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무용인을 위해 살겠습니다"
정은혜 / 한국무용가·경희대강사
30년만의 세대 교체로 신선한 변화와 기대를 모으고 있는 조흥동씨를 만났다. 장충동 남산 언덕 국립극장 내 국립무용단 연습실은 장고를 맨 남녀 단원으로 꽉 메워져 있었고 그 춤추는 열기는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조 단장의 실연과 훈련에 긴장되어 있던 단원들은, 장고 채를 잘못 뽑는 것을 지적하는 단장의 흉내에 와르르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정은혜-먼저 축하드립니다. 국립무용단에 입단은 언제 하셨고 몇 년만에 단장직에 입성(?)하셨습니까 ?
조흥동-1962년 제1회 국립무용단 공연에 참가하였고 다시 1980년 평단원으로 입단하였으니 12년만의 일입니다. 그 당시 나이 40에 조흥동이 국립무용단 신규 단원 모집에 응시한 것은 충격적이라고 하였습니다. 요즘도 그 충격적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 생각합니다. 아마 나이 40에 평단원으로 국립에 들어간 용기가 충격적이라는 뜻이겠지요. 그때 내 제자들이 단원으로 있었으니까……. 그 후 1년만에 지도위원을 맡았어요.
정은혜-작년에는 춤의 해 운영위원장으로 고생과 보람도 많으셨지요. 또 새로운 시대에 큰 중책을 맡으셨는데 앞으로 무용단을 이끌어갈 방향과 포부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조흥동-내가 단장이 되어서 새로워져야 할 것도 있겠지만 송범 단장이 그 동안 단원의 위계 질서나 훈련 교육, 단원 기량 확보 등을 너무나 잘해 오셨기 때문에 저는 그대로 키워나갈 생각입니다. 단장으로서의 포부라면 세계 속의 무용단으로 성장시키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도 이제 소련의 볼쇼이나 영국의 로얄처럼 세계적인 이름을 얻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리고 우리 춤의 뿌리인 민속 전통 무용에서부터 신무용, 궁중정제에 이르기까지 원로 무용가들의 모든 무용을 보존 연희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고 생각되어 국립 나름대로 비디오 촬영이나 실연 전수, 무보작업 등을 통해 모든 한국 무용의 원류를 잡아나가는 작업을 하겠습니다. 이것은 문화부에서도 해야 할 작업이 되겠지만…….
그리고 국립은 원로 단원과 신규 단원의 나이 차가 20년 정도나 돼서 엄마와 딸 같은 정도가 됩니다. 앞으로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단원 관리에 있어서 조금은 정리가 필요하고 새로운 얼굴을 많이 확보 할 생각입니다.
정은혜-국립무용단이 세계적인 무대를 지향하자면 우선 다양한 주제의 레퍼토리의 확보가 필요하다 생각되어지는데 어떤 계획을 갖고 있으신지요 ?
조흥동-국립은 이제 새로운 레퍼토리를 위해 총매진해야 합니다. 국립극장에서 대본 응모를 통해 좋은 작품을 선정, 작품화하고 있지만 더욱 많은 창구를 오픈 하여 더욱 질 높은 작품을 만들 계획입니다. 지원도 충분하고 단원 기량도 확보되어 있으니 국적 있는 한국춤으로 그야말로 우리 민족의 숨결이 담긴 창조적인 예술 작품을 탄생시킬 것입니다.
정은혜-언젠가 한 평론가가 국·시립 단체들에 관해, 일반의 이미 공연 발표된 훌륭한 수작들을 수용(저작권을 확보)하여 국·시립의 레퍼토리로 활용하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을 하는 것을 들었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이십니까 ?
조흥동-물론 좋은 생각입니다. 이 시대를 대변하고 이 시대에 맞는 훌륭한 작품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빼어난 작품들을 찾아내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요.
정은혜-국립무용단은 그 동안 무용극 위주의 작품을 지향했는데 앞으로의 작품 성격이나 개성, 작품 방향을 어떤 쪽으로 생각하고 계신 지요
조흥동-나는 아직 우리 나라에 무용극이 뿌리내리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무용극으로서는 너무나 어려운 주제와 복잡한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누구나 무용만으로 이해 할 수 있는 무용극을 만들어야 하고 음악 대본·의상·장치·조명 등 모든 점에서 최상의 무용극으로 발전시켜야 하며 또한 춤의 기법에 있어서도 한국 무용의 흐름을 올바로 잡아가는 무용극으로 발전시키고자 합니다.
정은혜-국립무용단이 일반 대중에 공헌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이나 적극적인 공연 계획도 세우고 계신 지요 ?
조흥동-생동감 있게 살아 움직이는 무용단으로 지방 공연을 적극적으로 펼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소품 위주의 프로그램을 마련해서 문화면에 소외된 지역주민들에게 국립의 격조 높은 예술 작품을 보여 주고 싶습니다. 공연에는 보는 점과 느끼는 점이 모두 다르겠지만 시·도·읍·면까지 다 섭렵해서 공연할 것입니다.
정은혜-무용가들에게 국립무용단의 작품을 안무한다는 것은 하나의 커다란 꿈인데 작품 창작에 있어 앞으로 객원 안무가를 초청하는 기준은 어디에 두실 계획입니까 ?
조흥동-국립은 보수성이 짙은 곳입니다. 모험을 싫어하지요. 그 동안도 원로 무용가들은 인정하고 환영하였지만 중견에게는 기회가 없었습니다. 많은 중견 무용가들과 신세대 무용가들도 참여할 수 있는 기회도 확보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국립 단원들 중에도 예리한 창작 력을 갖춘 단원들에게도 기회를 주어야지요.
정은혜-단장을 위시하여 모든 단원이 한마음으로 뭉쳐 좋은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해 배를 띄워야 할 텐데 단체 화합의 장을 위해 어떤 점에 중점을 두시겠습니까 ?
조흥동-우리 단원들을 내가 부임하면서 처음 만났다면 서로 긴장하겠지만 계속 함께 생활해 왔기 때문에 모두 편안합니다. 그러나 단체 운영에 있어 친목은 가장 큰 과제입니다. 모든 문제를 대화로써 풀어나갈 생각이고 누구누구 제자이기 때문에 하는 편파적이거나 오해가 없는 공정한 운영에 힘쓸 것입니다.
정은혜-무용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이 되겠는데 선생님께서는 왜 춤을 추셨습니까 ? 선생님이 예술에 있어 중요한 사상이나 철학 정신은 무엇입니까 ?
조흥동-신기 때문에 춤을 추고 있고 춤을 추지 않았으면 박수무당이 되었을 겁니다. 내 예술 기법은 내면 깊숙이 숨어있는 오장육부 속에서 끓어 나오는 영혼의 호흡과 맥에 근거하여 운용해 나가는 것이고 전통을 기초로 창작의 개념을 깨우치는 것이 곧 나의 예술 정신입니다.
정은혜-앞으로 구체적인 계획이나 새로운 생각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조흥동-이제부터는 후배 무용인들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후배들의 공연에는 빠짐없이 참석할 생각이고 그들을 위해 진정한 평을 써 줄 계획입니다. 입에 발린 칭찬은 1년이 못 가지만 올바른 비판은 10년을 간다고 합니다.
정은혜-젊은 무용가나 무용학도들에게 당부하시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조흥동-보고 있지 않는 것 같지만 다 보고 있고, 모르고 있는 것 같지만 다 알고 있는 것이 세상 만사입니다. 표리부동한 태도로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은 길지 못하고 자기 직분에 충실하고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길이 열린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예술인으로써 예도에 어긋나지 않는 태도를 지니기를 바랍니다.
정은혜-가족사항은 ?
조흥동-중매로 만나 결혼하였고 대학 2년에 군대 다녀온 큰아들과 대학에 다시 도전하는 큰 딸, 고 2년에 다니는 작은딸이 있습니다. 집사람은 지금도 나를 가정을 버린 사람처럼 간주하고 있어요. 이제는 단장도 되었으니 새벽부터 나가서 밤늦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지 않느냐고 잡아끕니다. 그러나 집사람의 깊은 사랑과 이해로, 또 부모님의 극진하신 은공으로 오늘의 내가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정은혜-한 사람의 무용인으로서, 또 단장으로서 실현하고 싶은 꿈이 있으시다면 ?
조흥동-불후의 명작을 남기는 것이 예술가의 꿈이죠. 소품이건 대작이건 후대에까지 전해주고 싶고, 남북 예술 교류에 대비하여 국립·시립·서울예술단 등 여러 단체가 함께 모여 북한의 집단 예술이나 집체 예술을 능가하는 대규모의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장은혜-긴 시간 동안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앞날에 더욱 큰 축복이 깃드시고, 건강하심으로 국립무용단을 열정적으로 이끌어 꼭 성공적인 훌륭한 단장으로 남으시길 바랍니다.
조흥동-고맙습니다. 여러 무용인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애정과 채찍으로 지켜봐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