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기획 / 대중문화의 수용

대중 매체시대의 한국연극




이상우 / 연극평론가

대중매체시대의 연극을 자리매김하는 일은 매우 곤핍하고도 착잡한 작업이 아닐 수 없다. 근대 산업화 이후 과학 기술과 테크놀로지의 급속한 발달에 따라 대중매체가 사회적 문화 현상을 주도하게 된 시대에 상대적으로 가장 소외 받는 예술 분야가 연극, 무용 등 공연예술분야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공연예술의 경우, 오랜 문화적 전통을 함께 나누는 문학, 음악, 미술, 건축 등 다른 예술 분야와 대조해 볼 때, 그 상대적 소외감은 더욱 뚜렷해 보인다.

다른 예술 분야가 대중매체로부터 받는 엄청난 수혜에 비해 공연예술은 여전히 그 수혜로부터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다. 대중 소비사회에서는 예술이 대중매체의 막강한 영향력 안에 들어 있느냐 그렇지 못하냐에 따라서 그 대중적 확장성은 엄청나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즉, 대중 소비사회에서 예술의 대중적 확장성은 전적으로 「산업적 생산 메커니즘(문화산업)」 속에 그것이 편입되어 있느냐의 여부에 달려있는 것이다.

때문에 예술이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의 메커니즘을 매개하는 대중매체의 혜택을 입지 못한다면 대중적 확장성을 갖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될 것이다.

대중적 확산성 측면에서 위축된 장르인 연극

대중 소비사회에서 음악은 축음기와 음반의 발명으로, 미술과 건축은 컴퓨터 디자인과 비디오 아트 등 첨단 매체와의 결합으로 눈에 띌 만큼 뚜렷한 발달을 거듭해오며 산업적 생산 메커니즘 속에서 그 대중적 영향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었다. 물론 음악과 미술의 경우에도 이른바 「고급」예술의 영역에 해당되는 분야에서는 아직도 「연주회」와 「갤러리」라는 제한된 소규모의 예술 생산/소비 구조를 고수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후기 산업사회의 포스트모던 문화에서는 「고급」예술과 「대중」예술의 이분법적 구도의 경계가 점차 불투명하고 무의미해지는 현상을 빚게 되었고, 이에 따라 이 이분법적 개념을 넘어서는 새로운 시각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고급」과「대중」의 문화적 개념을 포괄하는 「현대」 문화의 개념이 새롭게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음악과 미술 분야는 연극 등 공연예술 분야에 비해 「현대」 문화적 개념이 더욱 확연하게 나타나고 있다.

물론 이러한 통합적 현상의 이면에는 예술과 문화의 영역을 산업적 메커니즘 속에 편입시키려는 자본의 자기증식 논리가 거의 전 영역에 걸쳐 무차별적으로 관철되면서 이루어진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어쨌든 문화의 통합적 개념은 후기 산업사회의 문화적 생산소비의 메커니즘에서는 보편적 현상이 아닐 수 없게 되었다. 통합적 개념인 「현대」예술로서의 음악과 미술은 음반과 영상 등의 대중매체를 통해서 연주회와 갤러리의 좁은 형식적 울타리를 훨씬 넘어서 대중들의 인식과 정서를 지배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음악 연주회에 한번도 참석해보지 않은 사람도 음반이나 전파 매체를 통해 가요나 팝송을 즐겨 들으며 음악 애호가로 자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연극도 좁은 의미의 전통적 예술형식으로서의 「연극(Theatre)」이 아닌 넓은 의미에서 「현대」예술로서의 「극(Drama)」 개념으로 확대시켜 본다면, 그것은 이미 오래 전에 대중매체의 엄청난 수혜를 받고 산업적 생산 메커니즘 속에 편입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영상매체와 드라마와의 결합으로 극영화가 처음 등장했으며, 1920년대 서구에서는 라디오 전파매체의 발명으로 드라마는 방송극이라는 새로운 모습으로 대중들에게 파고 들 수 있게 되었다. 더구나 시청각 매체인 TV 드라마의 등장으로 드라마는 가공할 만한 위력을 지닌 「안방극장」의 자리를 차지하고 어떠한 예술분야보다도 큰 대중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인기 TV 드라마의 경우, 엄청난 시청률을 장악하고 있어 광고산업 등 소비문화에 끼치는 영향이 매우 지대함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이렇게 볼 때, 여타 예술분야에 비해 드라마의 영향력이 결코 만만치 않은 파괴력을 지니고 있음은 틀림없는 사실임을 확인하게 된다.

극영화와 TV 드라마는 연극의 품을 벗어나고

그러나 문제는 드라마가 본래 문학의 한 장르로서 뿌리를 내리고 발전해 오다가 영상매체인 영화를 거쳐 라디오, TV 등 전파매체를 통해 폭발적으로 확대되어 가면서 점차 독립된 예술영역으로 분화되어 나갔다는 점에 있다. 이제는 아무도 연극을 극영화, TV 드라마와 동일시하지는 않는다. 영상과 전파매체의 강력한 대중적 확장성을 기반으로 하는 극영화와 TV 드라마는 드라마의 모태인 연극의 품에서 벗어나 이제 「현대」예술로서의 독립된 위상을 공고히 할 수 있게 되었다.

때문에 연극은 영화, 라디오, TV에게 차례로 드라마를 넘겨주고 그 대중적 영향력까지를 잠식당한 채 이제는 연극 공연장만을 고수하고 남아있는 셈이 된 것이다. 극장공간을 지키며 남아있는 공연예술로서의 연극은 엄청나게 위력적인 대중매체의 문화시대에 매우 초라하고 빈약한 모습으로 남게되었다. 그것은 거역할 수 없는 역사의 추세이며 공연예술의 타고난 운명인 것이다. 음악, 무용, 미술 등도 실연주의(實演主義)를 고집하는 공연예술의 영역에서는 아직도 산업적 메커니즘과는 거리가 먼 소규모의 연주회, 공연장, 갤러리 등에서의 소집단적인 예술적 생산/소비구조가 이루어지고 있다. 순수한 예술적 에스프리와 진정성을 지켜 나간다는 자부심은 가질 수 있을지언정 갈수록 왜소화해지고 대중적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점에서는 연극과 비슷한 운명을 나누고 있는 셈이다.

실연(實演) 중심의 공연예술이 대중 매체의 시대에서 비극적 운명을 누리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요컨대 공연예술이 대량복제가 불가능한 아우라(aura) 예술이기 때문이다. 벤야민이나 아도르노가 이야기 한 바와 같이 연극 공연과 음악 연주는 기술복제에 의해서는 아우라를 회복·재생시킬 수 없다. TV 화면에서 방영되는 연극 공연과 음악 연주를 보고 우리는 극장과 연주회에서 느꼈던 아우라를 전혀 가질 수 없었던 경험들을 잘 알고 있다.

공연예술로서의 연극은 아우라, 즉 「현장성」과 「동시성」의 경험을 생명으로 삼고 있다. 제한된 한 공간 안에서 예술의 생산과 소비가 동시적으로 이루어지고, 또 거기에서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예술적 체험이 교호작용을 일으킴으로써 즐거움과 감동이 생성된다. 이 때문에 현장성과 동시성의 예술적 경험을 담보할 수 없는 대중매체가 개입될 경우에는 살아있는 아우라를 전혀 느낄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오히려 아우라가 대중매체에 의해 복제될 수 없다는 사실은 공연예술인 연극의 존재이유가 되는 셈이다. 공연예술의 아우라는 제한된 공간의 극장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영화예술을 위협하는 TV와 비디오 매체가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영화 관객들이 여전히 영화 상영관을 찾는 이유도 영화관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아우라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나름의 존재 이유에도 연극 공연장을 찾는 관객의 발길은 매우 한적하다. 연극의 관객은 갈수록 줄고 극단은 재정적 어려움에 허덕인다. 여기에 따라 부수적으로 좋은 연기자는 영화나 TV 드라마에 빼앗기고 역량 있는 극작가도 좀처럼 양성되질 않는다. 이 같은 빈곤의 악순환은 날로 연극을 침체의 길로 치닫게 만든다. 그 내재적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

너무 긴 해독시간, 연극침체의 내적 요인

그것은 우선 연극의 숙명적으로 지니고 있는 매체적 성격에 기인한다. 연극의 매체는 그것의 해독(解讀)을 위해 너무도 많은 시간을 요구하는 비효율적 매체이다. 연극이 근원적으로 문학의 한 영역이기에 일종의 문자문화로서 까다로운 독법을 요하는데다가 갖가지 연극적 기호와 문법들은 그야말로 「연극적으로」 읽혀지기를 관객에게 주문한다. 때문에 관객이 연극 특유의 기호와 문법을 연극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투자하는 시간과 노력은 너무도 버겁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연극 매체의 비효율성은 상대적으로 대중매체의 손쉽고 안락한 접근방식에 길들여진 관객들을 지치고 피로하게 만든다. 따라서 연극은 점점 대중적이지 못한 예술로서의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연극의 비효율성은 친숙해지기 까다로운 매체의 성격에만 그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내용과 정서면에서도 「고급」예술적인 성격을 갖는 연극일수록 대중들의 손쉬운 이해방식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물론 연극에서도 대중극이 상당수 존재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대중매체를 통한 드라마는 통속적 멜로드라마의 손쉽고 간편한 이해방식을 그 극적 안전장치로 깔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젊은 남녀간에 빚어지는 애정의 삼각관계, 불우한 성장과 출세의 야망, 애증과 치정으로 얽힌 원한과 복수, 잔잔한 일상적 터치로 그려내는 서민적 애환과 웃음 등의 극적 구조는 거의가 대중들을 편안하게 안방극장 속에 몰입시킬 수 있게 만든다. 최근에 TV에서 방영되는 인기 주말 드라마 「사랑을 위하여」,「모래 위의 욕망」,「아들과 딸」 등이 대부분 이러한 극 구조를 지니고 있음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현대사회에서는 대중매체를 통한 문화적 정서와 감각, 인식 등이 형성되고 주도되기 때문에 영화와 TV 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문화적 소비에 대중들은 대우 친숙해지게 마련이다. 하루가 다르게 빠른 속도로 변해 가는 대중들의 인식과 정서, 그리고 첨예한 감각은 일반적으로 대중매체를 통해서 형성되고 유포된다. 반면에 대중매체의 기민한 기동성과는 달리 연극은 기본적으로 그 문화적 응전력에 일정한 시간과 거리를 필요로 한다. 때문에 연극예술이 그려내는 정서와 감각, 그리고 인식은 빠르게 변화해 가는 대중의 그것을 따라잡지 못해 문화적으로도 낯설고 거리감이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에서 대중문화와 연극의 관계에 관한 논의는 주로 연극의 대중성 문제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것은 다시 크게 대별해보면, 연극의 대중화와 연극의 통속성 문제로 나뉘어질 수 있다. 연극의 대중화란 연극예술을 어떻게 하면 대중들의 생활 속으로 친숙하게 가져가고 보급시킬 수 있는가 하는 방안의 문제이고 연극의 통속성은 대중들의 무분별한 저속취미에 연극이 추수하여 타락하는 데에 관한 논란인 것이다. 이는 한국 연극에서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었고 신극사 80년에 걸쳐 꾸준히 지속되어온 해묵은 논쟁거리였다.

연극문화, 유입기엔 대중매체 기능 담보

먼저 연극의 대중화 문제에 관해 살펴보자. 이 땅에 전혀 새로운 연극문화가 처음 유입된 것은 신파극이었는데, 1910년대에 일제 당국은 이를 대중들에게 널리 보급, 유포시키기 위해 기관지 「매일신보」를 통한 대대적인 선전활동을 지원하였다. 일제 당국의 신파극 보급운동은 본국의 연극문화를 이 땅에 대중화시킴으로써 문화적 부문에까지 식민성을 공고히 하기 위함이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문화적 측면을 단면적 시각에서만 재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일제의 이러한 의도가 식민지 지배 정책의 일환으로 수행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본격적인 신극이 등장하지 못했던 당시에 신파극이 지니고 있는 문화적 선진성과 대중성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어쨌든 당대의 대중들은 상당기간 신파극에 열광해 있었다.

또 20∼30년대에는 현철, 박승희, 김우진, 유치진 등에 의해 이 땅에 새로운 연극문화를 수립하고 대중 속에 연극예술을 뿌리 내리려는 신극운동이 전개되었다. 학생극운동과 「토월회」,「극예술연구회」 등의 신극단체가 전개한 순회공연과 강연회, 연극잡지의 발간 등이 그것이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극예술연구회가 30년대에 들어서 처음으로 전파매체를 통한 연극의 대중화에 뛰어들었다.

극예술연구회는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을 최초의 라디오 방송극으로 제작하여 경성 방송국(JODK) 전파를 통해 전국적으로 송신하였던 것이다. 물론 당시의 라디오 보급물은 현저히 낮았지만 연극이 전파매체와 만난 사실만큼은 우리 연극사에 있어 획기적인 사건임에 틀림없다. 또 극예술연구회는 유치진의 창작극 「토막」,「버드나무 선 동리 풍경」 등을 콜롬비아판 음반으로 제작하여 대중에게 보급하는 등 대중매체를 이용한 연극의 대중화에 매우 적극성을 오였다.

물론 이것은 연극문화가 당시에는 상당한 대중적 매체로서 기능 할 수 있었던 이유에 근거한다. 당시의 연극은 영화와 더불어 극장문화를 지배하면서 위력적인 대중적 매체의 성격을 과시할 수 있었다. 30년대 후반기의 연극계를 풍미한 「동양극장」은 당시의 대표적 연극기관으로서 수많은 대중과 더불어 애환을 함께 하였던 곳이다. 연극이 숙명적으로 지니는 마이크로 미디어적 성격이 그 당시에는 일시적으로나마 매스미디어의 역할까지도 함께 수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대중매체로부터 가해지는 절박한 위험 없이 연극이 오히려 그 대중매체적 기능까지 떠맡은 행복했던 시대. 그런 의미에서 동양극장 시대는 그야말로 연극의 황금기였다.

연극의 대중성은 반대 급부로 통속성의 문제를 야기 시켰다. 신파적 대중극의 애상적 눈물과 격정은 관객 대중의 건강한 인식과 정서를 마비시키고 얄팍한 저속 취미로 흘러갔다. 민족운동적 성격을 지니며 전개되던 신극운동도 직업화, 전문화되면서 대중적 통속성과 점차 타협을 나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대중문화로서 연극이 가능하면서 낳게 된 또 하나의 역기능인 셈이었다.

어찌 되었든 연극의 대중매체적 성격은 영화의 비약적인 약진과 TV 매체의 보급으로 그 기능이 거의 상실되고 말았다. 그리고 대중들의 드라마에 대한 향수를 영화와 TV에 넘겨주게 되었다. 이 때문에 연극이 가지고 있던 신파적 대중극은 영화와 TV 드라마로 이전되게 되었다. 70년대까지 안방극장을 풍미했던 「아씨」,「여로」,「새엄마」 등 가정비극류의 TV 드라마는 연극 황금기 신파적 대중극의 연장선 아래 놓여 있는 것이다. 또 초창기 영화와 TV 드라마의 형성에도 연극계 인력의 적극적 유입이 커다란 기반이 되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나운규, 윤백남 등 연극인이 한국 영화의 생성에 큰 역할을 했으며, 60년대에 TV 방송국이 개국함에 따라 50년대에 새롭게 등장한 연극 엘리트들이 대거 참여하여 한국 TV 드라마의 초석을 놓는데 결정적인 몫을 담당하게 되었다.

마이크로미디어 예술로의 새로운 모색기 80년대

80년대에 접어들면서 대중매체가 주도하는 시대적 성격이 더욱 뚜렷해지자 연극은 새로운 모색의 길로 들어서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극장의 제한된 공간 안에서 관객과 더불어 아우라를 함께 나눌 수 있는 극장 공동체의 문화적 성격을 보다 새롭게 모색하는 작업에 열중하게 된 것이다. 마이크로 미디어 예술로서의 고유한 생존방식에 관한 지난한 모색은 특히 전통적 극양식과 놀이정신에 대한 적극적인 개발과 재창조의 노력에서 두드러졌다. 70년대부터 대학과 노동현장을 중심으로 전개된 마당극운동과 더불어 기성극단인 극단 민예, 극단 미추, 극단 자유 등이 심혈을 기울여온 전통적 극양식과 놀이정신의 수용과 새로운 연극적 재창조 작업은 우리로 심성에 걸맞은 고유한 아우라를 개발하려는 노력으로 평가될 수 있다.

특히 극단 미추가 전통적 연극양식을 TV 매체와 성공적으로 결합시켜 이른 바「MBC 마당놀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점은 흥미로운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일부에서는 전통적 극양식의 박제화 현상이라는 비판적인 지적을 받기도 했지만, 연극적 아우라가 TV 매체를 통해서 성공적으로 재생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 점에서 이는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90년대의 대중 소비사회에서 한국연극은 또 다른 위기에 봉착해 있다. 고급 예술과 대중예술의 이분법적 구도가 무의미해져감에 따라 더 이상 연극이 고급예술임을 자부할 수도 없게 되었으며 대중매체의 무차별적 공세 앞에 대중예술로서 그 영역을 넓혀갈 수 있는 길도 거의 차단되었기 때문이다. 새롭게 규정되는 사회적 성격에 적응할 수 있는 연극의 존재방식은 쉽사리 찾아질 것 같이 보이질 않는다.

연극도 나름대로 소규모의 생산/소비 메커니즘을 갖는 바, 최근 들어 관객의 건전한 연극 소비시장 형성을 왜곡시키는 빗나간 상품전략이 등장하여 문제시되고 있다. 대중 소비의 가장 자극적인 대상이라 할 수 있는 「육체」를 활용해 연극의 「상품미학」을 높여보려는 전략 이 그것이다. 배우의 벌거벗은 육체를 드러내는 일은 이제 연극제에서 상품미학의 하나로 자리를 잡고 있는 실정이다. 「퍼포먼스와 콜걸」 등으로 대표되는 육체를 상품화한 연극은 수많은 관객 대중을 동원하며 장기 공연에 돌입하고 있기도 하다.

더 이상 소규모집단의 밀교 행위일 수 없다.

그러나 이처럼 배우의 육체를 이용한 상품미학은 관객들로 하여금 계속적이고 보다 강도 높은 자극을 요구하게 만들뿐이며, 건전한 연극의 소비시장 전체를 심각하게 파괴시킬 수 있는 여파를 미칠 것이다. 새로운 연극의 상품미학은 물론 다양한 방법과 자유로운 상상력 속에서 개발되어야 하지만 적어도 연극 소비시장을 건전하게 형성시켜 나가는 최소한의 전제 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이제 연극의 새로운 존재방식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프로야구와 서태지에게로 열광적인 대중의 환상이 몰입되는 이 거대한 괴물, 「대중 소비사회」, 그러한 사회의 문화 속에서 연극이 밟고 설 땅은 과연 어디인가. 연극의 새로운 존재방식에 관한 모색은 무엇보다도 대중 소비사회의 문화 현상을 심각하게 파악하고 분석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 바탕 위에서 연극의 자기 정체성을 발견해야 하며 대중의 새로운 문화적 소비욕구를 끊임없이 창출시킬 수 있어야 한다. 연극은 더 이상 소규모 집단의 은밀한 밀교(密敎)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