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문예 / 독일

드라마투르그, 숨은 예술가




김미혜 / 문예진흥원 전문위원

대외에 독일의 문화와 예술을 알리는 일을 하는 총본부라 할 수 있는 독일 문화원(Goethe Institut)에선 독일의 특이한 업적 중 하나로 독일 극장들의 '드라마투르그'에 대한 필름을 제작, 배포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필름의 잠정적 제목은 「소멸의 예술(Die Kunst des Verschwindens)」이라고 한다. 이 제목을 제안한 이는 현재 독일 극장(Deutsches Theater)의 드라마투르그인 미케 에베르트(Mike Eberth)로 그는 자신의 작업을 "연출가, 무대 디자인, 배우들의 예술 속에 용해되는 데"있다고 보고 있다. 이렇게 볼 때 그가 제안한 「소멸의 예술」이란 제목은 독일의 드라마투르그를 적절하고도 간명하게 정의한 것 같다.

공연의 모든 과정에 참여

Dramaturg의 어원은 희랍어의 dramaturgein, 즉 '드라마를 쓴다'는 뜻으로 극작가 및 공연 책임자를 의미했다. 희랍시대의 연극에서 한 사람이 극작가, 배우, 합창대 지도자의 역할을 겸했으므로 이런 미분화된 업무는 당연했을 것이다. 현재도 많은 나라가 드라마투르그를 이런 소극적 의미로 쓰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그 중의 하나로써 극작고문이라 번역하고 그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허나 독일에선 이 개념이 독특한 발전을 하게 된다.

현재 독일의 큰 극장들에 서너 명의 드라마투르그들이 팀웍을 이루어 일하고 있지만, 그 활동 범위가 매우 다양해서 분명한 윤곽을 짓기는 어렵다. 더구나 극장들이 나름대로 목표하는 바가 다르고 취향도 달리하고 있기 때문에, 드라마투르그의 업무도 그에 따라 조금씩 다른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독일의 드라마투르그가 하는 중요한 기본적 업무를 보면, 이들이 한 편의 프로덕션을 위해 철저한 기초작업과 대외 활동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우선 시즌별, 연별 레퍼토리 선정을 하며 선정된 작품을 조달·번역, 번안, 개작한다. 이때 작자나 원작자와의 교섭, 타협 등 법률적 차원의 일까지도 이들의 몫이다. 텍스트가 마련된 후 연출가를 물색하고 배우의 캐스팅에 조언을 하며 무대 스텝진과 프로덕션을 위한 상의를 하는 것도 드라마투르그이다. 작품의 리허설 때 드라마투르그들은 좋은 관객 내지는 비평가의 역을 하며 최상의 실제 공연을 위한 제언을 하게 된다.

드라마투르그들이 하는 대외적 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홍보이다. 포스터 제작시의 의견 제시는 물론 프로그램 책자의 편집, 이를 위한 자료 수집, 대중매체를 상대로 하는 홍보 자료 방송, 기자회견, 강연, 공연 전후의 토론의 개최 등을 모두 이들이 담당한다.

극단의 살림꾼은 아니다

이렇게 볼 때 독일의 드라마투르그들은 우리 극단들의 기획자들이 하는 것과 비슷한 일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은 극단의 살림꾼이 아니다. 그들이 하는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희곡 활성화, 극작가 발굴 및 번역 작업에 있는 것으로도 이를 알 수 있다. 신춘문예나 문학지들을 통해 극작가가 발굴되는 우리와는 달리, 독일의 극작가 지망생들은 직접 극장으로 작품을 보낸다. 이렇게 보내어진 희곡들 중 좋은 것, 실험적인 것을 골라내어 무대화시킴으로써 신인 극작가들을 발굴하는 작업이 드라마투르그들의 업무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높은 문학적, 예술적 심미안을 갖고 있어야 한다. 주로 독문학, 예술사학, 연극학, 신문학 등을 공부한 이들이 드라마투르그로 활동하게 되고 이들 중 박사학위 소지자가 많은 것도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높은 문학적 심미안으로는 실제 프로덕션의 조언자가 될 수 없으므로 이들은 무대의 실제에도 장인적 지식을 갖출 것이 요구된다.

그러나 드라마투르그들은 무엇보다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데 만족 할 수 있는 기질이어야 한다. 이는 글머리에도 썼듯이 '소멸의 예술가'일 수밖에 없는 이들이, 한 극장 내에서 누구에게나 알려져 있고 한 편의 프로덕션에선 그의 손길이 닿지 않는 구석이 없으면서도 대외 적, 공적으로는 '무명인'으로 머물러야 하기 때문이다.

브레히트에 의해 자리 잡혀

독일에서 드라마투르그제가 통상화 된 것은 1920년대이지만 그 역사는 1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에는 18세기 중엽 함부르크에 최초의 국립극장이 서게 되고 이곳에서 G. E.레싱은 극작고문과 같은 일을 하게 된다. 세계 연극사에서 최초의 연극 평론집으로 평가되는 유명한 「함부르크 극작론」(Hamburgische Dramaturgie)은 바로 이 극장에서 그가 이룩한 업적의 결정체이다. 이 극작론에서 그는 극작, 미학이론, 레퍼토리 선정 등의 문제를 고찰하고 있으며, 이때부터 독일에서의 드라마투르그의 개념은 그 기본 방향이 설정되어 극장에서의 문학적, 예술적 조언자 내지는 협업자로 발전된 것이다.

독일에서 오늘날과 같이 드라마투르그의 기능이 확고해진 것은 그러나 브레히트(B. Brecht)의 덕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텍스트와 공연을 끊임없이 분석, 비평하고 협업을 통해 개작해감으로써 연출가와 드라마투르그의 역할을 겸했고, 특히 말년에는 베를린 앙상블(Berliner Ensemble)에서 자신을 수장(首長)으로 한 팀웍을 이룩함으로써 연출의 기능과 함께 드라마투르그의 기능에 역점을 두었다.

브레히트의 기여로 1970년대부터 독일에서 통상화 된 것이 프로덕션별 드라마투르그제이다. 이는 한 프로덕션에 한 명의 드라마투르그가 투입되어 사전, 사후의 총책임을 지는 제도이다. 이의 선구가 된 극장은 베를린의 샤우뷔네(Schaubühne am Halleschen Ufer)로, 당시 비평가였다가 나중에 극작가로 변신한 보토 슈트라우스(Botho Strauβ)는 이곳의 드라마투르그로서 연출가 페터 슈타인(Peter Stein)의 작업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세계에서 연극에 가장 많은 돈을 투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이는 극장을 시민의 학교로 간주하는 전통 때문) 독일은, 지난 70년대 말부터 관객의 급격한 감소로 애를 먹고 있어, 요즈음은 무엇보다 홍보에 적극적인 드라마투르그를 요구하는 추세이다.

독일과는 달리 우리는 연극 관객이 늘어나는 추세에 있고, 서울시립극단의 창단을 비롯하여 예술의 전당 전관 개관에다 연극 전용극장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하드웨어는 어느 정도 충실해 가는데 그 안을 채울 소프트웨어와 그 질의 문제들이 거론될 단계가 된 것 같다. 연극 한 편의 프로덕션에 연출가나 예술 총감독을 도와 그 완성도를 높이는데 독일의 드라마투르그제가 적절하다면 우리도 한번 시도해봄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