의 기록과 고증을 바탕으로 하여 수로부인 행차를 재현해 봄직하다. 또한, 화홍문화제의 경우, 능 참배 시, 제관(시장)의 뒤를 이어 선녀나 인파가 따르고 아악을 연주하는 가운데 참배하는 방안을 고려해 봄직하다.
향토축제에서 지역적 특성에 맞는 특징적 행사들을 발굴해 나가는 것과 함께, 한편으로는 기존의 프로그램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백제문화제의 경우, 오늘날 무려 100여 개의 행사가 4일간의 축제기간에 치러지고 있는데, 이러한 행사들 간에 상호연계성을 발견하기 어렵다. 이러한 현상은 다른 대부분의 향토축제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이렇듯 상호 연계성이 없는 행사들의 나열로 축제의 특징적 행사가 희석될 소지가 있다. 따라서 향토 축제의 지역적 특성과 관련이 없는 행사들은 관련기관이나 단체에 이관하고, 지역적 특성에 맞는 특징적 행사를 중심으로 특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세 번째로, 향토축제가 바람직한 형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축제가 벌어지는 시간과 장소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축제는 새해의 시작, 전후의 변화, 생명의 탄생과 죽음 등과 관련하에 이뤄진다. 즉 축제는 시간성을 지닌다. 이러한 축제의 시간은 일상적인 시간이 아닌 신성한 시간이며, 선택된 시간이다. 따라서 축제마다 그 축제가 벌어지는 나름대로의 시기가 있다. 그런가 하면, 축제는 물리적이고 지리적인 공간이 아닌 신성하고 초월적인 공간에서 이뤄진다. 특정한 산이나 바위 혹은 나무 밑에서 축제가 벌어지는 것은 그러한 특정 장소에 신성한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향토축제는 축제의 지역적 특성에 비추어, 의미 있는 장소와 시기에 벌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향토축제는 가을철에 집중되어 있으며, 그 축제가 벌어지는 장소도 그 축제와 관련하여 의미 있는 장소에서 벌어지기도 하지만, 대개는 학교운동장이나 공설운동장에서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듯 일괄적으로 편리한 시간에 따라, 편리한 장소에서 무의미하게 축제가 치러지기보다는 그 축제의 본질적 행사와 관련하여 의미 있는 시간과 장소로 조정하여 치러질 필요가 있다. 예컨대, 처용문화제의 경우, 시민의 날에 개최되기보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라 춘삼월에 개최되는 것이 의미 있을 것이며, 그 개최 장소도 처용설화의 역사적 장소인 개운포와 처용암에서 개최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또한 죽서문화제의 경우, 기줄다리기와 삼원제를 6월에 개최하여 시기적으로 적당하지 않으며, 이 향토 축제의 장소로써 공설운동장이 이용되고 있는데 설화의 역사적인 장소인 해암정이나 해신당 등을 이 축제와 연계시켜 이용해 봄직하다.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상징적 의미 부여하라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상징적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축제는 보다 더 축제다워 질 수 있다. 축제란 기본적으로 일상성으로부터 이탈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상성에서 벗어난 신성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규범화된 일상행위로부터의 해방이 이뤄지는 것이며, 난장을 트는 신바람 나는 분위기를 연출해 낼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오늘날의 향토축제가 현대사회 속에서 축제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그 놀이방식이 현대적 감각에 맞게 재구성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하면, 현대 산업사회의 환경에 부응하는 새로운 축제로 발전해 가야 한다는 것이다. 축제의 본질은 흥과 신명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진대, 비록 그것이 전통적인 것이라고 할지라도 축제로서의 의미를 잃기 마련이다. 오늘날 향토 축제의 주체는 현대 산업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이라는 사실이 충분히 강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통적인 놀이방식 자체를 버려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향토축제일 수 없을 것이다. 그보다는 전통 문화적 특성을 살리면서 동시에 현대생활과 감각에 맞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전통적인 노래와 춤이 전통적인 가락과 율동에 바탕을 두되, 그것이 현대인의 감각에 맞도록 조정되어야 할 것이라는 것이다.
향토축제를 현대 산업사회의 환경에 부응시켜 나가는 문제와 관련하여 향토축제를 관광자원화 하는 방안이 구체적으로 논의될 수 있다. 이러한 논의 일면에서는 전통적 향토축제를 변질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으나, 관광자원화 한다는 것이 반드시 전통적 향토 축제의 변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향토축제를 관광자원화하자는 것이 바로 그 향토 축제의 지역적 특성을 변형시키자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지역의 향토 축제의 지역적 특성을 보존하고 있는 것 자체가 더욱 훌륭한 관광자원이 될 것이다. 여기에서 향토축제를 관광자원화 하는 것의 예로써 금산인삼제의 경우, 인삼문화 전반을 부각시킬 수 있는 행사를 마련한다거나, 인삼을 상징하는 특징적 민속행사를 개발하는 방안 등이 고려될 만하다. 저산문화제의 경우, 유명 디자이너를 초청하여 모시를 소재로 한 패션쇼를 개최한다거나, 모시를 소재로 한 전봉염색전을 개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향토축제로 살린 지역특성 가장 훌륭한 관광자원
지금까지 오늘날의 전국 각 지역에서 행해지고 있는 향토축제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검토되어야 할 몇 가지 점들을 살펴보았다. 우리의 향토축제는 그 역사가 결코 길지 않다. 고작해야 20∼30년에 불과하다. 따라서 향토축제가 제대로 정착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의 과정이 있을 수 있다.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이러한 몇 가지 점들이 개선되어 우리의 향토축제가 축제다운 축제로서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현재의 장점들을 충분히 살려서 향토축제가 더욱 활성화 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우리의 향토축제는 그 지역주민들의 신명나는 놀이판이 될 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간에 일체감을 이루어 갈등을 해소하고 지역사회를 통합하는 한마당이 될 것이다. 나아가서는 대중사회 속에서 원자화되고 분절화된 현대인들에게 공동체의 참 모습을 보여주고, 인간소외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놀이 공동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지역주민들의 문화향수와 참여의 기회를 높이는 지역문화 활성화의 장으로써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