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리뷰 / 예술공학

비디오의 예술적 역할에 대하여




김재권 / 조형예술학박사

백남준과 울프 보스텔에 의한 TV 모니터를 이용한 초기 작업을 제외하더라도 본격적인 비디오아트가 백남준에 의해 제기된 해가 1965년이므로 비디오아트는 올해로 만 28세의 성년 예술로 정착되었으며, 현재 세계 도처에서 2천명이 넘는 예술가들이 비디오를 이용한 예술 작품에 몰두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비디오는 텔레비전이 낳은 자식으로, 사진이나 영화와도 연관된 채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정보 또는 오락 기구로서의 역할도 수행하지만 예술가들은 이것을 그들의 표현을 위한 도구(매체)로 활용함으로써 조형상의 새로운 문제 제기 기능으로 전환시키게 된다. 특히 비디오 아트는 20세기 산물인 컴퓨터의 메커니즘과 결합되면서 예술을 형태 분석으로 탈출시켜 문화적인 혁명으로까지 그 개념을 확산시켜 가고 있다.

따라서 이 방면의 예술가들은 비디오를 하나의 물질적 신념의 요구처럼 선택하고 그 결과는 마치 사고의 방법처럼 나타난다. 이를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한다면 비디오는 예술 속에서 ①새로운 예술적 이미지를 생산하기 위한 재료로, ② 일시적이거나 특정한 예술적 행위를 담는 그릇으로, ③ 공간 제시를 위한 창조적 요소 등으로 사용된다. 그리하여 비디오 아트는 전통 미학으로는 그 규정이 용이하지 않으리만큼 다양한 세계를 개념적, 정보적, 비평적인 어휘를 통해 번역해 냄으로써 예술과 사회 발전에 긴밀히 결속해 가는 것이다. 말하자면 비디오 아트는 예술적 대상보다 기능에 더 친숙한 예술이다.

테이프 비디오

이미지 비디오는 비디오 믹서, 컬러 머신, 컴퓨터 등을 이용하여 제작하는 것으로 마치 실험 영화와 같은 성격의 비디오 아트이다. 따라서 이러한 형태의 비디오 아트는 커뮤니케이션 비디오라고도 불리며 TV 방송이나 멀티비전을 통해서도 관객에게 시각화된다. 특히 장비의 취급 방법에 따라서는 리듬, 형태, 색채 등이 결합된 다양한 이미지 연출이 가능하게 되는데 이 경우 테크날러지적 메커니즘은 그 자체가 마치 주제가 대상처럼 작용하게 된다.

백남준의 「글로발 그로브」,「굳모닝 미스터 오웰」,「바이 바이 키플링」 등은 이미지 비디오의 대표적인 것으로, 메커니즘적 요소를 최대로 활용하여 제작한 작품으로 음악의 리듬에 따라 형태와 색채가 변화무쌍한 이미지를 연출하게 된다. 특히 미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 등 선진국의 많은 작가들은 이러한 첨단 테크날러지를 이용한 작품을 만들어 미술관, 또는 TV 방송을 통해 대중에게 전달하게 되는데 백남준을 비롯하여 앨런 긴스버그, 빌 비올라 등이 이 방면의 선구자로 꼽힌다.

이러한 경향의 비디오 아트는 인간과 사회, 그리고 심리적인 조정 능력에 대한 질문으로서의 살아 있는 기록으로, 하나의 예술적 언어 또는 기록으로 놓여진다. 이 경우 비디오는 예술 행위를 전달하는 도구로, 환경 예술가들이나 퍼포먼스 작가들이 많이 사용하는 비디오이다.

대지 예술가들과 같은 환경 예술가들의 작품은 관객에게 직접 보여 줄 수 없다는 점을 감안, 작업과정을 비디오 테이프에 담아 전시장에서 보여주게 되는데, 이런 경우 관객들은 직접 작품이 아닌 정보만을 받아들이게 됨으로써 '정보도 예술이다'라는 말을 성립시키게 된 다.

퍼포먼스 작가들 역시 그들의 내부적인 리얼리티로서의 일회성 작업에 천착하고 있는 이유로 해서 같은 행위를 반복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 역시 행위 과정을 비디오테이프에 담아 전시장에 VTR과 모니터를 설치, 관객에게 보여줌으로써 '비디오 퍼포먼스'라는 새로운 형식의 비디오 아트를 성립시키고 있다. 이런 경우 비디오 이미지는 주어진 시간과 공간 속에서 전개되었던 물리적인 행위를 실제 상황이 담긴 새로운 시간으로 연장시키게 되는 것이다.

비디오 인스텔레이션

비디오 매체가 지닌 장점, 이를테면 간단하게 녹화하여 곧바로 이미지를 재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작가들이 이 새로운 전자 매체를 조각적이거나 환경(Enironment)적인 개념에 적용시킴으로써 현대 설치 미술에 대한 요소적 경험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비디오 인스텔레이션 작업이다.

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야스퍼 존스(Johns), 라우센버그(Rauchenberg), 위슬먼(Wesselman), 보스텔(Vostell)같은 진취적 이념을 지닌 작가들은 라디오 수신기라든가 TV 모니터를 하나의 오브제로 수용함으로써 그들의 작품은 회화적인 것에서 벗어나 입체로서의 3차원 공간을 연출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비디오 인스텔레이션은 비디오라는 물질과 전시 장소, 거기에 특성화되어지는 물리적이거나 심리적인 공간을 형성하게 되는데 조각적인 개념을 지닌 것과 환경적인 개념을 지닌 것으로 구분된다. 따라서 비디오 인스텔레이션 작업은 카메라, VTR, 모니터 등의 하드웨어나 비디오 테이프에 등재된 전자 이미지로서의 소프트웨어 외에 개인 의식의 반영물로써 일상적 오브제나 창조된 오브제가 첨가되기도 한다.

비디오 인스텔레이션을 처음 시도한 작가는 물론 백남준이다. 1963∼65년 사이에 발표된 그의 초기 비디오 인스텔레이션(TV Candle, TV Fish, TV Zen 등)은 플럭서스적인 의식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브라운관을 제거한 TV 상자를 이용하여 그 내부에 촛불을 켜거나 어항을 넣어 두는 등 주로 변형된 오브제 형태로 TV 모니터를 도입했다.

그 후 백남준의 본격적인 인스텔레이션 작업은 1978년 파리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그의 회고전에 내놓은 「TV Moon」이라는 작품에서였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달이 차서 기우는 과정을 12대의 TV 모니터를 통해 연속적으로 보여 주었던 작품이다.

그러나 그의 「TV Bouddha」,「TV 생각하는 사람」 등은 비디오가 지닌 메커니즘을 이용, 리얼리티와 일루젼을 대비시킴으로써 물리적인 공간과 심리적인 공간이 하나의 예술적 상황으로 통합되도록 했으며 1982년에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발표된 「Tricolor Video」와 한국의 국립현대미술관에 설치된 「다다익선」은 TV 모니터와 이미지가 결합된 거대한 차원의 토털 환경을 제시한 비디오 인스텔레이션 작품이다.

페터 캠프스(Campus) 역시 1972년부터 비디오 인스텔레이션 작업에 주력해 오고 있는 작가다. 그의 설치 작업은 비디오 이미지를 마치 주어진 공간의 요소처럼 사용하고 있다. 대부분 그의 작품은 2개의 각각 다른 벽에 이미지를 투사하고 관객이 이들 이미지에 강제로 대질되게 함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어리둥절한 상황에 빠져들도록 착상된 것들이다.

폴 코스(Kos) 역시 1977년 파리 비엔날레에서 「Tokyo Rose」라는 작품을 발표, 화제를 모은 작가이다. 이 작품은 심볼적인 형태를 암시하는 환경을 구성하는 데로 비디오를 사용하고 여기에 관객을 수용하여 미리 녹음된 태평양전쟁 중의 미국 군인들을 저주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들려줌으로써 심리전의 한복판으로 관객을 끌어들였다.

한국의 비디오 예술가들

우리의 비디오 아트 역사는 서양이나 이웃 일본에 비해 매우 짧다. 60년대 후반에 몇몇 진취적인 이념을 지닌 예술가들에 의해 TV 모니터를 오브제로 사용한 작품이 시도되었으나 이에 대한 몰이해와 경직된 풍토 속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가 70년대 후반에 가서야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가 국내에 소개되면서 본격적인 비디오 아트가 대두되기 시작, 현재 10여명의 작가들이 비디오를 매체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박현기는 국내에서는 처음 비디오 아트에 관심을 갖고 접근하기 시작, 70년대 후반부터 주로 행위(퍼포먼스)와 연계시키거나 돌을 오브제로 한 인스텔레이션 작업을 해 오고 있다.

김재권은 비디오를 환경 제안을 위한 설치 개념으로 수용, 예술적 무(無) 개념을 띤 유사주의나 상황주의적 변증법으로 가공한다. 「비디오Apple」,「비디오 물고기」,「모든 것은 비디오로 대치된다」 등 대부분의 작품들은 개념 분석적이며, 최근에는 TV 방송 매체를 이용한 「커뮤니케이션 비디오」 작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오경화의 비디오 작업은 자신의 시각을 반영하는 다양성 위에서 사회적인 삶을 등재시킨다. 무속이나 민중, 그리고 최근의 상업 광고에 이르기까지 그의 비디오 작업은 언제나 '우리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 속에서 예술의 사회성을 강도 있게 들추어내고 있다.

조태병은 비디오라고 하는 매체를 시간과 공간에 대한 관찰자로서의 역할을 부여하기도 하고, 최근에는 환경에 대한 하나의 문제 제기 기능으로 확산시켜 가고 있다.

육근병의 설치 작업 속에서의 비디오는 모뉴맨털한 환경을 축조하기 위한 하나의 요소로 작용한다. 사람의 눈을 비디오 카메라로 찍어 TV 모니터를 통해 돔의 형태에 결합된 그의 설치 작업은 3차원적 입체 공간과 테크날러지적 시간 이미지가 만들어 내는 리얼리티의 세계이다.

최근 김윤의 비디오 작업은 하드웨어로서의 조각적인 요소와 소프트웨어로서의 컴퓨터 그래픽이 결합된 채 설치 작품으로 구조화되어 토털 환경을 제시하게 된다. 그러나 신진식의 경우는 안무적인 요소와 컴퓨터 그래픽을 결합, 2중 구조를 지닌 이미지를 만들고 여기에 관객을 참여시킴으로써 관객과의 강도 높은 커뮤니케이션을 성립시켜 가고 있다.

이렇게 비디오는 오늘날 시대적인 리얼리티의 반영으로, 예술적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매체로 작용함으로써 시간과 공간을 통합하는 중요한 요소로 사용된다. 더욱이 최근에는 발달된 컴퓨터 시스템에 의한 이미지 변조의 새로운 가능성, 그리고 하드웨어로서의 초대형 고화질 TV 모니터의 등장은 앞으로의 비디오 아트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