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르포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실제적 지원책이 아쉽다




노희운 / 자유기고가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한 나라와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가늠할 때 흔히 지적되는 대상이다. 이들은 문화가 집적된 시설로서 그 나라와 민족의 문화적 전통과 미래를 예측해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 나라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가능한 한 많이 확보해 내실 있는 운영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그 숫자의 많고 적음에 따라 문화 선진국과 후진국을 구분하기도 한다.

통계에 따르면 국내의 박물관 수는 1992년 6월 현재 미술관·식물원·동물원·수족관 등을 포함해 일정 규모와 시설을 갖춘 곳은 1백 42개로 나타난다. 인구 28만 명당 1개꼴이므로 인구 4만 명당 1개꼴인 유럽의 박물관 수를 감안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다.

경제적 발전에 뒤이은 활발한 각종 문화 활동과 시설 확충 등으로 국민의 문화 향수권이 상당히 신장되었으나, 선진국에 비하면 여전히 개선의 여지가 많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1991년 제정되어 지난 해 6월부터 시행되기 시작한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은 이와 같은 현실을 배경으로 박물관 및 미술관 활동을 진흥시키기 위해 마련되었다.

현행 박물관 및 미술관 등록 기준

동물원, 식물원, 수족관은 제외

구 분

박물관 및 미술관자료

전문직원

시 설

종합박물관


각 분야별 1백 점 이상


각 분야별

1인 이상

1.각 분야별 전문 박물관과 동일한 전 시 면적

2. 수장고

3. 작업실 또는 준비실

4. 사무실 또는 연구실

5. 자료실, 도서실, 강당 중 1개 시설

전문박물관



1백 점 이상



1인 이상



1. 1백 평방미터 이상의 전시실 또는 2천 평방미터 이상의 야외 전시장

2. 수장고

3. 사무실 또는 연구실

4. 자료실, 도서실, 강당 중 1개 시설

미 술 관

1 백 점 이상

1인 이상

전문 박물관과 동일



그 이전의 박물관 관련법으로는 1984년 '박물관 법'을 제정, 박물관에 대해 문화 교육 공간으로서의 역할에 필요한 일정요건을 갖추어 등록토록 했다. 그러나 이 법은 등록에 따른 혜택이 없는 데다 등록 요건이 까다롭고, 개인 소장가들이 소장품 노출에 따른 과세 등을 우려해 등록을 기피하는 부작용을 빚었다.

'박물관 법'은 박물관 소장 자료에 대한 공개념화와 문화 교육 활성화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폐지되기 전인 1992년 5월말까지 등록 박물관 16개, 준 박물관 시설 32개 등록 또는 지정된 박물관이 48개에 불과했다. 지원보다는 규제가 많았던 이 법은 결과적으로 박물관 신설을 막는 장애물 역할을 했던 것이다.

관련법의 현주소

1991년 제정되어 지난 해 6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은 '박물관 법'이 안고 있던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 박물관 및 미술관의 설립과 등록을 유도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새로 제정된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은 박물관 및 미술관 설립 절차와 등록 요건을 간소화하는 한편, 세금 혜택 규정 등 지원책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첫째, 지방자치단체나 비영리 법인이 설립, 운영하는 '박물관 법' 상의 박물관 범위를 개인, 기업 등이 설립, 운영하는 박물관 및 미술관으로 확대해 등록이 가능토록 했다.

둘째, 등록 요건을 완화하여 박물관 및 미술관의 등록을 유도하고 있다. 그 동안 박물관으로 일괄 규정되어 있던 개념을 세분화해서, 서로 다른 2개 분야 이상의 박물관 자료를 취급하는 종합 박물관, 역사, 과학, 산업, 민속 및 향토사료 등 특정 분야의 박물관 자료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전문 박물관, 미술관 등으로 구분했다.

등록 기준은 전문 박물관의 경우 2천 평방미터 이상의 야외 전시장 규정이 신설되었으며, 작업실 및 연구실 등의 사무실 규정을 3개에서 2개로 완화했다. 종합 박물관은 전문 박물관과 동일하나 수장고를 필수적으로 확보하고 작업실, 연구실 등 3개를 설치해야 하는 점이 다르다.

신설된 미술관 규정은 작품 1백 점 이상을 확보하고 전문 직원은 1인 이상 이상을 두며, 시설 기준은 전문 박물관과 같다. 그 밖에 동물원, 식물원, 수족관 규정이 신설되었다.

그와 함께 전문 직원의 자격 요건도 바뀌었다. '박물관 법'의 규정에 박물관 관련학 이수자 외에 부전공자로서 박물관 근무 경력 1년 이상인 자가 추가되고, 전문대 이상 졸업자 가운데 박물관 관련학 이수자로 박물관 근무 경력이 1년 이상이거나 비전공자라도 박물관 근무 경력이 2년 이상이면 자격이 부여된다.

고등학교 졸업자의 경우도 박물관 근무 경력이 5년 이상에서 4년 이상으로 완화되었고, 기타 박물관 근무 경력 5년 이상인 자에게도 전문 직원 자격 요건을 부여한다.

셋째, 세제 및 설립 절차상의 지원 제도를 강화해 그 설립을 촉진토록 했다. 우선 세제면에서 등록된 자료를 매매나 양도 등으로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인출하거나 소속 박물관 및 미술관이 등록 취소 또는 폐관될 때까지 상속세 및 증여세의 징수를 유예한다. 또한 등록한 박물관 및 미술관 시설에 대한 각종 지방세가 면제되며, 농지나 산지를 전용하여 박물관 및 미술관을 건립하는 경우 농지 및 산지 전용 부담금이 면제된다. 그 밖에 전기료 할인 규정이 신설되었다.

사립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건립하고자 할 때는 문화부에 설립 계획 신청을 요청하면, 토지 이용 및 건축에 필요한 각종 인·허가를 문화부에서 소관 행정 기관과 협의해 일괄 처리토록 함으로써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건립을 쉽게 했다.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은 이와 같이 설립 요건을 완화하고 지원규정을 신설함과 아울러 박물관 및 미술관의 기능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규정을 두었다. 즉, 등록한 박물관 또는 미술관이 아니면 박물관이나 미술관이라는 명칭 사용을 금지했으며, 연간 90일 이상 하루 최소한 4시간 이상 개방하도록 했다. 형식적인 개관을 막기 위한 장치인 셈이다.

한편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이 새로 제정됨에 따라 미등록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물론, 이미 '박물관 법'에 의해 등록이 되어 있던 박물관도 등록을 서두르게 되었다. 지난해 12월까지 52개의 박물관 및 미술관이 등록을 신청해 32곳이 심의를 거쳐 등록을 마쳤다.

시행된 지 채 1년이 안된 시점에서 이 법의 실효성을 판단하는 것은 아직 이른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당초 이 법의 시행으로 기대하던 만큼의 성과는 얻지 못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듯하다. 1년으로 규정된 경과기간 가운데 8개월이 지났음에도 등록을 신청한 숫자가 1992년 문화부 측이 일정 규모와 시설을 갖춘 것으로 집계한 1백 42개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 준다.

이러한 현상은 법안이 마련될 당시부터 어느 정도 예상된 것이기도 하다. 특히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이 규정한 지원책이 상당 부분이 기업이나 개인 등 사립 박물관 및 미술관을 겨냥하고 있으나, 실제로 당사자들의 입장은 담담한 편이다.

온양민속박물관

1987년 10월 충남 온양시 권곡동에서 2만 5천여 평의 대지에 1천 9백 평 규모의 본관과 7백여 평의 부대시설을 갖추고 일반 공개를 시작한 온양민속박물관. 계몽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이 박물관은 유물의 양에서 한때 국립민속박물관보다 규모가 컸던 국내의 대표적인 민속박물관 가운데 하나며, 관람객 수도 매년 40∼50만 명에 달한다.

예술적·역사적 가치가 높은 명품보다는 선조들의 생활상을 알려주는 유물을 중심으로, 모조품을 포함 총 1만 7천여 점에 이르는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시설면에서 4개의 전시실을 갖추고 있는 등 등록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제1전시실은 한국인의 일생과 의식주 생활을 보여주고 있고, 농업과 어업, 사냥, 채집, 직조 등 여러 종류의 생산 수단을 입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제3전시실은 민속 공예, 민간 신앙과 오락, 학술 제도에 관계된 유물을 전시하고 있으며, 제4전시실은 퇴호 이정렬선생(1865∼1948) 유물관과 민화 전시실 및 특별 전시실로 쓰이고 있다.

그 밖에도 부대 시설로 60여 평의 수장고와 작업실 겸 준비실 2개 1백 72평, 사무실 겸 연구실 3개 66평 등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이 박물관은 이와 같은 외형적 규모에 비해 운영상에서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 원인은 대부분은 재정적인 면에서 연유하고 있다. 현재 이 박물관을 운명하고 있는 계몽문화재단은 다른 수익 업체를 운영하지 않고 있지 않다.

따라서 재정 수입의 대부분을 입장료, 기념품 판매, 식당 운영, 도서 판매 등으로 충당하고 있으나, 이것만으로는 대규모 시설 투자나 학예 직원 등 인력 충원과 처우 개선 등에 어려움이 있다. 당연히 1년에 1, 2개월 동안 이루어지는 특별 전시 등 현재 실시하고 있는 행사 외에는 엄두를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난 해 설립 후 최초로 3백만 원의 문예진흥기금을 지원 받은 일이 있으나, 지원 절차와 규정이 까다로워 그나마 포기한 상태다. 외부로부터의 지원은 관련 기업인 계몽사의 간헐적 보조와 6%의 전기료 할인 혜택이 전부다.

이에 따라 박물관 측에서는 가족 단위로 관람할 수 있는 부대 시설을 확충해 매년 1∼2%의 신장률을 나타내고 있는 관람객 수를 더욱 늘릴 계획이다. 그와 함께 박물관의 정적인 공간 개념에서 탈피해, 교육장 역할을 유지하되 관람객의 흥미를 돋울 위락 시설 등 유인책을 마련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온양민속박물관의 학예연구실장 배영동씨(34)는 "새로 제정된 진흥법은 이미 건립된 박물관이나 미술관에는 혜택이 거의 없다. 따라서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립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한다. 이들 시설을 육성하려면 다각도의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런 가운데도 온양민속박물관은 1988년부터 매년 1회씩 특별기획전을 갖고 있으며, 그와 관련한 연구서적도 한 권씩 발간하고 있다. 또 온양시 등 인근 지역의 학생 및 문화 단체의 요청이 있을 때마다 매년 1∼2회씩의 강연 활동도 하고 있다.

하지만 온양민속박물관처럼 법인이나 기업의 도움 없이 개인이 출연해 설립, 운영하고 있는 순수 사립 박물관의 경우는 이러한 열악한 재정 형편과 그로 인한 기능상의 장애가 더욱 심하다.

제주민속박물관

1964년 개관한 제주민속박물관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이 박물관은 개관 당시 4백 50점의 유물로 출발해 현재 1천여 평의 대지에 2백 평의 전시실을 갖추고 1만여 점의 유물과 제주 무속신상 등을 소장, 전시하고 있다. 그 중에는 1302년에 만들어진 아미타불 복장품과 중요 민속 자료급 2백 70여 건도 포함되어 있다. 소장품은 박물관장인 진성기씨가 개인적으로 40여 년에 걸쳐 수입한 것으로, 대나무, 볏짚, 돌 등으로 만들어진 서민용품이 대부분이다.

박물관 및 미술관 육성·지원 내용

구 분

근 거

지 원 내 용

토지관련

각종 인허가면제



박물관 및 진흥법

제9조 및 제10조



도시 계획법에 의한 도시 계획 사업 시행 허가

도로법에 의한 도로 공사의 시행, 유지 및 점용 허 가

수도법에 의한 전용 수도 부설 인가

허수도법에 의한 공공 하수도 공사 또는 유지 허가

농지의 보전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의한 농지전용 허가

농지 확대 개발 촉지법에 의한 농지 전용 허가

토지 구획 정리 사업에 의한 토지 형질 변경 허가

조세감면




상속세법

제8조 3항

등록한 박물관 및 미술관 자료에 대한

상속세 및 증여세 징수 유예

시·도 사회 교육

시설 면제 조례

제2조

등록한 박물관 및 미술관 시설에 대한

각종 지방세(취득세,등록세,재산세,종합토지세,

도시 계획세, 소방 공동 시설세)면제

전기료 할인

전기 공급 규정

제64조 2항

교육용 전력 요금을 신설, 적용토록해

요금 인상에서 제외 (6% 할인 효과)

전용부담금

면제

농어촌발전 특별

조치법 시행령

제52조 2항

농지를 전용해 박물관 및 미술관을 건립할

경우 농지 전용 부담금 면제


산립법 시행령

제24조 3항

산지를 전용해 박물관 및 미술관을 건립할

경우 산림 전용 부담금 면제


제주민속박물관은 제주도에 있는 박물관 가운데 가장 오랜 30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제주도의 민속 문화재를 가장 많이 보존하고 있기도 하다.

이 박물관 역시 외부의 지원이 없어 어른 1천 원, 어린이 5백 원 씩 받고 있는 입장료와 박물관장이 펴낸 20권 짜리 「제주민속문화총서」에서 나오는 수익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이와 같은 열악한 재정으로 인해 박물관의 운영도 전문 직원 없이 박물관장인 진성기씨 혼자의 힘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아직까지 유물에 대한 정확한 연대 고증이나 민속학적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매년 개관 기념일에 치르는 무속 행사를 제외하면 박물관으로서 담당해야 할 공공 기능인 사회 교육 차원의 행사는 물론, 기본적 기능의 하나인 기획전도 전무하다. 특히 어렵게 수집된 문화 유산들이 시설미비로 인해 손상될 우려마저 있는 실정이다.

이 박물관의 정상적인 운영을 가로막는 원인 가운데 하나는 불충분한 재정과 함께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에서도 찾을 수 있다. 제주도 자연사 박물관의 설립을 위해 제주시 변두리인 삼양동으로 강제 이전된 데다, 공식적인 관광 코스에서도 제외되는 등 지원보다는 규제가 많다는 것이다.

한편, 수집 및 전시 기능에 머물고 있는 사립 박물관에 비해 공립 박물관의 경우는 형편이 나아 사회 교육 기능에도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여유가 있다. 지방 자치 단체에 의해 설립되어 그 예산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광주시립민속박물관

1987년 11월 문을 연 광주 시립민속박물관은 2만 2천여 평의 대지에 7백여 평에 이르는 본관 1∼2층의 상설 전시관과 함께 기획전을 열 수 있는 3백 50평 짜리 별관 등 총 2천여 평의 현대적 시설을 갖추고 있다.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소리와 춤 등 무형 자료를 전달하기 위해 슬라이드, 전광 패널, VTR 등을 이용한 영상 시스템 등 현대적 시설도 도입하고 있다.

설립 역사가 비교적 짧은 데 비해 소장품 확보와 박물관의 공공적 기능에 충실한 편이다. 총 7천여 점의 소장품 가운데 보물 제336호인 정지장군 활심을 비롯해, 98점의 민속 자료 및 문화재 지정 유물을 확보하고 있다. 기능적인 측면에서도 1990년 일본 민속 판화전 및 광주 옛 모습 사진전, 1991년 옹기 특별전, 1992년 집 문화 특별전 등의 전시 기능과 함께 향토 민속과 관련한 학술 조사 실시, 전시 도록 및 옹기 조사 보고서 발간 등 연구 기능에 대해 꾸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시민 전통 문화 강조와 어린이 민속 교실 등을 운영해 사회 교육 기능도 확충해 나가고 있다. 향토, 기존 자료 수리, 연구, 전시 등으로 구분된 전문 직원 7명의 활동도 주목할 만하다.

그래도 현재 8억 원 정도의 한해 예산으로는 충분한 활동이 어렵다. 또 완전한 독립 체재를 갖추기 전까지는 박물관의 운영이 시 예산 편성 결과에 종속되기 때문에 일관성 있는 계획을 수립하기가 쉽지 않다.

이번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으로 확실한 법적 지위를 인정받게 된 미술관의 입장도 박물관과 비슷하다. 국내의 사립 박물관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가 재정 확충이라면, 미술관은 관람객 확보가 우선 시급한 상태다.

서울미술관

먼저 최근 들어 미술관이 갖추어 야 할 현대적 기능으로서 적극적인 기획 전시 활동이 강조되면서, 그 모범적인 예를 꼽히고 있는 서울미술관의 경우를 살펴본다.

1981년 10월 국내 최초의 사설 현대미술관으로 개관한 서울미술관은 7백 50여 평의 대지에 옥외 6백 평, 실내 1백 20평의 전시장을 갖추고 있다. 이 미술관은 국내에 한정된 창작 활동을 지양하고 세계 미술 시장을 향해 거시적이고 역동적인 미술 활동을 촉진한다는 취지에 맞는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특히 서울미술관은 수집 기능보다는 전시 및 연구 기능과 사회 교육 기능에 역점을 두고 미술관의 현대적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동향과 전망전' 등 기획전을 개최할 때는 사전에 미술 평론가로 구성된 작가 및 작품 선정 위원회를 조직해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이 미술관은 그 동안 2차례의 '동향과 전망전'을 포함해 34차례의 국내 작가전을 열었으며, 그룹전과 개인전 등 모두 26차례의 해외 작가전을 마련했다. 각국 주한 대사관이나 방송사 등과의 공동 주최 및 후원 형식으로 15차례의 기획전을 갖기도 했다.

부대 행사로는 1982년부터 매 전시기간 중 미술 관련 강연회와 심포지엄을 활발히 개최하고 있다. 그 밖에도 미술 이외의 영화 감상, 퍼포먼스, 슬라이드 상영, 음악 연주회 등 수시로 열리는 각종 공연 행사와 함께 작가와의 대담 등 꾸준히 사회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으며, 전시 기간마다 책자도 발간, 배포하고 있다.

현재 소장하고 있는 작품은 유화 30점, 판화 51점, 조각 5점, 사진 1점, 데생 8점, 기타 18점 등 1백 13점이며, 기획전이 없는 기간을 이용해 이들 작품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그러나 운영과 전시의 질적인 수준의 확보에도 불구하고, 지난 해 서울미술관의 총 관람 인원은 7천 6백여 명에 불과해 박물관의 관람객 수와 비교할 때 일반인의 호응도가 낮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이에 대해 서울미술관측은 자체적인 홍보 노력과 함께 정부 차원에서 사립 미술관에 대한 홍보 자료를 종합 발간하는 등의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은 미술관의 법적 지위를 보장하고 있을 뿐, 실제적인 지원책이 적고 세제상 혜택도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점은 대부분의 사립 미술관 관계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부분이다.

호암미술관

이에 반해 국내 최대 최고의 사립미술관으로 인정받고 있는 호암미술관을 비롯하여, 그 설립에 국내 유수의 기업이 직·간접으로 간여한 사립미술관들의 입장은 다르다. 재정과 조직 능력이 여타 순수 사립 미술관에 비해 월등히 뛰어난 것이다.

시그마르 폴케, 줄리앙 슈나벨 등 외국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상당수 소장하고 종합적인 현대미술관을 표방한 경주의 선재 미술관이나, 우수한 해외 전시 기획으로 이름난 서울의 워커힐미술관, 국보와 보물 86점을 포함해 소장품이 1만 8천여 점에 달하는 등 고미술품 컬렉션으로 성격을 잡은 용인의 호암미술관 등 경우에 따라 지역 미술과 미술관 문화의 활성화에 한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미술관 본연의 기능보다 개인 컬렉션이나 대관료 수입 등 기존 화랑 활동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사립미술관의 이러한 활발한 활동에 비해 공립 미술관의 활동은 아직도 미흡한 실정이다. 현재 서울시립미술관과 광주시립미술관이 등록을 신청했으나 두 곳 모두 지금까지 등록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1988년 8월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구 서울고 건물을 보수 개관했다. 1992년까지 바로 옆인 운동장터에 건물을 신축 할 계획이었으나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예산 부족과 서울시의 일관성 없는 방침으로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3백여 평에 이르는 6개의 전시실과 한국화 40점 등 1백 69점의 소장품을 갖추고 있지만, 학예 인원이 1명에 불과하고 상설 전시실이 마련되지 않은 형편이다. 따라서 상설전시를 대신해 1년에 한번씩 갖는 소장 작품전과 예산에 따라 비정기적으로 열리는 시민 미술 강좌를 제외하고는 주로 대관에 치중하는 등 현상 유지에 급급한 채 미술관으로서의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 때문에 이번 등록 신청에서도 보완 지시만 받고 등록이 보류되는 수모를 겪었다.

이에 비하면 현재 등록 심의중인 광주시립미술관은 형편이 나은 편이다. 1992년 8월 연건평 4천 1백 19평의 지하 3층 지상 2층 건물에 4백 36평의 6개 상설 전시실, 4백 11평이 4개 기획 전시실 등을 갖추고 개관했다. 아직 개관한지 1년이 채 안된 상태라 개관 기념전을 비롯한 몇몇 기획전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활동이 없지만, 대관과 함께 일반인 및 학생을 대상으로 한 미술교육 등 단계적으로 활동의 폭을 넓혀나갈 계획이다.

그러나 이곳 역시 1명의 학예직원으로는 자료 수집, 전시 등 다양한 행사 기획을 감당하기에는 벅차다. 예산도 5억 원에 불과해 운영 수준이 시설 규모를 따르지 못하고 있다.

학예직원 수의 경우 이번 진흥법의 규정은 그 수를 줄임으로써 개악된 측면이 강하다. 박물관이건 미술관이건 학예직원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보다 전문적인 안목을 키울 수 있는 보장책이 필요하며, 충분한 신분 보장과 대우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광주시립미술관은 현대미술관 등록을 신청하기도 했으나 등록 여부에 관계없이 광주 지역에서 일정한 문화적 역할을 수행하게 되기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필요할 것임은 분명하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기본적 기능은 수집·보관·전시·연구에 있고, 이를 통해 관람객을 계몽, 교육시키고 즐거움을 제공하는 데 있다. 근래 들어 여기에 사회 교육 기능이 더해지면서 그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교육 과정의 개발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점차 지역 문화중심지로서의 역할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지방자치 시대를 앞두고 지역의 문화 공간 역할을 담당할 공·사립 박물관 및 미술관의 조성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설립 촉진 등 구법인 '박물관 법'에 비해 진일보한 내용을 담은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이 마련된 것은 고무적인 사실이다.

그러나 진흥법의 시행에도 불구하고 앞서 살펴본 몇몇 공·사립 박물관 및 미술관을 통해 알 수 있듯 실질적인 지원이 미흡하며, 이는 저조한 등록 신청으로 이어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세제 감면 규정을 악용한 탈세나 박물관 및 미술관의 난립화·부실화를 우려하고 있기도 하다.

앞으로 박물관 및 미술관의 건립과 운영을 위한 장기 은행 융자, 운영 자금에 대한 세제 혜택을 강화하는 등 적극적인 지원책의 마련과 함께, 부실화를 방지하기 위한 철저한 심의·감시가 필요한 것이다.

아울러 실질적인 지원이 가능할 정도로 문화 부문 예산을 확충하려는 노력도 새로 마련된 이 법의 실효성을 좌우할 중요한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