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환경의 변화와 창작극의 방향 모색
김성희 / 연극평론가·한양여전 교수
올해의 연극계를 돌이켜보면, 예년 이상으로 공연 의의나 예술적 완성도의 면에서 인상을 남기는 공연은 손에 꼽을 정도로 빈약했던 해였다. 그러나 연극이 공연 스타일이나 미학, 혹은 공연 목표의 측면에선 80년대와는 확연히 다른 변화를 보이고 있다는 게 감지된 해이기도 했다. 그 특징적인 변화는 우선 연극 전반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지배하고 있는 감각주의와 대중 예술적 기법과 경박성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연극은 이제 새로운 문화 소비의 주체로 떠오른 젊은 신세대의 감각 지상주의를 공연 스타일이나 레퍼토리 선정의 척도로 삼고 있으며, 대중예술과 고급예술을 엄격히 가르고 있던 스타일의 세련성이나 단아함, 인문 교양적 품격이 해체되고 있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고급예술은 대중예술을 「예술의 대중화」라는 명목으로 모방하며, 대중예술은 고급예술을 「패러디」의 이름으로, 혹은 지적 허영과 장난기로 모방한다. 이리하여 고급예술과 대중예술은 피의 결혼으로 뒤섞이고, 두 장르의 선별 기준은 모호해지고, 어느 정도까지는 수용자의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예술 이상과 취미 수준에 따라 이쪽 저쪽으로 분류되게 된다.
더욱이 후기산업사회에 대두된 사조인 포스트모더니즘은 재현에 대한 반발 혹은 실험으로 이러한 경향을 주도하면서, 그와 동시에 많은 예술인이나 예술 작업에 혼돈을 안겨 주었다.
창작 희곡의 빈곤이 연극계의 표류 요인
포스트모더니즘은 기존의 형식을 해체하고 뒤섞고 패로디하고 대중 예술적 요소를 끌어와 모더니즘의 엘리트주의에 반기를 들었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의 형식의 자유로움이나 재현의 거부. 대중 예술적 기법의 차용 등의 특성은 많은 예술 창조자에게 있어 어떤 예술 콤플렉스 혹은 자신의 예술 작업의 혼돈성을 합리화시켜 주는 면죄부로 사용되는 경향이 더 짙다. 본격 포스트모더니즘 연극이라는 명칭으로 공연된 「서울 양아치」 등 일부 연극은 실험정신 이나 치밀하게 계산된 예술적 효과, 미학적 완성도를 고려하기 이전에 그 겉껍데기만 수용하여 예술 이전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우를 범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연극 환경의 변화에서 가장 표류하고 있는 것이 창작극, 특히 희곡이라고 보여진다. 사실 92년의 연극계가 그처럼 적막하게 느껴졌던 것은 창작극이 그처럼 드물게 공연되었고, 또 좀처럼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없었던 데 연유한다. 문학은 언어로서만 독자와 만나기에 번역문학 작품은 우리 문학의 범주에 당연히 끼지 못한다. 그러나 연극은 희곡을 재료로 하여 연출가·배우·무대 미술가 등 많은 연극인들이 오케스트라 연주처럼 새롭게 창조해 내는 것이기 때문에 번역작도 우리 연극의 범주 속에 정당한 자리를 차지한다. 하지만 우리의 사회와 삶의 문제를 우리의 정서와 감수성으로 그리는 창작극이 보다 우리의 정통연극이며 소중한 자산임은 부언할 필요조차 없다.
지금까지 창작극은 대체로 번역극보다 극단의 관심을 덜 받아 왔다. 그 이유는 작품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신극이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우리 연극의 취약점으로 「창작극의 빈곤」을 들면서도, 그 구조적인 문제점이나 문제점 타개의 방안 모색에 과감한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실 희곡의 작품성은 연극 제작 과정에서 보완되어져야 하는 것인데, 우리 연극의 경우, 이러한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이 있다. 이 자리에서 창작극 진흥의 방안을 제안하려는 것이 아니므로, 그 논의는 다음으로 미루고, 근래에 공연된 창작극 「숨은 물」,「마술 가게」,「해질녘」,「쿠니, 나라」 4편을 중심으로 창작극의 작품성과 새로운 방향 모색에 대해 얘기해 보고자 한다.
최대의 창작극 제전인 서울연극제에서 많은 관객들이 창작극의 작품 수준과 빈약한 현실 인식에 실망을 했었다. 그 때문에 서울연극제 운영 개선을 위한 심포지엄이 열리기도 했지만, 앞으로 어떤 방안이 수용되어 진정한 창작극의 축제를 만들어 가게 될지도 미지수이다. 필자는 서울연극제가 우리 연극의 예술적 수준을 대표하는 진정한 연극 축제가 되어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기 위해선, 연극계의 공연을 그해의 베스트 연극들로 선정해서 공연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연극제 침체 딛고 서는 12월 무대 창작극 4편
서울연극제의 희곡 작품들로 대표되는 창작극의 취약점을 일별해 보면, 현실 문제를 소재로 삼고 있으나 대체로 접근 방식이 지나치게 상식적이고, 논리가 결여된 치기스러운 상황 설정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것은 이전 연극제의 작품들이 대체로 무거운 주제 의식을 담은 역사극이나 사회극이 주류를 이루었던 경향과 확연히 대비된다. 탈이념의 향락적 소비 사회의 징후를 뚜렷이 드러내는 90년대로 접어들면서 극작가들이 아직 현실에 접근하는 나름대로의 프리즘을 정비하지 못했다는데 그 이유의 일단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달리 말하면 작가들이, 혼돈한 사회 현실과 존재 의미의 상관관계에 대해 통찰력이 부족하고, 현대적 감수성으로 체험을 형상화하는데 아직 자기 방법론을 갖추지 못했거나, 급변하는 시대 상황을 예민하게 포착하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는 정신 풍토로 해석할 수 있겠다.
연극제 이후 창작극 공연이 뜸하다가 12월 무대에 주목할 만한 공연 4편이 동시다발적으로 무대에 올랐다. 특히 이중 2편(「마술 가게」,「해질녘」)이 연우무대의 공연이며, 또 1편(「쿠니, 나라」)은 연우무대의 연출가가 객원 연출한 작품이라는 점이 흥미를 끈다. 연우무대는 창작극만을 고집하며, 특히 제도권 내에서 현실 비판적인 이념 지향의 연극들을 주로 공연해 온 극단이기에 오랜 침체를 벗고 의욕적으로 시도한 새로운 방향 모색이 관심을 끄는 것이다.
「마술 가게」(이상범 작·박광정 연출)는 의상실에 침입한 세 도둑을 통해 「옷」을 풍자하고 있는 블랙 코미디이다. 이 옷은 우리 사회의 이데올로기, 권위, 위계질서, 레드 콤플렉스 등 모든 「제도적 권위」를 상징한다. 이 극단이 89년에 공연했던「늙은 도둑 이야기」와 모티프나 풍자 스타일의 궤는 같이 하면서도 풍자를 담아내는 그릇은 상당한 변화를 보여준다. 우선 여자 마네킹들이 「마네킹」 동작으로 흥미 있는 볼거리를 제공하며, 배우들의 노출이나 쇼적인 볼거리 등을 가미하여, 현실 비판과 유머, 풍자를 신세대의 감각 취향에 맞췄다.
봄·여름·가을·겨울의 네 장면으로 나누어 긴 인생 여정을 상징적·축약적으로 표현한 각색·연출의 치밀한 연극적 계산이 이 연극이 전달하는 노년의 아름다움과 사랑과 죽음의 의미에 깊이를 더해 주었다. 노년과 죽음의 대비라는 주제 의식도 정적이고 사색적인 연극에 활력을 주었다.
「쿠니, 나라」(실험극장·이상우 작, 연출)는 브레히트의 「코카서스의 하얀 동그라미 재판」을 원료로, 한일관계, 군부 통치로 이어지는 현대사를 가상의 나라 「조국」을 무대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쿠데타로 점철된 군부 통치와 레드 콤플렉스, 이데올로기의 제도적 폭력이라는 정치적 시각이 상투적인 기법으로 강조되었다. 역동적인 집단 연기와 높은 철제 구축물 위에서 펼쳐지는 통치자의 연설, 혹은 앵무새처럼 통치자의 이념을 전파하는 방송 등을 시청각적인 기호로 스펙터클하고, 속도감 있게 표현했지만, 그 표현 수단이 새롭지도, 인상적이지도 못한 낯익은 것이었기 때문에 감흥을 주지 못했다. 그런가 하면 서사극 본래의 의도인 소외효과나 사회 교육적 기능보다는 주제와 동떨어진 오락성으로 흘렀다. 예컨대 쇼단의 선정적인 노래나 춤의 볼거리에 치중하여, 표피적인 재미에 의존하려 한 것이다. 그 결과 아이를 보호한 미선의 얘기와 군부 통치, 민중들의 반응과 재판, 쇼단의 쇼 등으로 전통과 현대적 창조정신이 결합 등 4가지 장면이 유기적인 연관 없이 파편화되어 치명적인 결합을 드러내고 있다.
연극만의 치열한 감동 창작극의 밝은 미래 예감
「숨은 물」(극단 무천·정복근 작·김아라 연출)은 우리의 전래 동요와 민요, 탈, 전통무술과 탈춤, 비옷, 음악 된 한국적인 연극을 보여 주었다. 한 현대 소년의 「아버지 찾기」라는 모티프로 시작되어 동요들에서 민족정신을 지켜 온 진정한 아버지들의 존재를 통시적으로 찾아간다는 내용이다. 현재와 역사의 이중구조는 배우들이 각각 심문자·변절자·피의자로 역할을 바꾸고 나머지 배우들은 민중의 놀이를 하면서 삼중구도로 확대된다. 무거운 주제의식을 현대적이고도 진지한 제의극 형식 속에 담아 연극 예술만이 보여줄 수 있는 치열한 감동과 제의적 일체감을 안겨 주었다. 우리 창작극의 밝은 미래를 예감케 한다.
그런가 하면 이 연극은 도둑들의 리얼한 성격 표현을 위해 거친 욕설을 거침없이 사용한다. 비속어나 욕설의 남용도 요즘 우리 연극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연극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연극은 어느 예술 장르보다도 「대사의 아름다움」과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언어에 의존하는 예술이 아닌가. 「해질녘」(윤정선 원작· 박상현 각색·연출)은 사색적인 대사와 과장 없는 진솔한 연기와 연출로 잔잔한 감동을 안겨 준 수작이다. 젊은 배우들의 노년 연기를 한 폭의 수채화처럼 맑고 아름답게 보여주었다는 데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