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기획

예술경제학이란 무엇인가?




박양우 / 문화체육부 예술2과 행정사무관

최근 서구 선진국가들에 비해 늦은 감은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1960∼1970년대의 고도경 제 성장기를 거치면서 정부는 물론 대다수 국민들 사이에 '인간다운 삶'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점점 늘어나는 연주회, 연극, 무용공연과 다양한 전시회들 그리고 속속 모습을 드러내는 크고 작은 공연 및 전시장들은, 지금이 문예 부흥의 시대가 도래했노라고 지레 샴페인을 터뜨릴 단계는 아니라 해도, 과거와는 완연히 다른 예술 입지를 실감케 해주고 있다.

시의 적절한 논의

이같이 눈에 보이는 예술 붐과는 달리 예술계 내부에서는 수십 년 전이나 마찬가지로 심한 재정적 몸살을 앓고 있고, 자칫 어렵게 조성된 예술 열기가 거품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예술은 예술 자체를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극단적인 예술지상주의자가 아닌 바에야, 예술 활동은 돈과 뗄레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더군다나 예술 활동이 대규모로 커지고 사회의 전문적인 하부 체제로 그 영역을 구축해 가는 상황에서, 예술의 생산과 소비 및 유통(매개) 과정은 하나의 경제적 현상이며 경제 발전이 국가 정책의 주요한 이슈 듯이, 예술 진흥 또한 국가의 중요한 정책 목표이자 예술계가 안고 있는 크나 큰 숙제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술과 경제를 함께 말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며 '예술·경제'에 대한 논의는 우리에게도 시의 적절한 것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이 글에서는 이 같은 예술 경제와 논의(이른바 예술경제학)가 어떻게 진행되어 왔으며, 예술경제학이 다루는 내용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 같은 논의가 내포하고 있는 유용성과 한계는 무엇인가를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이 글에 이어 논의되는 예술경제에 관한 4편의 글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덧붙이고자 한다.

예술경제 논의의 추이

예술경제학은 비교적 새로운 학문 분야로서 1970년대에 미국의 일부 경제학자를 중심으로 제기되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후에 서구의 여러 나라는 문화예술에 관한 정부 차원의 관심을 본격적으로 갖기 시작하여, 문화예술을 관장하는 정부 또는 준정부 기구를 설치하고 국가 예산을 예술활동에 지원하여 왔다. 지난 수십 년간 크고 작은 차이는 있으나 예술은 정부 정책의 한 자리를 차지하였고, 정부 지원뿐만 아니라 기업과 개인 차원에서도 예술에 대한 지원은 증가해 왔다.

그러나 종래의 경제학자들은 예술에 관해 별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으며 예술과 경제를 연계시키려는 별다른 노력을 경주하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1970년대에 이르러 경제학은 점점 예술산업에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는데, 부분적으로는 당시 미국 사회에 조성된 예술 붐 때문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과 같은 경제 부국들에 있어서 예술이 국민복지에 끼친 간단하지 않은 공헌으로 말미암아 일부 경제학자들의 예술 경시 관념이 변화된 데서 비롯되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마크 블라우(Mark Blaug)가 말했듯이, 경제학자들이 이제껏 다뤄 보지 않은 영역에다가 경제학 수단을 적용해 보려고 열심히 시도하였고, 예술활동 특히 공연예술에 대한 점차 가중되는 경제적 압력을 예술 행정가들이 진지하게 인식한 결과, 예술경제에 관한 논의가 점화되었는 데 아마도 이것이 가장 타당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경제학자들의 지적 제국주의는 현 시대에 만연된 현상 중의 하나로 최근 들어 이들은 국방, 보건, 교육, 스포츠, 범죄 심지어는 결혼 문제에 이르기까지 분석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이른바 특수 분야의 경제학이 그것이다. 경제학이 하나의 경제 체제 내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탐색하는 일단의 분석 기법상의 학문으로서, 본질적으로 합리적인 행동 논리를 추구하기 때문에, 언뜻 보아서 경제적 목적과는 관계없는 것처럼 보이는 활동들을 평가하는데 있어서도 경제학자들은 그리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

그들의 분석 장치가 사회가 안고있는 모든 문제들을 항상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 해결의 통찰력을 보여 주는 예는 적지 않으며 이는 예술 분야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적용될 수 있다.

예술경제에 관한 논의가 야기됐던 초창기에는 공연예술이 봉착한 만성적인 재정 위기가 주 관심사였다. 공연예술은 교육이나 공공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생산성의 제고는 지극히 어려운 반면에, 인플레율보다 높은 제작비의 끊임없는 상승 압박을 받기 때문에 발전은 커녕 존립조차도 어렵다는 비관적 진단이 당시를 지배했다. 이 같은 상황하에서도 예술 단체들은 재정 압박을 벗어나기 위한 또 다른 재원 조달 압박에 시달리게 되었고, 예술 경제학은 공연예술이 겪는 재정 위기의 원인과 대책을 탐구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리하여 공연 비용에 관한 여러 데이터를 수집하여 비용이 소요되는 세부 항목과 그 항목마다의 소요비용에 관한 분석이 시도되었고, 한편으론 매표 수익을 증대시키기 위한 방안으로서 관객 증가를 기하고 관객 성향을 분석하기 위한 관객조사 기법의 개발과 적용이 널리 유행하였다.

경제학적 분석과 조사 결과 대부분의 공연예술에 있어서 재정 위기는 피할 수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 정부의 재정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는 논의로 자연스레 귀결되어, 예술에 대한 공공 지원의 필요성과 이의 찬 반론이 예술경제 논의의 한 쟁점이 되었다.

그러는 사이 일부 예술경제학자 들은 예술경제학을 예술 내부의 문제에 국한하지 않고, 예술과 주변 환경과의 관계로 확대하고 특히 예술이 도시나 농촌의 지역 개발에 얼마나, 어떤 모양으로 기여하는가를 분석하기에 이르렀다.

런던의 빈민가인 동부 지역(East End)을 재개발하면서 주민을 유치하고 지역 경제의 활력을 도모하기 위해서 종합 문화 센터인 바비칸 센터를 건립한 일이나, 미국의 수도요 세계의 정치 도시인 워싱턴에 케네디 센터를 건립한 사례들은, 예술이 지역 사회 개발을 주도 내지는 보조할 수 있다는 정책적 소산으로서 예술행정에 중요한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예술이 지역사회에 제공하는 경제적 이익에 대한 경제적 분석의 좋은 표본이 되었던 것이다.

주로 학계에서 다루어져 온 예술경제 논의와 관련하여 최근에 나타난 한가지 주목할 만한 현상은 얼마 전 발표된 영국예술위원회(The Arts Council of Great Britain)의 정책 보고서인 「3개년 계획」(3year plan '89∼'92)에 예술경제(Arts Economy)가 동위원회의 3대 정책 목표 중 하나로 공식화된 일이다.

여기서 말하는 예술경제는 예술 기관의 자금 운용의 효율성 제고(Efficiency Enhancing)를 의미하며, 정부의 예술 보조가 예술 기관의 적자를 메운다는 소극적 의미에서 탈피하여, 지원 받고자 하는 예술 기관들의 효율적인 경영 실적을 평가 기준으로 하여 많이 번(자체 수익과 외부 지원 포함)자 또는 벌어들인 자에게는 많은 지원을, 적게 번 자 또는 벌어들인 자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소액 지원 또는 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취지가 담겨 있다.

이와 같이 예술경제라는 용어는 비록 그 의미가 다양하여 나라와 시대에 따라 항상 같지는 않지만, 최근에는 정부 문서에까지 공문화 됨으로써 예술경제의 중요성이 국가적 차원에서 재인식되고 관심의 대상이 되었음을 밝혀줄 뿐 아니라, 예술경제를 적극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영국뿐만 아니라 서구제국 나아가 우리에게도 예술경제 논의가 나아가야 할 한 방향을 시사적으로 제시해 주고 있다.

예술경제 논의에서 다루어지는 것들

앞서 밝힌 것처럼 예술경제학에 관한 논의가 제기된 연유는 다양하지만, 학문적 접근의 성격을 띠게 된 것은 경제학자들의 예술 현상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 욕구와 예술행정가들의 예술 활동에 필요한 재원조달의 어려움 인식 및 이의 타개를 위한 노력이 결합된 데에 있다

고 볼 수 있다. 예술경제학의 이 같은 탄생 배경은 곧 예술경제학의 성격 및 내용을 설정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는 셈이다.

이제까지 미국을 중심으로 재기되어 온 예술경제학은 기본적으로 특수 분야로 관심 영역을 확대해 온 특수 분야의 '경제학'으로서, 일반적인 경제학 분석 도구들을 예술에 적용시켜 보는 실험적 노력들의 일단이었다. 그리하여 예술경제학은 예술 현상만이 갖는 본원적인 경제적 특성을 탐구하여 일관성 있는 독자적 이론 체계를 구축하기보다는, 응용경제학 특히 복지경제학의 범주 내에서 기초적인 경제학 원칙들을 동원하여 예술을 진맥하고 병인을 찾아내는 일에 주력하였던 것이다.

경제학자들이 예술 현상을 분석하는데 주로 활용한 경제학 도구나 개념들로는 물가와 소득의 변동에 따른 수요 반응, 희소재 공급에 있어서의 물가(가격)의 역할, 생산과 소비에 있어서의 한계 대체, 고정 비용과 유동 비용의 구별, 평균 비용과 한계 비용의 구별, 모든 공사간 의사 결정을 좌우하는 우선 순위 문제, '효율성'을 나타내는 '파레토 최적'의 장단점, 외부 효과와 공공재 같은 현상 때문에 응용 복지학이 겪는 문제점 등을 들 수 있다. 대체로 예술경제학은 가장 기초적인 경제학 개념만을 응용한 셈인데, 이러한 개념들은 추상적이긴 하지만 예술 분야의 실제적 문제들에 상당히 타당한 것으로 보여진다.

한편 예술의 재정 위기를 심각하게 인식해 온 예술행정가들은 예술활동에 대한 사적 지원과는 별도로 공공 보조와 세제 혜택 등 예술에 대한 정부의 재정 정책의 긴급성과 중요성을 강조해 왔으며, 예술경제학 논의에 예술에 대한 공공 지원 찬반 논쟁과 조세정책을 큰 몫으로 추가하는데 기여했다.

그러나 예술경제에 관한 논의를 하면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앞서 말한 대로 예술경제학이 독자적인 이론 체계를 갖춘 엄격한 의미에서의 '학문'으로 보기는 아직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의 제도주의적 경제학(Institutional Economics)을 논하면서, 이것은 사상의 한 체계라기보다는 오히려 다소 몇몇 공통적 특성을 갖는 일단의 학자군들의 체계라고 정의한 로저 트룹(Roger M. Troub)의 견해는 예술경제학을 정의하는 데에도 해당된다 할 것이다.

이처럼 예술경제에 관한 이론적 틀이 아직 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그 동안 발표되어진 예술경제와 관련된 글들을 대강 살펴봄으로써 예술경제학의 성격과 내용을 간접적으로 조명해 보는 것이 현 단계에서는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술경제학에 관한 기본서는 현재까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며, 예술경제를 분야별로 취급하거나 이것들을 편집한 문헌이나 자료들조차도 많지 않은 실정이다. 이에 관한 논의들이 최근 활발해지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라 하겠다.

예술과 연관된 사항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을 주도해오다시피한 보몰(Baumol)과 보웬 (Bowen)을 비롯하여, 마크 블라우(Mark Blaug), 시토프스키(T. Scitovsky), 피콕(A. T. Peacock), 윌리암 핸던(William S. Hendon), 잔 새너헨(Janes L. Shanahan), 앨리스 맥도널드(Alice J. MacDonald), 리차드 웨이트 (C.Richard Wait) 등의 기타 이 분야에 관심을 기울여 온 수십 명의 학자들의 글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내용들을 다루고 있다.

첫째, 예술에 대한 공공 지원 문제를 들 수 있다. 일반 재화나 서비스와 달리, 시장 경제 원리에 맡기기 어려운 특성을 갖고 있는 공연예술의 비용과 수익에 관한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정부에 의한 공공지원의 필요성이 논의된다. 이 같은 주장의 경제학적 근간에는 예외 없이 예술의 '공공재적' 특성이 거론되는데, 알다시피 공공재는 사적재와는 달리 모든 소비자에게 제공되지 않고 한 소비자에게 제공되어질 수 없는 '비배제성(non-excludability)' 과, 다른 소비자가 이용할 수 있는 양을 감소시키지 않고 한 개인에 의해 소비되어질 수 있는 '비경쟁성(non-rivalry)'의 2차원적 특성을 갖고 있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공연예술이 공공재와 사적재의 특성을 공유하는 '혼합재'라고 주장하고 완전 경쟁 시장구조로는 최적의 양으로 예술을 제공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술에 대한 공공 지원은 필연적이라는 주장을 편다.

둘째, 예술 시장에 관한 문제들이 다루어진다. 예술 시장이 일반공산품 시장과 어떻게 차이가 있는지가 점검되고, 시장 형성의 요인들인 수요와 공급, 유통 과정들에 대한 논의가 포함된다. 아울러 예술가로서의 직업에 대한 경제학적 접근이 시도되는데, 이는 예술가가 예술 공급원이자 최종적인 예술 상품에 불가결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예술가에 대한 교육과 훈련을 하나의 투자로서 간주하며, 이러한 투자의 불확실성 문제와 예술가들의 고용 문제들도 아울러 언급된다.

예술 수요에 관한 인접 연구로는 관객 조사가 무게 있게 다루어진다. 관객의 여러 성향과 특징들에 대한 객관적인 조사 결과는 예술수요를 예측하는 데뿐만 아니라 공급에도 유용한 자료가 될 수 있다.

셋째, 예술 단체들의 경영관리 측면이 포함된다. 여기서는 예술단체들의 마케팅 전략과 자금 조달 방안, 예술 회계 등이 두루 다루어지고 있다. 예술 단체들의 재정 위기는 심각한 일로 각 단체들은 정부의 공공 지원과는 별도로 대표 수입과 기획 사업을 통한 자체 수입을 증대시켜야 하는 부담을 안고있다. 최근에는 재정 자립이 어려운 예술계에 대한 기업의 협찬과 개인들의 기부 유치를 위한 활발한 논의들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특히 기업과 문화예술을 접목시키려는 노력들은 괄목할 만하다.

이외에도 사분야로부터의 재원유치를 위한 법적·행정적 조치들이 재정 정책적 측면에서 다각도로 고려되고 있는 것도 특기할 만하다. 정부의 직접적인 재정 지원과 병행하여 예술 단체에 대한 세금감면, 기업의 출연 자금과 개인의 기부금에 대한 세제상의 혜택을 부여하는 방안들도 그 동안 꾸준히 논의되어 온 주제들이다.

넷째, 예술과 지역 사회 개발과의 연관성을 빼놓을 수 없다. 이는 예술을 보는 시각을 예술 내부의 미시적·협의적 관점으로부터 예술이 주변의 다른 체제와 환경과 교감하는 거시적·광의적 관점으로 확장시킨 것이다. 예술경제학의 발전 초기에는 공연예술의 재정 위기와 이에 대한 정부 보조라는 주제 같은 예술 자체의 존립과 진흥이라는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으나, 예술경제학자들은 예술이 내포하고 있는 대외적 흡인력과 촉매적 기능을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분석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지난 십 수년 동안 예술 활동이나 예술 공간이 지역 사회에 기여한 효과 즉 고용창출, 주민유인, 관광객 증대, 지역 상권 활성화 등 경제 효과에 대한 조사 연구가 꾸준히 행해져 왔다.

위에서 언급한 주제들이 그 동안 예술경제학, 엄격히 말하여 예술과 경제에 관한 논의에서 다루어진 전부일 수는 없지만 대체적인 범위를 설정한 것이라 보아 무방할 것이다.

앞으로 예술경제학이 다루는 영역이 얼마나 확대될지 또 그 심도는 얼마나 깊어질지 쉽게 예측할 수는 없으나 지난 수십 년간 진행되어 온 논의 과정을 고려할 때, 무한정한 영역 확대나 고난도의 경제학 개념들을 예술 영역에 적용시키려는 노력들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을 것 같다.

오히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경제학의 기초 개념들을 바탕으로 보다 많은 예술 활동들에 대한 실증적 조사 작업들을 진행시켜, 예술경제에 관한 자료를 축적하고 이를 분석하여 기존에 설정된 가설들에 대한 검증과 재설정 과정을 반복하여 예술경제 논의의 과학화·객관화를 도모해 갈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으로는 그 동안 거의 무시되다시피 해 온 국제 예술 교류에 대한 경제학적 접근 작업도 국제화·개방화와 더불어 그 한자리를 점하게 될 것으로 본다.

예술경제 논의의 유용성과 한계

위에서 본 대로 예술경제에 관한 논의가 주로 예술행정가들의 현장인식과 경제학자들의 학습 욕구가 맞물려 시작되었고 또 가속화된 점으로 보아, 실용면이나 이론면에서 모두 그 필요성과 유용성을 다분히 간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예술경제학의 유용성에 관해 대체로 확신하는 경제학자들과는 달리 예술가들과 일부 예술행정가들은 이 같은 논의를 조심스런 자세로 지켜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예술경제학 또는 예술경제에 관한 논의가 갖는 유용성과 그 한계는 어떤 것이 있을까 ?

먼저 예술경제학은 여러 모로 유익한 역할을 해왔다. 첫째, 예술이 직면한 여러 상황들을 과학적인 분석틀로 투사시켜 문제점과 대책을 합리적으로 도출함으로써 예술행정의 과학화·객관화에 기여한 점을 들 수 있다. 그 동안 관례에 따라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해 오던 예술단체들이, 예술경제학의 도움으로 비용과 편익 분석을 시도하고 적정수준의 가격을 설정하여 체계적인 마케팅 기법을 동원하여 수익을 제고하는 등 단체 운영의 효율화를 기하는 데 기여한 공로는 결코 작다고 볼 수 없다.

둘째, 예술행정 특히 정부의 예술 정책에 합리적 근거와 객관적 자료를 제공함으로써 정책 수립 및 집행이 효율적으로 수행되도록 하였다. 동서를 막론하고 예술에 대한 정부 지원이 국가 정책으로 점차 중요한 매김을 해 가고 있는 추세에서 정부로서는 어떤 분야에 얼마만큼의 재원을 지원해야 되느냐는 문제에 접하게 되는데, 예술경제에 관한 논의들은 정부의 재원 배분 결정에 유익한 정보와 자료들을 제공하였다.

셋째, 예술행정가와 예술가, 예술 단체들에게 경제의 중요성을 인식시켜 주었다. 예술 활동은 정부나 독지가의 자선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온정주의적 사고에 젖어 있던 예술행정가나 예술가는 예술에만 전념하면 된다고 막연히 생각해 온 예술가들에게 객관적 자료에 의한 문제 제시와 해결 방안의 모색이 주는 매력은 이들에게 예술에 있어서 경제의 중요성을 자각시켜 주었고 나아가 그들의 의사 결정과 행태 결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예술경제학은 위와 같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결합시키는 데서 오는 내재적인 한계와 아울러 예술가와 예술행정가들이 수긍할 수 없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첫째, 예술행정학의 발전 과정에서 보았듯이 예술경제에 관한 논의는 기본적으로 경제학 지향 내지는 경제학에 경도 된 측면이 강하여, 예술의 특수성을 다 소화해 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 점은 특수 경제학이 안고 있는 공통적인 문제점이기도 하겠지만, 특히 예술 분야에 경제학 개념을 적용시키는 데는 조심스런 접근이 필요하다.

이는 예술이 일반 공산품과는 달리 가치적이며 심미적인 본질적 특성을 내포하고 있는 데에 기인한다. 많은 예술가들은 예술 진흥에 기여해야 할 예술경제학이, 예술활동에 있어서 경제적 측면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때로 목적과 수단이 경도 되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불평한다.

예술행정학자 존 픽(John M. Pick)은 그의 저서 「예술행정의 제문제」(Questions in Arts Administration)에서 '예술행정가는 기업가나 경영자가 아니며 사회사업가도 아니다. 그의 의사 결정은 본질적으로 미학적인 것으로 재정적·법적 제약을 감안하고 일부 경영이론의 도움을 받으며 복잡한 정치적·사회적 여건들을 간혹 고려하지만 결국 이들간의 조화 감각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함으로써 예술에 대한 미학적 특성의 중요성과 예술경제학에 의한 예술 접근이 만능일 수 없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해 주고 있다.

둘째, 예술경제학이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작업을 통해 예술 정책수립 및 집행의 효율성 제고에 기여한 이면에는, 자칫 몰가치적 몰미학적 분석 자료와 기법을 제공함으로써 예술을 상실한 예술정책이라는 모순적이며 단편적인 정책 결정을 유도하게 될 위험성을 안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픽(Pick)의 주장의 일면에는 바로 이 점에 대한 경고도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예술경제학에 대해 제기되는 위의 효용성 논란은 단순 이원론적 입장에서 명백하게 장단점이 구별되는 것은 아니다. 이의 효용성과 그 한계는 동전의 양면처럼 바라보는 사람과 시각에 따라 다를 수가 있다는 점, 나아가 때로는 서로에게 보완적 측면이 될 수 있다는 점 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학문으로서의 전망

필자는 우리에게 아직 생소한 예술경제에 대한 개략적인 내용들을 문자 그대고 시론적 입장에서 기술하였다. 예술경제 분야는 예술행정가, 예술가 그리고 경제학자들 모두가 애정 어린 관심으로 발전시켜가야 할 몫이다. 우선 이에 관한 문헌들이 많이 소개되고 이것들을 학문적으로 뿐만 아니라, 예술 현장에서 실무적으로 적용하고 검증하며 이에 관한 자료들을 축적하여 환류시키는 지속적이면서도 역동적인 작업이 필요한 때라 생각한다.

예술경제학이 안고 있는 한계들을 염두에 두고 이를 잘 발전시켜간다면 예술행정에 크게 유익할 뿐만 아니라 예술 진흥이라는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는 데에도 기여하는 바가 클 것이다.

이 글에 이어 예술경제와 관련이 있는 4편의 글이 게재되는데 이에 관한 개요를 기술함으로써 이 글의 결론에 대신코자 한다.

이 4편의 글들은 이미 살펴본 바 있는 예술경제학의 대상 분야 중에서 대표적인 주제들을 선별한 것으로 예술경제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제공할 것으로 확신한다.

「예술에 대한 정부 지원」 논쟁이란 글은 예술경제학이 대두된 이래 지금까지 핵심적인 위치를 점해 온 주제로서, 공연예술에 대한 찬반논쟁을 비교적 객관적 입장에서 조망한 글이다.

그 다음 「공연예술의 시장 경제적 접근 방법 비교」라는 글은 공연예술의 위기에 대처하는 영·미와 독일의 정책 방향을 상호 비교하고 이들을 절충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다만 논의의 단순화를 위해 영국과 미국을 한 범주로 묶은 것으로 이해되나, 영국의 공연예술을 미국과 같이 시장 자체의 조절 기능에 일임하는 것으로 전제한 것은 적절치 못한 것으로 보인다.

「예술 수요 결정 요인에 대한 고찰」이란 글은 제목이 암시하듯이, 대부분을 예술 시장의 수요측면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 글은 예술수요에 대한 몇 가지 가설이나 명제들-시토브스키(Scitovsky) 가설, 린더(Linder) 가설, 보몰(Baumol)과 보웬(Bowen)의 관객조사 등-을 비판적인 시각에서 논술함으로써 예술 수요의 결정 요인에 관해 많은 정책적 암시를 주고 있다.

마지막 글인 「경제와 문화, 그 협력의 시대」는 사례 연구로서 한·일간의 문화예술의 외국 소개 행사(이벤트)를 비교 분석한 것이다. 이 글을 통해 양국간에 해외 문화 홍보에 대한 정부의 대처방식, 사업의 규모, 다른 분야에서의 지원의 정도 등의 차이를 알 수 있으며 예술 행사에 대한 기업 협력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주제는 기존의 예술경제학이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으로,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예술경제학의 영역 확장 작업에 시사하는 바가 많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