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추리소설의 어제와 오늘
함유선 / 한남대 강사
이제 추리소설은 계절에 관계없이 읽히는 소설이 되었다. 곧, 여름의 더위를 잊기 위한 납량물에 머무르지 않고, 다른 소설들과 함께 사철에 걸쳐 베스트셀러의 상위권을 지키면서 문학의 한 장르로서 그 위치를 굳건히 하게 된 것이다. 이는 추리소설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지고 있는 데다 그 독특한 소설적 재미에 사로잡힌 독자층이 폭넓게 확산된 까닭이다.
그렇기는 해도, 여름철이면 추리 소설에 집중되는 폭발적인 인기가 서점가를 뜨겁게 만드는 것은 여전한 추세다. 이러한 독자들의 관심과 열기를 반영하기라도 하듯이, 몇 해 전부터 여름마다 '여름추리 소설학교'가 문을 열어 추리소설에 대한 강의와 추리백일장, 추리퀴즈, 과학수사의 실례 등의 프로그램으로 사람들을 끌고 있다.
우리나라에서의 추리문학의 역사는 그다지 길지 않다. 일찍이 김래성이 있었고 60년대의 현재훈이 있었지만 그밖에는 이렇다 할 활동이 없었다. 그러다가 70년대에 김성종이 「최후의 증인」으로 비로소 독자를 획득하는 공헌을 세우면서부터 본격적인 추리문학의 역사는 열리게 되었다. 김성종은 「여명의 눈동자」,「제5열」 등의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을 정력적으로 발표하여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해 나갔다. 그와 함께 노원, 이상우, 박민규, 문윤성 같은 작가들이 잇따라 장·단편의 작품들을 발표함으로써 추리문학은 서서히 본 궤도에 오르기 시작하였고, 특히 80년대 이후로 손영목, 이원두, 정건섭, 정형, 한대희, 정현웅 등의 신인들이 대거 진출한 뒤부터 우리나라 추리문학은 한층 더 활기를 띠고 있다.
이즈음에 부쩍 추리소설이 인기를 끄는 이러한 현상은 프랑스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나라와 달리 프랑스 추리소설의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다. 추리문학이 오랜 역사와 더불어 대중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영미의 번역물이 인기를 끌어왔다든지 또 정통 문학과는 다른, 이른바 순수문학의 아류쯤으로 취급되어 오기는 프랑스도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에 추리소설이 그 주제와 기법이 매우 다양해지고 따라서 점차 독자층이 넓고 깊어지면서, 프랑스의 추리문학은 새로운 변화를 보이고 있다.
포우로부터 비롯된 뿌리 깊은 프랑스 추리소설의 전통
추리소설을 이해하려면 먼저 에드가 알렌 포우를 알아야 한다. 에드가 알렌 포우는 이른바 현대적인 의미에서 추리소설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쓴 작가이다. 1814년에 그는 추리소설의 효시가 된 「모르그 가의 살인」을 필라델피아에서 발행되는 잡지에 발표하고, 이어서 「황금 풍뎅이」,「도둑맞은 편지」 등을 발표하였다.
포우는 추리소설뿐만 아니라 시와 시론으로도 문학사에서 중요한 작가이다. 그러나 포우는 때를 만나지 못한 불행한 시인이었다. 살아서는 자신의 나라에서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가 정작 이름을 떨친 곳은 그의 나라 미국이 아니라 프랑스였다. 그것은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인 보들레르가 포우의 작품에 매료되어 그에게서 커다란 영향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직접 포우의 작품을 유럽에 본격적으로 소개하고 또 생애에 대한 평전을 발표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포우는 자신의 창작철학에서, '추리소설의 구성은 어떤 우연이나 직관에 의해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그 구성 과정은 수학문제를 풀 때와 같이 정밀하고 정확한 추리로 이루어져야 한다'라고 강조하였다.
이 위대한 천재 시인이자 소설가요, 평론가인 에드가 알렌 포우의 영향력으로 추리소설은 프랑스에서 일찌감치 자리를 잡게 되었다. 사실주의 소설의 대가 오노레 드 발자크는 그의 작품 「고리오 영감」에서 범죄자와 유사한 한 인물을 창조하여 소설의 재미를 더 하였고,에밀 가브리오는 1866년에 본격적인 추리소설이라 할 수 있는 「루루주 사건」을 발표하였다. 「루루주 사건」은, 작가 자신은 몰랐지만 세계 최초의 장편 미스터리 소설이었고, 이 소설로부터 '탐정소설'이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 뒤를 이어서, 모리스 르블랑이라는 작가가 1906년에 「괴도 신사 아르샌 루팡」을 발표하여, 코난 도일의 명탐정 셜록 홈즈에 버금가는 매력적인 멋장이 도둑 아르샌 루팡을 탄생시켰다. 명탐정 홈즈가 범죄의 수수께끼를 정의의 편에 서서 명석한 논리로 풀어내는 인물이라면, 루팡은 거꾸로 탐정의 추적을 받는 도둑이다. 루팡은 지능과 사악함, 부도덕과 관대함 등이 기묘하게 뒤섞여 있는 괴도이며 동시에 신사이다. 그러니까 르블랑이 이 작품을 통하여 이룬 공적은, 한결같이 정의의 편에 서 있는 명탐정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다른 추리물과 달리, 도덕성을 겸한 도둑, 이를테면 악과 선이 교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새로운 유형의 인물을 창조해낸 데에 있는 것이다.
르블랑이 성공한 것은 사회의 적이 되어야 할 도둑에게 오히려 의협적인 성격을 부여하고 나아가서는 그를 다시 명탐정으로 활약하게 한 기발한 착상 덕분이었다. 절대로 잡히지 않는 괴도 루팡. 큰 부자나 권력자의 집 이외에는 침범하지 않는 이상한 도둑. 무엇으로든지 변장할 수 있는 신출귀몰한 사나이. 이런 루팡의 도둑 행위는 그의 도락이자 취미이며 그 나름대로의 예술이었다. 도둑이면서 신사인, 1인 2역의 두 얼굴을 가진 사나이 루팡은 이를테면 인간의 내면에 깃들어 있는, 선과 악의 양면적 성격을 암시하기도 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로 반 다인, 엘러리 퀸, 크로프츠, 아가사 크리스티 같은 영미 작가의 탐정소설이 소개되면서, 프랑스에서는 추리소설이 더욱 폭넓은 인기를 모으게 되었다. 특히 1927년에 샹젤리제 출판사가 '마스크 총서'라는 탐정소설 시리즈를 발간하면서 그런 현상은 더욱 부추겨졌다. 그 첫 번째 작품인 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의 살인사건」이 그 기발한 트릭으로 프랑스 독자들에게 안겨준 충격은 대단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간행되고 있는 이 마스크 총서는 아직도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샹젤리제 출판사는 또 같은 해에 모험소설 대상을 창설하여 해마다 그 수상작을 내고 있는데, 그를 통하여 피에르 보아르, 도마 날스작, 앙드레 스테만 같은 작가들이 배출되었다. 그 가운데에 슈퍼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된, 벨기에 출신의 조르주 심농이 있다. 심농은 추리소설 외에도 수많은 감동적인 문학작품을 쓴 작가인데, 앙드레 지드는 그를 '우리 시대의 발자크'라고 불렀다.
심농은 '메그레 경감'이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추리소설 시리즈를 발표하여 그때마다 엄청난 화제를 불러모았다. 곰방대와 중절모가 트레이드마크인 메그레 경감은 범인을 추적하는 심리학적인 치밀함, 그리고 범인에 대한 특유의 연민을 지닌 인물로서, 20세기의 작중 인물 가운데서 가장 널리 알려지고 사랑을 받은 캐릭터다.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하여 활동한, 심농을 비롯한 그 시절의 프랑스 추리소설 작가들은 범죄의 수사보다는 분위기 묘사에 치중하고, 아울러 등장인물의 상호 인간적인 관계 또는 희생자와 범인과의 심리적인 관계를 탐정의 수사 행동보다 중요하게 다루었다는 점에서, 앞서의 작가들이나 그 뒤의 하드보일드 계통의 작가들과 차별적으로 비교된다고 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뒤에는 미국과 영국의 하드보일드 작품들이 들어와 프랑스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그와 함께 프랑스 최대의 문예 출판사인 갈리마르에서는, 순수문학과 궤를 달리하여, 탐정소설을 중심으로 한 '세리 느와르(Serie Noire)' 시리즈를 1952년부터 내기 시작하였다. 영국 작가 피터 체이니의 작품으로 시작한 이 시리즈는 오늘에 이르도록 활발한 출판으로 프랑스 추리문학의 버팀목이 되고 있는데, 주로 영미의 탐정소설을 출간하여 프랑스 독자들에게 선보였다. 이렇게 영미의 추리소설이 대중의 인기를 독차지하는 동안에, 프랑스의 국내 추리소설은 주로 순수문학 작가의 외도쯤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한 예로, 「슬픔이여 안녕」으로 잘 알려진 프랑스와즈 사강이 미스터리 물에 해당하는 작품들을 간간이 발표하곤 하였다.
추리 소설계의 신세대 '68 학생혁명 그룹
그런데 요즘에 프랑스 출판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영미의 추리소설에 익숙해 있던 전 세대와는 달리, 이제 출판인들이 스스로 자국의 추리소설 작가를 발굴하는 데에 과감히 나선 것이다. 그러면서 이른바 추리소설의 '신세대'가 등단하게 되었다.
1992년 1월에 세리 느와르의 새로운 편집장이 된 패트릭 레이날(그 자신이 미국문학 전공자이다)은, 수많은 국내의 추리소설 작가 지망생들이 보내온 원고 더미 속에서 새로운 작가들을 발견하기로 하고 일일이 그 원고들을 검토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드디어 로랑페터, 파스칼 퐁트노, 피에르 레옹, 조제 루이 보케, 에바 다비드, 다니엘 피쿨리, 에르베 르 코르 같은 작가들을 세상에 내놓았다. 챈들러 소설의 수수께끼보다 더욱 복잡한 미로의 끝에서, 그 지하 동굴 속에서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수많은 추리소설 원고들이 차례 차례로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된 것이다. 이에 발맞추어 쇠이유, 리바주 같은 출판사들은 국내 작가를 발굴하는 쪽으로 방향을 수정하고 나섰다. 마침내 프랑스 추리소설은 바야흐로 새로운 시기를 맞이한 것이다. 프랑스의 국내 추리소설은 곧 독자들의 커다란 호응을 받게 되었고, 이러한 반응은 프랑스 추리문학계에 이전에 없던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독자들이 추리소설을 즐겨 찾고 또 이렇게 추리소설이 새롭게 각광을 받는 것은,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시대와 정치 상황이 독자들의 요구를 자극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사실 어찌 보면, 날로 급변하고 황폐해지는 현실에서의 삶 자체를 영위한다는 것이 곧 미스터리일지도 모르겠다. 오늘날과 같은 세상에서는 우리의 일상 자체가 미스터리와 다를 바 없으며, 쫓고 쫓기는 추리소설의 한 단편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날마다 신문을 대하면서 우리 자신의 모험에 가득 찬 삶, 그 자체를 읽고 있는 것이다.
어쨌거나, 프랑스에서 최근에 갑자기 추리소설의 붐이 일게 된 것은 우연한 현상은 아니다. 이러한 움직임이 있기까지에는 그 밑거름으로서 이미 얼마 전부터 몇몇의 추리소설광들에 의한 열성적인 출판 활동이 있어 왔던 것이다. 70년대 말에, 아직 프랑스 추리소설 작가들에게 문호가 폭넓게 개방되어있지 않던 그때에, 패트릭 모스코니, 알렉스 바루 같은 추리소설광들이 출판업에 뛰어들어 추리소설만을 전문으로 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기존 사회질서에 반항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파격적인 내용의 탐정소설을 선사하자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었다. 그런 일군의 출판사들은 결국은 부채만 잔뜩 지고 문을 닫고 말았지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신인작가들을 발굴하였고(이를테면 갈리마르 출판사의 세리 느와르 시리즈 편집장인 패트릭 레이날도 그때에 나온 작가의 한 사람이다) 그런 그들의 공로로 오늘날 프랑스에서 신세대 작가들이 대거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이들 추리문학의 신세대 작가들은 대부분이 1968년 학생혁명의 주역들이었다. 넓게는 사회주의 노선을 지지하던 그들은 서로 모택동주의, 트로츠키 사상, 무정부주의, 공산주의 등으로 서로 다른 정치적 견해를 지니기는 했지만, 이른바 '암흑소설'이라고 불리는 추리문학의 영역에서는 서로 일치하고 있음을 확인한 셈이다. 곧, 한때 프랑스의 정치를 위하여 서로 싸우던 그들이었지만, 이제 기성의 출판계와 맞서서 프랑스 암흑문학을 위하여 함께 손을 잡은 것이다.
이 신세대의 작가들은 확실히 이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신랄하다. 수도 파리를 굳이 거부하고 대체로 지방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들 젊은 작가들은, 세계라는 무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과 마주하고서 추리소설에서 그들의 욕구불만을 해소시켜 줄 어떤 물줄기를 찾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그의 첫 소설 「붉은 사이렌」이 곧 갈리마르에서 나올 예정인 모리스 당텍 같은 경우는, 원래 고등학교 교사였지만 '유고슬라비아 내전의 비극을 목격하고서 자신의 상아탑에서만 머물러 있을 수 없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한편, 이들 가운데에는 여성작가들의 활약도 두드러진다. 여성들도 사회의 붕괴 앞에서 그들의 분노를 외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세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올해 30세의 파스칼 퐁트노는 이렇게 말한다. '어디를 가나 모든 상황이 안 좋다는 말뿐이고, 텔레비전도 또한 온통 우울한 이야기뿐입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채, 썩어 가는 이 모든 것들을 그저 비판만 하면서 부엌에서만 있을 수는 없었지요.' 지금 이 불행한 세계와 맞서기 위해서 필요한 무기는 웃음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글을 쓸 수밖에 없다고.
지금 프랑스 추리문학은 새로운 작가들에 의한 새로운 움직임을 맞이하고 있다. 그 새로운 움직임이란 바로 그들 추리소설이 비로소 '우리시대의 심각한 현실'을 재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의 소설에는 더 이상 루팡이나 홈즈 같은 초인적인 천재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적이고 범용한 탐정이 있을 뿐이다. 선택된 특정한 계층의 이야기가 아니라, 힘없고 돈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며 때로는 테러리스트나 살인하는 경찰이 등장하기도 한다 곧, 우리 자신의 문제에 시선을 돌려서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신세대 추리소설은 독자들의 큰 공감을 얻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나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소설 속의 주인공은 바로 나 자신인 것이다. 알렉스 바루의 말대로, '폭력의 형태도 변했고 추리소설 또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