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의 재생산을 위하여
이용우 / 미술평론가
내리막길 미술사랑
현대 미술은 진정 정신적 육체적 공황기인가. 1년이 멀다 하고 새롭게 등장하는 주의 주장들이 쏟아져 나오는데도 우리는 '진정한 미술의 부재'를 쉽게 말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비록 그 용어에서조차 보편적 컨센서스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논쟁의 위세는 여전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미술의 부재'의 논란을 막는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예술이 발전을 지향하는 그 속성이 실험적인 것이라면 아마도 이 같은 의문은 영원할지도 모른다.
1989년부터 내리막길에 접어든 미술 시장은 이제 그 끝이 안 보인다. 뉴욕 화랑의 30% 이상이 문을 닫고 실험 현장으로 불리던 소호 화랑가는 옷가게나 기념품점으로 바뀌어 가면서 거리의 주인도 미술 관련자에게 일반 관광객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80년대 과열됐던 상업주의 덕으로 돈을 모은 뉴욕의 유수 화랑들은 더 이상 활기가 없는 뉴욕보다는 베를린, 프랑크푸르트, 함부르크 등 독일과 일본, 심지어 한국에까지도 판로 개척에 나서고 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영국 등 시장 과열의 80년대를 비교적 관망하던 국가들은 미국 시장의 일시적 정지를 약간은 웃음 지으며 올 것이 왔다는 태도로 바라보고 있다. 미술에서의 패권주의를 형성하던 미국의 현실을 약간은 조롱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거대한 시장이었음에도.
그러나 논리성(정신)에서나 시장성(육체)에서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미국이지만 그들의 저력은 쉽게 보아 넘길 일이 아닌 것 같다. 휘청거리는 것 같은 시장, 대안 없는 논리적 침묵의 시간을 그들은 다양한 일을 꾸며 가며 기다리고 있다. 1992년 10월을 시작으로 같은 공감대 속에서 진행된 뉴욕미술제의 일련의 움직임은 한편으로는 의도적 처세일 수도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긴박한 어려움을 다각적으로 타개해 나가려는 의지로도 풀이된다.
뉴욕현대미술관(MOMA)과 위트니 미술관(Whitney Museum), 구겐하임 미술관(Guggenheim Museu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ropolitan Museum), 뉴 뮤지엄(New Museum) 등 이른바 저명 미술관을 비롯하여 페이스 화랑, 래리 가고시언 화랑, 블럼 헬만 화랑, 루버 화랑 등 메이저 갤러리들이 벌이고 있는 일련의 움직임들은 뉴욕 미술계의 위상을 읽게 해 주는 근거들을 마련하고 있다.
미국 미술의 오늘
먼저 뉴욕현대미술관은 3년간 준비해 온 마티스전을 개최하여 70만 명이라는 기록적인 관람객 수를 기록했으며 전세계 미술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50∼60년대 미술관 문화의 핵으로 등장했던 뉴욕현대미술관의 위상을 다시 한번 입증시킨 셈이며 힘겨운 현대 미술 현장에 색다른 의미의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일이기도 하다. 더구나 이전 시는 소련 에르미타쥬 미술관이나 푸쉬킨 미술관 소장의 러시아 시대 마티스의 작품이 다수 출품되었으며 프랑스 화가 마티스가 뉴욕에서 그 전시회가 기획되어 본국으로 순회 전시된다는 사실이 아이러니컬한 셈이다. 그 외에도 뉴욕현대미술관은 전자 시대 사진전도 기획하여 근대와 컨템포러리가 함께 숨쉬는 적극적 공간을 마련하고 있다.
위트니 미술관은 미니멀리즘 초기 시대의 주요 작가인 아그네스 마틴(Agnes Martin) 회고전과 한국 출신 여류 작가 테레사 차(Theresa Hak Kyung Cha)의 전시회를 기획하여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가운데 테레사 차는 국내에도 잘 안 알려진 작가이나, 영화에 미쳐 살면서 회화, 입체, 문학 등 다방면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였던 테레사 차의 현장성이 강한 작품 세계를 종합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로서 위트니 미술관은 백남준에 이어 두 번째로 한국 출신 작가의 전시회를 개최하게 되었으며 거장 아그네스 마틴보다 오히려 좋은 평을 받고 있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로버트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의 60년대 작업을 보여주면서 퍼포먼스와 팝아트 추상표현주의 작가로서의 라우센버그의 초기 세계를 집중 조명했다. 이 전시를 본 많은 미술인들은 "모든 작가가 다 초기 작업이 훨씬 신선하고 아름답다"는 의미 있는 말을 남기게 되었다.
구겐하임은 또 옛 건물을 아라타이소자키의 디자인으로 새롭게 꾸며 소호에 문 연 신관에서 20세기 초 러시아 아방가르드 미술을 집중 조명하는 '위대한 이상 세계(The Great Utopia)'를 기획했다.
러시아 아방가르드는 그 동안 단편적으로 미국이나 유럽에서 선보였으나 이번처럼 소련의 러시아 현대 미술 전공의 트레티야코프(Tretyakov) 미술관 큐fp이터나 미술사가들이 직접 기획에 참여한 경우는 없었다.
그리고 출품 수에서도 종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방대하며 종전의 경우 평면 작업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으나 이번에는 입체 작업 및 디자인, 영화에까지 광범위하게 확대 기획됐다. 러시아 아방가르드 미술 전반에 관한 결정전과 같은 기획이었다. 더욱이 최근 들어 되도록 이면 개방의 추세로 나오고 있는 러시아 미술계의 친서방 접근 자세를 최대한 받아들여 전시를 기획, 충실한 내용물을 창조해 내었다.
정치 미술, 사회 미술 등 80년대의 새로운 현장 미술을 개척, 마르샤터커(Marcia Tucker) 관장의 색다른 현대 미술 관점을 보여 온 소호의 뉴 미지엄은 마르셀 뒤샹의 다다이즘 이후 가장 격렬하면서도 반예술운동의 슬로건을 내걸었던 플럭서스(FLUXUS) 60년 대전을 기획하여 보다 색다른 이미지를 던져 주고 있다. 그 동안 제3세계 미술이나 인권, 이데올로기, 반고문전 등 이른바 정치 사회적 이슈를 크게 부각시키며 주목을 받아 왔던 뉴 뮤지엄의 새로운 이미지를 부각시킨 전시회였다.
그밖에 페이스 화랑은 루이즈 네밸슨(Louise Nevelson) 전시회를 꾸몄으며 루버 갤러리는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전으로 장식했다. 이른바 80년대 스타급으로 분류되던 줄리앙 슈나벨, 데이비드 셀리, 에릭 피슬, 바바라 크르커, 신디 셔먼, 제니 홀저, 로버트 롱고, 제프 쿤즈 등의 전시회는 그들의 시장 소멸과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의 퇴조와 함께 뉴욕 바닥에서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이 같은 추세는 90년대 현대 사회의 보수성과도 무관하지 않으며 더 이상 현대 미술의 우상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미술계의 시각에도 기인하는 것이다. 또 이제 어느 곳도 미술의 메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공통적 인식, 실험성이나 아방가르드에 맹종했던 모더니즘 시대의 정서로부터 털고 일어나 이제 진정한 사색의 시간들을 가지려는 것이다.
마티스 전시회에 70만 명이라는 관람객이 들고, 모든 저널들이 이 같은 사실을 알리자 뉴욕현대미술관의 입체 담당 큐레이터인 로버트 스터(Robert Storr)나 미디어 담당 큐레이터인 바바라 런던(Barbara London)은 "획기적인 것, 엽기적인 것, 깜짝쇼 등 아이디어 위주의 현대 미술에 지친 관람객들이 이제는 마티스와 같은 허기를 느끼고 있다"고 표현하며 의미 심장한 논평을 가하고 있는 거이다. 결국 뉴욕은 사색의 시간과 함께 정신적 육체적 재생의 시간과 계기를 살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미술에 거는 또 다른 기대
국내외적 여파로 같은 불황과 정신적 고갈의 시대를 맞은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90년대 들어 우리 미술 시장은 그토록 번성하던 이른바 '시장성 있는 작가의 전시회'가 눈에 띠게 줄어들었다. 한동안 상업성을 주도하던 화랑들은 주요 전시를 기피하거나 적당한 전시회를 메꾸는데 주력하고 있다. 이론가들은 아직도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이나 모더니즘, 현장 미술 논쟁의 당파적 현실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정치, 사회적 현실감은 남다른 것이고 그 고난의 시대가 끝난 것은 아니며 결코 나아진 것이라고는 가시적이지 못한 현실이지만 그것을 흑과 백의 색채로 대입시켜 풀 수만은 없다. 비록 미국이 벽에 다다른 절박감에서 그 위세를 위장하기 위해 이러저러한 행사를 벌인다 하더라도 그들에게는 그와 같은 임기응변의 의욕과 성취욕이 함께 있다는 사실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이제 예술이건 정치건 경제이건 간에 뭔가 벽을 허물고 소품의 보따리를 풀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예술이 소수의 것이란 진부한 생각을 버리고 대중이 참여하고 이해되는 사회 속의 익명적 기능을 보여 줄 시기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