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해

삶의 질을 위한 책의 질




배문성 / 시인

1993년 '책의 해' 사업을 펼치고 있는 '책의 해 조직 위원회'의 사업계획서에는 '삶의 질을 위한 책의 질'이란 항목이 나온다. 이 시대의 책이 나아갈 바를 가장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이 '명제'는 동시에 이 시대 책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의문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제는 삶의 질을 생각하게 되는 경제력 팽창의 시기에, 책이라는 자못 전시대적(?)인 미디어를 통해 우리는 다양한 정보를 섭취하고 다양한 생활 방식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 명제의 긍정석인 측면이다.

반면, 과연 이 시대에 우리가 책을 통해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도 이 명제는 하고 있다.

어릴 때 어머니께서 입만 열면 하시던 "공부해라. 책 읽어라"는 말은 다분히 책이야말로, 삶의 질을 높이는 지름길이란 확신에 찬 권유이며 강요였다. 또 그 어머니의 권유는 당당하게 권위를 인정받을 만큼 '책 많이 읽어서, 공부 잘해서 잘 된' 많은 사례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 우리는 또 다른 많은 사례들을 목도하고 있다. 물론 '책 많이 읽어서 잘 된' 사례가 줄어든 것은 아니지만 그에 비견할 만큼 '책 안 읽어도 잘 되는' 사례도 있더란 말이다.

꼭 책을 많이 읽어야 잘 되던 시대에서 꼭 책을 많이 안 읽어도 잘 될 수 있는 시대로 우리는 바야흐로 들어서고 있다. 이 부분에, 이 과정 속에 지금 이 시대의 '삶의 질을 위한 책의 질'이란 명제를 채우는 내용이 담겨 있을 것이다.

이런 시대, 책을 많이 안 읽어도 잘 될 수 있는 이런 시대에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책의 질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가 세계에 유례가 없는 책의 해를 제정하면서 까지 책 읽는 문화를 조성하고자하는 우리의 곤혹스러움과 또 의지가 담겨 있다.

책의 해 조직위원회가 작성한 사업계획의 '삶의 질을 위한 책의 질' 항목의 내용에서도 이런 곤혹스러움과 의지가 잘 드러나고 있다.

'……이 점에서 무엇으로 어떻게 인간적인 삶을 충실하게 하고 그 느낌의 능력을 키우게 할 수 있느냐에 있어 좋은 책읽기는 더욱 필수적인 요소가 되고 있다.'

의문은 계속된다.

어머니의 권유는 이미 그에 맞지 않는 많은 사례들에 의해 권위를 잃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과연 현대의 삶에 '좋은 책읽기가 필수적인 요소'가 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좋은 책이란 이 시대에 어떤 것이냐 라는 것에서부터, 좋은 책을 읽었다고 삶의 질이 높아질 것이냐라는것까지.

책의 해 조직위원회에서 펼치고 있는 1993년 책의 해 사업은 바로 좋은 책이란 어떤 것인지를 찾아가는 긴 과정일 것이고 또 좋은 책을 읽으면 나은 삶을 찾아갈 수 있다는 오래된 명제를 다시금 확인해 주는 여정이 될 것이다.

특히 좋은 책을 읽으면 나은 삶을 찾아갈 수 있다는 명제를 다시금 작금의 독서 대중에게 긍정적으로 인식시키는 것은 책의 해 조직위원회가 펼쳐 낼 사업의 성공 여부를 결정할 만큼 중요한 사항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점에서는 좋은 책이 없어서가 아니라 좋은 책의 효능과 장점에 대한 확신을 지금의 독서 문화가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번 실추된 적이 있는 어머니의 권유를 다시금 따를 수 있게 하는 데는 당위론의 강요보다는 권유에 걸맞은 효능을 확인시켜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대대적인 홍보 작전을 통해 책 읽자고 광고를 해도 독서 대중이 그 '좋은 책'의 효과를 믿지 않으며 믿지 않는 좋은 책만 널리 알리는 결과만 초래하게 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책의 해 주요 사업 계획

책의 해 조직 위원회에서 준비하고 있거나 이미 시행하고 있는 사업은 우선 대규모의 책읽기 분위기 조성 사업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 중 눈길을 끄는 사업을 보면 '도서관에 책을 채우자' 운동 전개, '출판서지 정보의 안내 기능 확대', '전국 순회 도서전시회', '책의 장을 확대하는 전시와 퍼포먼스', '저자와의 대화 대규모 이벤트화' 등이 그것이다.

이 중 기존의 출판사와 대형 서점에서 시행하고 있는 사업들을 대규모 조직화하는 사업도 있으며 출판서지 정보 안내 기능 확대의 경우 보다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도서 안내 서비스를 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현재 판매 중인 도서 목록을 망라하는 국내 도서 목록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하고 '책을 찾아드립니다'라는 전화를 개설하고 신간 도서에 대한 음성정보 시스템을 개발해 신간 도서 정보에 대한 보다 폭 넓은 정보 서비스를 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전국 순회 도서전시회의 경우 이동 도서관 시설을 이용해 서점이 들어가 있지 않은 도서 벽지를 중심으로 도서 전시회를 할 예정이다.

책에 관한 전시와 퍼포먼스는 각종 문화행사 때 관련 도서를 함께 전시하고 또 여름 바캉스 시즌에는 지역 해수욕장을 찾아서 해변 도서전시 등을 계획하고있다.

저자와의 대화는 각 지역의 지방 문화원 예총 지부서점 등과 제휴를 해 다수의 저자가 참여하여 일시에 다량의 저작물을 독자들이 만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그 밖에 전국 독서클럽 실태 조사 및 활동 지원, 책 선물 주고받기 운동, 독서진흥법 제정 추진 등을 준비하고 있다.

출판 진흥 기반 구축 사업은 보다 장기적인 계획으로 준비되고 있다. 우선 출판 발전 10개년 계획을 수립, 전문 기관에 연구 용역을 위촉할 예정이며 출판 현안별 워크숍 시리즈가 준비되고 있다.

출판 현안별 워크숍 시리즈는 출판의 난제들을 항목별로 나누어 워크숍 형태로 토론회를 개최하여 이를 통해 문제의식을 제고시키는 작업을 한다. 현재 준비되고 있는 문제들은 서점경영, 출판 유통 센터, 출판 시장 개방, ISBN. POS, 출판 인력, 출판 제작, 출판 광고 등이다. 각 문제들을 월 1회씩 워크숍 형식으로 토론회를 개최한다고 한다.

출판계의 당면 현안인 유통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준비도 진행 중이다. 유통정보시스템 구축, 출판물 유통정보센터 설립, 유통채널의 다변화, 모델 서점의 개설 지원 등,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

'책을 싸게 드립니다' 라는 사업도 실시한다.

1989년 이전에 간행된 도서로 현재 절판되었거나 서점으로부터 반품 조치된 도서를 전국 주요 도시에서 염가 판매한다.

한국 출판의 세계화 사업의 하나로 '멀티 미디어 시대의 책의 변용'이라는 주제로 국제 심포지엄을 열고 한국의 금속 활자 특별 전시회도 개최한다.

책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사업으로도 몇 가지 행사가 준비되고 있다.

'우리 땅에서 책의 역사를 찾는다' 행사는 책과 연관된 유적지, 사적지, 사건들의 거점을 찾아 기념물을 세우는 사업을 한다.

'책의 역사를 찾아가는 여행'은 세계의 책의 역사유적지, 박물관, 도서관, 서점들을 돌아보는 여행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3월 행사는 지난 27일 경북 군위 인각사, 청도 운문사를 찾아가는 것으로 80여명이 참가하여 성황리에 끝났다. '한국 출판 1300년전'을 개최, 한국 출판의 과거 현재 미래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게 할 계획도 있다. 뉴 미디어와 책의 연계를 한 자리에서 보는 특별전도 준비되고 있으며 그 밖에 도서 연관 산업의 특별 전시회들도 마련 중이다.

언론·서점·출판사 등 출판 관련 업체들의 행사

책의 해를 맞아 각 언론매체에서도 마땅한 프로그램을 연재하고 있다.

한국일보사는 '책을 펴자 21세기로 가자'라는 연중 특집 기회 시리즈를 마련 우리의 책 읽는 문화와 환경을 재점검하고 독서하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기사를 싣고 있다.

조선일보사는 '다작가 열전'이란 시리즈로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는 사람을 소개하여 독서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으며 '글 따라 길 따라'라는 독서기행을 마련해 오늘의 한국인이 읽어야 할 책들을 선정해 저자와 함께 그 산실을 찾아 소개하고 있다.

동아일보사에서는 매주 명저의 저술 현장과 관련 유적을 전문가와 함께 답사하여 소개하는 '명저의 고향'을 싣고 있다.

경향신문사에서는 독서 생활화 운동으로 '우리 시대의 명저', '나의 독서 편력' 등으로 구성된 독서 출판특집을 매주 싣고 있다.

중앙일보사에서는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독서인구의 저변 확대를 위하여 '중앙독서감상문 모집' 행사와 함께 '중앙독서캠페인'이라는 제목으로 연중 시리즈 광고를 싣고 있다.

또한 한겨레신문사에서는 올 한 해, 매일 아침 한 권의 새책을 독자들과 함께 읽으며 하루를 연다는 취지 아래 '93 책의 해 오늘의 새책' 난을 마련하고 있다.

각 기업체에서도 다양한 행사를 통해 독서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은행이나 백화점에서 고객을 위한 고객 문고를 설치하고 있는 것을 비롯하여, 공공기관에서도 독서운동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서울시에서도 지난 2월 16일부터 21일까지 서울 시청 앞 지하 보도에서 '알뜰 도서 교환시장'을 운영했다. 서울시는 이 기간 동안 교양, 문학, 아동 도서 등의 신간 서적 3천여 권을 비치해 시민들이 가지고 오는 헌 책을 1인당 5권 이내로 교환하여 좋은 반응을 얻은 바 있다.

문화부에서도 '공공 도서관 운영 모범 사례집'을 펴냈으며 총무처, 은평 구청 등에서도 좋은 책 바꿔 읽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대형 소매 서점에서도 각종 책읽기 행사를 펼치고 있다. 교보문고에서는 예비 대학생들을 위한 교양서적 코너를 마련 내실 있는 대학 생활을 할 수 있는 바탕을 길러 줄 인문, 사회, 과학서, 73종을 선정 전시하고 있다.

종로서적에서는 1980년부터 현재까지 국내에서 발간된 도서 목록 18만종을 수록한 종합도서목록을 제작 3월에 내놓았다. 또 책의 해를 기념해 주제별 기회 특집으로 '미래를 여는 청소년 도서' 전시를 하고 있다. 영풍문고에서는 3월 24일부터 28일까지 세계 각 국의 유명 기업과 호텔 등에서 사용하는 각종 종이를 전시한 바 있다. 부산의 대형 서점인 영광도서에서는 3월부터 '문인 사랑방 독서토론회'를 열고 있다. 광복문고에서는 3월부터 '문화사랑'을 마련하여 출판 관련 행사를 열고 있다.

한국출판미술가협회에서는 책의 해 조직위원회와 공동으로 3월 15일부터 21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국내 최초의 출판미술대전을 열었다. 이번 출판미술대전에서는 우리 출판 미술의 수준을 가늠해 보고 책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마련되었으며 행사 기간 중 출판 미술 중흥을 위한 세미나도 함께 열렸다.

미술계에서도 출판에 관련된 행사를 다채롭게 열었다. 강남 서림화랑에서는 3월 12일부터 '이야기가 있는 그림' 전시회를 개최하여 관심을 끌었다. '이야기가 있는 그림'전은 작가가 감명 깊게 읽은 문학 서적에서 받은 감흥을 형상화한 것이다. 현대아트 갤러리에서도 3월 중순부터 '그림으로 책을 읽는 전시회'를 마련하여 미술과 활자 문화와의 연관성을 형상화해 높은 관심을 이끌어냈다.

또 문인협회 인천 지부에서는 인천일보사와 함께 지난 2월 22일부터 28일까지 인천 시민회관 전시실에서 '인천 도서 100년전'을 열었다. 이번 도서전시회에서는 인천 개항 뒤 100년 동안 인천 지역에서 출판되었던 책들과 인천 출신이거나 거주하는 문인, 예술가, 학자 등 1백 20명의 책 1천 2백여 점이 전시되었다.

4월 행사 계획과 그 밖의 느낌

책의 해 관련 4월 예정 행사로 우선 눈길을 끄는 것은 출판 관련 현안별 워크숍 시리즈가 4월 24일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총8회로 준비되고 있는 현안별 워크숍 시리즈는 지금 현재 출판계가 안고 있는 문제를 주제별로 하나씩 종합 검토해 본다는 점에서 많은 출판 관련자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오는 4월 24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열리는 제1회 현안별 워크숍 시리즈는 '21세기를 향한 출판 전문인력 육성책'이란 주제로 열린다. 제1주제는 '정보화 사회에서의 출판 전문인력 육성화 필요성'(민병덕·혜전전문대 출판과 교수)이며, 제2주제 '출판 전문인력 육성 현황과 문제점'(김희락·한국출판연구소 사무국장), 제3주제 '출판 교육의 전망과 발전 방향'(오경호·광주대학교 출판홍보학과 교수)이다. 그 밖에 공동 토의가 있으며 공동 결의서가 채택될 예정이다.

'독자를 찾아가는 도서전시회'는 4월 3일부터 5일까지 강원도 영월에서 열릴 예정이며 그 밖에 월례 행사들도 계획이 확정되는 대로 실시될 예정이다.

이상 3월중에 있었던 책의 해 조직위원회의 사업을 중심으로 알아 봤다.

알려진 대로 책이란 출판사와 저자에 의해 제작되고 서점을 매개로 하여 독자가 선택하여 읽혀진다. 크게 저자·출판사·서점·독자라는 네 축으로 책이라는 상품 또는 창작물이 교류하는 것이다.

이 네 축 사이의 교류가 활발해지는 것이 누구나 소망하는 바일 터인데 '93 책의 해 사업의 전반적인 흐름은 어떤 점에선 '책을 읽어야 한다'는 당위론의 광범위하고 다양한 선전에 주안점이 두어진 느낌도 없지 않다.

앞서 말한 어머니의 말씀에 더 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는 작금의 문화 행태에서 또 다른 어머니 말씀을 듣고 있는 듯한 느낌도 없지 않다.

이른바 뉴 미디어 시대라고 하는 지금의 문화 환경에서 책을 읽는 것이 좋은 것이다라는 프로파겐더만이 능사일 리는 없다. 보다 구체적인 책의 효능을 강조하는 것이 급선무임과 동시에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정보 기능을 할 수 있는 책-다른 어떤 미디어도 하지 못하는 능동적인 사유를 요구하는-을 개발하고 이에 걸맞은 유통 구조를 갖추는 것이 시급한 일이다. 또 이는 출판, 책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 누구나 지적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