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리뷰 / 미술

성형의 봄과 정신의 탐구




이용우 / 미술평론가

일찍이 대중적 사각매체의 홍수를 예견했던 발터 벤야민(WalterBenjamim)은 복제 기술, 복제 기능의 발달로 고급 예술의 우상과 신화가 소멸되고 '대중화된 예술의 시대'가 도래할 것을 예고했다. 벤야민의 이 같은 생각은 현대미술의 미래를 명확하게 예견했다는 사실에 놀라운 것이고 1960년대 들어 미국의 영상사회학자인 마샬 맥루한(Marshall McLuhan)은 "새로운 미디어는 새로운 메시지를 탄생시킨다"는 말로 벤야민의 논리를 확대 계승했다.

이들은 예술에서의 시각매체의 역할과 그것이 어떻게 대중과 소통할 것이라는 사실을 예견해 냄으로써 오늘날 우리 앞에 요란하게 전개되는 온갖 대중매체 예술의 정신적 뿌리를 이룬다. 벤야민이 인쇄매체에 의한 복제 기능을 보다 강조했다면 맥루한은 예술과 테크놀로지, 산업사회의 영상매체와 예술의 연계성을 관련시켜 영상예술시대의 미학적 감수성의 전환을 예고한 것이 된다. 오늘날 우리는 이 두 사람의 생각에 포괄적으로 적용되어 손과 발, 눈과 귀를 매체의 홍수에 의탁하여 넘치는 정보와 지식의 밥을 먹고산다.

대중적 매체미술의 등장은 한국미술계에서도 대략 두 가지 패턴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첫째는 대중매체의 소재적 편이성이나 호소력으로 매체나 테크닉 자체에 대한 탐구를 시도하는 것이고, 그 다음은 매체를 수단으로 활용하여 사회성을 보다 비판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시도는 이미 서구에서 둘 다 큰 실효를 거두지 못한 채 방만한 시각덩어리로서 존재했던 예가 허다하며 우리 작가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이는 대중매체 자체가 이미 대중들의 기호에 익숙해진 것이며 그것을 새롭게 변주시키는 과정에서 매체를 미학적 수식의 도구로 활용한 탓도 적지 않다. 게다가 모더니즘 세대의 모순을 극복, 단절한다는 슬로건이 '감성', '소통' 등의 매우 직설적 용어로 대체되어 그것이 곧 모더니즘의 대체 수단으로 잘못 인식된대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예술이 사회구조의 절대적 영향권 하에서 생활하고 있는 한 대중매체가 건전한 대중비판의식을 길러주고 자본주의 상업미술의 구조적 패권의식을 걸러 주는 역할은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이른바 후기 모더니즘의 깃발 아래 '열린 사회'로 가는 만능의 구실로 오인되는 것은 예술을 또 다른 부자유로 통제하는 역기능을 행사하게 된다.

성형의 두 가지 의미

이번 전시의 명칭으로 등장한 '성형'이란 말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하나는 신체 부위, 즉 얼굴을 뜯어고치는 외과 수술로서의 성형이 그것이며, 다른 하나는 문자 그대로 형태를 이루어가거나 '만들어진 꼴'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는 다분히 기존의 의식이나 형식 등 옛 틀로부터 개혁 의도가 담겨있으며 종래의 것에 대한 수정 의지가 내포되어 있다. '성형의 봄'은 여기에다 계절적 정서가 가세되어 복고나 부활이 아닌 변화의 패러다임을 예시하고 있다. 그러나 성형수술은 본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 아닌 인상착의를 변형시키는 '이미지의 변형'에 가깝고 그것이 봄과 연결되어서 다분히 정서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따라서 '성형'과 '봄'이라는 어울리기 부적절한 언어의 결합은 본래 예술이 갖고 있는 독특하고도 적절한 자유, 또는 봄바람처럼 들려도 무방한 것이다.

현대미술은 언제부터인가 적절한 여유와 틀을 버리고 사회과학과 철학으로 정의되거나 분석되기를 주저하지 않고 있다. 모더니즘 속에서 구조주의가 남겨놓은 역할은 예술을 총체적 정서나 느낌으로 파악하지 않고 분업화된 소재의 의미를 분석해 들어가는 해부학적 대상으로 내세워 스스로가 타의 접근을 막아왔다. 예술이 본래 축제나 제사로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의식이나 행위 자체에 대한 진정한 교감 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산업사회, 소비사회, 지배구조에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대중과 교감하기를 거부한 현실은 어떤 경우라도 현실감을 얻기 어렵다는 점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 그 발상지에서조차 용어에 대한 구체적 켄센서스을 얻지 못하고 있지만 유독 모더니즘 시대의 단절되고 분절됐던 부분에 대한 매체 극복에서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예술과 사회와의 관계는 기능 역기능의 타산적 검증보다 이제는 사회 속에 위치하고 이름지어진 몫으로서의 현실감을 획득하는 것이 더욱 뜻 있는 일로 파악된다. 오늘날 넘치는 출판 영상 광고 이미지로 인해 소극적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예술 근사치'에 접근하기 용이 한 감상자들은 종래의 관념처럼 두 가지로 명확하게 분류되지 않는다. 즉 순수미술 지향의 고급 대중과 대중예술 지향의 저급 대중이 그것이다. 이것은 예술 스스로가 순수니 대중이니 하는 속절없는 삿갓을 벗고 거리로 안방으로 관람객과의 화친을 위해 찾아 나선 탓도 있겠지만 이제는 예술을 느끼고 보는 본질적 공감대 속으로 찾아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성형의 봄'은 형식에 메스를 가하는 변형으로서의 성형이든, 또 다른 이미지의 형식을 갖추어 가는 새로운 과정이든 굳이 문자적 해석이 필요하지는 않다. 그것을 표현하는 영어식 표현도 경우에 따라서는 'plastic spring', 'retyped spring' 등 단편적인 나열로는 오해하기 쉬운 내용이다. 그러나 출품 작가들의 목소리는 예술이 현대사회의 '현재성'에 대한 철저한 인식에서부터 비롯되어진다는 것이며 예술의 존재, 인간의 모습과의 관계를 보다 적극적으로 규명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데 있다.

예술가는 세계에 대응하여 행동 할 수는 없지만 그 작품을 통해서 친근한 사물과 일에 대하여 놀라운 재주로 대응할 방법을 구사한다. 이 같은 조형적 자유는 세계를 변화시킨다거나 일정한 변혁운동으로서의 목표는 아니다. 시각 경험을 통해 추출된 형식은 의도적이기보다는 직·간접 참여를 통해 사회와 나를 관여시킨다. 형식과 의도는 관객을 차단시키지 않으며 파괴적이거나 괴리적 덩어리를 통해 혼란을 가중시키던 기존의 수법 대신, 조금은 감각적으로 접근하여 과거와 역사에 대한 함축적 해석을 가하게 된다. 오늘날 현대미술이 과거의 난해한 틀을 벗고 보다 실질성을 찾아가려는 것은 따라서 과거를 병리적 현상으로 보고 치유하려는 것이 아니라 예술 존재나 기능에 대해 적극적 검증의 과정을 걷는 것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역사와 환상

이번 '성형의 봄'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대략 두 가지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그 하나는 역사와 현실, 다시 말해 예술이 절대적으로 이웃하고 있는 사회의 심리적 현상적 사실을 나와의 관계로 설정하여 투사시키는 보다 실제적인 해석이다. 이 작가들의 해석은 요컨대 예 술을 통해 현실성을 공급해주는 것이 아니라 나와 사회를 매개하는 암시의 성격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초월이나 환상이 아닌 역사의 대가 또는 체험적인 요소로 등장한다. 다른 작가군은 영상이나 오브제, 이미지 효과가 강한 확대 차용된 소재들을 통해 알레고리의 각색을 보여주는 작업들이다. 이 같은 작업은 단편적이며 불완전하고 일시성이 강하다. 비록 이야기 구성이 작가의 연속적 체험이나 사회의 누적된 현상들을 추출시킨다 해도 그것은 전시하는 극적 무대 위에 연출된 일회성이 강하여 오브제들 또한 삶과 친근한 대신 일회적인 경우가 많다. 이 점은 특히 모더니즘 시대의 정서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며 역사적 사실이나 역사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태도에서는 필연적인 것이다. 여기서 알레고리는 상징의 의미보다는 현실적이며 교훈적 성격도 함께 나타난다. 가령 조덕현과 김영진은 사진이나 영상을 주로 사용하는 작가들이다.

조덕현이 사용하는 사진은 '한국의 여성사'를 통해 나타난 역사적 현실감이 오늘날 현재 역사와 무관하지 않게 연결되어 있다. 그것은 외견상 페미니즘적 감각을 담고 있으나 기실은 페미니즘의 적극적 여성관이라기보다는 사진 속에 비춰진 소재로서의 여성상이 두드러진다. 프로젝터를 사용하여 겹쳐진 물체의 이미지를 통해 현실적 비현실감을 나타내는 김영진은 오히려 조덕현의 실제 인물 사진보다 더욱 현실감이 강조된다. 이것은 인간의 역사가 보여준 과거 흔적을 놓고 시각적으로 검증해 보는 소재와 형식의 일치감을 추구해 나간다. 여기서 동원되는 것은 프로젝트를 통해 나타나는 영상효과이다.

한국현대미술의 대표적 모더니즘시기인 1970년대만 해도 미술은 작가의 독백이나 은어와 같은 역할, 다시 말해 아방가르드의 전유물과 같은 속성을 구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를 통과하면서 우리 미술은 관람객과의 소통, 특히 적극적 소통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대중이 보고 느낄 수 있는 무대로서의 커뮤니케이션 기능이 강조되었다. 이것은 비단 우리의 현실만이 아니라 구미 각국에서 이미 1970년대 중·후반부터 추구되어온 결과물일 것이나 우리의 경우는 그것이 미술 유형의 또 다른 스타일처럼 잘못 인식되어지기도 한다. 관람객과의 '소통'은 예술의 사회적 기능의 문제를 제고해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인데 그것이 나타나는 방법은 대략 두 가지이다.

하나는 우리의 현실감이라는 역사의식이요 다른 하나는 우리 사회의 넘치는 매체를 활용하는 이를테면 관람객의 '감수성'을 자극시키려는 의도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소통의 문제는 흡사 모더니즘이후의 대안처럼 작가들에게 조급하게 인식되어져 오히려 조잡한 소통, 너그럽지 못한 예술의 감수성을 자극시켜 오히려 관람자와의 혼란을 가중시킬 염려도 낳게 한다. 이 같은 염려에서 본다면 조덕현 김영진이 사용하는 소재로서의 영상 감각은 '과잉 현실감'이나 단순한 '복제 기능'으로서의 소통이 아닌 일상과 역사의식을 함께 투영시켜 구조적 자의식의 문제에 도전하고 있다.

이것은 영상소재가 대안이 아니라 표현의 방법이라는 적극적 인식에서 기인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이불이나 최정화의 경우는 대중 매체의 비효율성이나 과용된 편벽의 그늘에서 벗어나 갈등구조의 원인과 관계를 보다 정제된 표현으로 끌어올린 예술작업으로서의 목소리가 드러나 보인다.

이들은 언어나 소통체계에 대한 독자적 인식, 자아와 현실, 대중매체의 정보 전달 구조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함께 소재로서의 미학적 구조보다는 전달의 힘을 극대화시키는데 초점을 모은다. 이는 기존의 미술 형식에 대한 대체 구조로서의 시각 기능이라기보다 표현의 적극성, 현대사회구조에 대한 문화적 방법론으로서의 비판의식으로 비쳐진다. 또 대중 이미지로 가득 찬 산업구조의 환경적 반항, 반응의 기술로 기술되기도 한다.

60∼70년대, 모더니즘의 형식미술들이 무질서한 암호 기능으로 우리에게 이식되었을 때, 우리가 즐겨 쓰던 미학적 술어는 물질성 또는 비물질성이란 매우 애매하고도 함축적인 용어였다. 이 물질성이나 비물질성은 아방가르드 정신의 반문화적이면서도 비근거성에 의해 별다른 저항 없이 받아들여져 현대미술을 설명하는 절묘한 '덩어리'를 형성하였다. 그러나 다분히 지성적이며 고급한 형식성에 배경 지워졌던 이 용어는 80년대 대중적 메시지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상당부분 설득력을 상실하고 모더니즘시대의 미학의 등식으로 묻혀 버렸다.

이 술어는 그 동안 마땅한 대용어를 찾지 못하고 '사물' 또는 소극적인 의미에서 오브제 등으로 불리다가 정체해 있다. 그러나 대중매체나 대중 이미지를 직·간접 수단으로 차용한 오늘날의 시각미술은 '소통'이라는 다소 감성적인 용어를 선택함으로써 언젠가는 궁지에 몰릴 위기에 있다. 소통은 고급문화 취향의 개념적 정의를 벗고 미술 형식이 현실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리며 대중을 자극하는 의미로 등장했으나 이것은 새로운 주제의식으로서의 기능보다는 다분히 산업사회의 또 다른 '물질성'을 수반한 도구 내지는 수단으로서의 연대감에 머물 수 있다.

신현중이나 윤동구, 오상길, 문주, 윤동천 등은 바로 이 소통의 문제를 놓고 실천적 명제를 다양화시킨 경우에 속한다. 이들의 작업은 고전적 따블로나 물체, 덩어리, 비지각적 메시지 등을 몰개성한 것으로 쉽게 간주해 버리는 표피적 탈모던을 거부하는 대신 보다 열린 개념으로의 사회적 이성을 수렴하는 형식을 취한다. 이들은 작가와 관람자 사이에 존재하는 작품을 미학적 대상으로 간주하기보다는 다양한 방법으로 교감에 접근하는 미술 언어를 선택한다. 자신의 작업이 대중과의 소통에 얼마나 유효한 것인가의 문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다만 대중매체를 적극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또 다른 미학적 변증법에 빠져들기 쉬운 도그마를 배제하고 예술이 갖는 전달의 욕구에 깊게 따지고 들어간다.

시각 이미지와 예술적 성찰

제한된 소재실험, 근시안적 예술의 답론, 파괴일변도의 아방가르드, 자극적 리얼리즘, 전달 위주의 표현기능은 현재 우리 환경에서 피해가기 어려운 부분에 속한다. 그러나 시각 환경에만 민감하게 반응함으로써 생기는 오류는 흡사 오늘날 소통의 예술이 독점 이데올로기에 대항한 유일 수단으로만 보는 편협한 시각과 크게 다를 바 없게된다.

가령 윤동천의 평면은 고전적 따블로의 방식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그의 따블로 속에 나타나는 정치 이야기, 환경 이야기, 사회성에 관한 주제 등은 대체로 명확한 메시지를 담고 나와 주제가 어떻게 만나는가를 쉽게 느끼게 한다. 이 주제는 대체로 언어로 살아나며 사회의식과 연대한다. 그의 입체 작업도 이와 직접 연결되어 재료 개념보다는 주제의식이 강조된다.

탈장르 탈구조 작업의 선두 그룹을 형성했었던 오상길은 재료가 감각 기능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며 이는 관람자에게 색다른 시각 경험과 함께 문명에 대한 예리한 비판의식을 보여준다. 오상길은 대중매체로서의 소재 개념에 소극적인 대신 메시지 위주의 미술 본래 기능에 대한 탐구력이 앞서며 현대 미술에 대한 비판의식도 종래 좁은 기능 위주에서 벗어나 미술의 지각적 확장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인다. 이것은 미술도 사회적 환경에 총체적으로 영향받고 있음을 깊게 암시하고 있다.

이에 비해 문주는 매우 암시적이면서도 감각 기관이 살아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미술이 아무리 다양화된 소통의 맥락을 탐험해 가고있다 치더라도 그 본질은 실제로 미적 탐구에 다름 아니라는 사실을 느끼게 한다. 이 미적 탐구는 종래 다양하게 대응하지 못했던 분할된 메시지를 단계적으로 유효하게 하는 것이다.

신현중의 경우는 우상화되고 고급화되었던 미학적 정서를 역사성에 투사시킨다. 그가 지금까지 추구해왔던 '신시', '목점' 등은 그 제목이 암시하듯 시대적 의문 부호를 관찰자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전달한다. 그가 플라스틱이나 진흙네온 등을 소재로 사용해왔던 것은 이와 같은 총체적 의문의 성격을 알레고리와 연결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이며 예술의 본질을 손상시키지 않은 채 자의식과 타의식을 절묘하게 결합시키는 메커니즘을 보여준다. 이것은 재능이 아니며 미학적 대중주의를 표방함으로써 다수의 공감대만을 목표로 하는 것과는 구분된다. 예술을 역사의 무게만큼 치열하다고 보는 것이다.

윤동구의 경우도 재료에 대한 집념과 애착이 매우 강한 편이다. 신현중처럼 윤동구도 키치(Kitsch)적 대중성이나 호감으로부터는 격리되어 철저히 탐구하고 철학적 검토를 토대로 하고 있다. 타르에 발라져 검붉은 덩어리를 형성해내는 나무재료나 박제된 말, 밀랍 기법에 의한 금박 소재들은 때로 신화적이면서도 자의식이 강한 앗상블라쥬로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탐구력은 단순한 덩어리로서의 입체 또는 평면이 아니라 상상력의 증식을 통해 만나는 정신의 메커니즘을 극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19세기 서양은 기술 발전과 그 발전이 가져오는 긍정적인 효과에 의해 행복의 기대치를 두고 있었다. 기술은 미래 사회를 낙관하게 만들었고 이것은 인간 사이에서 하나의 신뢰로 작용하였다.

그러나 이 같은 낙관과 신뢰는 기술의 인간 지배 현상이 두드러짐에 따라 불안이 가중되고 테크놀로지는 현대사회의 지배 세력으로 등장하고 있다. 기계문명, 산업사회에 대한 예술가들의 시각은 매우 다층적이다. 이탈리아 미래주의, 러시아 구성주의가 산업사회에 찬사를 던졌다면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표현주의는 산업적 진보에 의한 기계 지배를 공박했다.

그러나 오늘날 기계와 예술이 좀더 거리를 가깝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그래도 예술가들의 공이 크다. 인간의 창조성에 대한 의미 부여와 기계의 활용이 그것이다. 오늘날 시각예술이 테크놀로지의 갈등시대를 구가하고 있는 것도 오토 피이네(Otto Piene), 하인츠 마크 (Heinz Mark), 권터 우에커(Gunther uecker), 모홀리나기(Moholy Nagy), 나움 가보(Naum Gabo), 이브 클라인(Yves Klein), 피에로 만조니 (Piero Manzoni) 등 테크놀로지와 예술의 관계를 통합한 작가들의 공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넘치는 산업시대의 시각 이미지 앞에서 그것이 가져다주는 효용성에 취해 성찰을 거부하지 못하고 산다. 우리는 과거 고급 예술이 가져다 준 불감증의 시대를 딛고 새로운 감정과 소통을 노래하지만 예술의 말초 신경적 자극에 또한 시달리게 된다. 발터 벤야민이 사진의 발명으로 원작의 의미는 가버렸다는 주장은 오리지널의 후광으로 자라나던 미술의 신화는 깼으나 얼마만큼 현실적 미학의 세계를 개척 할 수 있는가에 관심이 단순한 소재나 수단에 의해 귀결 지워질 수 없다는 것이며 미학적 감수성이 변증법적 전환을 거듭한다면 누구도 그 딜레마를 극복하기 어렵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