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르포

김흥수 화백 모스크바 초대전




나상만 / 연극 연출가·모스크바 슈우킨 연극대학 연기학과 교수

하모니즘 회화의 창시자인 김흥수 화백의 러시아 초대전이 지난 4월 29일부터 5월 30일까지 모스크바 소재 푸시킨 미술관에서 성황리에 개최되었고 오는 7월 9일부터는 세계 3대 박물관의 하나인 상크 페테르무르크의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8월 8일까지 계속된다. 한국과 러시아의 문화·예술 교류에 관심을 갖고 있는 필자에게, 김 화백의 모스크바전에 초점을 맞춰 현지의 분위기와 언론의 반응을 중심으로 원고를 부탁했을 때 기쁨과 걱정이 동시에 들었다. 그것은 필자의 전공이 연극이었기 때문이다.

하모니즘은 대립적인 것의 예술적 승화

한 가슴속의 공존하는 기쁨과 걱정 ! 김 화백의 하모니즘은 동양의 음양 철학을 하나로 결합하는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음은 여성을 상징하고 양을 남성을 상징하며, 음은 인간의 육체를 양은 인간의 정신을 나타낸다. 음은 현실이고, 양은 추상이다. 즉 하모니즘은 리얼리즘과 추상미술의 결합이다.

김흥수 화백의 푸쉬킨 미술관 전시회에 관한 글을 쓰는 필자의 기쁨(양)과 걱정(음)은 과연 하모니즘으로 승화가 될 것인가 ? 어쨌든 필자는 모스크바에 소개된 김흥수 화백의 하모니즘을 그의 수법대로 양(모스크바 언론의 기사)과 음(필자의 생각)으로 함께 교직 하고자 한다.

모스크바 볼혼크가 12번지에 그리스식의 대리석 기둥이 무척 인상적인 건물이 있다. 이 건물이 바로 '러시아 시의 태양'으로 숭상 받고 있는 푸쉬킨의 명칭을 따서 알렉산더 3세 미술관을 모체로 하여 기부에 의해 완성된 푸쉬킨 미술관이다. 여기에는 그리스·로마 시대의 걸작에서부터 푸생, 드라크라와, 코로, 세잔, 피카소, 르노와르, 모네, 드가, 고갱, 마티스 등 현대 회화에 이르기까지 모두 2천 여 점 이상의 미술품들이 소장되어 있다.

이 미술관의 2층 순수 회화관 중앙 홀에서 전시된 김흥수 화백의 작품은 전시 공간의 사정으로 27점이 소개되었는데 이 전시회는 매우 이례적이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동양의 화가가 여기서 전시회를 갖는 것은 처음이었을 뿐만 아니라 생존하는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기도 1973년 샤갈 이래로 최초였기 때문이다.

김흥수 화백도 '에호 쁠라네띠(행성의 메아리)'라는 신문 인터뷰를 통해서 그 감격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나의 작품들이 훌륭한 미술관, 뛰어난 화가에게만 허락되는 홀에서 여러 시대 천재들의 창작품들과 함께 전시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김 화백의 푸쉬킨 미술관 전시회는 러시아의 문화 일간지 '쿠란띠(시계탑 또는 수레바퀴)' 기자 유리 자하레프의 표현처럼 하나의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따라서 이곳에서의 전시회를 하나의 행운이나 우연으로 간과해서는 곤란하다. 여기에는 많은 어려움과 여정이 필요했는데 그 과정을 영자신문 '모스코 타임스' 는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

약 3년 전, 유네스코 러시아 대사 블라디미르 로메이코는 룩셈부르크에서 김수(김흥수 화백의 예명, 서양에서는 그렇게 알려져 있음)의 작품전을 보았다. 로메이코는 그 작품에 호감을 갖고 김수에게 그의 예술이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생활철학과 완전히 일맥 상통 한다면서, 그가 반드시 모스크바의 가장 유명한 미술관인 푸쉬킨에서 전시회를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유네스코 대사는 로메이코와 함께 전시회를 주관하기 위해 애썼으나 지난 3년간 러시아에 몰아닥친 정치적 사건들로 인해 그 계획은 달성되기 어려웠다. 게다가 푸쉬킨 미술관에 문제가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역사적으로 푸쉬킨 미술관은 유럽 화가들의 작품만 전시한다고 말했습니다."

김흥수는 목소리를 높여 가며 설명했다.

"그들은 나에게 동양 예술 박물관에 가서 전시회를 개최하라고 말했죠. 나는 동양인이지만 예술은 국제적입니다."

또한 김흥수에 의하면, 박물관 직원이 그에게 현존하는 화가의 작품은 전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그들에게 그러나 샤갈이 있었노라고 말했습니다. 나의 하모니즘은 샤갈도 하지 못했다고 말입니다."

전통적으로 서유럽 미술만을 지향해 온 푸쉬킨 미술관에서의 이번 전시회는 한 작가의 영광만이 아니고 우리 미술 문화가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은 셈이며 성장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현지의 매스컴들이 잘 대변해 주고 있다.

현지 언론들이 보낸 찬사

모스크바에서 발행된 러시아의 언론들은 이번 전시회에 '한국의 화가가 러시아에서 조형주의를 선 보였다'(모스코비치에 노바스찌), '음과 양의 조형미'(니자비시마야 가제타), '김수, 나는 자유로다'(에호 쁠라미띠), '한국 예술의 균형미'(모스크바 트리분), '푸쉬킨에서는 이와 같은 전시를 본 적이 없다'(쿠란띠), '볼혼크 가의 천재적 김수'(베체르나야 모스크바), '모스크바 시민들은 조화로운 전쟁과 평화를 보게 되었다'(카메르산트 다이어리), '화가 김수의 독특한 세계'(로드마스코프그키에 노바 스찌), '한국 현대 회화의 첫 만남'(이즈베스티야), '구상과 추상의 조화'(다수크 브 마스크베), '화가의 음양관'(모스코 타임스)이란 타이틀로 전폭적인 관심을 갖고 김흥수 화백과 그의 하모니즘 회화를 소개하고 있었다.

김 화백의 이번 모스크바 초대전은 한마디로 성공적이었다. 특히 '니라비시마야(독립)' 신문은 '김수 화백은 현재 세계 미술의 혜성이다'는 표현을 쓰면서 5월 13일자 6면에 전시회에 소개된 '자화상'(1980∼1990년 작품)을 비롯한 다섯 작품의 사진과 함께 김 화백의 성장과정과 작품세계에 대한 심층 보도를 하고 있다.

알라 보리센코와 빅토리아 쇼히나, 이 두 명의 기자를 통해서 니자비시마야 신문은 김 화백을 이렇게 소개했다.

'모든 화가들은 조화를 추구한다. 심지어는 조화를 파괴하는 자들도 말이다. 그러나 김수 화백은 자기 예술의 목표와 요구 그리고 포용으로써 조화를 인식하는 원칙적인 하모니스트이다.

…… 중략 ……

30년 전부터 '나는 자유로다'라고 자처하는 김수 화백. 그의 최근 작품을 대하노라면 김 화백이 이 말을 되풀이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미치게 될 것이다. 동서양의 예지 속에서 우리는 적대적이지 않고 투쟁하고 있는 세력(힘)을 보지만, 양 세력간의 극단에서 삶은 동요되고 있다고 헤르만 헷세는 생각했다. 이것을 한국의 김수 화백이 어떻게 처리하는지 관람해 보십시오.'

김흥수 화백의 푸쉬킨 전시회 개막식은 러시아의 수많은 미술계 인사와 미술 애호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국의 김석규 대사와 러시아의 예브게니 시도로프 문화부 장관이 개회 테이프를 끊고 인사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이들의 전시회 관람으로 푸쉬킨 미술관 전시회는 활기를 띠게 되었고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

미술관에서 30년을 근무했다는 한 할머니는 '그렇게 많은 관람자를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리고 김수 선생님의 작품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첫 눈에 알 수 있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김 화백을 인터뷰했던 「에호 쁠란네티」 잡지의 기자 알렉산드르 로만노프는 전시장의 분위기를 이렇게 쓰고 있다.

'본 기자가 미술 전람회에서 김 화백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는 자필사인을 받으려는 애호가들의 견고한 방어벽을 뚫어야만 했다. 비록 그가 웅장한 개회식과 수 많은 인파에 시달렸기에 다소 피곤해 있기는 했지만 74세의 거장 김 화백은 어느 누구와도 만남도 거절하지 않았다. '보십시오. 나를 보다 쉽게 알아보고 기억나게 하기 위해서 나는 나의 하얀 가죽 모자를 벗지 않고 있습니다.' 김 화백은 그의 숭배자들이 내미는 수많은 사인 요구에 자유 분방하게 사인을 하면서 농담을 건넸다. 나는 그가 유명한 사람들이 으레 하는 것처럼 건성으로 사인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에게 생생하고 착한 눈으로 주의 깊게 보면서 사인하는 것을 느꼈다. 아마도 이것은 화가가 사람을 보는 방법일 것이다. 인터뷰 시간이 너무나도 빨리 지나갔다. 전시회의 관계자들이 김수가 피곤함을 느꼈다고 생각하고 그로부터 나를 떼어놓으려고 시도했기에 우리는 뛰면서 이야기를 했다.'

서양 미술의 한계 보여 줘

김흥수 화백의 이번 전시회는 어떤 결과의 도출이 아니라 새로운 구상을 위한 창조적 모티프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그의 겸허한 자세 못지 않게 나름대로의 큰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

요약하자면 모스크바의 대중들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은 하모니즘이라는 양식을 동양인 최초로 푸쉬킨 미술관에 전시하여 한국 미술의 위상을 세계적으로 격상시켰으며, 이를 계기로 러시아의 젊은 화가들에게 유럽 미술의 한계를 말해 주어 그들만의 새로운 예술, 그들만의 영역을 제시해 주었다고 하겠다. 그러나 김 화백의 이번 성과는 그 자신이 밝혔듯이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의 지원과 대한항공의 협조, 그리고 모스크바 한국 대사관의 적극적인 도움이 없었다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끝으로 아쉬웠던 점은 푸쉬킨 미술관이 모스크바의 관광 코스로 많은 외국인이 내왕하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고 러시아어 제명이나 작품소개에 그쳤던 점과 미술관 주변을 제외하고 포스터가 한 장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에는 최소한 영어로 된 제명이 함께 붙어져 있기를 기대해 본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은 전시실만도 1천 50개가 있는 세계적인 관광 궁전이기 때문에 많은 외국인들에게 김 화백의 작품을 소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