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문예 / 프랑스

에이즈와 문학




함유선 / 불문학·한남대 강사

에이즈(후천성 면역 결핍증)라는 새로운 질병이 발견된 지 12년이 흘렀다. 고도 산업화에 따른 물질 문명과 세기말적 향락 산업의 발달로 이 병은 점점 확산, 가속화될 전망이다.

이 시대를 상징하는 질병인 에이즈는 이제 전세계 사람들에게 암 이상의 공포병으로 등장했으며, 그에 따라 모든 사람들이 에이즈를 퇴치하는데 관심을 기울이고 치료약 개발과 아울러 에이즈 감염 방지를 위한 계몽 운동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는 실정이다.

문학 속의 질병

지금까지는 에이즈를 다룬 문학 작품이 많지 않았다. 에이즈에 걸릴 경우 아직 치료법이 발견되지 않았고, 일단 걸리면 죽음에 이르는 확률이 극히 높다는 점에서 더욱 공포의 대상이 되기는 하지만 아직은 우리에게 거리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프랑스의 몇몇 작가들이 용감하게도 문학 작품의 언어를 통하여 그 병이 우리의 생활에 매우 밀접하게 다가와 있다는 것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한 개인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픽션을 통해서 우리는 그 병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빠른 시일 내에 치료법이 발견되지 않는 한 금세기 말까지 거의 1억 명이 에이즈로 죽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21세기에는 아마도 사람들은 고독한 이야기, 곧 사랑의 부재, 죽음을 읽으면서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단 20세기뿐만이 아니라 거의 언제나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불가항력적인 질병이 있어 왔고 그것은 또한 문학 작품으로 형상화되기도 했다. 이를테면 19세기의 소설에서는 매독과 결핵이 언제나 빠짐없이 등장한다. 그리고 까뮈의 소설 「페스트(Peste)에서는 유행병인 페스트와 싸우는 사람들을 그리고 있다. 여기에서 페스트는 유행병이기는 하지만 이것은 또 한 인간이 싸워 나가야 할 악을 상징한다. 말하자면 인간은 언제나 악을 없애기에 부단히 노력하나, 인간이 존재하는 한 악도 또한 존재한다.

그러므로 페스트균을 퇴치했다고 해서 이 세상에서 멸종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악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다시 나타날 수도 있다. 다만 인간은 그 병을, 악을 없애기에 끊임없이 노력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20세기말에, 하필이면 암이 치유될 단계에 들어서 있고 마침내 피임이 성을 자유롭게 한 이 시기에 '사랑의 흑사병'이라고도 불리는 에이즈가 다른 어떤 유행병보다도 무섭고 빠르게 사람들을 긴장과 공포에 휩싸이게 하고 있다.

'에이즈' 다룬 프랑스 문학

프랑스의 경우 문학 분야에서 에이즈에 관한 주목할 만한 책은 열 권 정도가 있다. 그 책들은 이를테면 주인공이 사랑했기 때문에 목숨을 잃게 되는 것을 고백하고 있다. 그들은 이제 곧 죽음이 임박해 있다는 선고를 받아놓았다. 대체로 에이즈에 관한 소설에서는 병을 치료해주어야 할 의사라든가 환자를 죽음의 절망으로부터 구제해 줄 구원자가 등장하지는 않는다. 특히 이브 나바르(Yves Navarre) 「바람이 실어간 친구들」이나, 미셸 마니에르(Michel Maniere)의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등은 사회적으로도 철저하게 소외되면서 죽음을 향해 가는 환자를 무능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친구의 이야기를 증언하고 있다.

이 유행병으로 인해서 온 사회가 떨고 있다는 식의 그 두려움을 직접적으로 묘사한 소설은 아직 없다. 장 노엘 판크라치(Jean Noël Pancrazi)는 그의 작품 「겨울의 거리」에서 동성연애자들이 많이 모인다는 나이트 클럽의 분위기와 함께 에이즈 환자들의 당혹함을 잘 묘사하고 있다. 동성연애자들이 모이는 장소에서 에이즈 바이러스가 치명적이며 빠른 속도로 감염이 된다는 사실을 아무런 여과 장치도 없이 드러내고 있다. 결국에는 쾌락도 요원한 환상이 되고 행복도 영원한 신화에 묻히고 만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에이즈 환자들이 겪는 고통은, 특히 동성연애로 인해서 그 병에 감염되었을 경우에는 더욱 커진다. 에이즈는 비정상적인 성행위에서 비롯되고 종족 보존이라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성의 윤리에 위배된다. 그러므로 에이즈 환자들을 바라보는 일반 사람들의 시각은 당연히 곱지 않고 가족들 또한 환자의 고통에는 거의 무지할 정도이다. 더구나 에이즈로 참혹하게 죽는다고 해도 그의 죽음은 인간성의 결여를 여실히 드러낼 뿐 「러브 스토리」의 주인공의 죽음이 아닌 것이다.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된 인물을 본격적으로 다룬 소설은 아직 없었다. 그러나 그 자신 에이즈 환자였던 에르베 기베르(Herve Guibert)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환자의 극심한 고통과 죽음 앞에서의 공포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1955년 파리에서 태어나 기자이며 사진 작가이기도 했던 기베르는 1977년 작품활동을 시작하면서 죽기 전까지 약 열 다섯 편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그가 일반 독자나 비평가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1990년에 발표된 에이즈를 소재로 한 「내 삶을 구원 해주지 않은 친구에게」(A l'ami quine m'a pas sauve la vie」라는 작품을 발표하고 나서였다. 그 이후 1991년에 역시 에이즈를 소재로 쓴 「연민의 보고서(La Protoode compassionnel) 」를 발표하였다.

그는 에이즈라는 병에 걸려 죽음을 선고받았을 때 최후의 수단인 양 글쓰기에 매달렸다. 그의 소설도 다른 일련의 에이즈 소설과 마찬가지로 이를테면 사랑의 이야기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고독 속으로 난파당하듯 빠져 들어가는 그 흔들림을 묘사하고 있다.

환자는 모든 사랑의 삶으로부터 격리되고 마는 것이다. 주인공은 자신의 몸 속에 들어온 바이러스가 에이즈라는 진단을 받고서도 자신은 치유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자신이 돌이킬 수 없이 죽음을 향해 가고 있으며 사랑이라는 낱말은 이미 아무 의미가 없음을 깨닫게 된다.

위태로운 사랑의 기록

위의 두 작품과 더불어 사후 출판된 「붉은 모자를 쓴 남자」(L'Homme au chapeau rouge)」에서 기베르는 용감하게 그리고 격정적으로 에이즈와 자신이 마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의 소설들은 주인공이 작가 자신임을 깨닫게 하는 끔찍한 모놀로그이고, 생생하게 죽음과 마주하고 서있는 한 존재의 고독한 외침이다. 죽음에 이끌려가면서 그는 고통 속에서도 그 자신의 내면의 노래를 끌어내고 있다. 에이즈는 이렇듯 한 생명의 희생, 그 종말을 통해서 문학 속으로 들어온다. 언제나 우리를 자극하는 사랑 소설과는 달리 에이즈 소설은 언뜻 보기에 그 병이 우리와 무관한 듯 하나 우리의 일상에 언제든지 틈입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기베르는 놀랍게도 그 자신의 개인적 체험이라는 그물에 독자를 가두고 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존재 속에서 그리고 자신의 작품 속에서 작가로서의 도전의식을 실행하였다.

에이즈 환자로서 겪는 고통, 그리고 삶에 대한 끈질긴 욕망과 집착, 자신의 과거의 건전하지 못 했던 생활 등을 솔직하게 고백함으로써 그의 작품은 에이즈에 관한 가장 명확한 텍스트로 간주된다.

성에서 금기되는 동성연애가 사라지고, 그래서 이성간의 사람이 더욱 아름답고 부부가 서로에게 충실할 때는 언제일까. 30년이나 50년 후에 에이즈의 시대라도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역사적인 사실이든 전설로 남아있든 문학은 이러한 죽음에 직면한 위태로운 사랑을 추억하며 기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