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실 OB 남성합창단
주종환 / 르포라이터
우리는 지금 인공 자연과 과도기적인 생태학적 환경 속에서, 이미 문명화되어 의미론적으로 해석된 공간, 즉 철저하게 물리적으로 의존된 공간에서 살고 있다. 우리가 길 위에서 항상 만나는 낯익은 사물들과 도시적 미관들, 길모퉁이마다 도사리고 있는 생의 우연 아닌 우연들, 시간들이 그렇다. 우리는 여전히 비과학적 영역으로부터 노출된 이 문명의 이기 속에서, 우주와 존재의 불가사의를 매순간 임의적이며 자의적인 해석으로 자아의 시공간적 점유 공간을 보호하고 또 가시화 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문명인으로 성장하면서 교육받고 또 물려받은 인간학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제 우리들 삶의 분명한 환경 조건인 이 '시민 생활' 속에서 자연 혹은 예술에 대해서조차도 매우 감각적이며 선택적이 되었다. 인간은 이제 자연으로부터 느닷없는 초대와 신비적 현상을 당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현대인들이 공유하고 있는 '예술'에 대해서도 그렇다.
음악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미 예술을 구조적으로 형식화했으며 공간화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스스로 훼손시킨 '자연성'에 대한 정신적 자리잡기와 교감, 그리고 그 복원된 이미지를 예술 속에서, 혹은 여타의 관광 명소 등지에서 선택적으로 구하게 된 것이다. 결국 인간의 이지적 시민 생활이 제반 과학과 합리적 실생활을 지향하는 생태학적 변이의 와중에서도, 인간은 자신의 서정적 뿌리와 내면적 질서를 갈구하며 오히려 더 강화해가고자 하려는 몸부림들을 목격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연에 대한 무의식적 성찰과 존재론적 사유의 기반을 가능하게 해 주는 예술과 종교, 철학 등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인간의 정신사를 관류해 온 바로 그 회귀본능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내면적 뿌리 찾기마저 훼손시킨 이 문명적 체계는 인간으로부터 미로 본능의 정서를 대체하고 그 고유한 본질을 수단화시켰다. 이제 우리는 예술성 그 자체가 아니라, 예술이라는 이름의 장르들과 만나는데 익숙하다. 예술의 순수한 '유희성' 대신에 우리는 지금 무수한 예술적 고뇌들과 만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느 노 음악가는 만년에 "음악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체득하는 것"이라는 말을 하였다. 왜냐하면, 그에게 있어 음악은 만들어지는 것이고 연주되어야 할 뚜렷한 명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바람이 어디서부터 불어오는지를 잘 모른다. 바람은 그저 '있다' 것이다. 물론 음악가들에게 음악의 본질을 캐묻는다면 음악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음악을 "한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바람이 어디서부터 불어오는지 예감할 수 있다면, 또 한 그 바람이 어디로 불어갈지를 예감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동시적으로 감지되는 '영감' 같은 것이기도 하다.
위대한 음악은 바로 그러한 예감, 혹은 그러한 선험적 질서에 대한 깊은 경애로부터 탄생되었으며 위대한 음악인들은 그러한 진실은 깨닫고 또 몸소 따랐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이 예술이든 문학이든 혹은 섬세한 인간적 교류에서든지, 하나의 충족된 조화와 질서를 만났을 때에 증언할 수 없는 기쁨과 마음의 정화를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이 속해 있는 이 무한한 현상 세계는 자체가 하나의 충족된 질서이기 때문에 그 속에 속해 있는 인간의 경험 체계는 그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합창 예술은 바로 그러한 전체적 교감과 조화에 바탕을 둔 예술이며 또 그것이 목적이기까지 하다.
강한 화합이 좋은 화음을 만든다
합창 음악의 질적 향상과 외적 성장은 지휘자와 단원들의 팀워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그 팀워크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장기간에 걸친 인간적, 음악적인 대화와 과학적인 훈련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다져지는 것이다. 그 실증적인 사례들을 우리는 뛰어난 연주와 음반 녹음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친 지휘자들과 합창단의 관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웁살라'시에만 1백 20여 개의 합창단과 총 12만 5천 명의 합창 단원이 있어 '합창의 나라'라고 불리는 스웨덴에서, 이른바 '스웨덴의 합창 기적'을 이룩해 낸 인물로 손꼽히는 에릭 에릭슨은 스톡홀름 실내 합창단, 스웨덴 방송합창단, OD 남성합창단 등 3개의 합창단과 40년 이상 한 몸을 이루어 최고급의 합창 음악을 생산해 냈다. 특히 1백 40년 전통의 OD는 순수 아마추어 단원으로 구성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프로를 능가하는 남성합창단으로 정평이 나 있다.
미셸 코르보는 스위스 로잔느 보컬 앙상블을, 헬무트 릴링은 게힝거칸토라이 슈루트가르트를, 데이 브드 윌루스는 킹스 칼리지 합창단과 런던 바흐 합창단을 그리고 존 엘리어트 가디너는 몬테베르디 합창단을 각각 30년 이상 이끌어 왔다. 이런 관점에서 지휘자 이영두씨가 이끄는 숭실 OB 합창단은 현재까지 이뤄왔던 음악적 성과보다는 미래에 대한 더 큰 기대와 전망을 가능하게 해준다. 숭실 OB 합창단은 1973년, 우리 나라 혹은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최초의 동문 중심으로 구성되었는데, 이는 톤의 균질성과 단결성, 그리고 인격적 단합의 힘을 승화시킨 '숭실 OB'만의 특질은 낳게 했다.
1973년 12월, 그해 숭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과 1974년 초에 졸업할 학생들로 창단 된 숭실 OB 남성합창단은 우리 나라에서도 몇 되지 않는 남성합창단 중에서도 뛰어난 합창단으로서의 자리를 확보하고 있다. 더욱이 다른 합창단이 젊은 학생들로 구성이 되어 계속 교체되면서 운영이 되고 있는 것에 비해 이 합창단은 숭실 고등학교에서 합창 활동을 하다 졸업하면, 숭실 OB 합창단으로 들어오면서 계속하여 합창 생활을 해 오게 된다. 이 합창단은 지금까지 16번의 정기 연주회를 비롯하여 방송 출현, 교회 및 지방 초청 연주, 불우이웃 돕기 자선 음악회, 군 및 교도소 위문 등 수많은 연주를 하였으며, 특히 미국 LA지역으로 이민 및 유학을 떠난 동문들이 그 곳에서 LA 숭실 OB 합창단을 창단하여 2번의 정기 연주회 및 많은 연주를 하여 그 곳 한인 사회에서 화제의 단체로 주목받고 있기까지 하다.
1991년에는 서울 숭실 OB와 LA 숭실 OB가 LA에서 합동 연주회를 가졌으며, 특히 올해에는 숭실 OB 합창단의 2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한 해이어서, 올 10월경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에서 가지게 될 이번 기념 공연은 이탈리아로 유학간 동문 성악가들과 LA 숭실 OB 합창단과 합류하여 성대한 합창 공연을 가질 예정에 있다. 이 합창단은 그 동안 음반도 3집까지 출반하였는데, 이는 국내 굴지의 음반 회사가 연주자의 보관용이나 선전용이 아닌 순수 판매용으로 숭실 OB 합창 음반을 세 장씩이나 제작하였다는 것은 합창 음반 시장이 좁디좁은 우리현실은 고려해 볼 때 매우 고무적인 일이며 그들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다.
지휘는 동문인 김영준씨가 1980년에, 1990∼91년엔 이정욱씨가 이영두 지휘자의 휴학 기간을 대신하여 지휘를 한 것을 제외하고는 현 이영두 지휘자가 창단 시절부터 지금까지 '숭실 OB'를 이끌어 오고 있다. '숭실 OB'는 또 1983년도 전국합창경연대회에서 대상(대통령상)을 수상한 바 있고, 1988년도에는 EBU(유럽방송연맹) 세계합창콩쿠르 한국 대표로 출연한 경험을 가진 실력 있는 합창단으로서의 자질을 인정받고 있다.
무엇보다 '숭실 OB'의 모체는 기독교 이념으로 세워진 숭실 학교가 되는 셈이다. 해방 전 숭실 학당은 많은 기라성 같은 음악인들을 배출하였는데, 김세형(작곡), 현제명(성악, 작곡), 박태준(작곡), 차재일(성악), 박경호(피아노), 박원정(성악), 독고선(피아노), 안익태(작곡, 지휘), 박태현(첼로, 작곡), 김동진(작곡) 등 우리 음악계의 여명기에서 지금까지 악단의 선구자로 남아 있으며, 해방 후에 이르기까지 숭실은 남성합창단으로 음악 명문의 자리로 명예롭게 승계 받고 있는 것이다. 이 숭실 합창단은 바로 역사의 선상에서 자리잡고 있는 소리꾼들이다.
'소리'를 위해 만난 사람들
숭실 OB 합창단은 그러니까 직업 합창단이 아니다. 대학인으로 혹은 사회인으로서의 각자 주어진 생활에 충실한 가운데에도 쪼개고 아낀 시간들을 모아 숱한 역경 속에서도 서민들의 생활과 사회 깊숙한 곳까지 음악의 감미로운 선율을 들려주고 퍼뜨리는데 보람을 둔 사람들 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 중에는 정치가·변호사·시인·노동자, 그리고 예의 전문 음악인 등 합창의 곧고 아름다운 '소리'를 위해 거의 본능적인 결합 속에서 모임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잦은 합숙 훈련을 통해 정신적 유기적으로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으며 집단으로 거리를 활보하면서까지 합창을 하기도 한다. 언제 어디서나 음악적 분위기를 허용, 혹은 부추기는 곳이면 바닷가, 선술집 등 가릴 것 없이 즉석으로 합창을 하며 예기치 않게 청중이 된 주위의 서민들과 인간적 교류와 음악적 공감대를 무리 없이 시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 나라에선 지금 일반 아마추어 합창단들이 퇴조해 가고 있는 추세이다. 이는 합창 음악의 세계적 흐름 가운데 예술성, 전문성 못지 않게 대중성, 아마추어 정신이 계속 강조되고 있는 보편적인 흐름에 위배되는 현상이기도 하다. "합창단은 교향악단과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은 예술성과 동시에 대중성이 있어야 하며 전문성과 동시에 아마추어 정신이 살아 있어야 한다"는 연세대 곽광수 교수의 지적에 유념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들 '숭실 OB'는 매주 한 번씩 합창 연습을 해 나가고 있으며 특히 '숭실 OB 합창단'의 단장으로 있는 신재용씨는 각자의 시간을 쪼개어 한자리에 모인 단원들과는 해마다 지리산 덕동 학교를 방문하여 시골 아이들과의 우의를 돈독히 다지는데 앞장서고 있다. 이는 문화적으로 소외된 시골 학생들에게 밝은 미래와 용기를 심는 일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신재용씨는 자비를 들여가며 이들을 서울에 초청하여 그들의 견문을 넓혀 주는 일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그것은 곧 그에게 있어 음악이란, 음악 관계자들이나 부유층 자녀들만이 누릴 수 있는 전유물이 아니라는 계몽적 사고를 몸소 실천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는 음악인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한 사람의 시인에 가깝다. 그는 음악을 영원에의 본질을 추구하는 것, 즉 지와 예술, 창조의 근본적인 목적을 '사랑'이라고 믿고 있다.
"사랑은 내면적 진실을 동반할 때 비롯됩니다. 사랑이 순간과 타율에 얽매일 수는 없습니다. 사랑은 자신들 마음속에 법정에 의해 내려진 진실 된 판결을 정직하게 표명하는데 그 위대성이 있습니다. 사랑은 '때문에' 이루어진 것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진 것이 그런 의미에서 더욱 값질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제한을 수용하고 그것을 초월하는 것이 사랑의 숭고한 기능이라고들 합니다. 따라서 사랑은 비극적 영웅들만이 향유 할 수 있는 지보입니다. 이졸대의 흰 깃발과 검은 깃발에 따라 목숨이 좌우되는 트리스탄과 같이 비극적 영웅들만이 사랑을 향유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베젠동크 부인과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의 고통 때문에 트리스탄과 이졸대를 작곡했다는 브람스와 같이, 쥬리엣타와 맺지 못할 사랑 때문에 월광 소나타를 작곡했다는 베토벤 같이, 그리고 수많은 비극적 영웅들이 사랑을 승화하여 영원한 사랑을 창조한 것도, 사랑의 본질이 그러하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사랑은 위대한 창조의 목적인 동시에 예술의 목적이기도 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그에게 있어 합창 음악은 범신록적 사랑을 위한 포교 활동이 되는 셈이다. 그리고 '숭실 OB'의 창단 시절부터 실질적으로 이끌어 오고 있는 지휘자 이영두씨는 폭넓은 레퍼토리와 '숭실'만의 소리로 합창의 영역을 넓히는데 일익을 담당했으며 더욱이 세계적인 남성 합창단을 만들어 보리라는 그의 평소의 야심은 '숭실 OB'의 뿌리깊은 내실을 항상 새롭게 변모시켜 가는 원천으로 작용하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숭실 OB'는 자신의 대표곡인 '평화의 기도'를 비롯하여 성가곡 오페라 합창곡, 국내외 가곡과 민요, 흑인 영가, 뮤지컬 주제곡 및 최신 팝송에 이르기까지 대략 2백 곡 이상의 광범위한 음악적 주제를 레퍼토리로 삼고 있는데 특히 「평화의 기도」는 이 합창단이 국내에 처음 선을 보여 지금은 여러 부류의 단체에서 즐겨 부르는 '숭실 OB'의 대표곡이 된 예다. 이처럼 '숭실 OB'만의 개성적인 레퍼토리 선정은 지휘자 이영두씨 자신의 경험적인 음악관과, 무엇보다 청중에게 보다 절실하게 음악적 접근을 시도하려는 노력에 기인하는 것이다. 그는 음악의 본질적 의의를 듣는 이로부터 심미적 차원의 순수한 '즐거움'에 두고 있으며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일상에 스스로 대답하고 정서적으로 침투하고자 하는 삶을 위한 예술을 그 교본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그는 고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결합을 각고의 노력으로 시도해 오고 있으며, 그 가능성에 깊이 천착하고 있다.
완전한 음악에의 시도
올해부터 구성 멤버의 질적 정원을 도모하기 위해 정단원제로 개편을 시도한 '숭실 OB'는 다름 아닌 지휘자 이영두씨 자신의 개인적 역량에 달려 있다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비직업 합창단을 이끌어 가는 그의 어깨는 그만큼 무겁고 또 보람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말보다는 노래를 먼저 배운 어린 시절로부터, 초등학교 5학년 때 '서울소년합창단' 입단을 계기로 지금까지의 전 생애를 오로지 '합창' 하나에만 매달려 온 우리 나라 음악계에서도 귀중한 지휘자이다.
"지휘자의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그 구성원들간의 인격적, 정서적 유대로부터 발성의 일치감, 조화, 집중을 매순간마다 음악적 혼연일체로 유도해 내는 전체적 승화와 그 기술적인 완성에 있습니다. "
우리는 하나의 예술 작품 혹은 공연 예술을 접했을 때 느낄 수 있는 감동은 곧 예술 작품의 본질적 구조가 가지는 이중성, 다시 말해 전달자와 수신자간의 상호일치 혹은 정신적 결합으로부터 경험되는 것이다. 그것의 매체가 메시지이든지 심미적 감상경로이든지 그 상호 이해로부터 도출되는 목적성의 공유란 전 예술이 도달하고자 하는 바로 그 인간적 반성과 이상이 되는 것이다.
음악이란 인간이 발명해 온 도구 혹은 사물로부터 끌어들인 기술적 차원에 그치기보다는 인간들이 서로 공유하고 있는 이 세계의 심오한 자연적 질서에 대한 진정한 이해로부터 비롯된 하나의 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휘자들은 공통적으로 어떤 완전한 음악적 질서에의 시도,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최상의 화음을 욕망 하는 사제적인 위치에 서 있다. 그래서 그들에게 합창은 영원한 숙제로 남게 된다.
음악에 대한 인간의 이해란, 결국 음악을 넓은 의미 차원으로 수용할 것인가, 혹은 음악의 형식미에 '사로잡힐' 것인가의 예술 제반적인 이중성에 봉착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예술성에 대한 인간의 태도와 해석은 곧 인간의 내면적 충실성에 대한 입장이 될 수 가 있다. 무릇 한 사회의 발전과 저력은 꼭 무슨 그 나라의 경제적 재원이나 국가 시책에 의존 하지만은 않는다. 미로처럼 형성된 이 도시의 아득한 길 위에서, 인간의 본질과 지금 이 곳에 살기의 진위를 되물을 줄 아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차라리 용기다. 직장인·정치가들·예술가·시인·노동자들 다시 말해 이 과도한 시민 사회로부터 인간 개개인들은 얼마나 무력하고 파편화되었는가. 개인은 끊임없이 뫼비우스의 띠 같은 허무한 길 위를 돌다가 문득 세계와 인간과의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하여 비로소 의미 차원으로 열려 있는 사회를 목격하는 것이다.
정부와 국가적 의의는 바로 이러한 밝고 순수한 시민들, 무의미한 몸짓으로 지친 개인들을 사회적 의미 차원으로 수용하고 만남 혹은 집단적 교류의 장을 아낌없이 열어줘야 할 의무가 있다. 그것은 국가적 지원 차원만이 아니라 차라리 한 국가의 인간에 대한 이유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