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무용단은 부활되어야 한다
김영태 / 시인·무용평론가
'88 올림픽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춤 문화는 피크를 이루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 무렵에 생겨난 용어가 '춤의 르네상스'였다. 지방 무대는 소극적이었지만, 서울 무대는 8월 한 달 휴가철을 빼고 연중 무휴였다. 그런 춤의 상승세가 요즈음은 부진한 상황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간에 이대 교수들, 소위 무용단 리더들의 파동을 겪었고, 작년에는 '춤의 해'를 어렵게 따냈지만 성과가 별무였고, 금년 엑스포 문화행사만 해도 '88 올림픽 때의 창의성과 열기를 찾아볼 수 없다.
「춤」지 6월호에는 '주관 없이 표류하는 요즘 춤계'라는 신진 여류평론가들의 좌담이 실려 있다. 예술학교가 출범을 했는데 음악원이 문호를 개방한 뒤, 무용원을 제치고 연극원이 이미 내정되는 등 춤은 소외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춤계의 하향세는 무용협회장선거 때의 잡음을 위시해서 우리 춤계의 위상을 스스로 저하시킨 결과라고 본다.
「춤」지 6월호 좌담에서 문애령은 뼈 있는 말을 하고 있다. 문애령의 시각은 춤계에 유행이 바뀌었다는 얘기다. 요약해 보면 춤이 전성기를 구가할 때 모든 무용가가 자기이름을 걸고 공연에 임했다는 요지다. 아무개 발레단, 아무개 한국무용단, 아무개 현대무용단이라고 명해서 공연을 해야만 교수로서의 자질을 평가받을 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무용가들이 창의성 넘치는 공연을 했고, 무용단의 이미지를 끌어올렸는데 부끄러울 수밖에 없는 이대 파동이 지난 이후, 실기와 이론이 분리되고, 교수들이 너도나도 박사 학위를 소지하게 되면서 구태여 공연을 하지 않아도 여유가 생겼다는 지적이다.
문애령의 지적은 일리가 있다. 춤계가 슬럼프에 빠진 이유는 어떻게 보면 관망하는 자세 때문인지도 모른다. 박사 학위 따기 유행이 좋은 작품 무대에 올리기를 앞지른다면 이건 좀 차제에 반성해 볼일이다.
한국현대무용단이 보여준 직업무용단의 가능성
우리나라에 직업무용단이 있느냐는 질문을 던진다면 이런 대답이 나온다. 직업무용단은 국립이건 시립이건 개인이 운영하는 단체건 엄연히 있다. 직업무용단원이 되려면 오디션을 거쳐 합격해야 하고, 나라에서 지급하든 시에서 지급하든 보수를 받는다.
국립발레단, 국립무용단 등이 그런 경우이다. 서울에는 시립무용단이 있고, 지방에도 큰 도시마다 시립무용단이 있다. 부산·대구·목포·대전 등의 시립무용단이 이에 속한다. 유니버설 발레단은 재단에 의해 보수가 지급된다.
춤 관객들이 직업무용단에 거는 기대에 얼마만큼 만족을 주었느냐는 것은 공연 횟수나 공연의 질을 종합할 때 아직은 미지수인 것 같다. 평론가 박용구는 우리나라 직업무용단에 대해 그들의 안일한 보신주의를 비판했었다. 그러나 1984년에 출범한 유니버설 발레단은 직업무용단으로서의 사명감을 실천한 단체라고 나는 보고 싶다. 나라의 보조 없이 이만큼 알차게 발레단의 위상을 굳히기도 쉽지 않다.
'88 올림픽 문화축전 때 국립발레단은 〈춘향(임성남 안무)〉을, 유니버설 발레단은 〈심청(애드리안 델라스 안무)〉을 들고 나왔었다. 두 직업 발레단의 무용수들 기량을 대비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보기에 두 직업 발레단의 스타, 솔로이스트, 군무진까지 그들의 개성은 막상막하다. 그러나 의상이나 무대미술에서 유니버설 발레단이 국립발레단을 능가했던 것은 국립발레단의 한정된 예산을 감안하더라도 같은 직업 발레단으로서 차이점을 드러냈다.
우리나라에는 국립에 속해 있는 발레단·무용단(한국 춤)은 있지만 현대무용단은 없다. 서울이나 지방의 시립무용단 중에서 대구시립무용단(대표 구본숙)만이 유일한 현대무용단이다.
1985년에 민간 단체로 한국현대무용단이 직업 발레단으로 창단 공연을 가졌었다. 한국현대무용단은 육완순을 정점으로 박명숙 등 육완순 제자들인 기존 무용단 에이스들의 총집합체였다. 한국현대무용단에 선발된 단원들에게는 직업무용단으로서 매월 보수가 지급되지 않는 반면, 공연이 끝나면 개런티가 지불된 것으로 알고 있다. 개인이 직업무용단을 운영하려면 스폰서가 필요하다. 든든한 스폰서가 있어야 공연 기획을 세우고, 단원들의 후생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공연 기획만이 아니다. 직업무용단으로서 사무실이 필요하고, 인건비가 지출되어야 하며 공연 제작비가 마련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유수한 대기업들이 많지만 문화발전에 기여하는 재벌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한동안 럭키그룹이 지원을 했던 적이 있다. 럭키창작무용단(대표 김현자)은 그래서 태동했지만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성대한 창단 공연을 가진 이후 3년도 못 되어 해체되었다.
한국현대무용단은 그런 면에서 무용계의 기대를 걸 만했다. 1985년 6월 5일 창단 공연(호암 아트 홀) 레퍼토리는 〈에덴의 인간(김영태 대본·박명숙 안무)〉, 〈개나리 마을〉 등이었다. 박명숙 무용단의 안정준·이순표·최성옥·문정원·김현수·장애숙·홍승엽·김선영·조성희·박해준, 컨템포러리 무용단의 안신희·김희진·안은미·방희선·이윤경·안애순·최병주·변옥연·윤미정·배혜령, 최청자 무용단의 최병희·박미라·오병애·이운주·방미영·최성숙, 동랑 레퍼토리 무용단의 정운식·진영희·김선이 그리고 대구 계명대 출신의 최두혁, 이정희 무용단의 김제영, 강송원까지 한국현대무용단원의 면모는 화려했다. 스폰서가 나타나 뒤에서 밀어주었다면 한국현대무용단의 위치는 달라졌을 것이다.
무용계의 자기반성과 가진 자의 투자 시급
오디션에 의해 직업무용단원이 되는 것은 무용가들의 소망이긴 하지만 그러나 국·시립이나 유니버설 발레단 같이 보수가 지급되지 않으면 단원들은 떠나는 게 인지상정이다.
요즘 해외 단신을 보면 ABT(아메리카 발레 시어터)나 NCB(뉴욕 시티 발레단) 같은 전통 있는 직업 발레단도 자금 압박에 의해 레퍼토리를 축소하고 단원들의 이직을 초래하고 있는 실정이다. 바리쉬니코프가 예술감독직을 사퇴한 후 ABT는 수면으로 하향하고 있으며, 1983년 바리쉬니코프나 사망한 후 NCB도 그 전의 명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제도적 문화권에서 성장한 두 외국 단체가 이러할 때 우리나라 직업무용단의 내일은 더 암담하다.
춤은 1960년대 말부터 붐을 일으켜서 30년이 지난 오늘 어느 예술장르보다 뿌리를 내리고 신장했다. 86 아시안게임, 88 올림픽 식전과 피날레 행사는 춤의 대향연이었다. 그런데 1990년에 들어 춤은 순항을 계속하는 대신 삐거덕거리고 있다. 무용가들이 자성해 볼 문제이다.
그간에 직업무용단은 국·시립의 단장이 바뀌었고, 유니버설 발레단도 로이 토비아스의 부임으로 혁신되고 있으나, 현대무용진흥회가 생겼을 뿐 직업현대무용단의 부활은 아직도 요원한 상태다. 실명제가 선포된 지금 우리가 문화선진국이 되려면 가진 자가 문화를 위해 사회에 환원하는 어떤 결단이 시급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