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강릉단오제의 현장
황루시 / 관동대 교수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되어 있는 강릉단오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대표적인 축제이다. 대개 음력 3월 20일 신주 빚기로 시작하여 4월 보름 대관령에 올라가 신을 모셔놓고 단오제가 끝나는 날이 5월 7일이니 장장 한달 보름 이상이 걸린다.
공간으로 말한다 해도 대관령에서 강릉 시내의 홍제동 여서낭당, 남대천 가설제당에 이르기까지 포함되어 산과 강릉시와 바다를 잇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개의 향토 축제가 자기네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고 주민들만의 행사로 그치는데 반해, 강릉단오제는 강릉뿐만 아니라 인근의 삼척, 양양, 평창, 정선, 울진 등 소위 영동 6군은 물론 전국에서 수십만이 몰려오는 행사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올해의 강릉단오제의 실제 진행과정을 살펴 우리 고유의 축제로서의 특징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진단해 보기로 한다.
신주 빚기 축제의 계절을 알리는 신호
강릉단오제는 대관령에 좌정해 계시다고 믿는 국사서낭님(國師城隍)을 모시고 영동지역의 관민이 하나되어 풍년을 기원하고 또 주민들의 안과태평을 비는 종교적 축제이다. 이외에 대관령 산신, 국사여서낭신 함께 모신다. 흔히 사람들은 단오를 전후하여 남대천에서 벌어지는 행사가 강릉단오제의 전부인 것으로 알고 있으나 정작 단오제는 그보다 훨씬 앞서 신주 빚기로 시작된다. 올해는 윤달이 들어 윤삼월 20일인 양력 5월 11일에 신주를 빚었다.
신주는 신에게 바치는 가장 중요한 제물이다. 따라서 정성스레 술을 빚는 일은 제사의 시작이 된다. 요즈음 신주는 과거 관청으로 쓰이던 건물인 칠사당에서 빚는데, 먼저 무녀가 나서서 주위에 잿물을 뿌리고 또 한지에 불을 붙여 모든 부정을 가신다.
이어 입에 큼직한 마스크를 하여 행여 부정한 것이 들어갈세라 조심하는 제관들은 쌀을 쪄서 술밥을 만들고 누룩을 섞은 뒤, 차곡차곡 독 안에 담는데 사이사이 솔잎을 넣어 향기를 더한다. 배가 볼록한 독 안에 가득 술밥이 담겨지면 창호지로 깨끗이 주둥이를 여민 다음 금줄을 둘러 다시 한번 부정을 방지한다.
술은 음력 4월 보름쯤이면 잘 익어 대관령에 계신 서낭님이 흠향하시게 된다. 신주를 빚는 행사에는 강릉시민들의 참여가 별로 없다. 직접 행사를 주관하는 강릉문화원의 직원들과 강릉시의 유지들, 카메라를 든 학자, 학생 기자들이 취재에 열을 올릴 뿐이다. 그러나 축제의 시작인 만큼 일반 시민들에게 이를 알리는 행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세속의 잡귀를 물리치는 신국사서낭 모셔오기
강릉단오제의 주신인 국사서낭님은 평소 대관령에 좌정해 계시기 때문에 굿을 하기에 앞서 서낭님을 모셔오는데 이날이 음력 4월 보름이다. 강릉지역의 옛 문헌인 「임영지(臨瀛誌)」에 의하면 서낭님 모시려 가는 행차는 아주 장관이었던 것 같다. 나팔과 태평소, 뚝, 장고를 맨 무격들이 무악을 울리는 가운데 호장, 수로, 도사령 등의 관속, 그리고 무당패들 수십 명이 말을 타고 가고 뒤에는 수백 명의 마을사람들이 제물을 진 채 대관령 고개를 걸어 올라갔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아침 9시에 시청 앞에서 버스로 출발했다. 두 대의 버스는 제사를 보러 가는 할아버지와 굿을 보러 가는 할머니로 가득 찼다. 그리고는 우리의 전통문화현장을 실제로 참가하여 학습하려는 학생들이 상당수 버스에 올라타 노인들의 마음을 흐뭇하게 했다. 강릉단오제의 현재의 주인과 미래의 주인들이 함께 버스에 있는 것이다.
대관령 정상에서 약 2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산신당과 성황사가 있다. 김유신 장군이라고 믿는 산신을 위해 산신제가 먼저 유교식으로 베풀어지는데 이곳이 명주군 땅이라 초헌관은 명주군 군수가 맡았다. 이어 행해지는 성황제에는 강릉시장이 초헌관을 맡아 관민이 함께 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강릉단오제의 주신인 국사서낭님은 실재한 강릉지역의 인물이다. 신라 말 굴산사를 창건한 범일국사라고 믿어지고 있는데 범일은 명주군 학산 출신의 고승이다. 학산에는 현재 굴산사지와 더불어 범일의 어머니가 물바가지에 뜬 해를 마시고 낳았다는 석천 우물과 아버지 없는 아이라고 버림받았으나 학의 도움으로 살아났다는 학 바위 등 전설의 장소가 남아 있어 신성성을 유지하고있다.
범일은 후에 출가하여 당나라에서 수학한 뒤 굴산사를 창건하고 고승으로 이름을 날렸는데 죽은 뒤에는 강릉과 영동지역을 수호하는 서낭신이 되어 대관령에 좌정해 계시다는 것이다. 또한 여서낭은 강릉 정씨 처녀인데 대관령 서낭님이 호랑이를 심부름꾼으로 보내어 데려다가 아내로 삼았다고 한다.
먼저 김진덕(金振宏,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 제관·도가부문 기능보유자)씨에 의하여 진행된 유교식 제사가 끝나면 무당이 들어서서 굿을 한다. 굿은 부정을 가시는 굿과 서낭신을 모시는 것으로 간단히 행한다. 지난가을 굿 부문의 인간문화재인 신석남(申石南)씨가 타계한 후 올해 처음으로 며느리인 민순애(36세)씨가 굿을 주관하였다. 현재 신석남씨의 남동생 신동해씨가 인간문화재 후보로 지정되어 있어 그 집안이 굿을 맡았다.
굿이 끝나면 어느새 점심때이다. 성황사 앞마당과 넓은 뜰에서는 신에게 바쳤던 음식을 나누어 먹는 음복이 행해진다. 신주를 한 모금이라도 얻어먹은 사람은 그해 내내 무병하고 재수 있다지만 그런 행운은 좀체 바랄 수 없고 할머니들은 떡 한 조각, 일부러 넉넉히 더 준비해 온 어물 한 조각이라도 차례가 오면 대만족이다. 초록빛 나뭇잎새 사이로 할머니들의 하얀 옷이 눈부시다.
갑자기 요란한 쇳소리가 들린다. 무배들이 징, 꽹과리를 두드리고 무녀들은 두 팔을 하늘로 뿌리면서 성황사 앞마당을 돌며 지신을 밟고있다. 한가운데 신목을 잡은 신장무가 긴장된 얼굴로 격렬한 무악 속에 서 있다. 자세히 보니 아까 까지 할머니들에게 떡을 나누어주던 상냥한 젊은이 안병현(安炳鉉)씨이다. 그러나 지금은 신을 모신다는 사명감과 긍지로 얼굴이 빛난다. 문득 꼼짝 않고 서있던 신장무가 빠르지만 서둘지 않는 걸음걸이로 성큼성큼 산신당쪽 뒷산을 올라간다. 무녀와 굿 패들이 여전히 무악을 울리며 따라가고 카메라를 멘 사람들은 행여 신이 강림하는 순간을 포착할 수 있을까 정신없이 올라간다.
따라오는 수많은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이 오직 신의 손짓에 정신을 집중한 신장무는 묵묵히 잡목 숲을 헤치며 가다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양팔을 기운껏 내뻗은 것처럼 생긴 단풍나무 앞에 선 신장무는 잠시 숨을 멈추고 나무를 노려보는 듯했다. 신장무의 시선과 신의 뜻이 하나가 된 순간 나무는 갑자기 떨리기 시작하고 그때를 놓칠세라 신장무는 움켜쥐듯 나무를 잡고 흔든다. 민순애 무녀는 제금을 치며 신이 설설이 내리시어 함께 인간세상으로 가시자고 축원한다. 옆에 섰던 제관은 톱으로 신이 깃든 나무의 밑 둥을 벤다.
신목은 바로 국사서낭님의 신체이기도 하여 신목 베기는 이날 제의의 가장 중요한 부문이다. 신장무가 신목을 모셔들고 성황사 마당으로 내려오면 사람들은 다투어 홍색, 청색의 예단을 걸며 소원청취를 빈다. 오색헝겊의 예단은 신에게 바치는 옷감이다. 이제 국사성황신위(國師城隍神位)라고 쓴 위패와 신목을 모신 일행은 신명나는 무악을 울리면서 대관령 고개를 내려오게 된다. 이른바 신의 행차인 것이다. 예전에는 이 길을 걸어서 갔다. 하지만 지금은 물론 차를 타고 간다. 무당들은 신목을 모시고 트럭을 타고 가다가 신사임당 비가 있는 곳에서 일단 내린다. 그리고는 약 3백 미터 정도 옛날처럼 걸어 내려가는 모습을 재현한다. 물론 사진작가들을 위한 배려이다.
역원이 있었다는 구산은 대관령에서 강릉 시내로 들어오는 길목의 마을이다. 옛날에는 이쯤 오면 날이 저물어 구산 사람들이 횃불을 만들어 가지고 나와 일행을 맞이했다고 한다. 요즈음은 서낭당에 들러 무녀가 굿을 헌석하고 점심을 먹는다. 그러나 마을이 준비한 비빔밥은 턱없이 부족해 무당들과 제관들, 그리고는 누구든 넉살 좋은 사람들이 얻어먹었다.
다시 굿 패들은 트럭을 타고 내려가 강릉 시내를 한바퀴 돈다. 중앙시장에서 장사하던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국사서낭당 행차에 놀라 급히 앞치마에 손을 닦은 뒤 두 손을 모으고 절한다. 국사여서낭당은 현재 홍제동 산언덕에 있다. 머리를 땋아 올린 고운 처녀 모습의 화분을 모셔 놓은 여서낭당 안에 두 분의 위패와 신목을 모셔놓고는 역시 제관들이 유교식으로 제사를 올리고 다시 무당패가 부정굿, 서낭굿을 한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단오제가 시작되는 5월 3일까지 위패와 신목은 여서낭당에 모신다. 국사서낭님이 정씨 처녀를 데려다가 혼배한 날이 바로 4월 보름이었다니 어쩌면 이때가 두 분의 정기적인 신혼여행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5월 3일 본격적인 단오제의 시작
5월 3일 저녁 6시, 여서낭당 좁은 뜰은 할머니들로 가득 찼다. 여서낭당님의 생가인 최부자집 앞에도 할머니들이 주저앉아 굿 패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가 하면 도립병원 앞마당은 서낭님 행차가 도착하면 등을 들고 국사서낭님을 따라 시가행진을 하여 남대천에 마련된 제당으로 함께 가려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이미 드넓은 남대천은 전날부터 전국 최대 규모의 난장이 들어서 축제 분위기로 술렁거린다. 수많은 천막이 쳐져있고 오색등불이 화려하다.
먼저 무당과 제관들은 여서낭당에 올라 국사서낭님과 국사여서낭님의 위패와 신목을 모셔 내온다. 이를 영신제라고 한다. 위패와 신목을 앞세우고 무악을 울리면서 당당하게 서낭님이 행차하실 때 제일 먼저 가는 곳은 여서낭님의 친정집이다. 지금은 강릉 최씨의 종손이 살고 있는 대갓집 뜰에서 무당은 잠시 굿 한마당을 한다. 올해는 윤달이 들어 이미 농사일이 다 끝난 뒤여서인지 유난히 사람들이 많았다. 넓은 마당은 수백 명이 넘는 할머니들이 벌써 전부터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고 여서낭당에서부터 따라온 사람들은 뒤늦게 굿 구경을 하려고 야단들이다.
이제 서낭님을 모신 일행은 강릉시내를 한바퀴 돌아 제당으로 가게된다. 이때에는 국회의원, 시장 등 강릉의 지역 인사들이 대거 참여함은 물론 수많은 시민들이 함께 서낭님을 따라 시가행진을 하게 된다. 올해 처음으로 각 가정 단위로 등을 사서 들고 함께 서낭님을 따라 제당으로 가는 행사가 마련되었다. 이는 과거 주민들이 횃불을 들고 서낭님의 길을 밝혀 주던 전통을 현대에 맞게 재현한 것이다. 불교청년회가 이를 주관하여 1천명이 넘는 아낙네들이 한복을 입고 아들, 딸을 앞세워 등을 들고 서낭님을 따른다. 강릉지역에만 있는 탑 놀이 관노가면극의 배우들도 춤을 추며 뒤를 따르고 그 옛날 서낭님을 환영하며 불렀다는 영산홍이 온 시가지에 울려 퍼지는 가운데 사람들은 열심히 서낭님을 따라 강릉시내를 한바퀴 도는 것이다.
꽃밭일레 꽃밭일레 사월 보름날 꽃밭일레
지화자 지화자 영산홍 영산홍 녹음 바람에 청들백들 배 걸렸네
지화자 지화자 영산홍
이 노래에서 꽃밭이란 바로 서낭님의 길을 밝혀주려고 다투어 들고 나온 횃불의 모습을 의미하는 것인데 오늘날은 등으로 바뀐 것이다. 영산홍은 강릉을 대표하는 노래였지만 지금은 거의 잊혀져 학산의 농요보존회 노인들이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
서낭님의 일행이 시내를 한바퀴 도는 것은 신성한 힘으로 세속의 잡귀를 물리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남대천에서 가장 대관령에 가까운 쪽에 제당이 마련되어 있다. 그곳에 먼저 위패를 올리고 신목을 좌정시킨다. 이어서 무당들은 하늘높이 소매 자락을 뿌리며 춤을 추며 신을 모신 기쁨을 표현한다. 그리고는 등에 붙어 있던 종이를 들고 일일이 가정마다 소지를 올려 준다. 등은 남대천 강가에 띄웠다. 수많은 등이 강을 따라 내려가며 다시 한번 꽃밭을 이루어 낸다. 첫날은 다만 신을 모셔 내오는 것뿐 더 이상의 굿은 없다. 하지만 남대천은 축제 전야 특유의 흥청거림으로 사람들을 유혹하여 모여든 사람들을 감자전과 막걸리에 취하게 만드는 것이다.
제의와 놀이의 난장 우리들의 축제의 모습
이제부터 단오제 행사는 5월 7일까지 남대천을 중심으로 계속되는데 그 내용은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유교식 제사라 무당굿으로 이어지는 종교의례이고, 두 번째는 탈놀이, 농악놀이, 민요, 그네, 씨름, 활쏘기 등의 민속놀이, 마지막으로 몰려드는 수십만의 구경꾼을 상대로 벌어지는 거대한 난장이 그것이다. 이 셋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축제마당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매일 아침 9시 반이면 제당에서는 조존제가 행해진다. 강릉시의 고위관리와 유지들이 제관이 되는 조존제는 유교식으로 행해져 공동체의 안녕을 빈다. 그러나 제사는 불과 30분이면 끝나고 이어지는 무당굿은 실질적인 종교의례의 기능을 하면서 저녁 8시까지 굿청을 메운 할머니들을 꼼짝 못하게 잡아 놓는 것이다.
강릉단오굿은 대대로 집안으로 내려오는 세습무가 의례를 진행한다. 이들은 어려서부터 무 의식을 익혀 상당한 예술적 기량을 갖고 있는데 무녀들은 굿을 하고, 양중이라고 불리는 남자들은 주로 타악기를 연주하여 굿 음악을 담당한다.
의례내용을 보면 먼저 부정굿으로 굿당의 부정을 가신 후 하회동 참굿으로 무속이 신앙하는 여러 신들을 모셔 좌정시킨다. 이어서 개별적인 신들에 대한 의례가 베풀어지는데 시준굿은 생산신을 모시는 굿으로 당금애기 신화를 부른다. 당금애기풀이는 오늘날 규중처녀와 도술 높은 스님의 사랑 이야기로도 해석될 수 있어 아주 인기가 있었다. 이어 무당이 할머니들을 위한 특별 서비스로 시집간 지 일년이 못되어 남편 잃고 시집살이 하다가 중이 되어 가는 과부타령을 부르자 할머니들이 눈물을 그렁그렁 맺힌 채 좋아한다.
성주굿은 집안의 가신을 모시는 것이고 천왕은 불교에서 말하는 신으로 보이는데 이때에는 양중들이 원님놀이를 하여 사람들을 웃긴다. 또한 양중들은 탈놀이도 하는데 처첩 갈등을 무당의 굿으로 해소하는 소박한 내용이지만 남자들이 여장을 하고 춤을 추는데서 사람들은 흥미를 느낀다.
군웅은 장수신을 모시는 굿인데 무녀가 산을 세 개 포개어 놓고 위에 커다란 놋동이를 올린 채 그것을 입으로 무는 묘기를 보여준다. 심청굿에서는 효녀 심청의 일대기를 창하는데 안질 예방이 목적이라고 한다. 이때 무녀는 창호지를 잘라 총채처럼 만든 손대를 메고 굿을 하는데 눈이 나쁘거나 아픈 사람은 손대에 돈을 단 후 그 종이조각으로 눈을 문지른다.
수명장수를 주는 칠성, 터주신인 지신을 모신 후 손님을 청하여 천연두와 홍역을 예방한다. 제면은 무당의 조상신으로 무당의 내력담을 얘기하고 이어 여러 명의 무녀들이 함께 꽃과 등을 들고 노래하며 춤추는 꽃맞이, 등노리, 뱃노래 굿들이 화려하게 펼쳐진다.
굿이 끝나는 날 저녁에 하는 대맞이 굿은 그 동안 국사서낭님이 굿을 반가이 보시고 즐기셨는지 대를 내려 알아보는 굿이다. 무녀의 축원으로 신목이 떨리면 굿을 잘 받으신 것으로 믿고 신목과 꽃, 등, 지방 등을 모두 태워 신을 돌려보내는 환우굿으로 모든 절차를 마친다.
굿판은 발 디딜 틈도 없이 빼곡하게 끼여 앉은 할머니들의 잔치이다. 어디서 모여들었는지 1천명에 가까운 할머니들이 모여 앉아 무녀의 사설 한마디, 춤 한 사위, 민요 한가락도 놓치지 않고 울고 웃는데 행여 맡아놓은 자리를 빼앗길까봐 소변 보러도 마음대로 못 간다. 신명이 나면 제자리에서 춤도 덩실덩실 추고 보리밥 한 그릇에 배를 채우며 자리를 지키는 할머니들은 그러나 단지 굿 구경에만 정신을 팔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할머니들의 가장 소중한 소임은 단옷날 굿청에 나와 집안을 대표하여 국사서낭님께 정성스레 절하고 소지 한 장을 올려 아무려나 집안이 평안하고 아이들 공부 잘하기를 비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집안의 어른이자 종교적 대표자로서 노인의 할 일이라고 믿어 해마다 단오 때면 당당하게 자식에게 차비와 용돈을 받아 단오장으로 온다.
하지만 서낭님께 올리는 소지 값은 그 동안 어렵게 모아놓은 주머니 쌈지 돈에서 나오게 마련이다. 그것이 바로 자식을 위하는 어머니의 마음인 것이다. 이러한 할머니들의 신앙심이 없었다면 단오제는 벌써 오래 전에 전승이 중단되었을 것이다. 이런 마음의 가치를 알아 이번 단오제 기간 중에는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돈을 아끼기 위해 굿당에서 새우잠을 자는 할머니들에게 이른 새벽 국밥을 대접하는 강릉의 젊은이들이 있었다.
강릉단오제의 핵심은 모든 축제가 그렇듯이 종교의례이다. 하지만 이제 굿은 거대한 단오제 행사의 일부가 되었고, 단오장에서의 각종 민속놀이가 사람들의 흥미를 끈다. 올해부터 나흘 내내 하루 세 번씩 공연된 관노가면극은 관의 노비들에 의해 행해진 우리나라 유일의 가면묵극이다.
내용은 단순하여 양반과 각시의사랑, 그 사랑을 방해하는 세력과의 갈등이지만 탈이 아주 독특하여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하지만 기능보유자 김동하(金東夏)씨 타계 후 현재는 인간문화재가 지정되어 있지 않은 것이 서운한 일이다. 결백을 주장하며 양반의 수염에 목을 매어 자살을 시도하는 각시를 보며 웃던 할아버지는 이번엔 바로 옆에서 벌어지는 신명나는 풍물놀이에 어깨를 들썩인다.
어느 장사가 황소를 탈까 씨름판에 열기가 오르고 아낙들은 오랜만에 그네 뛰는 모습을 보며 풋각시 시절의 추억을 되살려본다. 그러나 이제는 한쪽으로 물러나 몸이 완전히 휘어져 거꾸로 서는 광경을 보면서 아슬아슬 숨을 죽이는 것으로 만족할 뿐 감히 나서지를 못 하는 것이 대개의 아낙들이기도 하다.
올해 새롭게 시작된 투호놀이와 외다리 씨름도 상당히 인기가 있었다. 투호는 여자들만의 놀이인데 세 개의 입이 있는 항아리에 화살을 던져 넣는 것이다. 아주 가까운 거리인데도 그게 쉽지 않아 행여 단오 기념셔츠를 하나 타볼까 기대하던 아주머니들을 실망시키는데 두 발짝 앞에서 던지는 할머니들은 거의 예외 없이 선물을 받아들고 싱글벙글이다. 남녀 공동으로 하는 외다리씨름에서는 짧은치마를 입은 처녀들까지 가세하여 새로운 즐거움으로 등장하고 남자들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여 치열하게 싸움다운 싸움을 한다.
밤에는 연극도 하고 사물놀이도 하고 또 무속가락을 음악적으로 정리하여 들려주는 대관령 푸너리팀의 수준 높은 무속 사물놀이 공연도 있어 늘 볼거리, 놀거리가 풍성하지만 그러나 요즈음 단오장을 압도하는 것은 무엇보다 난장의 풍경일 것이다.
국밥에 감자전, 그리고 막걸리를 파는 밥집이 줄줄이 늘어서 있고 통돼지 바베큐도 인기이며 산채비빔밥도 잘 팔린다. 그러나 돈이 아까운 할머니들은 옥수수로 만든 올챙이 국수로 허기만 때우고 조금 여유가 있으면 보리밥을 사먹기도 한다. 각종 옷장수들이 옷을 흔들며 팔고 있고 각종 운동화, 각종모자, 각종 이불장사들 사이로 양 귀에 귀걸이를 단 아저씨가 반지며 팔찌를 하나 가득 좌판에 놓고 팔고 있다. 전국에서 모여든 장사들이 한몫 벌어보겠다고 벌여놓은 난장엔 국산, 외산을 가리지 않고 없는 것이 없다. 중국산 발에 베트남산 채반을 들고 이탈리아와 기술제휴 한 티셔츠를 고르는 것이 오늘날 국제화된 단오장의 모습이다.
올해는 서커스가 두 개나 들어와 코끼리가 졸고 있고 거기에 어느 절도사라면서 머리로 돌 깨고 만병통치약을 파는 약장수, 거기에 춤추는 도넛, 거기에 민요경창대회, 어디에나 벌려 있는 판에서 재주넘는 난장이들 십여 명 보는 일등은 아주 쉽다. 이번 단오에는 빙고와 같은 사행성 장사판이 없어 잘 정리된 느낌이었지만 난장의 규모는 해마다 커지고 있다. 이러한 난장은 대규모의 경제행위를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제의와 놀이와 난장, 이것이 바로 우리의 전통적인 축제의 모습이다. 기록된 바 부족국가 시대부터 주야로 남녀가 한데 어울려 음주가무 했다는 전통이 여기 살아있는 것이다. 축제는 사람들을 일상적인 삶의 구속에서 해방시켜 마음껏 자유를 맛보게 한다. 그뿐 아니라 참가자들은 집단적으로 인간의 내면세계가 확장되는 체험을 통해 공동체에 대한 긍지와 강한 소속감을 나누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축제는 우리 모두가 하나라는 동질감을 회복하고 자신이 전승하는 전통문화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하는 바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문화이다.
우리는 거의 모든 '우리문화'를 단오제를 통해 볼 수 있는데 이런 면에서 생각할 때 강릉단오제는 전통문화를 전승시키고 보급하는 중요한 통로의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강릉단오제를 통해 우리의 전통문화를 지키고 보급시켜 왔으며 주민이 자발적으로 함께 하는 축제의 체험을 통해 무엇이 우리의 것인가를 흔들림 없이 인식해 왔던 것이다.
올해도 예외 없이 하루 평균 1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남대천 단오장에 넘실거렸다. 이처럼 거대한 강릉단오제의 가장 큰 힘은 이 행사를 관이 아니라 민간이 주도해 왔다는 점이다. 시민들의 참여가 높을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라는 차원에서 각 단체들이 협동하여 행사를 치르고 있다. 또한 시에서도 협조하여 관민이 하나가 되어 합심하는 것이 소중한 전통으로 되어있다.
전통이란 과거의 것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을 이름이 아니다. 정서적인 맥을 잇되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발전적인 상태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다. 이번 강릉단오제에서는 상당한 변화와 삽입이 있었다. 그러나 그 변화는 과거에 행했던 유산들 중에서 선정하여 오늘의 상황에 맞추어 이루어낸 것들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올해 강릉에서는 '94년 한국방문의 해를 맞이하여 강릉단오제가 10대 관광코스로 지정됨에 따라 그 준비를 한 흔적이 눈에 뜨인다. 화장실의 정비, 도로를 차단하여 장사판을 벌이던 것을 막아 질서를 유지한 점, 영어와 일어 안내책자의 발행 등이 거기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좋은 관광자원은 당당한 주인의식이다. 주인의식을 갖고 자신의 것을 고집할 때 남도 관심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경건한 신앙심과 질펀한 놀이, 실속 있는 경제행위가 어우러진 한마당이 살아있는 강릉단오제는 우리 축제의 전형으로서 우리 자신에게나 남에게 자랑할 수 있는 문화유산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