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서를 가꾸고 키워나가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김경욱 / 영화평론가
김경욱-공연윤리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공윤'이라는 기관의 성격은 참 미묘한 것 같습니다. 활동의 결과에 대해 격려의 말을 듣기는 거의 불가능하면서, 반면에 비난을 받기는 너무나 쉽습니다.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사회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시점에서, 민감한 직책을 맡게되어 어려움이 많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김동호-공윤의 기능이 대중매체에 대한 심의이기 때문에, 거기에 종사하는 분들의 입장에서는 껄끄럽게 여겨질 것입니다. 하지만,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는 꼭 필요한 기능으로 인식되고 있죠. 특히 청소년의 정서를 위해서 음란, 저질문화의 범람을 공윤이 막아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지난날에는 정치적인 상황과 사회적 여건으로 인해서 공윤 심의에 대한 논란이 많았는데, 지금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부분보다는 오히려 대중문화가 청소년의 정서와 의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거기에 더 큰 비중을 둘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김경욱-공윤은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하게 되었습니까 ?
김동호-1975년 12월 31일에 공연법이 개정됨에 따라, 그 다음해인 1976년 5월 12일에 공연윤리위원회가 설립되었습니다. 당시에 영화에 대한 검열권은 문화공보부에 있었고, 공윤은 단순히 그 일을 위임받는 기능이었지요. 1984년 12월 31일에 영화법이 다시 개정되었고, 그 다음해인 1985년 7월1일부터 영화 검열이 영화 심의제로 바뀌었습니다. 정부에서 하던 영화 검열 업무는 폐지되고 모든 심의 업무가 공윤으로 넘어오게 되면서, 그때부터는 사실상 심의가 자율화된 셈이죠.
김경욱-그럼에도 공윤의 독립성과 자율성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었는데요?
김동호-1987년 6·29 선언이 나온 다음에 점점 더 자율화되어 가다가 1990년부터는 정부 기관에서 전문심의위원을 파견하던 제도까지 폐지되었어요. 그 후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심의위원회가 구성되면서 자율적으로 심의할 수 있는 여건은 충분히 마련되었다고 봅니다.
김경욱-공윤의 심의 분야를 알고 싶습니다.
김동호-영화, 비디오, 가요 음반, 공연에 관한 광고물, 무대 공연물 등 다섯 분야의 심의를 맡고있습니다. 각 분야마다 전문심의위원회가 구성되어 있어요. 무대공연의 경우, 공연법 시행령에 의해 성인을 대상으로 한 공연물은 사전심의를 받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청소년에게 보여 주기 위해 미성년자 관람가를 필요로 하는 공연물은 사전심의를 거쳐야 하죠. 사회주의 국가의 공연물이나 외국공연물 역시 사전 심의를 하고 있습니다.
김경욱-심의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요 ?
김동호-심의가 필요하면, 필요한 서류를 갖추어 심의 신청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먼저 전문심의위원회의 심의를 받게 되죠. 영화와 비디오 분야에는 수입 심의와 본 심의라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고, 다섯 명의 전문심의위원이 심의를 합니다. 심의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경우에는 3개월 이내에 재심 신청을 하면 됩니다. 재심 신청이 들어오면, 전체 윤리위원회에서 심의를 하도록 되어있습니다.
김경욱-만일 재심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온다면, 그 다음에는 더 이상의 기회가 없습니까 ?
김동호-그렇죠. 전체 윤리위원회에서 결정이 나면, 최종 결정으로 굳어지게 됩니다.
김경욱-윤리위원과 전문심의위원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습니까 ?
김동호-저까지 포함해서 모두 열 여섯 명의 윤리위원이 있습니다. 전문심의위원회는 그 분야의 전문가 다섯 명으로 구성됩니다. 그 중한 사람이 위원장을 맡게 되죠. 영화 분야를 예로 들어보면, 주로 영화 감독, 영화평론가, 연극 종사자, 문인 가운데서 위원장이 전체 윤리위원회의 승인을 거쳐 전문심의위원을 위촉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현재 서른 다섯 명의 전문심의위원이 활동하고 있고 그 중에 일곱 명은 윤리위원을 겸하고 있습니다.
김경욱-심의 기준이 너무 애매하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 심의 원칙을 규정해 놓은 사항만 살펴보더라도 너무 두루뭉실한 느낌을 받는데요.
김동호-원래 심의 기준이라는 것을 명문화시켜 놓은 상태에서 사회의 변화에 따라 매년 개정을 해왔습니다. 1990년까지도 그랬어요. 시대적 상황에 맞게 심의 기준을 끊임없이 개정해 나가는 작업은 원칙적으로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떤 일정한 심의 기준보다 그것을 실제로 운영하는 방식이죠. 신축성 있게 운영의 묘를 살릴 수 있다면 아주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요즘에 우리나라의 영상 산업이 전반적으로 침체되어 가는 상황에서, 심의 때문에 더 위축되거나 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경욱-여기서 영상 산업이란 주로 한국 영화입니까 ?
김동호-침체 상태에 있는 우리나라 영화와 비디오 산업을 말하는 거죠.
김경욱-요즘 심의가 완화되고 있는 느낌입니다.
김동호-정치·사회적 소재에 대해서는 거의 제한을 두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청소년 정서를 보호하는 측면에서 지나치게 퇴폐적이고 외설적인 부분만을 제한을 두려고 합니다.
김경욱-최근에 개봉된 영화 '크라잉게임'에 대한 공윤의 결정은 예전에 비해 정말 파격적이었습니다. 이런 변화에 대해 영화계 쪽에서는 찬사를 보내고 있습니다.
김동호-심의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했다면, 보여줄 수 없는 장면이 있었죠. 하지만 그 장면이 그 영화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인데다가 저속하거나 음란한 장면의 연장이 아니라 그런 식의 표현 방법이 필요한 상황에서 들어간 장면이었기 때문에 삭제하지 않고 통과시켰습니다. 심의 기준을 신축성 있게 운영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예가 되겠죠.
김경욱-수입 불가 판정을 받은 영화 '데미지' 경우와 비교한다면, 형평의 원칙에 어긋난 것은 아닐까요 ?
김동호-'데미지'가 외설이라는 측면에서 문제가 된 것은 아닙니다. 전문 심의위원들이 먼저 영화를 보고 판단을 유보한 상태에서 전체 윤리위원들의 의견을 들었고, 그런 다음 다시 전문심의위원회들이 심의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서로 다른 의견으로 여러 차례 격론을 벌이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 영화의 문제는 중년의 남자가 며느리 될 여자와 격렬한 사랑을 나누는 부분입니다. 한 여자가 아버지와 아들을 동시에 사랑하게 된다는 설정이라든지, 시아버지 될 사람이 프랑스까지 찾아가서 아들과 데이트를 하고 있는 여자를 몰래 불러내어 거리에서 관계를 가 진 후 다시 아들에게로 돌려보내는 장면 등은, 우리의 전통적인 윤리관으로 볼 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죠. 저속하거나 외설적인 장면 때문이 아니고, 루이 말 감독의 연출 솜씨는 어느 정도 작품성도 인정되지만, 우리 사회의 윤리관으로는 너무 충격적인 내용이라 수입 불가 판정을 내렸습니다. 재심이 들어오리라고 보는데, 그렇게 되면 각계의 여론을 되도록 많이 들어보고 수렴 과정을 거쳐서 결정을 내리려고 합니다.
김경욱-'크라잉게임'의 동성연애 문제도 우리의 윤리관으로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고 보는데요 ?
김동호-며느리 될 여자가 아버지와 아들을 동시에 사랑한다는 설정이 오히려 우리의 전통적인 윤리관에는 더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본 기자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의견이 반반씩 갈리고 있어요. 외설 문제와는 다르기 때문에, 심의 위원들 사이에서도 서로 의견을 달리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김경욱-영화인의 입장에서는 심의를 거치지 않고 모든 영화를 그대로 다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주로 청소년에 관계된 단체에서는 심의를 더 강화해 달라고 요청해 오기도 할 텐데, 어떻게 절충하고 있는지요.
김동호-그 문제 역시 사회 윤리와 일반적인 양식에 따라 합법적이고 공정하게 판단하여 심의해 나가면 된다고 봅니다. 심의위원들이나 윤리위원들도 그런 점을 늘 염두에 두고 적절한 판단을 내리고 있어요.
김경욱-영화인들이 내놓은 새 영화진흥법 시안을 보면, 공윤에서의 영화 심의를 폐지하고 민간 자율적인 영화윤리위원회를 발족하여 등급심의 제도를 도입하자는 내용이 있습니다.
김동호-공윤의 구성원을 모두 영화인으로 바꾸어 더 자율화해야 한다는 의견과 아예 공윤 자체를 해체해 버리고 새롭게 구성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공윤의 인원을 구성할 때, 윤리위원은 문화체육부 장관이 위촉을 하지만 나머지 심의위원은 전부 그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하고 있어서, 구성 방법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경우, 영화 관련 단체에서 추천해서 위촉을 받은 7명의 위원으로 구성하여 운영되지만, 일정한 기준이 있어요. 사회 각계의 인사이면서, 자녀를 둔 부모이어야 하고, 또 7명 가운데 두 명은 꼭 여자를 뽑습니다. 부모들이 심사하도록 하는 이유는 청소년을 염두에 둔 것이죠. 프랑스의 경우에는 26명의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2명은 차관급이고 8명은 정부 관리이며 8명은 정부에서 위촉한 사람들이고 나머지 8명이 영화 관련 단체에서 추천한 사람들입니다. 물론 상당히 자유롭게 운영되지만, 구성에 있어서의 정부의 영향력이 큰 셈이죠. 따라서 운영 방법이 역시 중요하다고 봅니다.
영화를 자르지 않고 등급만 정해서 그대로 상영하는 제도는 이상적으로 보면 그렇게 나가야겠죠. 그런데 1990년과 1992년에 공윤이 주최가 되어 등급심의 제도를 위한 세미나를 개최한 적이 있어요. 그때 나왔던 의견을 보면, 부모와 자녀가 함께 영화를 보러 가는 풍토가 먼저 조성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그런 경우가 많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등외 등급을 받은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이 있어야 합니다. 영화 제작자들의 경우에는 17세 이하가 볼 수 있는 청소년 영화, 부모와 같이 보아야 하는 영화, 성인용 영화 등으로 전제를 하고 난 다음에 영화를 만드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이런 식으로 사회 전반적인 여건이 조성되어 갈 때, 등급심의 제도는 비로소 가능해지겠죠. 준비에 필요한 기간과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현재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청소년 영화, 미성년자 관람가라고 판정 받은 영화 이외에는 모두 성인용으로 분류되어 등외 등급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몇 장면을 잘랐을 때, 미성년자 관람가로 인정되는 경우의 영화가 대부분이기 때문이죠. 제한 없이 바로 미성년자에게 보여 줄 수 있는 영화가 얼마 없다는 데 어려움이 있어요.
김경욱-일본에서 자끄 리베뜨 감독의 '미녀 싸움꾼'이란 영화가 개봉되었을 때, 심의 문제로 논란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일본은 신체의 특정 부위를 반드시 지우는 심의 원칙을 고수해 왔는데, 1991년 칸느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이 영화를 두고 예술영화와 상업영화의 심의를 이원화하자는 의견이 나온 것이죠. 공윤에서도 심의 기준의 이원화를 검토하고 있는지요 ?
김동호-예술영화에 한해서 신체의 특정 부위의 노출을 허용하기까지, 일본에서도 오랫동안 많은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심의 기준도 신축성 있게 바뀌어야 한다는 입장에서, 이제 우리 사회도 심의기준의 이원화 문제를 검토해 볼 시기가 된 것 같습니다. '크라잉게임'이 그 예가 될 수 있겠죠. 이런 식으로 나가다 보면, 아예 예술영화와 상업영화를 구분해서 심의하게 될 때가 올 것입니다.
김경욱-영화계에서는 영화진흥공사 사장을 지낸 분이 공윤 위원장으로 선출된 것에 환영하는 분위기입니다. 예전과 상반된 업무를 수행하는 데서 오는 특별한 어려움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김동호-예전에는 영화의 진흥을 담당하다가 이제 영화에 제한을 가하는 입장이 됐군요(웃음). 4년 동안 영화에 관련된 업무를 하면서 영화계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었고 또 영화에 대한 애착도 생겼기 때문에, 사실은 좋은 점이 더 많습니다. 요즘은 그 동안 못 본 영화와 과거에 문제가 됐던 영화를 비디오로 틈틈이 보고 있어요. 문제가 될 만한 영화는 필름이나 비디오로 미리 보기도 합니다. 공윤에 온지 아직 3개월이 채 안되었지만, 거의 40여 편의 영화를 보았습니다.
김경욱-1995년 1월 1일에 인공 위성이 쏘아 올려지면, 케이블 TV 와 함께 1백 개에 이르는 채널이 가능하게 될 전망입니다. 그렇게 되면 영화 전문 채널과 뮤직비디오 전문 채널도 생길 텐데요. 혹시 공윤의 업무에는 어떤 변화가 없을 까요 ?
김동호-현재 방송으로 나가는 영화는 방송위원회에서 심의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케이블 TV의 경우에는 방송 위원회에서 심의를 하게 될 것으로 봅니다. 1995년부터 본격적으로 운영될 케이블 TV 시대를 맞아, 공윤보다는 오히려 영화계에서 준비해야 할 일이 아주 많다고 보는데요. 금년 하반기에는 프로그램을 공급할 회사와 스테이션을 운영할 방송국이 공보처의 허가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현재 공보처에서 마련하고 있는 시안에 따르면, 영화 전용 채널에서 방영하는 프로그램 가운데 외국 영화가 30퍼센트 이상 넘어가지 못하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 나머지 70퍼센트를 우리 영화로 메꾸어야 하는데, 미성년자가 볼 수 있는 영화여야 되겠죠.
그런 조건에 맞는 우리 영화가 과연 몇 편이나 될까요 ? 아마 몇 일만 틀어도 바닥이 날 현실입니다. 때문에 영화 제작자들은 케이블 TV에 공급할 수 있는 영화를 빨리 준비해서 만들어야 합니다. 영화 프로그램을 공급할 회사는 1년 동안 방영할 수 있는 우리 영화를 빨리 확보해야 되겠죠. 뉴 미디어에 대한 영화계의 대비가 정말 시급합니다. 그래서 침체 상태에서 벗어나 활로를 찾아야 합니다. 영화 관객은 늘어나는데, 우리 영화를 보는 관객은 나날이 줄어가는 현실은 정말 안타깝습니다.
김경욱-오랜 시간 감사합니다. 끝으로 전하고 싶은 말씀은 무엇입니까 ?
김동호-4년 동안 영화 업무를 맡았다가 공백기를 거쳐 다시 돌아왔기 때문에, 앞으로 청소년 정서를 보호하면서, 한편으로 영상 산업 발달에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을 합리적으로 모색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