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 / 제주

파도처럼 출렁인 제주의 예술 혼




허영선 / 제민일보 문화부 차장

공연 예술이든 전람회든 땡볕의 한여름은 피하고 싶어진다. 때문에 여름으로 갈수록 공연장, 전시장의 발길이 뜸해 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은 견딜 만한 계절인 모양이다. 아니면 이젠 공연 예술도 성수기, 비수기를 타고 싶지 않은지 모른다. 어차피 계절은 구분 없이 뛰어넘어야 되는 게 예술이 아니겠는가.

그런 점에서 이 지역 문화 예술계도 예년 같지 않게 쏠쏠한 볼거리를 제공, 차츰 가뭄에 콩 나듯 하는 공연장의 여름 풍속은 사라지는 반가운 현상을 보여 주고 있다. 지난 6월은 무엇보다 음악회가 만발했다. 다른 행사들이 음악회 팜플렛에 가려진 감이 든다. 몇 개의 전시회를 제외하곤 단연 음악회 이야기이다.

음악

6월의 제주 음악계에는 두 개의 순수 시민단체의 연주회가 열려 화제를 모았다.

순수한 아마추어임을 표방하나 연주 기량은 프로를 지향하며 의욕적인 출범을 한 한라윈드앙상블이 창단, 그 첫 선을 보였다.

한라윈드앙상블은 관악 위주로 편성 목관, 금관, 타악기를 주축으로 이뤄졌는데, 도내에서 구입하기 어려운 악기를 거의 갖추고 있다는데 눈길을 끈다.

정규 음악대학을 나온 전공자들은 아니지만 사회에 나와서도 음악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에게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창단. 모두 41명의 단원으로 구성됐다. 지난 6월 7일 오후 8시 제주도 문예회관에서 가진 첫 연주회는 '충분히 가능성 있는 연주'라는 평가를 얻어내기도 했다.

김승택씨(전 오현고 음악 교사)의 지휘로 이날 들려 준 레퍼토리는 부산여전 교수로 있는 김동조씨(작곡가)의 곡 '농촌의 아침', '상주 모내기 노래에 의한 타령'을 특별히 준비했고, 구노의 '로마 행진곡', 브로딘의 무용 음악 '이고르 공중 폴로벤쯔인의 춤'과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랩소디 인 블루' 등 우리 귀에 익은 정통 관악곡에서부터 경음악까지 다양하게 선보여 박수를 받았다.

또 하나의 민간 연주단체의 공연으로는 1984년 창단, 도내 첫 실내악단인 제주실내악단이 열 한 번째 정기 연주회를 4년만에 올리게된 것.

창단 이후 해마다 봄·가을의 정기 연주회를 통해 '실내악 불모지' 제주에 그 선율을 들려 주었던 제주실내악단은 1989년 3월, 제10회 정기 연주회를 끝으로 오랜 침묵을 지켜 왔었다. 이 연주 단체를 이끌고 있는 사람은 정형외과 전문의이면서 첼로를 연주하고 있기도 한 고원순씨로, 사재를 털어 운영을 하고 있어 주목하게 한다.

6월 21일 오후 8시 제주도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공백을 연주 기량으로 메우며 보여 준 실내악단은 그 동안 단원 확보 문제가 가장 큰 어려움이었는데 경력 있는 단원들로 재구성했음을 보여 주었다.

이날 연주회에서는 J. 파헬벨의 '카논', J. S. 바흐의 '브란덴브르크 협주곡 3번 G장조 제1, 2악장', 모차르트의 '디베르티멘토 3번', 슈베르트의 '게르만 댄스 5와 7 트리오', 그리그의 '오스 홀베르크 조곡' 등 5곡을 선사했다.

재출범 선언을 하면서 고원순 단장은 '제주가 음악 불모지였던 환경에서 창단, 당시 도민들의 사랑을 받았음에도 오랜 공백 기간을 기록하게 돼 매우 송구스럽다'며 이제 기존의 단원에다 도내에서 활동하는 교사, 대학 강사 등으로 안정되고 경험 있는 단원들을 확보함으로써 프로 악단을 지향하는 발걸음을 내딛게 됐다'고 했다.

제주실내악단의 음악 감독은 김인규씨로 서울대 음대 및 세종대대학원을 졸업, 제주대 음악과 교수로 재직중인 바이올리니스트로 9번의 독주회를 가진 바 있다. 창단 시 부터 음악 감독 및 리더로 활동하다 독일, 프랑스 등에 유학, 화성학 및 연주학에 대한 연구를 하고 오기도 했다.

악장은 광주시향, 제주시향을 거치고 현재 제주대 음악과 강사인 추영숙씨, 바이올린 Ⅰ에 추영숙, 김인규, 김형심, 바이올린 Ⅱ에 양성은, 이보연, 부윤희, 콘트라베이스에 홍경남, 비올라에 나학진, 김보연, 조영선, 첼로에 김유정, 김홍연, 김상섭, 피아노에는 우지숙씨가 객원 출연했다.

훨씬 세련미 넘치는 연주회로 관객들의 시선을 집중시킨 제주실내악단은 오는 7월 대전, 전주에서의 연주와 9월 정기 연주회, 12월 송년 음악회 등의 계획을 앞에 놓고 있다.

광주 출신으로 제주대 음악과 강사로 출강하고 있는 젊은 첼리스트 김유정씨의 '첼로 이벤트'도 6월 제주 음악계에 잔잔한 선율을 보태주었다. 6월 10일 오후 7시 30분 동아생명 문화센터에서 열린 이날 독주회에서 김유정을 코렐리의 '첼로 소나타 d단조', 슈만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환타지 3개의 모음집', 포레의 '엘레지 작품 번호 24', 쇼스타코비치의 '첼로 소나타 d단조 작품 번호 40' 등을 들려주었다.

고전에서 낭만, 근대에 이르기까지 대중적인 첼로 곡을 선정 폭 넓은 음색을 선보인 김유정은 조선대와 동 대학원을 거쳐 오스트리아 슈베르트 콘서르바토리움에서 수학했다. 한편 이날 피아노 반주는 범영숙(광주 예음홀 대표)이 맡았다.

6월 19일부터 20일까지 제주도문예회관 대극장과 소극장에서는 제2회 제주음악콩쿠르가 열려 모두 1백여 명의 도내 학생들이 열띤 경연을 벌였다. 음협 제주도 지부가 작년부터 주최한 이 콩쿠르에는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목관 악기, 성악 부문을 망라 예선(19일)을 거쳐 본선(20일)에서 우열을 가렸다.

제주의 정서를 동요에 담아 발표한 제주교대의 제7회 창작곡 발표회도 6월 음악회에 포함된다.

6월 3일 제주교대 시청각실에서 열린 이 발표회에 제주의 시인 김영기, 장승련, 이소영, 김종두, 정창희, 이양수씨의 동시 15편에 음악 교육과 풍물패가 어우러지게 해 이채를 띠었다. 제주인의 정서를 담기 위해 실험적이며 의도적으로 제주에서만 쓰는 악기인 설쇠를 썼다. 또 선소리, 뒷소리를 넣어 부르게 하거나 동요에 엮음 형식을 도입하고 국악적인 요소를 시도, 기존 동요의 틀을 깨트린 자유로운 표현 방식을 택했던 점도 눈길을 끈 점이다.

미술

6월 21일부터 26일까지 제주 세종 미술관에서는 한국화가 김현숙과 박희규의 개인전이 동시에 열렸다.

밝고 화사한 색채로 '해바라기', '들국화', '파초' 등의 꽃을 소재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 온 김현숙씨(36세)는 이번이 첫 개인전인 셈인데 '봄날', '풍경', '봄소식', '꽃의 속삭임' , '해바라기', '봄나들이' 등 30여 점을 내놓았다.

수묵의 농담과 색채의 콘트라스트가 어우러지면서 유동적이고 변화하는 효과를 표출한 이번 작품들은 지난 10여 년 간 수묵 작업을 해온 첫 결과물들이다. 얼룩과 번짐, 흡수 효과가 특징으로 노랑, 주황색 계통의 색을 즐겨 사용해서 따뜻하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내는 현대적 기법의 작품들이 주조를 이뤘다.

김씨는 80년도 제주대 미술 교육과를 나와 성신여대 대학원 동양화과를 졸업했고, 남부현대미술제, 제주청년작가전, 문인화 정신의 표출전, 오늘의 지역작가전 등 단체전 활동을 활발하게 해 왔다. 현재 제주대 미술학과와 제주전문대 강사로 있다.

경북 출신으로 1991년부터 제주에 정착하고 있는 박희규씨(59세)는 전통적인 사군자와 제주 풍광을 선보였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영실 기암', '산방산 거암', '성산 일출봉', '정방 폭포', '한라산의 적송' 등 풍광 20여 점과 사군자 10여 점, 설악산 풍경' 화초 그림 10여 점 등 모두 40여 점이 사실적인 묘사로 표현되었다.

박씨는 지난 1979년 여섯 번째 개인전을 제주 칼 호텔에서 갖기도 했는데 이번이 열 다섯 번째 개인전이었다.

사진

제12회 대한민국사진전람회 제주 지역 전시회가 6월 15일부터 21일까지 제주도 문예회관 전시실에서 열렸다.

이번 전시회에는 대상작 홍창일의 '섭리'를 비롯하여 모두 1백 12점의 입상작이 전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