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마임극의 현재와 미래
한상철 / 연극평론가, 한림대교수
한국연극의 지도에는 오랫동안 망각되고 잊혀진 영토가 많다. 과거 우리의 전승연희의 대부분은 이제 거의 자취를 감추고 말았거나 일부가 살아남아 있다 해도 생명을 부지하기 힘든 정도이다. 60년대 중반,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으려는 노력이 일고서부터 한동안 연극계는 옛 전통연희 공연이 활발했고 옛 것과 새 것을 결합해 무엇인가 새 것을 창조하려는 시도가 제법 융성했었다. 그러나 90년대에 들어서서는 그 모든 노력과 시도가 현저히 쇠퇴하기 시작하였으며 일부의 연극인에 의해서만 계속되고 있을 뿐이다.
세계가 좁아져서 한마을이 되어가고 문화의 유입과 유출이 빈번해지고 그 영향력이 상당히 증대해감에 따라 오히려 그 반대로 문화의 정체성(正體性)은 더욱 강조되고 중요시되는 오늘의 세계에서 한민족의 문화적 독창성과 한국인의 연극적 독자성을 확립하려는 노력이 약화되어 간다는 사실은 유감스럽고 염려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다시 우리의 잃어버린 연극의 영토를 복원하고 그것을 풍요롭게 가꾸는데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한국 마임은 아직도 유년기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
우리가 잃어버리고 망각해버린 영토에는 또 다른 영토가 있다. 오늘날 중년 이상이 한국인이라면 어렸을 때 곡마단에서 본 어릿광대의 우스꽝스러운 짓거리나 서글픈 피에로의 우수에 찬 모습을 아련하게 기억할 것이다. 그러한 기억들은 이제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을 뿐만 아니라, 인생과 세상에 대해서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하나의 정서로 뿌리 박혀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어릿광대와 피에로가 우리 주변에서 사라진 것이다. 각박하고 살벌한 일상의 삶을 녹여주고 부드럽게 해 줄 어릿광대와 고통스럽고 괴로운 현실을 같이 울어 줄 피에로를 잃어버린 것이다. 요즈음 극장에 가면 우리는 이들 대신에 삶을 더 괴롭게 되씹어야 될 우울한 연극이나 아니면 섹스와 욕지거리로 혹은 터무니없는 상황설정으로 관객을 웃기는 데만 열중하는 연극과 만날 뿐이다. 아니면 노래하고 춤추는 뮤지컬이 전부이다. 한마디로 오늘의 한국연극은 연극의 종류에서 빈약해졌고 관객에게 주는 즐거움에서 폭이 좁아진 것이다. 이따금 인형극이 있긴 하지만 전부 어린이, 그 중에서도 유치원 아동용이지 성인이 보고 즐길만한 공연은 전무한 상태이다. 다행히 작년 가을 모스크바의 유서 깊은 인형 극단이 내한하여 우리에게 큰 기쁨을 안겨준 반면 우리 연극계가 얼마나 단조롭고 무취미한가를 실감하게 해주었다. 작년에는 과거 단비처럼 연극애호가들을 환상적인 세계에 젖어들게 했던 외국의 마임이 한차례도 다녀가지 않아 연극계를 더욱 쓸쓸하게 만들었으며 우리가 잊었거나 잃어가고 있는 것 중에 무엇보다 마임의 손실이 가장 크다는 생각을 강하게 일깨워주었다.
더구나 92년은 한국에서 마임이 시작 된지 20년이 되는 해였기 때문에 그 공소(空疎)함은 더할 나위가 없었다. 한동안 한국 마임은 초창기 마임 선구자들에 의해 제법 활기를 띠기도 했으나 마임 인구가 워낙 적고 마임으로는 생활을 도모해갈 수 없는 한국적인 여건으로 해서 차츰 쇠퇴하기 시작하여 80년대에 와서는 외국단체의 내한공연 이외에는 거의 국내 마임이 없어지는 듯 했었다.
그러다가 90년대에 와서 마임의 완전소멸을 걱정하여 그 부흥운동을 일으켜서 서울과 춘천 등지에서 해마다 「마임 페스티벌」을 개최하고 그간 마임 구경을 전혀 해보지 못한 새로운 관객에게 호기심과 흥미를 불러일으켜 주였다. 그렇지만 마임을 직접 하는 예술가가 10명도 채 안 되는 데다가 기술마저 별로 발전하지 못했기에 큰 성과를 거두기에는 아직 거리가 멀었다. 단적으로 한국의 마임은 아직도 유년기에 불과하며 자기 성격조차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예술표현의 완성도라든가 전문성 내지 직업성이 마련되려면 아직도 요원하다 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마임이 처음으로 시도된 것은 1969년 극단 〈에저또〉에서였다. 을지로 입구에 있는 낡은 건물 이층에 〈에저또〉 전용 소극장이 개관되면서 가진 팬터마임 공연이었다. 극단 설립자 방태수는 「팬터마임 공연을 가진 것은 팬터마임의 이해와 보급을 전제로 하였지만 무엇보다 소극장 운동으로서의 실험극 표방이었다... (당시)실험극으로서 팬터마임은 전위극으로 소개되었고 공연 역시 단편적인 이야기를 몸짓으로 보여주는 묘사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국마임 20주년기념 세미나에서 말하였다.
이후 전위 미술가 집단과 더불어 기성 문화원의 반란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가두 마임극을 몇 차례 시도해 보았지만 관리 제지로 중단되는 비운을 겪었었다.
76년에 폐관되었던 에저또 소극장은 1972년 봄에 다시 문을 열고 김세중(金世衆)의 민속마임 발표회를 가졌는데 이 발표회는 「한국의 민속 춤사위를 서구의 마임적 몸짓에 도입해 보자」(방태수)는 시도로써 의의 있는 행사였다. 이를 계기로 마임을 연극에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새로운 연극을 창출해보자는 목적으로 한국마임연구소가 1972년 가을에 창립되고 팬터마임 공연으로 김용락 작 방태수 연출의 〈억울한 도둑〉이 공연되었는데 여기에 우리나라 마임 1세대의 대표자라 할 유진규(柳鎭奎)가 출현하였던 것이다. 한국 마임이 20주년을 기념한 것은 이 공연을 기점으로 한 것이었다. 유진규는 이때부터 오늘날까지 꾸준히 마임공연을 계속해 왔으며 그와 같은 시기에 에저또에 입단한 김성구는 그 후 활동을 정지하였다. 이들 1세대를 잇는 제2세대의 마임 배우로는 유홍영, 임도완에 이어 최규호·박상숙·심종철·채희준 등이 있을 따름이다.
「마임」과 「팬터마임」은 엄격히 구분하기 힘든 용어로서 우리는 둘을 혼용해서 쓰는 경향이 있다. 국어사전(이희승 편)에는 「마임」을 「실생활을 주제로 한 흉내와 춤에 의한 즉흥 ,희극 고대 희랍 및 로마에서 성행」이라고 기술하였고, 「팬터마임」은 「대사를 말하지 않고 몸짓과 표정으로 하는 연극, 무언극」이라 했다. 이 설명을 따르면 마임은 로마 희랍 시대에 성행했던 즉흥적인(때로는 간단한 대본이 있었던) 풍자 희극을 지칭하는 것으로 말이 동반되었던 당시 연극의 한 스타일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에 반해 팬터마임은 17세기 불란서에서 시작하여 구라파 각지로 전파된 무언극으로 문자 그대로 말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공연예술이었다.
이 팬터마임은 19세기에 전성기를 구가하였으며 얼굴을 희게 분장하고 나온 배우가 말이 아니라 오직 제스처와 동작과 표정만으로 스토리텔링을 하던 낭만적인 형태의 공연이었다. 재미있고 재치 있는 내용에다 멋들어진 기교를 구사하는 형식의 연극이었다.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고 즐기고 있는 팬터마임은 바로 이 같은 유의 것이며 영화 〈천국의 아이들〉에서 장 루이 바로가 보여주는 전세계를 감동시킨 피에로의 무언극은 곧 팬터마임의 정형이었다.
두 거장의 등장으로 마침내 완성도 실현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 이 같은 팬터마임은 큰 변혁을 맞이하게 되었다. 20세기 연극 개혁의 선구자 고돈 크레이그와 쟈크 코포는 배우가 더 이상 즉흥적인 자기노출증 환자가 되지 않는, 완벽한 도구가 되어야 할 날을 꿈꾸었고 그러한 이성과 꿈은 에티엔느 드크르에 의해서 마침내 실현되었고, 바로에 의해 완성되었던 것이다. 크레이그와 코프는 연극이 언어의 예술이 아니라 배우가 중심이 되는 예술이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배우의 다양한 훈련이 절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코프는 그러한 목적을 위해서 뷰·콜롱비에 연극학교를 설립하고 학교 신체 훈련과정에 곡예, 고전 발레, 체육, 스포츠 그리고 당시에는 신체 마임으로 알려진 가면 연기를 포함시켰다. 그는 과거 연극의 황금 시대에는 배우의 육체적 기민성, 가면 연기, 앙상블 연기 및 마임의 능력이 핵심이 되어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이 학교에서 코포와 신체 마임을 연구하던 드크루는 그의 생애를 받쳐 인간의 육체가 지닌 표현력과 그 기능성에 대한 연구에 몰두하였다. 그 결과 오늘날 신체마임의 문법을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19세기식의 객관적인 마임 즉, 환상을 만들어 가는 팬터마임을 철저하게 거부하고 대신 주관적인 마임, 다시 말해 생각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방법, 생각이 육체를 형성시키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검토하는 연구에 몰두했었다. 드크루는 육체를 문학 무대장치 음악 무용 의상 등 그의 이른바 「낯선 예술들」의 폭군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한마디로 마임 예술을 추상화 순수화시킨 탁월한 선생이며 이론가였다. 피에로를 몰아내고 마임의 독자적인 세계를 개척한 현대마임의 탄생은 드크루의 덕택이며 쟝 우리 바로, 마르셀 마르소를 위시한 현존 유명 마임 배우들은 모두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마임과 팬터마임이라는 용어를 혼용하고 있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마임은 곧 19세기식 팬터마임으로만 인식되어 있지 순수화·추상화의 길을 걸어온 현대 마임의 역사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팬터마임과는 다른 마임을 체험했다면 그것은 60년대이래 한국을 다녀간 세계적인 현대 마임 배우들의 새로운 공연을 통해서였을 뿐이다. 한국에서 마임을 굳이 팬터마임과 구분한다면 그것은 이들 현재 마임 배우들의 새로운 마임을 염두에 둔 것이거나 아니면, 하나의 연극 양식으로서의 팬터마임이 아닌, 가장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의미의 「무언의 행동 또는 행위」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한국 마임의 역사는 1969년이나 1972년이 아니라 그보다 엄청나게 앞선 상고시대부터였을 것이다. 인간이 일상생활을 해가면서 말보다 동작이나 표정에 의존하여 의사와 뜻을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는 경우는 논외로 치더라도, 집단이나 사회가 형성되고 종교적인 의식이나 세속적인 연희가 베풀어졌을 때, 거기서 사용된 언어는 말로서 언어 이전의 제스처나 동작에 의한 무언의 언어였다. 곧 마임이었다. 멀리 삼국시대의 여러 종교적인 제의나 잡희(雜戱)에서 가까이 이조 시대의 산대놀이 가면극에 이르기까지 연행된 의식이나 연희들에는 무언극의 사례가 얼마든지 있다. 대표적인 예로 〈처용무〉나 〈봉산탈춤〉을 들 수 있으며 〈봉산탈춤〉은 예술화된 마임의 주류였다. 특히 노장이 소무를 유혹하는 노장과장 같은 장면은 한국 전통마임의 백미라 할 것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들이 제대로 전승이 안되었으며 무엇보다 이들 전통마임에 대한 현대적이고 과학적인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점일 것이다.
한국적 마임을 창조해야 한다고 항상 역설하고 있는 민속연구가 심우성은 서양의 「마임」에 해당하는 한국어가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마임과 유사한 형태의 연희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의 연구에 의하면 『우리에게도 무언극의 형식으로 진행되었던 「솟대장이패」의 「병신굿」을 비롯해서 「장대장네굿」,「배뱅이굿」 등에서 보이는 이른바 「발림굿」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판소리에서 쓰이는 「발림」,「사채」 등도 분석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박춘재(민요의 명창이면서 「발탈」을 비롯하여 「한량굿」에서도 뛰어나 있었음, 1881∼1948)의 뒤를 이었던 신불출(만담가. 1905∼?) 그리고 1930년대 이후 주로 악극단의 촌극 또는 막간극으로 등장했던 희극무대도 살펴볼 대상이 된다. 한 예로 「코미디」의 원조를 전하는 「임생원과 신카나리아 콤비의 희극무대」 등이다』라는 글에서 마임의 동의어는 「발림」,「사채」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러나 그는 오늘 우리가 하고 있는 마임이 서양에서 유래된 독특한 형태의 연회이기 때문에 우리가 꼭 발림이나 사채로 바꿔 불러야 될 당위적인 명분을 없을지 모르지만 『1960년대이래 이 땅에서 받아들여진 서구취향의 「마임」이란 것은 다분히 「낯선 것」 또는 「외래 문화적인 것」에 대한 충동적 욕구에서 비롯되었고… 2·3년 전까지만 해도 서양의 몇몇 알려진 「마임이스트」들의 분장과 옷차림을 그대로 모방하면서 그들 작품 가운데 생경한 토막 토막을 흉내내는 데 치중해왔다』고 비판하였다.
그는 2·3년 전부터 마임계 일부에서 뒤늦게나마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 「한국적 마임」을 창출하려는 구체적인 작업이 나타나려 하고 있음을 중시하고 한 예로 무용극 내지 무언극의 형식을 띄고 있는 〈강릉 관노 가면회〉에 등장하는 「시시딱딱이」란 배역이 새로운 팬터마임을 시도였음을 획기적인 사건으로 지목하였다. 작년 임도완의 〈흥부 와 놀부〉의 경우, 격자 문양의 문짝을 세우고 그 뒤를 돌아나 올 때마다 번갈아 흥부와 놀부로 변신을 하는 기교로 관객을 감탄케 했지만, 그의 마임 스타일은 한국인의 전형을 아직 표현해주지는 못하였다. 다만 고전소설을 새롭게 해석한, 흉내내기 이상의, 마임만의 세계를 펼쳐 보이는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것은 아직 우리가 우리 자신의 신체마임의 문법을 체계화시키지 못했음을 뜻하는 것이며 한국인의 전형적인 제스처 동작 표정에 대한 연구 분석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탈춤의 내용, 구조나 형식은 연구되었지만 현장에서 놀고 있는 기능보유자의 실제 육체의 움직임이나 안면 표정과 그 변화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연구는 마임의 측면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 드크루의 연구 작업을 모델로 한국인 특유의 신체마임을 체계화하지 않고서는 한국적 마임의 창출은 불가능 할 것이다. 탈춤만이 아니라 사찰의 불상이라든지 어촌이나 농촌의 촌노를 또는 오래된 가면의 표정과 몸짓에서 한국인의 어떤 정형성을 찾으려는 노력이 있어야할 것이다. 서양과 전혀 다른 정신세계를 간직하고 있는 한국인은 그들의 정신이나 생각 또는 정서나 기분을 표현하는 방법, 그것들이 신체를 형성하는 방법이 틀림없이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잃어버린지도 모를 마임의 영토를 찾자
오늘날 세계는 드크루의 마임이 추구하는 추상화 순수화에의 지향을 거부하고 그와 반대로 총체화, 종합화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작년에 내한하여 우리에게 새삼스런 놀라움을 주었던 미국 「빵·인형극단」의 〈콜롬버스와 아메리카 신대륙〉이 좋은 예이다. 그 작품에는 마임, 인형, 연극, 무용, 음악, 가면, 스토리 텔링 등의 각종 테크닉이 절충적으로 구사되어 있고 종합적으로 통합되어 있었다. 그것이 다루는 세계는 복합적이며 복잡하다. 그의 제재들은 콜롬버스의 미대륙 발견과 토착 원주민의 학살과 예속화, 이라크 전쟁. 캐나다 원자력 발전소의 건설과 주민과의 갈등에서 보여지듯 그 자체가 서로 전혀 다른 시사적 문제들을 종합하고 병렬시킨 것이었다. 개개의 테크닉은 고도로 세련되어 있었지만 결코 예술을 위한 예술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다분히 대중화되고 속화되어 있었다. 이 작품은 어느 한 작가의 작품이 아니라 출연자 모두의 창작이었다. 이 작품은 결국 「포스트 모던마임」의 특징이 무엇인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한편 대단히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공연도 있다. 밀워키 출신의 드크루 제자 다니엘 스타인의 〈일치되려는 마음〉이 그것이 다. 무대는 문창 테이블 의자들로 가득 찼는데 이들이 모두 비스듬히 서 있는 것이다. 이처럼 바로서 있지 않은 이들을 나무라기라도 하듯 99개의 연추(鉛錘)가 같은 무대에 매달려 있다. 이 작품의 드라마는 이들, 분명히 모순되어 있는 것들을 본 건축가 스타인의 마음속에서 어떤 해결을 시도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여주려는 것이 바로 그거다. 에밀리 딕킨슨의 시 『모든 진실은 말하라. 그러나 비스듬히 말하라』가 낭송되면서 무대 좌우의 연추 끈이 끊어진다. 이 때 추가 떨어지면서 밑에 깐 유리 바닥이 깨진다. 〈오이디푸스〉 공연으로 시작된 이 작품은 오이디푸스가 마침내 자신이 진리(연추)와 일치되었을 때 눈이 멀고 만다는 교훈을 주고 있는 것이다. 다시 딕킨슨의 시,『진리는 서서히 눈부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사람은 장님이 된다.』가 낭송된다.
위의 두 예에서 보듯 서양의 마임은 다양하고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으며 언어로 표현하는 연극이 표현 못할 인생과 세상의 진리를 더 잘 말해주고 있다. 오늘의 마임은 과거의 그것과 달리 단순한 오락의 기능을 넘어서서 시(詩)의 경지로 접근해 가는 한 방향과 어릿광대의 기교와 철학을 심화시켜 즐거움과 사색을 동시에 제공하는 또 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본질적으로 마임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거나 극소하게 사용함으로써 육체에 의한 표현을 극대화시키는 예술이고, 거기에 바로 마임만이 갖는 독자적인 세계가 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마임은 인간의 정서를 자극하는 것이고 심층의 세계를 열어 주는 예술이다. 마임은 연극과 함께 뿌리를 같이 하는 나무의 두 가지의 하나이다. 연극은 마임에서, 마임은 연극에서 상호 발전의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케 한다. 한국 연극이 배우의 문제, 연기 훈련의 문제에 보다 심각한 반성을 해야 할 때인 오늘날, 마임 전문학교가 없고 대학 연극과에 마임 과정이 없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대사를 하지 않고 그 내용을 몸만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배우가 한국에 있는지조차 의문스럽다. 항상 배우는 몸을 악기 삼아 연기한다는 말을 하면서도 그 몸을 완벽한 도구, 장 루이 바로의 말처럼 로버트(robot)가 되도록 하지 않고는 한국 연극의 황금기는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또한 연극계가 언제나 재미없고 따분한 연극만을 하고 있는 이 때에 어린이로부터 어른들에 이르기까지 천진난만한 웃음과 순정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마임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하다.
우리가 잃어버린, 잃어버릴 지도 모를 영토를 찾아 나가야 할 때가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