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리뷰 / 출판

'연성 출판물' 붐에 대한 몇 가지 생각




이영준 / 출판평론가

최근 2∼3년간 우리 출판계는 색다른 출판 문화를 경험하고 있다. 이를테면 부드러운 책,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 즉 '연성(軟性) 출판물'이라 할 수 있는 책들의 대거 출현이다. 책 이미지의 변화는 제목에서는 물론이고 장정 내용에서 이를 볼 수 있으며 컷을 대폭 채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만화도 수용하는 단계로까지 나가고 있다. 이 변화의 방향은 엄숙주의에서의 탈피이자 쾌락과 실용성 추구로 요약될 수 있다. 그러나 표면에서 떠오른 베스트셀러들의 면면을 훑어보면 깊이를 거부하는 경박성의 물결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세를 풍미한 역사전기류 소설들이 그렇고 「배꼽」이니 「숭어」니 하던 소위 '지혜'류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지치게 만들지도 모르는 원전을 요약하거나 소설로 변주해서 지혜의 알짜배기를 쾌락과 함께 제공하겠다는 서비스 정신(?)은 다수 독자들의 열띤 환영을 받았다.

10년을 두고 버티는 유사 시집들의 발호도 뒤지지 않는다. 얄팍한 경구를 센티멘털리즘과 결합시킨 당의정 문화(속에 든 것이 꼭 약인 것은 아니었지만)는 순진하기만 한 많은 소녀들을 만족시켰다. 이러한 연성 출판물들이 줄기차게 베스트셀러 목록을 점거하고 있는 것이 일이 년의 일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이러한 연성 출판이 꼭 우리나라만의 일이냐고 강변할 수도 있다. 베스트셀러라는 것이 원래 다 그렇고 그런 것 아니냐는 얘기다.

색다른 출판문화 경험

그러나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지형도가 약간은 달라지고 있다.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사이비 역사전기류 소설들이 슬금슬금 퇴진하고 있으며 그 자리에 순문예 소설들이 한둘 비집고 올라서고 있다. 그리고 몇 년 간 후안무치하게 시 부문 베스트셀러 목록을 더럽히고 있던 유사 시집들도 완연한 퇴조를 보이고 있다.

베스트셀러 목록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사실 사회학적인 관심을 넘어서기 힘든 것이 사실이지만 그간 베스트셀러 목록이 보여 준 추태는 사실 남부끄러운 데가 한둘이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조금 나아졌다는 것은 주위를 끈다. 이러한 사태가 조금씩 질적인 진전의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가볍기만 한 책의 단계에서 한 걸음 나아간 경우들이 바로 그것이다.

최근 베스트셀러로 떠오른 「반갑다, 논리야」,「논리야, 놀자」,「고맙다, 논리야」와 같은 책은 그 내용이 쉽고 친절하면서도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책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 책은 입시 제도가 논술형으로 바뀐다는 데에 재빠르게 착목 한 순발력이 효험을 본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책의 내용이 내실을 보장해 주고 있다.

이러한 기획의 전례를 '재미있는……' 시리즈에서도 찾을 수 있다. 수학이나 물리학의 세계를 다룬 중용 책이 전무한 것은 아니었으나, 조그만 친절을 더 보인 결과가 베스트셀러로 결실을 보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재미있는……' 시리즈처럼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필력이 있다면 이는 행복한 만남일 것이다.

그리고 '논리……'의 저자는 그 분야 전문가는 아니지만 필력으로 이를 극복한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 독서계에서 20년 가까이 사랑 받고 있는 윌 듀란트의 「철학 이야기」 같은 책도 이와 같이 '친절'의 발상이 적용된 예다. 우리에게 이러한 친절함이란 얼마나 그리운 것인가. 「소설 손자병법」을 시초로 하여 그 뒤를 이은 일련의 '소설……'들은 이러한 친절들을 그리워해 온 소비자들의 열망의 조그만 표현이라고 관대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엄숙주의도 한탕주의도 문제

책이라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소수인데 비해, 골치 아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라고 하면 다소 과할지 모르겠으나,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는 근거 없는 생각인 것은 아니다. '독서백편의자현'이라는, 책읽기에 대한 고래의 격언은 무뚝뚝한 가부장의 모습을 하고 있다.(그 뒤에는 서당의 회초리가 버티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책의 친절함은 학인들을 게으르게 만들 뿐 이라는 생각은 지금에 와선 고소를 자아내는, '언문' 아닌 '진서'를 찾는 옛 선비들의 고루함일 뿐이지만, 학자들 사이에선 아직도 은근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 발상이다. 학자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대중과 친밀한 저서를 펴내는 학자를 백안시하는 풍조가 분명히 있다. 그리고 그런 맥락에서는 '독서백편의자현'식이 자주적인 사고력을 길러 주는 독서법이라 강변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발상을 적용시킨 예는 대학교의 교과서들에서 자주 만날 수 있다. 조사만 빼고 온통 한자투성이인 책들 말이다. 엘리티즘의 해악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제 세태는 달라지고 있다. '독서단편의자현'이라고나 할까, 한 번만 읽어도 그 뜻을 저절로 알 수 있는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우리 시대는 사실 오갈 데 없는 대중의 시대라 할 만하다. 20세기에 들어서 일어난 이 문화적 지각 변동을 두고 오르테가 이 가세트라는 스페인 사람은 '대중들의 반란'이라고 일컬었다. 그는 덧붙여 진지함과 깊이의 결여를 우려했다. 과연 이제 엄숙주의가 설 수 있는 자리는 찾아볼 수조차 없게 된 듯하다. 베스트셀러에 당당히 오른 「YS는 못 말려」라는 우스개 책이 그 사실을 웅변으로 보여 주고 있다.

베스트셀러 목록을 두고 의미를 가리는 것은 어쩌면 어리석은 일일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다수 대중들의 기호를 드러내는 베스트셀러 목록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한갓 유행으로 그친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배울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베스트셀러 목록은 어쩌면 우리 사회의 중요한 지표로 간주될 수도 있다. 대중성의 확보야말로 자본주의 체제의 핵심적 구성 원리인 자유 시장의 존재 근거이기 때문이다. 고려가 있을 수 없는 이유이다.

그러나 이러한 세태가 꼭 좋은 면만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연성 출판물에 익숙한 오늘의 세태는 분명 편리함을 추구하고 있다. 그리고 이 편리함의 추구는 누구도 막지 못할 태세다. 어쩌면 이것이 부분적으로는 발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몇 가지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우선 쉬운 것, 재미있는 것만 찾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냐는 일갈이다. 물론 맞는 말이다. 대가 없는 일은 없다고 흔히 말한다. 쉬운 것을 요구하느라 깊이를 소홀히 하지 않겠느냐는 우려는 개연성이 있어 보인다. 요약은 많은 것을 버린다. 그러나 이것이 책이 어려워야 하는 변명이 될 수는 없다. 깊이는 정확성의 다른 이름이지 결코 쉬움의 반대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책이 무엇인가. 지식을 나누어 갖고 전수하는 방편이다. 우리가 대중을 몽매시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전문가의 기득권 강화도 물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다. 루터가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해 냈을 때 신성모독죄라고 지탄받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우리가 고려해야 할 사실은 어쩌면 우리의 많은 학자들이 의외로 문장력이 없다는 알려진 비밀일 것이다. 자신이 평생 연구한 분야를 일반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낼 수 없다면 우리 모두에게 안타까운 일이자 그 자신에게는 불행한 일임에 틀림없다.

연성 출판물은 앞으로도 더욱 발전할 것이다. 대중은 그것을 원한다. 독일 국민들이 독일어 성경을 원했듯이. 그러나 그것이 바람직하게 발전하려면,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나서야만 한다. 그래야 안심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만이 연성 출판물들이 시한 폭탄처럼 떠 안고 있는 정확성, 혹은 깊이의 결여를 막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