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기획

춤의 국제화 혹은 확대된 춤 문화의 지평




김태원 / 무용평론가·동아대 교수

우리의 춤 문화가 해외에서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 우선 다음과 같은 간단한 에피소드를 들고 싶다.

해외 무용계에서의 낮은 인지도

이번 7월 미국의 아메리칸 댄스페스티벌(ADF) 주최 제1회 '국제무용비평가회의'에 참석했을 때이다. 무려 46개국으로부터 현대 춤과 관련된 안무가와 춤꾼들, 미국을 포함한 8개국에서 온 무용평론가들이 한곳에 모여 「워싱턴 포스트」지와 같은 신문사로부터 온 기자들 앞에서 간단한 기자회견을 했다. 이때 여러 가지 얘기들, 즉 각 나라에서 현대 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고, 그와 관련된 무용 인구나 교육제도 실제의 공연현황이 어떠하며, 각 나라의 정치적·사회적·문화적 상황은 그것을 잘 보조해 주고 있는가 등에 관한 질문과 응답이 오가던 중 일본의 한 춤꾼에 이어 한국의 춤꾼에게 잠깐 관심이 쏠리게 되면서 하나의 질문이 던져졌다.

이에 일본측 대표와 한국측-대표(창작춤꾼인 김삼진이 참석했고 그녀는 터키 대표, 코스타리카 대표와 함께 20분 정도의 실제공연의 안무를 부탁 받은 3인의 초청 받은 해외 안무가 중의 하나였다)의 대답이 충분치 못해, 나는 일본이나 한국의 현대 춤의 상황에 대해 짧은 언급으로 그들을 거들 수밖에 없었는데, 이때 나는 특히 한국의 공연현황과 교육제도에 대해 간단한 수치를 들어 보이면서 설명했다.

곧 일본의 경우는 실제 춤을 고등교육기관(대학)에서 정식으로 수용하는 곳은 '오차노미츠'라는 대학 한 곳 뿐이고, 대신 여러 개인적인 춤 스튜디오가 활성화되어 다채롭게 움직이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신, 한국의 경우는 특히 현대 춤이 1960년대 이후에 대학과 같은 공인된 교육기관 속으로 급속히 수용되면서, 현재는 30여 개 대학(전문대학 포함)이 현대 춤을 비롯한 발레, 한국 춤과 같은 것을 각 무용과에 수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현대 춤을 수용하는 고등교육기관의 수에 있어서는 미국 다음으로 가장 많을지 모른다.

덧붙여 현대 춤의 한 발상지였던 독일의 경우도 '포크방 스쿨'과 같은 유명한 춤 교육 기관이 있지만, 학위를 주는 대학과 같은 곳은 아니며, 한국과 같은 비슷한 시기에 마사 그레이엄 테크닉을 수용하였던 영국도 '라반 센터'를 위시해 7∼8개 정도의 대학 무용과가 있을 뿐인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경우는 현대 춤이 미국을 제외하고는 가장 활력 있게 공인된 교육제도로 수용된 흔치 않은 예에 속한다.

대충 이상과 같은 요지였다. 그러나 이때 참석자들로서는 나의 이러한 개략적인 설명이 잘 믿어지지 않는 듯 싶었다. 우리측의 참석자였던 김삼진의 경우도 하나의 은유를 들어 한국은 오랜 춤의 전통을 갖고 있고, 자신은 비록 30대 초반이지만 5천년 이상의 춤의 전통을 살고 있는 오늘의 (현대의) 춤꾼이라 했다.

이어 며칠 후에, 3주간의 '국제무용평론가회의'를 결산하던 날, 바로 그 전날에 페스티벌이 열리던 노스캐롤라이나의 덜함에 도착한「뉴욕타임스」의 안나 키셀고프(수석 무용평론가)와 더불어 ADF의 회장인 찰스 라인하르트, 부회장인 스테파니 라인하르트 등 여럿이 둘러 앉아 대화를 나누던 중, 참석한 각 나라의 평론가들이 자기네 나라의 춤의 현황을 설명할 기회가 있었다.

나의 차례가 오자 나는 우리의 경우 현재 매년 국내의 경우에만 전국에 걸쳐 5백∼7백 회의 크고 작은 무용공연이 열리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소수의 평론가들이 그것을 모두 리뷰하기는 힘든 형편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세계의 현대 춤, 나아가서 춤의 창작 상황을 미국 중심으로만 설명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수 있다는 견해를 첨가했다. 이때 찰스라인하르트는 며칠전의 기자회견시의 나의 언급이 생각났던지, 현대 춤이 한국에서 인상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것에 대해 대화를 덧붙였고, 안나도 그 공연 숫자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다른 무용평론가들 또한 의아해하면서도 점점 그 사실을 정식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약 2주 후, 즉 8월초에 나는 필리핀 대표로 참석했던 한 대표(바질리오)로부터 그가 '마닐라의 주말신문'에 기고한 기사 속에서 한국에서는 30개 가까운 대학에서 현대 춤이 수용되고 있으며, 1990∼1992년까지 연속적으로 3회에 걸쳐 '서울 ADF'가 개최된 사실을 그의 칼럼 맨 첫머리에 적어 넣고 있는 것을 봤다.

이 두어 가지 에피소드는 사실상 우리의 춤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는 거의 기초적인 사실에 속한다. 30개 대학이 무용과를 가지고 있고, 매해 공연이 5백∼7백 회 벌어지고 있는 것 자체가 어떤 춤 예술의 높낮이를 설명해 주는 절대적인 기준은 못된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우리의 춤 제도와 공연에 관한 '기본적인 정보' 자체도 제대로 세계의 무용인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고 '서울 ADF' 관계로 3차례 이상이나 한국을 공식 방문했던 찰스 라인하르트 같은 인물이나, 한국에 대해 계속 기사를 다루고 있는 「뉴욕타임스」나「워싱턴 포스트」지와 같은 매체의 언론인(평론가)들에게도 우리의 예술현황에 대한 개략적인 정보마저 전달되고 있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그 회의를 마치고 서울로 떠나기 전날 밤 「뉴욕타임스」의 안나키셀고프와 잠깐 대화를 나누던 중, 그녀는 나에게 한국의 맥주는 매우 맛있다고 얘기 들었는데, 그것이 사실인가라고 나에게 물었다. 그때 나는 신문을 통해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날카로운 비평문으로 유명한 안나키셀고프(사실상 그녀와 나는 우리 식으로 얘기하면 콜럼비아대 동문이지만)가 한국의 '춤'보다는 '맥주'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해 아이러니컬함을 느꼈지만, 한국의 OB나 크라운과 같은 맥주는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독특한 맛을 갖고 있다는 얘기를 나는 몇 번을 들었던 적이 있다 라고 대답해 줄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국면, 춤의 국제화

정확한 한국현대춤사(史)의 정립이 아직 이뤄지고 있지는 않지만,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로 진입하는 시기에 있어 우리의 예술 춤의 단계는 확실히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 새로운 국면은 마땅히 어떤 하나의 이름으로 딱히 규정 지울 수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것은 전(前) 시기와 다른 단계의 세계관, 활동범위, 창작행위를 요청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크게 봐서 일본인 현대무용가 이시이 바쿠를 통해 서구 현대 춤이 소개되던 1920년대 중반부터, 6·25동란을 겪게 되는 50년대 중반이나 말까지 한국 예술 춤의 단계는 그 현대적 '초기 형성기'라 할 수 있다. 이시이 바쿠를 통한 일차적인 현대 춤의 소개, 그 비슷한 시기를 전후한 발레의 소개, 최승희·조택원·배구자 그리고 한성준을 중심으로 한 우리 식의 극장 춤을 이루기 위한 노력들('신무용'으로 지칭되지만)이 그 시대에 전개되었고, 함귀봉과 문철민을 통해 교육무용과 춤 평론이란 영역이 새롭게 소개되거나 시도되기도 했다.

이후, 1960년대에서부터 1980년대 후반기까지는 '성장기'에 해당할 것이다. 특히 60년대 초에 이화여대를 중심으로 4년제 무용과의 설립, 1962년 국립무용단의 형성과 그곳을 중심으로 군무 위주의 무용극(발레와 이른바 한국무용)의 활동, 7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예술 춤 운동의 두 중추세력이 되기 시작하는 컨템포러리 무용단과 창무회의 등장, 그리고 80년대 이후 소극장 춤 운동과 춤 세대층의 증폭, 공연활동의 대폭적인 증가와 같은 것이 그런 예를 뒷받침한다고 할 수 있고, 이 시기는 또한 춤 전문지인 월간 「춤」에 의한 정례적인 월평의 시도에 의해 춤의 현장적 활동과 평론적 관찰이 서로 병행하면서 하나의 상승적 효과를 가져온 시기이기도 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그 시기는 1920∼1950년대의 우리 현대 예술 춤에 파종된 춤의 뿌리들이 그 줄기를 왕성하게 뻗기 시작했던 시기라 할 수 있고, 이것은 그 시기를 지칭한 '춤의 르네상스기'란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 전통에 대한 새로운 인식, 창조적인 내적 에너지의 충일이 있었던 시기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에 비해 1990년대로 이제 진입한 시기는 '초기 형성기', '성장기'와는 다른 단계를 맞게된다. 이것은 일종의 '확장기'라 부를 수 있는 것으로서, 예술 춤은 그간 서울 중심의 어떤 단일한 공간 내에서의 활동을 벗어나 그 활동의 폭이 확대될 수밖에 없는 단계라 할 수 있다. 여기서 그 확대의 양상은 우선 두 가지로 집약될 수 있다.

그 하나는 '탈(脫) 서울적' 춤의 활동이고, 다른 하나는 '탈(脫) 한국적' 춤의 활동이다. 전자는 1960∼1980년대의 성장기의 춤의 활동의 근원지였던 서울을 벗어난 국내의 다른 지역의 문화공간에도 전파되는 현상이고, 후자는 그와 비슷한 양상으로 국내에만 그간 응집되어 왔던 춤의 활동이 국제적인 공간으로 빈번하게 이전되어 가는 양상이라 할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그런 '탈 서울적' 그리고 '탈 한국적' 춤의 활동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울을 벗어난 부산, 대구, 광주, 전주 일원은 서서히 흥미로운 새로운 춤의 중심지가 되고 있고, 특히 부산의 춤 공연 활동은 머지않아 연 1백 회 정도의 공연(현재는 75회 내외)을 치러내게 될 것 같다. 그와 마찬가지로 특히 여름을 전후해 각 무용단의 탈 한국적 활동, 즉 국제적 활동도 만만찮은데 월간 「춤」지 8월호의 춤계 기별란과 공연안내는 그러한 일정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예컨대 8월 한 달에만도 일본의 'JADE '93' 행사에 하야로비, 서울현대무용단, 이정희·김희진이 참가해서 공연하며 일본의 다른 지역에서는 툇마루 현대 무용단과 같은 단체가 공연을 갖고, 그리고 인천시립이나 국립무용단이 캐나다와 브라질, 그리고 중국에서 각각 공연을 가지고, 중앙 디딤 무용단이 프랑스와 스페인에서의 순회공연을 가지며, 미국의 ADF에서 김삼진, 뉴욕에서 김기인의 공연, 또 서울에서 마이다위더스와 김제영의 공동공연, 이어 창무 예술원이 '부토 페스티벌'을 15일간 가진다는 것들이 보도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춤 평론가들이나 학자들인 필자를 위시한 김경애, 현희정, 김말복, 이상일 등이 ADF 주최 '제1회 국제무용평론가회의'와 'JADE 93' 학술대회에 참석한다는 뉴스도 있다. 따라서 어떻게 보면 7∼8월 근 두 달은 국내공연보다는 국외, 혹은 국제공연의 양과 활동의 무게가 더 높아진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 나로서는 이런 활동은 차후 점점 늘어갈지언정 줄어들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그와 동시에, 1994년에는 네 번째의 '서울 ADF', 이어 1995년에는 한국에서의 '아시아댄스 이벤트(KADE '95)'가 치뤄질 전망이다.

그런 춤 활동의 '공간적 확대'-특히 '탈 한국적'-는 사회 문화적으로 봤을 때 어떤 일시적인 유행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어떤 필연성을 띠고 있는 듯싶다. 그 하나는 80년대 중반 이후의 지속적인 개방화 정책에 의해 춤꾼들이 해외로 나갈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두 번째로는 서울과 국내에 축적된 춤 문화적 에너지가 어떤 형태로든 90년대에 들어서는 확산될 수밖에 없는 상태에 와 있고, 그것은 국제화 즉 탈 한국적 춤 활동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는 전화, 팩시밀리, 비행기와 같은 통신과 이동시설의 발달에 의해 소원했던 국제간의 교류자체가 거의 국내간의 교류와 같은 수준으로 변화되면서 국내와 국외간의 거리가 끊임없이, 그리고 서서히 좁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세 번째와 같은 문화적 상황은 곧잘 후기산업사회(다니엘 벨)나 후기 현대적 혹은 후기자본주의 문화의 전지구적인 확대(보들리야르와 료타르, 그리고 제임슨)와 근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국제화가 안고 있는 문제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러한 새로운 국제화로 이행하는 춤 문화적 상황은 동시에 우리에게 풀어야 할 몇 가지 과제들을 제시해 주고 있다고 본다. 그것은 세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서 지적할 수 있는데, 한국 춤 문화의 아이덴티티와 연결될 수 있는 '춤 공연과 창작의 모드(양태)'가 우리에게 마련되고 있거나 춤꾼들 사이에 충분히 인지되고 있는가 하는 것이며, 그에 따른 '이론화'와 그것을 담당할 기구와 인자의 '소통과 조직화'의 문제와 같은 것이 그것들이다. 달리 말해 우리 춤의 새로운 국면, 즉 국제화의 단계가 단순히 어떤 활동의 흐름, 경향, 또는 양태가 되지 않기 위해서, 즉 이유 있는 하나의 문화적 목표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스스로 점검해보고, 문제를 설정하며, 동시에 보충하고 풀어나가야 할 것이 있다는 뜻이다.

우선 첫 번째, 춤 창작과 공연의 모드에 있어서다.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문제점들을 가질 수 있다. 그 하나는 우리의 발레와 현대 춤의 경우 그것의 발상지였던 서구의 것과 얼마만큼 다르게, 또 그것들을 기술적인 측면에서 능가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발레의 경우는 신체조건과 기량이 우리의 춤과 서구의 춤을 비교하는 가장 중요한 그 첫 번째 가늠자일 수 있다. 그러나 반면 현대 춤의 경우 단연 독창성의 측면이 존중된다. 특히 현대 춤의 경우 '테크닉'이라 불리는 기술적인 측면은 서구의 경우나 우리의 경우나 거의 많이 근접되고 있다.

우리 춤꾼의 기량이 다소 떨어진다 하더라도, 작품이 독특한 소재와 형식, 더 나아가 주제를 가진다면 그 춤은 그것대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춤의 소재와 형식, 주제가 떨어지고 춤꾼의 기량만 뛰어난다면 테크닉의 측면에서 찬사를 받을 수는 있겠지만, 보다 완전하고 진정한 것으로 인정받기는 힘들지 모른다. 따라서 현대 춤을 비롯한 모든 창작행위에 있어 기량도 기량이겠지만 춤 소재의 독특한 발굴, 독특한 형식미와 주제의식을 더 강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런 한편, 한국 춤의 경우 우리의 전통 춤은 지나치게 이쁘게 보이고 꾸미려 하지만 않는다면, 의상 등에 있어 거추장스러움을 빼고 담백함(민속적)이나 정통성(궁중무)을 더 살린다면 그것은 최고의 춤 문화적 자산이고, 어디에 내놓아도 훌륭한 주목거리와 볼거리가 될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전통을 기반으로 새롭게 창작된 한국 창작 춤의 경우는 어떠한가 ? 국제 춤 문화적 시각에서 그것은 어떻게 보아야만 할 것이고, 어떤 미학적 경향을 우리가 그런 춤에 주어야 할 것인가 ? 이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는 특별한 해답을 갖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이것은 두 번째 이론화의 측면과 연계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두 번째는, 국제 춤 예술의 교류는 공인 받는 매체에 의한 소개 리뷰·논평과 같은 문화 정보적, 지적 활동과의 연계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 한 춤꾼, 한 공연물, 더 나아가 한 나라의 춤 문화는 그런 문화 정보적, 지성적 뒷받침에 의해 하나의 교류 가능한 가치 있는 '문화적 대상'으로 떠오르게 된다. 가령 앞서 말한 바 1970년대부터 형성되었던 한국 창작 춤의 경우 그런 춤의 유형이나 장르는 세계 춤 문화의 흐름 속에서는 그와 유사한 예를 발견하기가 흔치는 않다.

대개 '전통 춤의 현대화' 정도로 지칭되거나 불려질 뿐, 그것은 서구 춤 문화적 시각에서는 적극적인 논평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 왜냐하면 그 춤이 공동체나 개인의 고민과 같은 현대적 주제의식을 갖고 있더라도 그 주제의식 때문에 그 춤을 곧바로 '현대 춤'의 영역 속에서 논의하기에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즉 한국 창작 춤의 어법은 이 정착된 현대 춤의 어법과 매우 다를 뿐 아니라, 그 속에 내포된 상당 정도의 춤동작이나 주제의식은 동시에 전통 춤에 함유된 것과 맞닿아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가 한국 창작 춤을 우리 춤 문화의 한 역동적·긍정적 춤의 양태로 파악한다면 적절한 이론화에 의해 그것의 생성과 미학, 변모의 형태를 객관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나는 덜함의 페스티벌에서 창작춤꾼인 김삼진의 춤을 '아시아적 양태의 현대 춤(Asiatic Mode of Modern Dance)', 혹은 한국의 '새로운 창작 춤(New Creative Dance)'과 같은 용어로 불렀고, 특히 중국, 필리핀과 같은 농경 문화적 유산과 전통이 강한 데에서의 새로운 춤은 전통을 끊임없이 변화·변모시켜 가는 데에서 발전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런 점에서 그런 양식의 생성은 적어도 아시아권에서는 필연적인 셈이다. 그리고 그런 창작 춤의 발전은 이입(移入)된 현대 춤인 서구적 양태의 현대 춤과의 갈등과 경쟁의식 속에 성장하는 것이며, 그런 점에서 새롭게 현대 춤을 수용하는 제3세계나 미국, 독일과 같이 이미 역사적 시기의 현대 춤을 완성한 제1세계에서는 모두 이미 상당한 역사를 갖게 되는 한국 창작 춤의 양식에 대해 연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나의 이런 개괄적인 언급은 물론 충분한 것은 아니지만 여하튼 국제적인 예술의 교류에 있어 적절한 설명, 적절한 논리가 예술작품을 뒷받침하지 않는다면 국제교류의 '진지성'이나 '생산성'의 측면을 모두 놓칠 우려가 있는 것이고, 공연은 유행이나 낭비성의 성격을 띠게 될 수밖에 없을지 모른다. 즉 생성된 예술작품과 이론의 병존관계-이것이 국제화 속에서 하나의 영역을 차지하는 지름길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국제교류는 소통과 조직성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 현재 소통의 유일한 관건은 개인들끼리 가장 널리 통용되는 언어, 즉 영어이다. 개인들간의 대화에 있어서나, 문서에 있어서나, ADF의 클래스처럼 각국의 춤꾼들이 모여서 즉흥이나 안무법을 배울 때 어느 정도의 영어를 구사하거나 듣는 능력의 발휘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심각하게 그런 능력이 떨어지고 있음이 자주 목격되었다. 이것은 우리의 영어에 대한 언어적 능력이 모자랐기 때문이 아니라, 비교적 단일민족으로 오래 산 우리의 삶의 경험 때문이며, 실제 우리에게 언어를 새롭게 습득하고 구사할 수 있는 기회가 적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목할 만한 사실은 특히 아시아권에서 우리와 일본 정도를 빼고는 거의 모두 힘들이지 않고 대부분 영어를 수월하게 구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문화는 영어와 비슷한 어순을 갖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인도, 필리핀 등의 동남아 국가들은 영국의 지배를 받거나 영미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서, 식자들은 거의 대부분 영어를 자기의 모국어처럼 구사한다. 또 유럽권에서도 스페인, 프랑스와 러시아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 영어를 잘 이해한다.

그러나 스페인, 프랑스, 러시아와 같은 자존심이 강한 국가들도 이젠 요즘 들어 빈번한 국제교류 때문인지 영어를 해독하고 구사하는 능력이 한결 일취월장해지고 있다. 결국 그러다 보니 개인간의 소통에 있어서나 국제간의 교류에 있어 어떤 어려움을 제일 많이 겪게 되는 것이 일본과 한국이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는 부유하고, 또한 명목상이나마 개방화의 정책이 일찍 시행되어서, 그들의 소통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그들은 대외창구로서 항상 고용된 미국인을 내세운다. 많은 중요한 기관, 문화단체와 같은 곳에서는 그런 소통의 문제를 도맡아 하는 특별인력 (일본 거주 미국인 등)이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그런 특별인력이 없고, 또 우리 스스로 영어를 구사하고 익힐 기회가 없기 때문에 국제간의 교류에 있어 '정감적 소통'은 가능해도 '체계적 소통'은 약해지고야 만다. 주 일본 대사를 역임하기도 했던 라이샤워 교수(하버드대 역사학)나 일본문화의 훌륭한 해석자이기도 한 도널드 리치와 같은 논평가들은 모두 그런 인력들이다.

물론 이런 지적은 어느 날 갑자기 우리의 모든 춤꾼들이 춤 문화의 국제화를 위해 영어를 다시 배워야한다는 뜻이 아니다. 반대로, 영어에 금방 익숙지 않게 된다는 것은 우리의 자주적 문화형태가 그만큼 강하다는 긍정적인 표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국제간의 교류에 있어서는 어느 하나의 소통라인을 책임질 수 있는 특별히 훈련된 인력이 필요하고, 또한 우리 스스로 모국어를 제외한 하나의 언어 정도는 스스로 이해하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정도까지 가 닿지 않으면 진정한 차원에서 국제간의 교류는 거의 불가능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사실은 또한 국제간의 교류는 개인도 개인이지만, 어떤 조직이나 체계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는 뜻도 된다. 왜냐하면 이젠 국제간의 교류는 일시적으로만, 또 한시적으로 끝날 일은 아니고 국내의 문화공간과 대등한 확장된 삶의 공간이기 때문에, 항시 어떤 체계를 갖고 조직적으로 또, 지속적으로 수용하고 대응하여야만 할 것 같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해외의 춤 서적이나 시청각적 프로그램에 한국에 관한 춤 문화의 정보는 거의 전무하다는 사실은(연극, 문학, 영화 등도 마찬가지지만) 이때까지의 수많은 국제교류를 가져왔지만 그것이 낭비성, 일회성의 비지속성 행사에 그친 것이란 것을 얘기해 준다. 그와 동시에 그것은 적절한 이론적 뒷받침(연구와 해설)에 의해 그들로부터 진지하고 심각한 반응을 유도해 내지 못했다는 것을 뜻하며, 또 그런 것을 얻어내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 부족했다는 뜻도 된다.

생산성·효율성·진지성 필요

이제 우리 춤 문화의 국제화는 낯선 개념일 수는 없다. 그것은 이미 많은 춤꾼들과 춤 단체가 뛰어들고 있는 확장된 삶의 공간이며, 확대된 무대이다. 그들과 우리를 적절히 '차별화' 시키면서, 동시에 우리를 '객관화' 시켜 가는 그런 이중적 노력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춤 문화의 국제화의 시도는 영원히 낭비적인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과 차별되는 우리의 독특한 예술 춤의 양태를 창조해 내고, 우리가 춤을 보는 시각과 그들이 춤을 보는 시각이 서로 충돌하면서 세계의 춤 문화를 위한 새로운 가치와 방향을 새롭게 창조해낼 수 있다면 그것은 반대로 더할 나위 없이 생산적인 활동이 될 것이다. 그런 생산성, 효율성, 객관적 진지성 위에 우리의 예술 춤을 세우는 일-이것이 현재와 미래의 우리 춤 문화적인 새로운 목표라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