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문예 / 스페인

오늘의 스페인 문학




장선영 / 외국어대 스페인어과 교수

스페인 문학에 생소한 독자들을 위해 우선 이 나라 문학의 흐름을 간단히 소개하겠다.

스페인 문학은 사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해학과 풍자를 꽃피우면서 발달해 왔다. 16세기와 17세기를 통해 이른바 '황금세기'로서 당시 유럽 문단을 주도하면서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18세기를 통해 정치적 쇠퇴와 더불어 문학의 쇠퇴기가 도래했다. 그 뒤 19세기에 들어서서 어느 정도 회복되었으나, 과거의 그 영광을 향유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저 지역문학으로서 어느 정도의 수준을 유지할 뿐이었다.

침체의 늪에서 탈출 시도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제법 세계적 명성을 올린 작가들도 몇몇 배출하면서 영광을 누렸으나, 1936년 내란이 일어나는 바람에 그만 침체의 늪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3년이 지난 후, 즉 1939년 내란이 끝난 후에도 스페인 문학은 좀처럼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39년간 지속된 프랑코 정권 하에서 스페인 문학은 갖은 제약과 가혹한 검열을 감수하면서 겨우 명맥을 유지했다.

1975년 프랑코 타계 후 자유화의 물결이 문단을 휩쓸었다. 그러나 1980년까지는 자유의 범람으로 미처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혼미상태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형편이었다. 80년대에 들어와서 겨우 정신을 차린 스페인 문학은 이미 전통화 된, 아니 고질화된 지역성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하여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결과는 역부족이었다. 어느 작품도 스페인의 전통성에 바탕을 두고 세계화에 성공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스페인 문학은 80년대를 세계화와 지역성 사이에서 심한 갈등을 겪으며 보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럼 90년대로 들어와서는 스페인 문학이 어떤 형태로 발전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 있는 일이라 하겠다. 현재까지 나타난 현상으로는 많은 작가들이 문제의 '세계화'를 향해 몸부림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전통성에 뿌리를 두고서 말이다. 그들은 잘 알고 있다. 설사 세계화에 성공을 거둔다 할지라도 스페인 토양에 뿌리를 박지 못한다면 그건 국적 불명의 문학이 되고 만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런데 이 사실을 인식하고 조심스럽게 세계화의 길로 들어서는 작가들이 90년대와 더불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스페인 문학의 전통을 십분 인식하면서, 아니 존중하면서 세계화를 향한 문학을 연마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 대표적 인물들을 몇몇 선정하여 여기 소개해 볼까 한다.

후안 마르세

우선 후안 마르세를 그 대표적 인물로 들어야겠다. 그를 맨 먼저 소개하는 이유는 그가 그런 작가들 중에서 최연장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1933년, 작년에 올림픽 대회를 치른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났다. 15세부터 26세까지 그는 보석공장에서 기능공으로 일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문학에 소질이 있었던 그는 글쓰는 일도 병행해서 했다. 1959년 어느 잡지에 기고한 단편이 문단의 호평을 받자 그 동안 모아두었던 작품들을 엮어 단편집으로 발표했다.

그런데 이 단편집이 스페인에서는 제법 권위가 있는 '세사모' 문학상을 획득하게 되었다. 그 뒤부터 발표하는 작품마다 으레 귄위 있는 문학상이 붙어 다니다시피 했다. 그 중에서도 그의 이름을 확고히 해 준 작품은 「떼레사와 마지막 오후를」이었다.

이 장편소설은 그에게 1965년도 간단도서관상(簡單圖書館賞)을 그에게 안겨 주었다. 이 작품은 당시 스페인 문단을 휩쓸던 이른바 사회 사실주의의 표본으로서 국내외적으로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자신의 비참했던 노동자의 삶을 소재로 삼아 사회 계층간의 위화감과 빈부 차이의 모순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다시 말해서 당시 스페인의 실상을 여실히 표출한 작품이었다.

그 뒤 후안 마르세는 꾸준히 문제작을 발표했으며 그때마다 중요한 문학상을 획득하는 행운을 누렸다. 1990년에 발표한 「이중언어 연인 (二重言語 戀人)」은 1990년도 '세비야 아떼네오' 문학상을 획득했는 바, 상은 어떻든 간에 작품의 내용이 특이하여 국내외에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후안 마르세는 60대의 원로작가로서 이때까지 주로 사회 문제를 즐겨 다루었다.

그러나 그 사회 문제는 스페인에 국한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다른 작가들에 비해서 그 폭이 덜 편협적이고 그리고 초점의 범위가 스페인 국경 밖으로 확대하려는 끈질긴 시도는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스페인적 입장에서 이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90년도 초기를 화려하게 장식한 문제의 작품은 괴상한 주제를, 구체적으로 말해서 정신 분열증을 주제로 한 일종의 심리소설로서, 현대인의 왜곡된 심리를 포괄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작품의 흐름은 진한 전통적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작중 인물들은 분명히 스페인적이면서도 그들의 의식은 이미 스페인적인 것에서 탈피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행동과 의식은 따로따로 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원적 현상은 조금도 무리 없이 특이한 조화를 형성하고 있다. 어느 성급한 평론가는 이 작품을 가리켜 이미 세계화에 성공했다고 단정했지만, 그러나 냉정히 말해서 세계화 운운은 아직 미지수 상태라 하겠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작품의 흐름이 스페인 소설의 특유한 요소, 즉 해학과 풍자에 지나치게 매달리다 보니 경박해지면서 독자에게 그 어떤 장중한 여운을 남겨 주지 못하고 있다. 만약에 「떼레사와 마지막 오후를」처럼 차분한 필치로 썼더라면 지금 우리가 비판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결점들은 눈에 띄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전에는 후안 마르세의 작품세계에서 미처 느끼지 못했던 빠른 템포의 진행에다가 대담한 표현, 반윤리적 행위 등이 작가의 인격까지를 의심케 할 정도이다. 마치 어느 아주 점잖은 사람이 갑자기 태도를 변하여 야비한 언사를 말하면서 난폭한 행동을 취하는 것과 같다.

아무튼 작가는 이 작품을 계기로 해서 스페인의 고전적 필치에서 탈피하여 현재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이중시간 예를 들면 과거와 현재의 동시성, 스피드 시대에 적합한 빠른 템포 등을 요란하게 구사하고 있다. 이런 사전 지식을 가지고 그 내용을 살펴보자. 앞서도 언급했지만 주제는 정신 분열증인데, 주인공이 내가 아닌 타인이 되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 인상적이다. 타인이 되고자 하는 이유는 순전히 나를 떠나서 타인이 됨으로써 짙은 향수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향수는 단순히 고향을 그리워하는 그런 감정이 아니라 마음의 평화와 직결되는 것을 의미한다. 주인공 후안 마레스(저자 후안 마르세와 음이 비슷하다)는 미친 듯이 사랑하는 아내에 의해 버림을 받고 심한 좌절감과 소외감에 빠진다. 그리하여 조금이나마 기막힌 심정을 달래기 위해 바르셀로나 거리의 악사로 떠돌아다닌다.

그러나 절망은 조금도 사그라지지 않는다. 그는 견디다 못해 자기 자신으로부터 탈출하여 타인이 되고자 필사의 노력을 한다. 그리하여 성격적으로 '형편없는 인간'으로 변해서 자기를 배반한 전처를 재정복하고자 한다. 그런 과정에서 그는 기묘한 착각 속에 사로잡힌다. 즉 정신적으로는 물론 신체적으로도 완전히 제2의 인간이 되는 자신을 느낀다. 그렇다고 제1의 인간에 대한 의식이 완전히 소멸된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이것도 저것도 아닌 인간이 되고 만 것이다. 나중에는 어느 한쪽을 택하려고 해도 불가능한 상태가 되고 만다. 결국 의식의 미아가 되고 만다.

그런데 작품을 보면 이런 기막힌 상태로까지 진전되는 과정이 때로는 익살스럽고 또 때로는 장난스럽기까지 한다. 그런데 우리는 주인공의 정신 분열증적 변형에서 그 어떤 사회적 의미를 찾아야겠다. 이것은 곧 바르셀로나가 겪고 있는 이중적 문화, 이중적 언어를 풍자한 것이다. 현재 바르셀로나는 그 지방의 언어인 까딸란어 사용을 고집하면서 독자적인 문화 형성을 고집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경계적으로 마드리드를 비롯한 다른 지역과의 인연을 쉽게 끊을 수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점차 어정쩡한 군상으로 변하고 있다. 이 현상은 언뜻 보기에 바르셀로나에 국한된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당장 우리 나라에도 대두되고 있는 심각한 문제이다. 외래 문화에 휩쓸려서 우리의 것을 잃어 가는 우리 자신이 바로 바르셀로나 사람들인 것이다. 만약에 이 예가 정당하다면 문제의 작품은 세계화의 성공을 기약할 수 있다 하겠다. 그러나 앞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뭔지 모르게 작품의 경박함이 우리의 낙관적 희망을 자꾸 차단시킨다. 역시 후안 마르세도 스페인 소설의 전통적 기법에서 탈피하지 못하는, 어디까지나 스페인 작가인 것이다.

알프레도 꼰데

다음에 소개하는 작가는 1945년에 태어난 발프레도 꼰데이다. 그도 여러 작품들을 발표하였는데 그 때마다 문학상(권위가 있든 없든 간에)을 획득했다. 특히 1990년 국민문학상 수상자가 됨으로써 문단에서 실력 있는 작가로 공인 받게 되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1991년 '나달' 문학상(스페인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을 획득함으로써 문단 내에서의 그의 위치는 확고해 질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그가 이런 추세대로 작품활동을 계속한다면 20년 내에 유력한 노벨 문학상 수상 후보자로 세인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 먼 훗날의 일이고, 지금 당장 그가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다음의 이유 때문이다. 즉 그는 스페인 작가들 중에서 매우 실력 있는 작가로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그는 꾸준히 공부를 한다. 그 동안 굵직굵직한 문학상을 여러 개 탔는데도 조금도 교만하지 않고 겸손한 태도를 견지하면서 꾸준히 작가수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리고 그 결실은 그의 연속적으로 발표되는 작품들 속에서 여실히 엿 볼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흠은 일반 독자들에게는 그의 작품이 난해하다는 평이 있다. 1991년도 나달문학상 수상작품 「지난 나날들」은 언뜻 보기에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축소판 같은 인상을 준다. 작품의 줄거리를 보면 이 말에 십분 이해가 갈 것이다. 어느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파킨슨병에 걸리자 할 수 없이 고향으로 낙향한다. 일평생 음악에 온갖 정열을 바친 그로서는 다른 일은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음악도 할 수 없는지라 그만 자아상실에 빠지고 만다. 그리고 자아상실 속에서 지난 나날들에 대해 의식의 문을 활짝 연다. 이렇게 과거와 내밀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그는 새로운 삶의 기쁨을 맛보게 된다.

알프레도 꼰데는 주인공이 현실의 괴로움을 떨치면서 과거의 환희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과정을 그야말로 서정적인 필치로 묘사하고 있다. 언뜻 보기에는 아주 재미없는 소설이지만, 웬만큼 독서의 질을 높인 독자에게는 두고두고 반복해서 읽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 그런 작품이다. 솔직히 말해서 이 작품은 스페인에서 대중적 인기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비평가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스페인 문단의 저력을 유감없이 발휘시킨 작품이라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만약에 알프레도 꼰데가 그의 기본 실력을 바탕으로 해서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는 그런 작품을 쓴다면 그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간 자부심이 강한 작가가 아니다. 결코 현실과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그가 스스로 구축해 놓은 작품세계를 계속 고집할 것이다. 비록 일반 대중은 아쉬워할지 모르나 스페인문학은 그만큼 내용적으로 알찬 열매를 맺은 것이다. 벌써 그런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이웃 나라들이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유럽 문단에서는 이미 그를 스페인의 유수한 지성 작가들 중의 하나로 간주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작품세계를 호의적으로 이해하는 스페인의 지식인들은 그가 스페인 문학의 세계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믿고 있다.

로사 몬떼로

다음에 소개하는 로사 몬떼로는 1951년 생의 여류작가이다.

그녀는 대학에서 신문학과 심리학을 전공하고 현재 엠바이스 신문사에서 일요 증보판 편집책임자로 근무하고 있다. 평소 부지런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그녀는 언론에 관한 책들과 소설 작품들을 출판했는 데 거의 10권에 달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를 자타가 공인하는 여류작가로 출세시킨 작품은 여기에 소개하는 「진동」이다. 1990년 이 작품이 빛을 보자 문단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는데, 평론가들의 말인즉 "짙은 문학성에다가 독창적 개념을 바탕으로 해서 이루어진 심리 소설"이라고 했다.

주인공이 엄청난 고독감에 견디다 못해 자아 중심 속으로 빠져들면서 인간조건의 근원을 탐색하는 모습은 독자들로 하여금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한다. 이 작품도 대중의 인기와는 인연이 멀다. 그러나 질적으로 높이 평가받은 작품이다.

알레한드로 간다라

마지막으로 1992년도 '나달' 문학상 수상작인 알레한드로 간다라의 「맹목적 희망」을 소개하고자 한다.

저자는 1957년 생으로서 대학에서는 사회학을 전공하였다. 현재는 문과전문대학 학장으로 있다. 22세부터 문학작품을 쓰기 시작한 그는 그 동안 여러 개의 문학상을 획득하면서 문단에서 유능한 소장작가로 주목을 받았다.

작년에 나달상을 탐으로써 작가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했다. 이 「맹목적 희망」은 현대를 사는 한 지식인의 내적 고독을 영상적으로 또는 신비한 수법으로 그리고 있다. 모든 인류의 고뇌가 주인공의 의식 속으로 몰입하기나 한 것처럼 주인공은 어떤 표현할 수 없는 초조감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나 그에게도 희망은 있다. 그것은 언젠가는 이 고뇌의 늪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고독의 국경을 넘어 밝게 웃을 수 있는 세계로 도착할 수 있다는 희망이다. 그러나 그 '언젠가는'이 언제 그에게 다가올지 그는 결코 알 수 없다. 단지 기다릴 뿐이다. 맹목적으로 기다릴 뿐이다. 어떻게 보면 이 주인공이야말로 막연한 희망을 안고 반복적 삶을 영위하는 현대인을 단적으로 상징하고 있는 것 같다.

세계화를 위한 작가들의 노력

이상으로 현재 스페인 문단에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네 명의 작가를 연령순으로 소개했다. 이 네 명의 작가는 각각 성장 배경이 다르다. 후안 마르세는 비록 어린 나이지만 내란을 직접 목격한 세대이고, 알프레도 꼰데는 내란 후의 어렵고 비참했던 삶을 겪으면서 자란 세대이다. 로사 몬떼로는 비록 프랑코 정권 치하지만 살벌했던 분위기는 가져지고 경제 발전의 풍요로운 시대에서 성장했다. 그리고 알레한드로 간다라는 프랑코 타계 후 자유가 난무하는 민주화 시대에서 20대를 보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의 엄숙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즉 스페인 문학의 지역성을 탈피하고 세계화를 도모해야 된다는 작가적 사명에 불타고 있다. 각각 그 시도하는 방법이 다르겠지만 그러나 목적은 동일하기 때문에 스페인 문단에서는 그들을 오늘의 스페인 문학의 대표적 인물로 꼽고 있다.(대중은 비록 그들의 존재를 무시한다 해도 말이다.)

물론 이들 작가 이외에 어떤 다른 작가, 전혀 예기치 않은 인물이 그 일을 달성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누구라 할지라도 이들 네 작가의 어느 한 부류에 속해 있으리라는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