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작품의 재구성에 관한 문제
문애령 / 무용평론가
20여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고전발레 즉, 서양 발레단의 전통 춤 레퍼토리를 구경하기란 불가능했다. 그 이유는 테크닉을 보유한 많은 수의 무용가들이 없었다는 것이지만 보다 큰 원인은 서양 춤의 전수자가 없었다는 데 있다. 발레의 기본 동작이야 한 두 해 유학으로 얼추 감이 잡힐 수도 있지만 공연을 위한 작품은 직접 참여하지 않고는 어렴풋한 흉내내기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사실, 다시 말해 개인의 머리에서 또 다른 개인의 머리로, 혹은 몸에서 몸으로 습득되는 무용의 생리가 그 원인이다.
뿌리 없는 공연의 증가 발레사 20년 무색
20년 전의 이 목마른 상황을 타파한 최초의 인물도 일본에서 클래식 발레 공연 경험을 쌓고 돌아와 국립발레단의 단장이 된 임성남 이었다. 그의 경험과 무용계의 자각이 일치되면서 우리는 작품 전수자와 연기자가 확보된 상황을 맞게 된다. 「공기의 정(72년)」,「백조의 호수2막(74년)」,「지젤 2막(75년)」 등 전막 공연은 아니지만 클래식 발레의 맛을 보게 된 것이다.
오늘의 시점에서 본다면, 특히 유니버설 발레단이 창단 되면서 우리 무용계가 보유한 고전발레 작품 현황은 그리 나쁜편이 아니다. 유명한 안무자를 초청하고 공연권을 획득한 레퍼토리의 확장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무용의 생리에 따른 전달방식이라 관례적 전달방식으로 더디지만 제대로 전수하고 받는 전통에 우리도 합류하게 되었음을 입증한다.
그러나 국립과 유니버설이 다져 놓은 이러한 순리에 따른 레퍼토리 확보와는 달리 이들의 확장 작업과 때를 같이한 뿌리 없는 공연이 증가한, 20년 전과 상반되는 상황이 벌어져 문제가 되고 있다. 그 원인은 무용의 생리를 어느 정도 극복할 능력을 부여한 비디오 테이프와 동작의 흉내내기가 곧 무용이라는 잘못된 인식에서 찾을 수 있다. 외국 무용단체가 제작한 비디오 테이프를 보고 그대로 복사한 공연이 아무 거리낌없이 무대에 오르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타인의 작품을 재구성할 때 생기는 뿌리의 유·무에 대한 문제는, 재구성한 안무자의 적법성과 직결된다. 예를 들면, 베자르 작품에 출현해 보지 않고 심지어는 그의 제자가 지도하는 발레 클래스 마저 한번 받아 보지 않은 사람이 베자르의 작품을 재구성·공연한다면 분명 적법성을 주장하기 어려운 것과 같다. 물론 베자르에게 그의 작품이 공연된다는 통보도 한 적이 없고 허락을 받은 적도 없이 슬쩍 해치우는 식이다.
아직은 춤 공연이 수익성이 없는 우리 현실에서야 악의 없는 행위로 봐 줄 수 있고 발레 연구의 차원에서 눈감을 수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부도덕한 면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한영숙의 「살풀이」나 김매자의 「춤본」이 유럽 어디에서 공연되었다면, 그것도 그 춤의 정신이나 기본자세를 전혀 수용하지 못한 어느 유럽인의 행위였다면 즐거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즐겁지 못한 행위들을 우리가 너무 쉽게 해 왔는데 국립과 유니버설 발레가 아닌 모든 공연에서의 작품들 「세레나데」,「고집장이 딸」,「라 실리드」.「라 바야데르」,「시편 교향곡」,「볼레로」,「지젤」,「파키타」 등등 개인 차원의 공연이 그에 속한다. 어느 누구 도 원칙을 지킬 만한 여건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공연을 치러냈기 때문인데 첫째로는 그 공연 규모가 개인의 경제적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이고, 두 번째로는 명작을 연기할 전문인을 거느릴 수 없다는 데 있다.
클래식 발레 유입경로 도제교육이 기본
클래식 발레가 유입·공연되는 경로는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우선 도제 교육을 받은 사람에 의한 것이라야 한다. 인간의 기억력에 의존도가 큰 만큼 전수자에 의한 공연도 어떤 형태로든 변형이 초래되는데 하물며 경험해 보지 않은 행위를 모방한다는 것은 더 이상 언급할 이유가 없다. 전수자의 경우도 불완전한 기억력 때문에 빠(Pas:스텝)가 바뀌기도 하고 연기자의 기량을 가미한 변형을 시도하기도 한다.
「백조의 호수」 3막으로 유명한 32번의 푸에떼 뚜르(fouettés tpurs : 제자리에서 다리를 채찍처럼 감는 회전)가 무대를 선회하는 삐께 뚜르(piqućs tpurs : 다리를 찍으며 이동하는 회전)로 대치되고, 키가 작은 페르디난도 부오네스의 파트너 신시아 그레고리는 어깨 위에 올라앉는 대신 서서 포즈를 취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설명으로 이해·전달되는 감정 처리의 문제가 도제 교육의 에센스라는 데 있다. 「잠자는 미녀」에서 꽃을 던지는 공주의 기분이 어떤 상태인지는 아무리 춤을 흉내내어도 전수자를 따라잡을 수 없는 것과 같다. 인위적인 또 다른 변형은 전수자의 창의력을 가미해 춤의 배열이나 출연자의 구성, 심지어 내용까지 변화시키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도 원작의 아름다움을 보다 좋은 방향으로 이끌 목적이 우선된다. 소위 말하는 버전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선배 안무가의 계보를 밝힘으로써 자신의 적법성을 인정받는 동시에 그 전통을 재해석한 창의력을 평가받게 된다.
국립발레단의 경우, 초창기에는 임성남·백성규·아리마 고로처럼 일본으로부터의 계승에서, 79년에는 독일의 마르티니, 81년에는 미국의 토비아스, 91년에는 러시아의 콘드라체바, 92년에는 러시아의 에이프만 순으로 그 영역을 넓혀갔다. 그리고 이들 안무자들이 국립발레단에 남긴 작품은 국립발레단의 영원한 레퍼토리가 될 권리로 남아 있다. 특히 임성남 단장의 퇴임 공연(12월 10∼13 국립극장 대극장)작품으로 선정된「호두까기인형」은 77년 아리마 고로의 안무로 국립발레단 레퍼토리에 포함된 후, 10회가 넘는 공연 횟수를 기록했다. 매년 크리스마스 때면 어린이를 위한 발레로 각광받는 이 동화를 발레 작품의 재구성 측면에서 본다면 임성남의 버전은 어린이의 세계를 충분히 수용하지는 못한 것 같다.
대본에서부터「호두까기인형」은 온통 상상의 세계다. 태엽 감은 인형들이 튀어나와 춤을 추고, 쥐가 커져서 왕자가 된다. 눈이 내릴 때는 눈의 요정들이, 바다에서는 바다의 요정들이 춤을 춘다. 또 과자의 나라에서는 초콜릿, 커피, 차의 맛을 각기 스페인 춤과 아라비아 춤과 중국 춤으로 꾸며 놓았다.
아나부끼 다까시의 무대장치로 많은 효과를 얻은 임성남의 「호두까기인형」은 절도 있는 혹은 끊어지는 움직임과 구성이란 느낌이다. 이런 이유로 무대에 긴장이 감돌았고 객석까지 전달되었다. 특히 봄의 왈츠에서 보여야 할 환상적인 분위기가 약했고, 최태지와 문병남이 보여준 그랑 빠 드 되(grand pas de deux : 각자의 솔로가 포함된 2인무)는 불안했다. 풀려서 녹아 내리는 즐거움이 절정에 달해야 할 장면이었다는 생각이다.
또, 과자의 나라에서 보여주는 춤의 화려함이 「호두까기인형」의 특징임에도 불구하고 무대 장치나 출연진이 너무 약했고 모든 춤이 맛있어 보이는 과자라는 인상을 주지는 못했다. 재정상 여건이나 출연진 규모에서 역부족이었을지 모르나 아쉬움은 그래도 남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10여 년이 넘는 공연의 전통에 어울린 노련함도 발견되었다. 드럿셀 마이어의 요술 상자에서 튀어나온 인형들, 손미경·박상철은 재미있는 웃음을 선사했고, 불피리의 한성희는 귀여운 어린이의 모습과 동화되었다. 눈의 나라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왕자나 공주의 모습은 꿈꾸는 클라라의 부푼 가슴을 느끼게 한 연출이었고, 눈의 요정들이 사용한 소품은 하늘을 나는 눈송이의 효과를 냈다.
이처럼 전수자와 버전을 동시에 제시하는 공연이야말로 안무하는 발레 공연들 중 우리가 선택할 가치가 있음은 물론이다. 민간단체에서 한국 초연임을 강조하며 무대에 올리는 작품들이 비디오 테이프에 의한 것이 아닌 진정한 전수라면 그 또한 가치를 찾을 수 있겠으나 현실적으로 그러한 예는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작품 복제보다 창작품이 절실히 필요하다
우리 무용계에서 비디오에 의한 재구성이 시작된 지는 10여 년 전의 일이고 이제는 상식처럼 저항 없이 행해지고 있다. 이는 곧 복사할 대상이 10여 년 전부터 일반화되었다는 사실과 맞물린다. 또 외국에서 공연을 보고 와서 그 공연을 복사하다시피 한 창작 공연이 사라졌다는 사실과도 맞물린다. 무용계의 치부를 드러낸 것 같아 참으로 부끄럽다.
어쨌든, 이제는 원작자의 동의 없는 복사판 공연을 자제해야겠다. 혹자는 그 긍정적 측면을 강조할지 모른다. 외국에 가서야 볼 수 있는 공연을 어느 한 무용가가 스텝을 찾아 보여주니 작품 수용의 폭이 넓어지지 않느냐는 것이다. 또 비록 그 에센스는 놓쳤더라도 같은 음악에, 비슷한 무대장치와 비슷한 움직임을 보는 것이 못 보는 것보다는 낫지 않느냐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 무용계가 급속한 성장을 이룬 것은 이런 시각에 의한 추진력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 무용계가 양적 팽창은 왕성한데 질적 향상은 미비하다는 자아비판을 하는 원인일지도 모른다. 외국 서적의 복사 판매나 번역본 판권의 문제처럼 만일 우리가 그 공연으로 수입을 얻게 된다면 국제공연법에 저촉되는 행위라는 생각이 든다.
외국 작품 무대화는 원작자 직접 안무가 최상
외국 작품을 무대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도 원작자의 안무를 직접 받는 것이고 그가 사망한 후라면 그 공연권이 있는 단체로부터 전수를 받아야 마땅하다. 만일 그러한 여건이 되지 않는다면 스스로 연구하고 감상하는 차원을 넘어서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 음악을 구하지 못해 비디오에서 따온 잡음 섞인 연주에 박수 소리까지 들리는 무용 음악이 사라지게 될 것 같다.
이제 우리도 하나를 춤추고 보더라고 「진짜」를 찾을 단계에 접어들었다. 전통의 맥이 느껴지는 발레, 안무자의 욕구가 느껴지는 무용이 필요하다. 그래서 대규모의 공연이 가능한 직업 발레단의 레퍼토리 확보가 절실해 지고 그 책임이 무거워지는 것이다. 또 개인 활동을 하는 무용가들에게는 비디오 테이프가 지닌 가장 큰 악영향의 여파로 나타난 작품 복제보다는 자신의 창작품이 보다 가치 있는 것임을 말해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