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아리랑 가락에 실리는 향토사랑
이홍섭 / 강원일보 문화부 기자
정선아리랑을 빛낸 소리꾼, 화가, 문인, 그리고 일반인들이 함께 숙식하며 정선아리랑 문화를 직접 체험하는 제1회 정선아리랑학교가 정선아라리 문화연구소(소장 진용선) 주최로 오는 8월 6일부터 3박 4일 간 정선에서 열린다.
화암 약수, 종유굴, 화암 팔경 등 수려한 자연 경관 속에 자리잡고 있는 화동 초등학교에서 일반 독자 1백 50명과 초청 문화예술인들이 함께 펼치는 이번 정선아리랑 학교는 소리꾼과 일반인이 숙식하며 어울리는 '국내 최초의 아리랑 학교'라는 점에서 큰 주목을 끌고 있다.
정선아리랑 기능 보유자인 최봉출씨가 교장을, 진용선 소장이 총괄 기획 및 본부 운영을 맡고 정선아리랑과 관련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교육을 진행하게 되는 '정선아리랑 학교'는 생활 속에 깊숙이 뿌리 내린 정선아리랑 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교육은 '정선아리랑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출발, '정선아리랑 문화를 꽃피우자'는 마지막 날 주제까지 다채로운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 '정선아리랑 일반론'은 강원대 박민일 교수와 진용선 소장이 맡고, '정선아리랑 전수'는 기능 보유자이자 교장인 최봉출씨와 역시 기능 보유자인 유영란씨, 그리고 명창으로 평가받는 전제선, 김형조, 김남기, 김순덕씨가 담당한다.
또한 '미술에 있어서의 정선아리랑'은 숭의여전 김정 교수(화가)와 인하대 김경인 교수(화가)가, '문학에서의 정선아리랑'은 시인 정공채, 남진원, 신승근, 최준, 김상환씨가, 그리고 '정선의 향토문화제'에 대해서는 강릉대 장전룡 교수가 강의할 예정이다.
이외에 다른 예술 장르에서의 정선아리랑, 정선의 향토사, 화암팔경 관광 및 천렵 시간 등이 마련돼 있어 정선아리랑 문화에 총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정선아리랑 학교에는 18세 이상이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고, 과정을 마치면 수료증이 수여된다.(문의 전화 0398-62-0990)
정선아리랑 학교의 개교를 앞두고, 그 동안 민요의 전승·보존 작업에 모범을 보여준 단체로 높이 평가받고 있는 정선아라리 문화연구소를 탐방, 지금까지 펼쳐 온 사업과 앞으로의 계획 등을 알아본다.
또한 민요 외에 다른 장르 속에 실현된 정선아리랑 문화를 추적해보면서 살아 꿈틀대는 생명체 같은 정선아리랑의 본질에 접근해 본다.
정선아리랑문화연구소가 문을 연 것은 지난 1991년 12월. 한 젊은 시인의 애향심에 의해서 이었다. 연구소의 소장을 맡고 있는 진용선씨(32세)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지난 1986년 「심상」과 「시문학」을 통해 시인으로 데뷔한 그는 한국관광공사 명예 통역 안내원과 외국어 학원강사를 거친 독문학 석사였으나 어느 날 갑자기 귀향, 정선아리랑 연구에 몸을 던졌다.
그는 통역 일로 독일 관광객을 자주 접하면서 고향에 내려가 일하는 것을 하나의 미덕으로 삼는 독일인들로부터 감명을 받은 게 귀향의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또한 '정선아리랑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아리랑이면서 그 동안 이에 대한 연구와 자료 발굴, 정리 보급활동 등이 미흡만 것이 안타까워 연구소를 개설하게 됐다'고 밝히고 있다.
연구소는 문을 연 지 얼마 안 돼 16명의 전문연구위원을 위촉한데 이어 서울과 대전, 대구, 인천, 광주, 삼천포 등 5개 도시에 간사를 두고 2백여 명의 회원을 확보하는 등 조직을 갖췄다.
그 동안 연구소는 정선아리랑 가사 및 곡 채록은 물론, 아리랑 공연 및 경창 대회, 아리랑 시 축제, 민요 유적 기행, 정선아리랑 심포지엄 개최 등 다양한 활동을 벌여왔다.
올해 추진하기로 한 사업을 살펴보면 연구소의 활동이 얼마나 조직적이고 세밀한 계획 속에 이루어지는가를 금새 느낄 수 있다.
연구소는 올해 들어 주력 문화사업인 각 읍·면 순회 정선아리랑공연 및 경창 대회를 가졌고, 발간사업으로 8백여 곡이 수록된 「정선아리랑 가사집」과 「정선아리랑 보도 자료집 Ⅱ」를 펴내고, 연간 무크지 「정선아리랑 문화」를 창간하기로 했다. 이밖에도 오는 8월 중국연변 조선족문화연구회(회장 류연산)와의 교류 협정을 체결하고 '중국에서의 정선아리랑'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열기 위해 회원들이 중국 연변 지역을 방문하는 '아리랑 중국 기행'을 갖기로 했다.
또한 8월부터 정선 공공 도서관의 후원으로 정선아리랑 문화 강좌를 정기적으로 개최할 계획도 세워놓았다.
이외에 제3회 정선아리랑 민요 유적 기행이 경인 지역의 대학생 20여 명을 초청해 열릴 예정이고, 제2회 정선아리랑 심포지엄이 '정선아리랑제를 점검한다'는 주제로 10월초에 마련된다.
연구소는 앞으로 정선아리랑의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번역과 외국 공연도 추진, 해외에 정선아리랑을 널리 소개할 계획도 세워 놓고 있다.
정선아리랑 학교의 개교를 앞두고 진용선 소장은 '정선아리랑이 아리랑의 기원으로 평가받고 있고, 우리 것 우리 문화의 중요성이 날로 강조되고 있는 이 때에 국내 최초의 아리랑 학교를 열게 돼 더 큰 의미가 있다'며 '늘 계획했던 일보다 더 많은 일을 하게 되는 것이 향토 사랑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시인 고은은 '정선에 와서 정선아리랑에 담긴 정선 민중사의 원광(原鑛)을 만났다'고 말했다.
'정선아리랑의 청승맞고 서럽기 짝이 없는 철저한 무저항의 음조의 근원에는 바로 이 고장의 우렁찬 산세와 삶의 폐쇄성, 그리고 근세사 이래의 망명적인 생존으로 이룩한 깊은 적의와 원한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것은 실로 변할 줄 모르는 정선 민중사의 원광이다. 그래서 정선아리랑의 독특한 청승의 음색은 다른 고장의 음조로서는 낼 수 없는 것이다. 마치 계면조 창이나 육자배기가 전라도 사람의 고유한 노래인 것처럼.'(정선아리랑의 고개를 넘는다. 「한길 역사 기행Ⅰ」, 한길사, 1986.)
아직도 시골에 가면, 굳이 정선이 아니라도 정선아리랑 한 곡조를 구성지게 뽑아 내는 노인네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는 고은의 표현을 빌리면, 정선아리랑이 정선 민중사뿐만 아니라, 강원 민중사의 원광임을 말해 준다.
그러면 정선아리랑의 매력, 흡인력은 어디에 기인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 다른 민요가 그러하듯 기층 민중의 정서를 반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민요와 달리 정선아리랑의 가사는 무려 8백여 개에 달한다. 아마 그 숫자는 매년 불어날지도 모른다.
정선아리랑이 아리랑의 기원이자, 대표로 손꼽히는 근본 이유는 여기에 있다. 곡조만 알면 가사는 무한대로 창출된다. 그것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와 같다. 청승스럽기는 하되 청승을 넘어서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정선아리랑이 현대에 와서 민요에만 그치지 않고 다양한 예술 장르로 번져 나가고 있는 것이 이를 입증해 준다.
정선아리랑은 '정선아라리, 또는 그냥 아라리로 불리는 강원도의 토속 민요'로 정의된다.
출판 분야에서 정선아리랑을 다룬 저서로는 강릉대 강승학 교수의 「정선 아라리의 연구」 (집문당 1988)와 강원대 박민일 교수의 아리랑문학 연구 시리즈 「한국 아리랑 문학 연구」(강원대 출판부, 1989.), 「아리랑 자료집 I」(강원대 출판부, 1991), 「아리랑 자료집 Ⅱ」(강원대 출판부, 1992.)가 대표적으로 손꼽힌다.
「정선아라리의 연구」는 정선아리랑의 전승과 구연 양상 및 그 원리를 조사, 분석하여 서정 민요의 전승과 구연에 관한 일반적 이론의 도출을 꾀한 책이다. 정선아리랑의 개념과 전승 현황에서부터 시작, 그 기능과 가사의 생산, 전승 가사의 구연 양상 등과 정선아리랑의 장르 수행 문법, 작시(作詩) 공식, 엮음 아리랑의 문제 등을 다루고있다. 이 책은 정선아리랑이 끊임없이 생명을 얻어 나가는 비밀이 어디에 있는지를 추적한 저서로, 정선아리랑의 유전자, 염색체를 밝혀 놓은 책이라 할 수 있다.
박민일 교수의 아리랑 연구 시리즈는 '아리랑 총체론'에 해당한다. 저자는 부적, 엽서, 담배, 우표 등에 살아 숨쉬는 아리랑을 수집, 생활 깊숙이 뿌리 내린 아리랑 문화를 실증적으로 보여 주었다.
아리랑 문화의 큰 범주 속에서 정선아리랑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조감해 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저자의 표현을 빌면 '호랑이 꼬리 정도의 크기로 알았던 아리랑이 호랑이 온몸의 크기로도 모자라는, 도대체 그 크기와 넓이와 깊이를 알 수 없는 영지임을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문학 부문에서 정선아리랑를 작품화한 시인으로는 '정선아리랑' 연작을 쓴 신승근 시인을 비롯하여, 남진원, 박유석, 진용선씨 등의 정선출신 시인들과 고은, 신경림, 정공채, 박세현씨 등이 대표적으로 손꼽힌다. 이들은 정선아리랑에서 허무와 좌절의 한을 만나기도 하고, 그 어떤 유랑 의식을 만나기도 한다. 또한 버릴 수 없는 가난과 고적감의 설움을 만나기도 한다.
정선을 다녀간 시인들은 대부분 시 한 편을 놓고 간다. 그 시들 속에는 언제나 정선아리랑의 한 자락이 숨어 있다. 그것은 마치 정선 사람들이 정선아리랑을 되새김질하는 것과 같다. 정선과 정선아리랑, 정선 사람들의 삶에서 그 어떤 시적 원광을 느끼는 것이다. 다른 장르의 예술인들도 마찬가지다. 춘천의 극단 혼성은 지난 1989년 '정선아리랑'이란 작품으로 인도에서 열린 세계 아마추어 연극제에 참가, 3위에 입상했다.
화가 김정씨는 '거칠현동(居七賢洞)'을 비롯, 정선아리랑을 캔버스 속에 옮긴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고, 고정이씨 역시 '정선아리랑'를 주제로 작품을 발표했다.
무용 분야에서는 강원도 유일의 무용단인 유옥재 창작무용단이 '아라리 아라리 아리……'라는 작품으로 전국무용제에 참가, 2개 분야를 수상하는 등 호평을 받았다.
이들 외에도 많은 작품 속에서 정선아리랑이 예술적으로 승화됐다. 정선아리랑의 끈질긴 생명력과 밝은 미래를 이들 작품 속에서 쉽게 점쳐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