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의 현장

뮤지컬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김우옥 / 연출가·서울예전 교수

나는 1983년부터 1989년까지 6년 동안 크고 작은 뮤지컬 아홉 편을 연출했다.

내가 뮤지컬을 연출하게 된 것은 뮤지컬에 대하여 특별한 지식이나 경험이 있어서가 아니다. 평소에 노래를 좋아하고 춤추기를 좋아하지만 그런 이유로 뮤지컬을 연출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오랜 뉴욕 생활 중 여러 편의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보았고 지금도 뉴욕에 가면 의례 적어도 한두 편의 뮤지컬을 보지만 그런 관극 체험 때문에 뮤지컬을 연출한 것도 아니다. 연극을 재미있게 풀고 관객과 아주 가깝게 접촉을 하기 위해 뮤지컬의 형식을 택한 것이다. 그리고 명색이 연극 연출가이기 때문에 뮤지컬에서도 연출이라는 직책을 수행한 것뿐이다.

우리 뮤지컬의 큰 문제 '전문성 결여'

그러나 뮤지컬을 연출하면서 곧 부딪힌 것은 음악과 안무에 대한 나의 무지이다. 평소에 음악과 춤을 좋아한다는 취미 차원의 감각이 아니라 연극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의 음악과 춤을 설계, 구사, 통제할 수 있는 전문적 지식과 경험이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무력한 연출가를 만드는가 하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하나의 뮤지컬 대본을 놓고 토의를 할 때에 극적 사건의 추이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감정을 적절히 표현하기 위해 정확히 어떤 곡조의 노래나 음악이 들어가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요구하지 못한 채 막연한 감각을 앞세워 분위기나 설명하면서 음악을 요구하는 정도의 실력이 딱하게 느껴지곤 하였다.

안무도 마찬가지다. 작곡된 음악을 들으면서 그 곡 속에 담긴 감정을 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어떤 동작이나 몸짓, 그리고 자세가 필요한지가 구체적으로 떠올라야 하는데 이 분야도 역시 막연한 설명밖에 할 수 없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그러니까 고작 할 수 있다는 것이 안무자가 다 만들어 놓은 춤을 보고 수정 요구나 하고 있으니 안무자도 곤욕스러울 수밖에 없다.

물론 연출자가 모든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을 필요는 없다. 작곡자나 안무자 같은 전문인을 따로 고용해서 작품을 만드니까 연출자는 전체적인 방향을 정해주고 그 쪽 방향으로 잘 가도록 격려를 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뮤지컬의 경우는 음악과 춤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그러한 전체적인 방향 설정을 하는 정도로는 어림없다는 생각을 해 왔다.

연출자로서 나 스스로가 전문성이 없다는 사실에 무력감을 가졌다는 이야기를 하였지만 전문성에 관한 한 뮤지컬에 관련하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전문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우리 나라에서 뮤지컬 대본을 쓰는 전문 작가가 몇 명이나 되는가 ? 체질적으로도 뮤지컬을 싫어하면서도 돈과 기회 때문에 생전 처음 뮤지컬 대본을 쓰고는 어쩌면 다시는 뮤지컬 대본을 쓰지 않는 경우가 하나 둘이 아니다. 뮤지컬의 성격과 심리를 잘 파악하고 뮤지컬의 변천 과정을 두루 알면서 무엇보다도 뮤지컬에 애정을 가진 사람이 정성 들여 써도 성공할까 말까 한 판에 일반 희곡을 쓰다가 마구잡이로, 그리고 소경 코끼리 더듬듯 막연한 감각으로 써 대는 뮤지컬 대본이 어떨지는 너무 뻔하다.

위에서 작곡자와 안무자의 이야기를 잠깐 하였지만 이 분야도 마찬가지다. 우리 나라에서 뮤지컬을 작곡하고 안무하는 사람들 중에서 뮤지컬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나 경험을 갖고 작업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이거나 거의 전무한 편이며 본업으로 다른 쪽, 다시 말하면 대중 가 요 작곡이라든지, 음악 교육이라든지 고전무용이나 현대무용 안무 등의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이 뮤지컬 작업을 위해 잠시 나들이를 하는 형식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와 같은 우발적인 작업 방식은 뮤지컬의 지속적인 발전을 가져오는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누군가가 집요하게 끊임없는 작업을 통하여 우리 뮤지컬의 새로운 수준을 쌓고 그것을 다시 갱신하는 반복적인, 그리고 전문적인 작업을 하지 않고는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의 발전이란 기대하기 어렵다.

전문성이란 점에 있어 가장 심각한 것은 연기자의 문제일 것이다. 연극에 있어서 궁극적인 표현은 배우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작가의 의도가 좋고 연출자의 상상이 뛰어난다 하더라도 배우가 신통치 않으면 모든 것이 다 소용이 없는 것이다. 더욱이 뮤지컬의 경우 배우의 대사나 움직임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배우의 가창력과 율동술이 기본적인 연기력 이외에 필수적으로 요구되기 때문에 노래에 대한, 그리고 춤에 대한 전문적인 숙련과 재능이 없이는 뮤지컬이란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뮤지컬 배우는 어떤가 ? 우리 뮤지컬의 역사가 일천하기 때문에, 그리고 뮤지컬 배우를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기관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일반 연극을 하던 배우들이 곧바로 뮤지컬에 참여하여 연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연기력은 좋은지 모르지만 뮤지컬은 연기력만으로 될 수 있는 연극이 아니라 훨씬 더 많은 부분을 노래와 춤으로 표현해야 되는 연극이기 때문에 그 두 가지를 못하는 배우들이 만든 뮤지컬은 감흥을 주지 못하는 따분한 연극이 되고 만다. 또 많은 경우 일반 배우들이 노래를 좀 하지만 춤을 추지 못해서 아주 어설픈 뮤지컬을 보는 경우가 아주 많은데 이것도 바로 전문성의 결여가 좋은 뮤지컬을 만들지 못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우리 뮤지컬의 30년 질적으로보다는 양적으로만 성장

여기서 잠깐 우리 뮤지컬의 변천을 살펴보기로 하자. 우리 나라의 뮤지컬의 효시를 1962년 예그린 악단이 공연한 「삼천만의 향연」으로 삼았을 때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이된다. 이 30년이라는 기간을 크게 3등분하여 10년 단위의 기간으로 나누고 각 10년 단위의 기간 중 공연된 뮤지컬의 편수를 대충 헤어보면 최근에 이르러 증가하였음을 알 수 있다. 즉, 1962년에서 1971년에 이르는 10년 동안 공연된 편수가 16편이었고 두 번째 기간인 1972년에서 1981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공연된 편수가 30편인데 비하여 제3기인 1982년에서 1991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부터 1백 41편이 공연되었다.

그러면 이처럼 증가된 양에 걸맞게 질도 향상된 것인지 ? 물론 공연이 많다 보면 뮤지컬만 좇는 배우가 나오게 마련이고, 그 배우가 지속적으로 뮤지컬을 하다보면 기량도 늘고 전문성도 생길 수 있다. 그 동안 뮤지컬만 전문으로 하는 큰 단체가 서울에서 셋이나 생겨 각 단체가 일년에 몇 개의 작품을 올리고 있다. 그리고 뮤지컬을 고정적으로 올리는 일반 극단들도 생겨났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이름 석자만 대면 금방 뮤지컬 배우라고 알아 줄 배우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처럼 뮤지컬 배우라고 알아주는 배우가 극소수라는 데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10여 년간 뮤지컬이 놀라울 정도로 많이 공연된 것에 비하여 초기의 뮤지컬을 뛰어넘는 획기적인 작품들이 쏟아져 나올 정도로 숙련성이 계발된 것은 아니다. 어떤 의미로는 양만 늘었지 질에 있어서도 별 진전이 없다라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이 아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간단히 말하자면 뮤지컬의 발전을 가져 올 기초 작업은 하지 않고 당장 공연만 하기에 바빴었다라는 이야기이다. 기초 작업이란 전문성의 양성을 위한 어떤 제도적 장치를 뜻한다. 이 땅에 뮤지컬을 심어 보자고 탄생된 공공 기관인 서울시립가무단과 서울 예술단이 당연히 이 기초 작업을 했어야 했다. 서울시립가무단이 1978년에 공연을 시작하였고 서울예술단이 1987년부터 뮤지컬을 시작하였는데 만약 그때부터 5년 후, 10년 후에 발전된 뮤지컬을 위하여 공연 작업 이외에 기초 작업을 하였다면 각각 5년, 15년이 지난 지금 그들의 공연은 뭔가 바뀌기 시작했을지 모른다. 만약 시립가무단의 전인인 국립가무단, 예그린 악단 시절부터 그런 작업이 있었다면 분명 지금의 우리 뮤지컬은 지금 갖고 있는 여러 문제점들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기초 작업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 내가 얘기하는 기초 작업이란 다름이 아니라 연기자 훈련, 워크숍 운영, 작가 및 연출자 훈련, 세미나와 같은 학술회의 개최, 그리고 무엇보다도 재능 있는 연기자나 작곡자, 안무자 그리고 젊은 연출자를 뮤지컬 본 고장에 보내 전문 교육을 받고 뮤지컬에 대한 체험을 쌓게 하는 일등이다.

위에 열거된 여러 작업 중 어떤 부분들은 이미 실시되었고, 지금 실시 중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느 단체도 미래를 위해 재능 있는 인재들을 발견하여 집중 투자해서 해외에서 강훈을 시키고 풍부한 체험을 쌓도록 하는 일에는 아직 착수를 못하였다. 앞에서 말한 뮤지컬 전문 단체들의 예산은 언제나 금년도 공연 사업에 관한 것뿐이지 5년 후 10년 후의 보다 나은 뮤지컬의 제작을 위한 원동력이 될 인재 교육과 양성을 위해서는 한 푼도 배려되어 있지 않다. 우리 나라의 문화계가 전반적으로 내일을 위한 준비 없이 오늘에 급급해 한다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처럼 되었지만 연륜이 짧고 가능성이 많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많은 관객들이 찾는 뮤지컬은 일반적인 문화계의 타성에서 벗어나 내일을 위한 투자에 과감해야 할 것이다. 시립가무단과 서울 예술단이 바로 그런 투자에 앞장서야 할 단체들이다.

인재 양성의 문제는 공연단체들만의 몫이 아니다. 연기자를 양성하는 대학의 연극과도 뮤지컬 배우의 양성을 위하여 한몫을 할 수 있다. 연극과가 뮤지컬과 관련된 과목을 개설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대학 연극과는 뮤지컬 공연은 하면서도 뮤지컬과 관련된 과목은 아직 제공하지 않고 있다. 그 과목을 가르칠 수 있는 전문 교수가 없다는 것이 하나의 이유로 지적될 수 있고 그 과목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피아노라든지 벽면 거울 같은 시설물에 넓은 연습실 같은 특수 공간이 필요한데 그런 것들을 충족시키기에는 여러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을 또 하나의 이유로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대학 연극과는 현재의 뮤지컬에 대한 수요의 증폭과 졸업생들의 쉬운 취업을 고려하여 빠른 시일 안에 뮤지컬 연기자의 양성을 위한 커리큘럼 개설에 착수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긴밀한 협동과 함께 충분한 시간과 지원이 필요


지금까지 뮤지컬 연출을 해 보면서 내가 느낀 또 한 가지 문제점은 작품을 만드는 데 있어 작곡자, 안무자, 그리고 다른 스텝들과의 긴밀한 연락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뮤지컬에 있어 음악의 중요성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음악을 표현의 주무기로 삼는 연극이니 만큼 그 표현 수단인 음악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그 뮤지컬 은 끝장이 난 셈이다. 그런데 대개 우리 나라에서 음악인들이 매우 바쁜 사람들이며 또한 비싼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과 자리를 같이 하며 느긋하게 토의하면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참으로 힘들다. 그들은 바쁜 생활을 하기 때문에 작곡을 완료하겠다는 약속 시간을 지키지 못하고 늘 늦기 마련이다. 작곡이 늦는다는 것은 결국 연습을 할 수 없다는 것과 같은 말이 된다. 곡이 나와야 노래나 연주 연습을 하게 마련이고 어떤 경우에는 음악 녹음을 끝내야 비로소 안무가 시작되고 정상적인 연습에 들어 갈 수가 있다.

어떤 경우에는 작곡자가 공연 임박해서 악보를 넘겨주는 경우가 있는데 이렇게 되면 안무자와 연출자는 골탕을 먹게 된다. 그뿐이 아니다. 나의 경험으로는 작곡자는 주어진 대본 갖고는 악상이 떠오르지 않아 작곡할 수 없다 하고, 힘들게 나온 음악을 듣고는 안무자는 그 음악으로는 아무 동작도 떠오르지 않아서 안무를 할 수 없다고 한 일도 있었다. 이런 것을 보았을 때 뮤지컬 작업은 작업 초에 스텝들과의 친밀한 회의를 통하여 작품의 성격과 표현 방향에 대한 확실한 설계와 약속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능하다면 대본을 쓰기 전에 대본의 내용까지도 서로 토의해서 대본의 방향을 다 같이 결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긴밀한 협동 작업을 통하여 작업이 이루어지자면 충분한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 3∼4개월 안에 후닥닥 만들어 내는 작업 방식에서 벗어나 적어도 1년간의 준비 기간을 갖고 충분히 검토하고 수정하고 결정하는 과장을 가져야 할 것이다. 연출자가 연기자들을 만나 연습을 시작할 때에는 무대, 의상 등의 디자인이 다 완료되고 작곡이 다 끝난 상태이어야 연출자가 시간을 충분히 활용해서 연습할 수 있고 배우들도 확신을 갖고 자기 역을 소화해 내는데 전력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우리 작업 현실은 모든 준비가 공연 직전에서야 부랴부랴 이루어지기 때문에 연출자나 배우들의 초조감을 뭐라고 설명할 수 없을 정도다.

뮤지컬은 서양에서 들어온 양식이다. 따지자면 뮤지컬뿐 아니라 우리가 연극이라고 부르고 있는 그 양식도 서양에서 들어 온 것이다. 연극이 이 땅에 처음 들어왔을 때 연극인들은 그 틀에다 우리의 이야기를 집어넣으려고 애를 썼다. 연극이 처음 이 땅에 들어온 1910년대와 20년대, 30년대의 연극을 보면 우리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들이 많다. 본래의 틀은 남의 것이지만 그 속에다 우리의 정서를 담아서 감동을 준다면 그것은 우리의 연극이 된다.

뮤지컬도 마찬가지이다. 분명히 서양 것이지만 그 속에 우리의 음악, 우리의 동작, 우리의 이야기가 들어가고 그것들을 우리의 배우들이 해 냈을 때 그것은 우리의 뮤지컬이 된다. 그런데 뮤지컬이 크게 발달된 나라 또는 그 나라들의 잘된 뮤지컬은 그래도 들여다가 우리 배우들이 했을 때 그것은 우리의 뮤지컬이 아니다. 나는 그런 외국의 번역 뮤지컬을 들여다가 공연하는 거 자체를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다. 그것은 그것대로 필요하다. 뮤지컬 원산지의 잘 만들어진 작품을 보고 배울 수 있고 무엇보다도 관객들을 즐겁게 해 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 문제가 되는 것은 그런 작품의 공연 자체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그런 뮤지컬만이 공연된다든지 그런 공연이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 그것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 '우리의' 뮤지컬도 발전할 길이 없고 외래 문화의 지배를 받는 것이나 다름이 없게 된다.

뮤지컬의 밝은 전망 미래를 위한 연극인들의 투자를

위에서 우리의 뮤지컬 역사를 10년 단위로 3기로 나누어 보았는데 그 수치를 다시 훑어가면서 이번에는 창작 뮤지컬과 번역 뮤지컬 2가지로 분류해 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60년대인 제1기에는 공연된 16개의 작품 중 창작 뮤지컬이 87%에 번역 뮤지컬이 13%이고, 제2기는 창작 57%에 번역 43%, 제3기는 창작 37%에 번역 63%라는 통계가 나온다. 공연이 적었던 초기에는 창작 뮤지컬이 압도적으로 많다가 공연이 많은 요즈음에 와서는 반대로 번역 뮤지컬이 압도적으로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통계 수치의 원인이 무엇이든 이러한 현상은 바람직한 것은 못된다. 뮤지컬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내용물이 우리의 것이어야 한다. 여기에서 또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 것에 대한 이해이다. 많은 뮤지컬들, 특히 시립가무단에 의해서 공연되는 작품들이 우리의 고전 또는 옛이야기들을 소제로 삼고 있는데 그런 유의 작품이 주를 이루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뮤지컬이라는 형식이 고전이나 옛것을 담기보다는 오늘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담기에 더 적합한 형식이라고 생각한다. 고전이나 옛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또 하나의 노래극인 창극에 더 어울릴 수 있을 것이다. 뮤지컬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서는 우리의 지금의 이야기를 담아 내는 작업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까지 언급한 몇 가지 소감과 제언 이외에도 우리 뮤지컬이 풀어야 할 과제들이 있다. 뮤지컬이 일반 연극에 비해 일반적으로 제작비가 많이 들게 마련이다. 대규모 제작비를 회수하고 최소한으로 극단의 재정적 손실을 줄이기 위해서는 중형 크기 이상의 극장에서 장기 공연을 할 수 있어야 되는데 지금 서울의 극장 사정은 그런 문제를 해결해 줄만큼 좋지가 못하다. 중형이상의 극장을 장기로 대관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정부의 지원을 받는 몇 개의 극장을 제외하고는 대관료가 너무 비싸서 장기 대관을 할 경우 수지 타산을 맞추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공간의 문제 이외에도, 뮤지컬의 화려한 무대를 충족시켜 주자면 첨단 기술이 동원된 무대 장치들이 제작 운영되어야 하는데 그러한 무대들을 만들 기술진이 없어서 뮤지컬의 무대가 매우 조악한 형편을 벗지 못하고 있는 것도 해결해야 할 문제로 지적될 수 있다. 얼마 전 서울예술단의 총 연습 중 가설 무대가 무너져 단원들이 부상을 입는 사건이 터졌지만, 그것은 특별한 기술이 동원된 무대도 아닌 것이었다. 그 정도의 무대 장치에 그런 소동이 일어날 때 정말 정교한 기술이 동원된 무대 장치가 이용된다면 아마 엄청난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 날 것이다.

그러나 극장의 문제, 무대 기술의 문제 등은 일단 뮤지컬을 만드는 재능 있는 인력의 교육과 훈련의 문제가 해결된 뒤에도 충분히 시정 될 수 있는 것들이다. 현재 각광을 받고 있을 뿐 아니라 미래의 밝은 전망까지 확실시되는 뮤지컬을 제대로 만들기 위한 노력은 집요하고 계획적인 것이어야 된다. 지금 당장의 인기나 성공에 연연하지 말고 뮤지컬의 수요가 더 팽창할 5년 후, 10년 후를 위해서 중요한 씨를 지금 뿌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심어야 할 첫 번째 씨앗이 바로 재능 있는 인력의 양성을 위한 과감한 투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