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교향악단의 현재와 미래
이장직 / 음악평론가·서울대강사
지난 11월 25일, EBS에서 방영한「직업의 세계」교향악단 연주자편을 보았다. 서울시향단원과 서울 심포니 음악 감독, 서울 심포니 단원 등 모두 네 명이 좌담에 참여했다. 참석한 음악인들에 의하면, 교향악단 연주자라는 전문 직업이 탄생된 것은 우리나라에서 그리 오래 되지 않았지만, 초창기에 비해 교향악단도 많아졌고, 교향악단 단원으로서의 경제적 대우나 음악적 성취도가 높아졌다고 한다.
사실 졸업 후 교향악단에 입학하는 것이 장래 희망이라고 말하는 음악대학 재학생들이 많아졌을 정도로, 교향악단은 매력적인 삶의 터전인 동시에 음악 활동의 메카가 되었다. 비교적 안정된 여건 속에서 높은 음악적 성취도를 맛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교향악단은 지휘자 한 사람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만, 교향악단 단원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가 음악적 자존심이나 개성이 강한 전문 연주가들이다.
로버트 스테빈스라는 사회학자는 프로페셔널 직업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 바 있다. 1) 이들이 만들어 내는 제품은 규격화, 표준화 된 것이 아니다. 2) 전문 기술에 대한 광범위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다. 3) 동료들과 일체감을 갖는다. 4) 교육이나 훈련을 위해 제도화된 장치를 사용한다. 5) 물질적 보상보다는 높은 수준과 능력을 강조한다. 6) 지식·기술에 기초한 직업의 권위로 고객의 인정과 존경을 받는다.
관현악단의 본령과 거리 먼 규격화, 표준화의 타성
교향악단 단원들은 높은 음악적 기술과 교육을 소유하고 있으며, 동료 단원들과 일체감을 갖고 있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오디션에 합격한 사람만이 단원이 될 수 있으며, 일반 청중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나 교향악단 단원을 하나의 전문 직업이라고 볼 때, 스테빈스가 말하는 조건에 미달하는 것이 있다.
교향악단 단원들이 만들어 내는 「문화적 산물」이 대부분 공통 관습 시대에 속하는 고전, 낭만 음악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매우 규격화, 표준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교향악단이 연주하는 레퍼토리들은 대부분 단원들이 몇 번이고 반복해서 연주한 경험이 있는 곡들이다. 연주곡목의 표준화, 고착화는 지휘자의 권위를 더욱 높여 주는 결과를 가져오며, 각각의 단원들은 「공장 노동자」와 같은 한낱 부속품에 불과한 지위로 전락하고 만다. 따라서 전문 직업인으로서의 긍지와 보람도 좀처럼 찾아 볼 수 없다. 정기 연주회 뿐만 아니라, 청소년을 위한 협주곡의 밤이나 오페라 반주, 발레 반주에 있어서는 관현악단의 본령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인식하기 쉬운 터라 타성에 젖은 연주가 될 소지가 많다.
초창기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프리랜서에 가까운 위치였는데, 경제적인 수입은 불안정했지만, 개인적 자율성은 보장받을 수 있었다. 불안정한 경제적 수입 때문에 다양한 음악 직업들을 동시에 가질 수밖에 없었다. 레슨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80년대 이후 민간 교향악단의 창단 러시와 함께 교향악단이 전문화, 직업화됨에 따라 처우도 개선되었고, 연주 일정도 매우 바빠졌다. 따라서 연습 시간도 많이 필요하게 되었고, 전에 비해 연주자 개인의 자유시간이 많이 줄어들었으며, 대학 교수를 비롯한 겸업이 금지되었다.
연주 활동도 빈번해졌고 연주 기량도 월등히 향상되었지만, 이들이 연주하는 레퍼토리는 10년 전과 매한가지이다. 음악가가 아닌 전문 경영인이 악단을 운영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음악가들은 자신이 연주하는 파트 이외의 사항에 대해서는 아무런 결정권도 갖지 못한다. 단원들끼리 소규모 앙상블을 조직하여 자비를 들여서까지 실내악 활동을 하고 있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교향악단에서 잃어버린 음악적 자율성을 되찾으려는 몸부림으로 해석된다.
최근 10년 간 창단 붐이 일고 있는 신간 교향악단의 경우 몇 가지 문제점이 지적되어 왔는데, 가령 단원들의 두드러진 여성화 현상, 지휘자의 부재, 미약한 재정 자립도, 연습실 확보와 운영, 단원 확보 및 처우 개선 등이 그것이다. 재정난 때문에 정기 연주회보다 특별 연주회(청소년 음악회, 협주곡의 밤, 오페라 반주, 발레 반주)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물론 정기 연주회 이외의 다양한 특별 연주회 프로그램도 음악계에서 교향악단이 감당해야 할 사명이기도 하다).
현재 민간 교향악단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손꼽히고 있는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음악 감독 홍연택)는 85년 3월 30일에 창단 된 이래 맨투맨식 매표 작전으로 80% 이상의 객석 점유율을 보이고 있으며, 국립극장의 오페라, 발레, 합창의 반주를 전담하여 맡아 주는 조건으로 2억 이상의 개런티와 전용 연습실을 배정 받고, 쌍용그룹에서 연간 3억 원, 공익자금에서 1억 원의 보조를 받고 있다. 이외에도 최근 3년간 계속된 찬송가 전곡 CD 레코딩 등 경영의 다각화를 꾀하고 있다. 연간 7회의 정기 연주회 외에도 청소년 음악회, 오페라의 발레 반주 등의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서울 심포니 오케스트라(음악 감독 이진원)는 1982년 순수 민간 차원 오케스트라로 발족한 후, 1990년 4월 10일 직업 교향악단으로 재창단 되었으며 현재 (주)쌍방울의 후원을 받고 있다. 정기 연주회 외에 오페라 반주, 무용 음악, 뮤지컬, 영화음악에 종사하고 있으며, 정기 연주회 연간 14회를 비롯하여 월 평균 4∼5회의 바쁜 연주 일정을 보내고 있다. 92년의 특징적인 공연으로는 3월 6일의 교향악 축제, 4월 4일의 팝스 콘서트, 6월 13일의 글로리아 오페라단 창단 갈라 콘서트, 그리고 두 차례의 청소년을 위한 무료 음악회(예술의 전당 주최) 등이 있었다. 예술의 전당에 전용연습실을 두고, 예술의 전당의 기획 공연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서울 아카데미 심포니(음악 감독 장일남)는 1985년에 조직되어 그 동안 오페라 반주와 방송 활동에만 주력했던 서울 아카데미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발전적으로 해체, l988년 8월 18일 재창단한 악단이다. 성동구민회관에 연습실을 두고 있으며, 1년에 10회 내외의 정기 연주회, 나머지 20회 내외는 특별 연주회로 충당하고 있다. 92년의 특징적인 공연으로는 오라트리오 합창단 천지창조 연주회(6. 1), 생상 이벤트(6. 25), 사랑의 칸초네(7. 11), 소프라노 황영금 독창 회(8. 27) 등이 있었다.
민간 교향악단 활성화로 관료화, 조직화 벗어날 때
이외에 최근에 창단 된 민간 오케스트라로는 서울 아트 오케스트라, 뉴 서울 오케스트라, 한국 심포니 오케스트라, 서울 팝스 오케스트라, 서울 로얄 심포니 오케스트라, 월드 심포니 오케스트라, 그랜드 교향악단 등이 있는데, 92년 한해 동안 정기 연주회를 각각 3회, 2회, 5회, 4회, 3회, 1회, 1회씩 개최했다.
신생 오케스트라들은 1년에 1∼5회의 정기 연주회의 실적을 쌓기에도 힘겨운 발걸음을 계속하고 있으며, 비교적 오랫동안 경험과 실력을 쌓아 온 3개 교향악단의 경우는 연주 일정이나 활동 면에서 보면 전문 직업 교향악단이라고 할 수 있는데 기업의 후원에도 불구하고 청소년을 위한 협주곡의 밤을 자주 개최함으로써 교향악단의 정기 연주회보다는 반주 악단으로서의 활동에서 오는 재정적 수입으로 힘겹게 운영 해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협주곡의 밤이나 가곡과 아리아의 밤에 출연하는 것보다 차라리 발레나 오페라 반주를 맡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서 청중을 위한 야외 음악회나 실내악 연주회, 방송 출연 등의 다각적인 활동을 통해 민간 교향악단 특유의 기동성과 운영의 묘를 살린다면, 국·공립 오케스트라보다 더 많은 활동의 여지가 있으리라 본다.
최근 5년 동안 민간 오케스트라의 눈부신 활약으로 국내 음악계의 모습이 판이하게 달라진 것이 사실이다. 앞으로 살려야 할 민간 교향악단의 특수성과 장점에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민간 교향악단이 애초에 지나친 음악 인력의 공급으로 불가피하게 탄생된 것이든 아니든 간에, 이 고급 인력을 활용하여 음악계를 살찌우고 음악 청중을 위해 어떻게 봉사할 것인가에 대해서 말이다. 현대사회의 모든 부문의 직업이 관료화, 조직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민간 교향악단은 『음악가의「프롤레타리아화」』를 방지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