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서울시립극단장 차범석 씨

"생활 속의 연극 운동 펴겠습니다"




김성희 / 연극평론가·한양여전 교수

김성희-초대 서울 시립극단장에 취임하시게 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인구 1,100만의 수도 서울에 이제야 시립극단이 탄생하게 된 것은 뒤늦은 감이 있습니다.

차범석-저는 원래 운영위원회에 뽑혀서 활동했습니다. 위원 중 나이가 제일 많아서 운영위원장으로 있었지요. 처음엔 운영위원회가 적합한 인사를 물색해서 단장을 뽑자고 방침을 세웠었죠. 그런데 시립극단의 장이라면 무색, 무취, 무형이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중견 연극인들은 자기 극단을 가지고 있거나 대학의 전임으로 얽매어 있거나 해서 시립극단을 전담하기엔 적합치 않다는 중론이었습니다. 무슨 자리에 매어 있게 되면 자기 빛깔이나 역할을 지키기가 힘들고 객관성을 잃기 쉬워요. 또한 연극이란 집체 예술이고 사람이 모여서 하는 예술인데 인화가 깨지면 제대로 하기가 힘들어지죠. 그런 점에서 서울시립극단의 첫 기틀을 잡아 줄 수 있는 단장으로는 연령도 좀 있고, 연극계 실정을 잘 알고 경륜도 좀 있는 연극계 원로가 맡는 것이 여러모로 좋겠다고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그래야 또 외압이 안 들어 올 것이라는 이유로 여러 사람들이 저에게 단장직을 맡으라고 종용을 하더군요. 저도 제 나이가 금년 70인데, 연극계에 그 동안 40여 년 종사하다가 이번에 마지막으로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수락하게 됐습니다. 임기가 2년인데, 이 2년 동안 기틀을 잡아 놓고 후배한테 넘겨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서 맡게 된 것이죠.

김성희-그러시면 초대 단장으로서 어떻게 시립극단의 기틀을 잡아가실 것인가, 포부를 말씀해 주십시오

차범석-긍정적인 면에서, 첫째는 시립극단인 만큼 시민을 위한 연극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흔히 관변 단체란 것이 관료적으로 흐르기 쉽다는 평을 받아 온 게 우리 풍토인데, 서울시립극단만은 그런 관료적 냄새를 안 풍기는 집단을 만들어 가고, 또 관료적 체취가 풍기지 않는 작품을 공연해서 시민들에게 친근감을 심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는 지금까지 연극계 실정이 열악하여 관객 동원이나 잠재 관객 계발에 능동적으로 일을 하지 못했는데, 시립극단이 바로 이 일을 맡아 하려 합니다. 우리 연극계에선 극장이 부족해서 대관 공연이 주를 이루어, 한 1∼2주일 공연하다가 막을 내리게 되죠. 그러다 보니 끊임없이 관객과 호흡하고 맥을 같이 하는 풍토가 없었습니다. 시립극단은 구민회관의 극장과 당분간 세종문화회관 소극장을 쓸 예정입니다. 장차 시립전용극장 생기게 되는데 그러면 안정적인 기반 위에서 지속적으로 관객을 끌어들이는 활동을 펼쳐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김성희-전용 극장은 어디에 세울 예정입니까?

차범석-용산 미군 부대가 있었던 장소하고 경희궁 자리가 거론되고 있습니다. 용산 쪽이 더 유력할 것 같습니다. 그밖에 구민회관을 연극 전용 극장으로 쓸 수 있도록 미흡한 부분을 고치고 있고, 조명 시설도 훌륭하게 설치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앉아서 관객이 찾아오길 기다릴 게 아니라 우리가 찾아가서 공연을 가짐으로써 그만큼 시민들과 친숙해지고, 연극을 한번도 보지 못했던 사람들도 시립극단의 공연을 구경할 수 있게 가까이 다가감으로써 잠재 관객을 계발하는 지속적 노력을 펼치려고 합니다.

김성희-시립극단이라 국립극단과 비교해서 질문을 드리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국립극단은 시민과 거리를 좁히는 친숙한 극단의 이미지를 구축하진 못한 것 같습니다. 국립극단과 공연 활동 면에서 차별화 시킬 전략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죠.

차범석-전략보다는, 시립극단은 기존의 국립극단과는 뭔가 달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 단원 구성 문제는 국립극단의 경우 30명 정도가 전속제로 되어 있더군요. 쉽게 말해 월급 생활을 하고 있는 거죠. 이런 전속제는 연극인들이 생활의 터전을 얻어서 안정감을 가질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부정적인 면은 노력을 않는다, 공부를 않는다, 또 적재 적소에 인재를 쓸 수 없다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그래서 시립극단으로선 전속제보다는 기간 멤버를 두어 월급을 주고, 작품에 따라 필요한 인물을 일반 극단이나 방송계에서 보다 폭넓게 영입, 연기자의 폭을 넓힐 계획입니다.

그런 경우에 생기는 앙상블의 문제를 어떻게 잘 풀어 나갈 것인가 하는 게 문제겠죠. 이때도 기간 멤버, 즉 전속 단원만 탄탄하게 짜여지면 외부의 객원 출연자와도 조화를 잘 이루리라 생각합니다.

김성희-서울시립 예술단체들, 가령 가무단이나 무용단 등이 세종문화회관 단체 산하에 소속되어 있는데, 이번에 창단 되는 시립극단만이 유독 시장 직속 기구로 알고 있는데요. .시장 직속 기구라는 점에 어떤 이점이나 특징이 있을까요 ?

차범석-이점이라면 구체적으로 단원들의 보수 문제겠죠. 시 산하의 공연 단체들 중 가장 높게 책정된 단체가 시립교향악단인데, 그에 버금가는 보수를 준다고 합니다. 구체적인 액수는 아직 미정입니다.

김성희-어떤 방향으로 시립극단을 운영해 나가실 건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지요.

차범석-앞으로 운영위원회에서 연간 계획을 짜면 세부적인 지침들이 나올 겁니다. 다만 제 개인 의견으로서는 아까 얘기한 대로 시민에 친숙한 연극을 지향한다는 기본 정신을 바탕으로 몇 가지 구체적인 생각이 있습니다. 국립극단의 경우 2, 3개월 연습해서 4, 5일 내지 1주일 공연하고 막을 내리는 실정이어서 애써 준비한 공연이 너무 빨리 끝난다는 아쉬움도 있고 또 관객 입장에선 공연 중인 줄 알고 갔다가 허탕을 치는 일도 있어요. 우리 시립극단은 세종문화회관 소극장을 전용 무대로 갖고 있기 때문에 한 작품을 한달 정도 장기 공연함으로써 완성도를 높일 수 있을 뿐더러 또 심리적으로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재미있고 친근한 공연으로 관객들을 많이 모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 작품에 따라서는 구민회관에서 공연을 계속 갖는 등 지역 구민들에게도 봉사하고 친근해지게끔 할 생각이죠. 이때 가장 중요한 문제가 작품 선택의 문제겠죠. 지역 주민에게 다가간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지나치게 실험적이거나 지나치게 현대적이거나 지나치게 의식화된 작품은 피해야겠죠. 정통적인 연극이면서도 쉽게, 즐겁게 받아들여지는 연극, 또 연극을 보는 일이 생활의 일부로 정립되도록 하는 일이 바로 우리 시립극단의 역할이 아니겠습니까 ?

김성희-운영 방향을 시민에의 봉사라는 쪽에 초점을 맞추고 시민들이 쉽게, 즐겁게 받아들이는 연극 위주로 공연하다 보면 자칫 예술성보다는 대중성, 대중 취향으로 흐를 수도 있겠다는 우려를 해보게 됩니다. 또 관주도의 공연을 의식하다 보면 작품 선택에 경직성을 띤다든지, 계몽성 위주로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생기는데요. 어떻습니까 ?

차범석-그런 우려는 우리 시립극단엔 해당이 안 될 거라 생각합니다. 시민에게 친근감 주는 연극이 어째서 연극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인가, 연극의 대중화가 왜 질적 저하를 의미하는 것인가라고 나는 늘 반문합니다. 여담이지만 내가 1963년에 극단 '산하'를 만들 때 그때 내건 이슈가 연극의 대중화였어요. 전 예술의 대중화가 질의 저하를 의미한다고 생각지는 않아요. 앞으로 번역극, 창작극 가리지 않고 똑같은 비중을 두고 공연할 예정이지만, 연극을 하는 사람, 혹은 연극 평론가들의 기호나 취향 위주로 흐르는 것은 피하겠다는 얘깁니다.

김성희-요즘 우리 연극계를 보면, 작품 선택에 있어서도 감각적이고 가벼운, 대중적인 작품을 고르는 경향이 많이 있는데, 시립극단은 관객 수준을 어디에 놓고 작품 선정을 해 나가실 것인지요 ?

차범석-작품 선택은 정통적인 작품을 선택하여 정통적인 방법으로 공연을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셰익스피어 연극은 대중이 사랑하는 정통적인 작품입니다. 하지만 공연할 때, 원작은 셰익스피어인데, 공연은 어떤 이상한 시각으로 탈바꿈되어 전혀 셰익스피어 극이 아닌 경우가 있습니다. 시립극단은 그런 식이 아닌, 정통적인 공연 스타일을 고수해 나가겠다거죠. 번역극, 창작극 다 마찬가집니다. 일본의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은 인터뷰에서 영화는 알기 쉬워야 하고, 재미있고 친근해야 한다고 말하더군요. 그리고 자기가 영화 100편을 고르는데 그 첫 번째로, 서부극 「황야의 결투」를 들면서 영화에 시가 있어야 한다고 한 게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의 문제점은 아까 평론가들 취향을 얘기했지만, 무조건 색달라야 좋다고 하는 것입니다. 흔히 있는 것은 진부하다고 하는데, 그건 곤란한 시각이죠. 결국 좋은 연극은 알기 쉬우면서도 짜임새와 긴장감, 시적인 분위기, 또 미적 감각도 있는 그런 연극이 아닐까요 ?

김성희-소위 말하는 좋은 작품이라는 것인데, 그런 작품을 꾸준히 선정하는 안목, 제대로 만드는 일이 어려운 일이겠죠. 시립극단에 '드라마투르그'를 두실 작정입니까?

차범석-'드라마투르그'를 따로 두는 것은 아니지만, 그 기능은 충분히 살릴 예정입니다. 예술 감독이나 사무장이 있으니까요. 어떤 작품을 선정할 것인가는 극단이 발족 된 뒤에 구체적으로 짜 나갈 겁니다. 1년에 창작극은 몇 편, 번역극은 몇 편 할 것인가 하는 문제, 또 내년은 정도(定都) 600주년인데 서울에 관계된 소재로 지금부터 어느 극작가에게 희곡을 위촉할 것인가 하는 등 구체안을 계획해 나갈 일이죠. 하지만 중심 뼈대는 어른스러운 연극, 쉬운 연극, 즐거운 연극을 해서 관객들에게 보다 파고 들어가는 연극을 하고자 합니다. 실험적인 연극은 대학로에 맡기면 됩니다.

김성희-단원의 구성을 3등급제로 한다고 들었는데요, 그 점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 주십시오.

차범석-처음에 그런 안이 있었는데, 최종 운영위원회에서 좀 세탁이 되었어요. 수석 단원이니 부수석 단원이니 하는 등급을 예술가에게 매기는 것은 좋지 않다. 이렇게 얘기가 된 거죠. 단원을 선정할 때 차이나 경력이나 수상 경력에 따라 A급이냐 아니냐 정하는 정도입니다. 보수에 차이를 둔다는 것. 이를테면 호봉에 차이를 둔다는 거죠. 단원은 다 등급 없이 똑같은 단원으로 합니다. 하지만 국립극단처럼 전 단원이 계약제가 아닌, 부분 단원 계약제이니까, 상임 단원 수는 많지 않죠. 연극은 배우만으로 하는 게 아니고, 스타에 속하는 중요한 전문가도 필요합니다. 말하자면 예술 감독이라든가 서무까지 합해서 섭외, 기획까지 일 볼 수 있는 사람도 필요하죠. 최소한 두 석은 할애하려고 합니다.

김성희-상임 단원 10명중에서 단장 1석, 예술 감독과 기획에 2석, 배우가 7석이군요. 그런데 상임 단원이 될 수 있는 자격, 경력 어느 정도이며, 어떻게 선발하실 예정입니까 ?

차범석-지난번에 신문에 소개 할 때는 경력 15년 정도를 얘기했었는데, 그러다 보니까 단원들 연령이 매우 높아진다는 문제가 생기더군요. 젊은 사람들이 참가하지 못하게 되죠. 그래서 경력을 7년 이상으로 내렸어요. 그러면 이십대 후반이나 삼십대 초반도 잘하는 사람은 낄 수 있게 됩니다. 단원 선발은 원칙적으로 공개 채용으로 서류 전형, 실기, 인터뷰의 과정을 거치게 될 겁니다. 연극을 열심히 하고, 수상 경력 등 객관적으로 인정받는 연극인, 인간성 등을 중시해서 뽑을 겁니다.

김성희-남녀 비율의 고려도 있습니까 ? 상임 단원들의 임기도 2년입니까 ?

차범석-남녀 비율은 고려하지 않습니다. 임기는 2년인데, 계속 재계약이 가능합니다.

김성희-조직상의 문제를 여쭤 보겠습니다. 시에서 예산 책정, 집행을 하고, 운영은 예술가가 하는 이원적 조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또 운영 역시 운영위원회와 실무진의 이원 조직인데요, 이처럼 이원 조직에서의 상호 보완이나 역할 분담은 어떻게 해 나가실 계획이십니까 ? 특히 운영위원회의 경우엔 단순한 자문 기구라면 유명무실해지기 십상이고, 역할을 가질 경우 시, 극단, 운영위원회 삼자가 어떻게 조화를 이뤄 나가야 하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이 경우 독선 방지란 장점도 기대되지만 비능률이 야기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되는데요. 또 관의 주문이 어떤 형태로든 있지 않을까요 ?

차범석-관의 주문은 전혀 없을 것으로 약속을 받았습니다. 단장을 뽑는 문제부터도 전혀 관여하지 않았고, 작품 선정에도 완전히 자율성을 보장받았습니다. 운영위원회는 상부 구조인데, 운영위원회에서 큰 공연 계획을 세우고, 다음엔 예술 감독이 그 계획 하에 연출이나 무대미술 등 담당자를 선임한다든지 하는 실질적인 공연 플랜을 짜고서 다시 운영위원회와 의논합니다. 세부 계획이 확정되면 단장, 예술 감독, 사무장이 실제 업무를 수행해 나갑니다. 그리고 제작비를 산출해서 시에 넘기면 시에서 예산을 집행해 주는 식으로 조화를 이룰 겁니다. 서로 얘기가 오고 가는 것이지 어떤 상하구조가 아닙니다.

김성희-마지막으로, 창단 공연은 언제쯤 가질 것인지요 ?

차범석-6월 하순으로 잡고 있습니다. 2월중에 단원을 선발하고, 결단식을 갖게 되면 3월에 업무를 개시하고 창단 공연을 준비할 예정입니다.

김성희-오랜 시간 동안 말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