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유통 구조 개선을 위한 출판계의 변화들
최태원 / 출판저널 기자
전국민 독서실태 조사
한국출판연구소(이사장 김경희)가 매년 '전국민 독서실태조사'를 실시키로 사업계획을 확정하고 그 첫 작업을 최근 착수했다.
이 사업은 '그 동안의 독서실태조사가 조사대상을 망라하지 못한 결점을 지님은 물론 수치나 동향분석에만 급급해 독서지표로 활용할 만한 자료가 되지 못했다'는 판단에서 실시되는 것으로, 중앙대 이정춘 교수를 비롯한 6명의 연구진이 항목을 구성해 진행하게 되는데, 조사대상이나 규모, 질의 항목 등에서 이전과 다른 충실함이 돋보여 정책입안 자료로서 제대로 기능 할 만한 자료가 나올 것이란 기대를 낳고 있다.
총 6천 5백여 만 원의 경비가 소요될 이번 독서실태조사는 연구소 측이 여론조사 전문사인 리서치 앤드 리서치사에 용역을 맡겨, 서울 등 모두 7개 지역에 거주하는 18세 이상 69세 이하의 일반인 2천명과 전국의 초·중·고교생 1천 6백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다. 조사내용을 살펴보면 여가활동의 수단 및 매체접촉 빈도, 독서정보, 루트, 독서경향, 도서구입 방법, 서점과 도서관 이용 정도 등 50개 항목으로 짜여져 있다. 이 조사결과가 발표되면 출판정책 입안뿐만 아니라 출판기획과 도서유통 그리고 서점운영 등 출판과 연관된 여러 분야에서 신뢰성 높은 자료로 활용이 가능하게 된다.
이에 대해 연구소 측은, '올해의 조사결과는 오는 10월 28일에 발표될 예정이며, 그 자료는 출판관련 정부기관과 도서관·학교 등에 배포할 계획'이라고 밝힌다. 이번 독서실태조사가 각별한 관심을 끌고 있는 이유는, 놀랍게도 그간 정부차원의 국민 독서표본 조사가 단 한번도 실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 점에서 만족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출판연구소의 이 사업은, 책의 해를 맞아 전시효과만을 목적으로 한 행사만 무성하다는 비난을 삭이는 데는 한몫을 할 것이라는 평가가 가능하다. 책을 읽지 않는다는 말만했지, 정작 얼마나 읽고 있는지, 안 읽는다면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를 살펴보지 않았던 이제까지의 안일함을 반성하는 의미에서도 결코 만만치 않은 예산이 소요되는 이 사업이 '꾸준히' 그리고 점차 발전된 규모와 방식으로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지방 도서전시회의 부활
또 한가지 반가운 소식이 있다. 지난 5월 성대하게 치러진 '93 서울도서전에 이어 '지방도서전'이 8월 27일부터 10월 31일까지 5대 도시에서 개최된다고 한다. 3백여 출판사가 참가하고 그 지역의 서점들도 지역별 특성을 고려한 특별전을 기획해 전시할 이번 지방도서전은 청주(8월 27일∼31일, 청주종합운동장 실내체육관), 대전(9월 3일∼7일, 대림빌딩), 전주(9월 10일∼14일, 전주실내체육관), 대구(10월 20일∼24일, 대구실내체육관), 부산(10월 27일∼31일, 사직종합운동장 실내체육관)의 순으로 열린다.
전국 5대 도시를 순회하며 치러지는 지방도서전은 지난 1981년까지 열려 오다가 중단됐던 행사로 부활의 의미를 지님과 동시에, 문화의 중앙집중화 현상에 의해 상대적인 문화적 박탈감을 지니고 있던 지방독자들의 갈증을 해소시켜 줄 만한 행사가 되기에 충분하다. 다만 이 지방도서전 역시 독서실태조사와 마찬가지로 중단 없이 지속돼야만 지금의 반가움을 희석시키지 않을 것이다.
재고도서 판매가 안고 있는 문제들
서점업계의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도서할인판매가 점차 확산되고 있어 올 책의 해의 새로운 변화 중 하나로 부상되고 있다. 책은 소비자 권장가 등의 표시 없이 무조건 출판사가 책정한 정가대로 판매한다는 것이 그간 출판계의 원칙이었다. 책이 정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판매되는 일은 노점상과 몇몇 덤핑 서점에서만 있어 왔던 일이었다. 그러나 최근 일반서점에서 책을 할인가격에 독자에게 판매하는 일이 심심찮게 눈에 띄기 시작했다.
서울의 대형서점은 물론 지방서점들도 본격적인 시도를 '감행'하고 있는 이 도서할인판매에는 아동·문학·사회과학 서적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데, 대부분 신간 가격의 30%∼40%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구입이 가능한 재고도서들로, 청소년층을 비롯한 고객들의 반응이 긍정적이어서 아예 상설매장을 마련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는 형편이다.
독자들의 반응도 반응이지만 사실 할인판매는 출판사로의 반품이 불가능해 서점에 적체된 도서나 출판사의 창고에 쌓여 있는 재고도서를 처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서점과 출판사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대형유통기구가 없는 출판계의 고민거리인 재고도서 문제는 창고유지에 필요한 경상비 지출을 비롯해 출판사에게는 이러 지도 저러 지도 못하는 '애물단지'로 불려 왔고, 따라서 이 같은 재고할인판매라도 필요하다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할인판매 되는 도서에서 '재고도서가 아닌 책들이 발견되고 있어 건전한 유통구조를 해치는 결과를 유도한다'는 부정적인 견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한편 한 출판인의 말처럼 '만약 할인매장이 증가하면, 재고를 생산하는 업자들이 생길 우려도 있다'는 지적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따라서 책의 할인판매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방법에 의해 그 시행여부를 결정하고 잡음을 제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사전작업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참고적으로 말하면 외국의 경우, 구간과 신간을 구별해 한 서점 내에서도 가격의 차이를 두고 책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루에 약 44만 권의 신간이 쏟아지는 우리의 경우, 거의 모든 서점들이 신간만을 위주고 진열을 하고 있는 탓에 2일∼3일이 지나면 이미 그 책은 구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일 뿐더러 한정된 서점의 공간에 자사의 책을 진열하기 위한 과도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 같은 폐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서점의 분야별 전문화와 함께 책의 연령에 따라 취급품목을 결정하는 전문서점들이 꼭 필요하다. 다시 말해 출판된 지 한 두 달 정도가 지난 책만을 판매대상으로 삼는 전문화된 서점이 신간보다는 오히려 구간에 관심을 쏟고 있는 분명 존재하는 독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지역 베스트셀러 집계 실시
우리는 '베스트셀러라고 다 좋은 책은 아니다'라는 말을 자주 인용한다. 즉 단순한 판매집계가 그 책의 질을 평가하는 척도가 될 수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또 팔렸다고 무조건 읽혔다고 볼 수도 없다. 한 예로 몇 년 전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가 베스트셀러가 되었지만, 그 책만큼 안 읽힌 책도 없다고 외신은 전한다.
그렇다고 베스트셀러에 대한 평가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베스트셀러는 분명 나름대로 당시의 독서경향을 판독하는 데 유용한 기준이 됨은 물론 출판기획의 잣대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베스트셀러는 그 집계의 신빙성 여부부터 의심받는 지경에 이르러 있다. 전국적인 판매실적을 집계하는 곳이 없을 뿐만 아니라 기껏해야 대형서점 몇 군데의 통계를 모으는 정도가 고작이다.
때문에 베스트셀러 집계의 공정성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출판사가 대형서점에서 자사의 책을 눈치껏 무더기로 구입해 베스트셀러를 '조작'하는 일도 벌어진다고 한다. 언론이 몇몇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 통계를 보도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는 얘기다. 독자의 관심과 평가에 의해 베스트셀러가 탄생되는 것이 아니라 값싼 상술에 의해 베스트셀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물론 이 같은 예는 극히 일부의 일이긴 하다. 대다수의 베스트셀러는 정상적인 독자들의 반응에 의해 결정된다.
다만 현재의 베스트셀러 집계와 보도는 분명 지양해야 할 소지가 많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부산·광주·대구 등 서울을 제외한 지방 대형서점들의 모임인 인서회(회장 김윤환)가 서울과 별도로 '지역 베스트셀러 집계'를 실시하기 시작한 것은 바람직한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서울출판컨설팅이 실무를 맡아 7월 마지막 주부터 매주 집계 발표하고 있는 인서회의 베스트셀러 목록은, 서울의 베스트셀러를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지방의 독서현상을 일정 부분 수정하는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또 그 방법이 연합집계란 점에서 공정성에서 신뢰도를 담보한다는 점도 그 기대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새롭게 선보인 출판형태, '스크린 북'
가까운 장래에 책은 과연 어떤 형태로 독자들의 손에 쥐어질까, 이미 전자 출판물의 출현으로 책은 비종이 책과 종이 책으로 구분해야 될 정도가 되었고 최근에는 아예 책의 내용만을 전달하는 시스템이 개발돼 조만간 시행될 것이라고 한다.
가칭 '스크린 북'이라 불리는 이 시스템은 책의 원고파일이나 전산조판용 데이터를 프로그램용 데이터로 변환해 컴퓨터 통신망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을 말한다. 즉, 독자인 사용자는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로 도서정보를 입수해 그 가운데 자신이 읽을 만한 것을 선택하고 그 책의 내용을 일정대금을 지불하고 구입하게 된다는 얘기다.
서점 구입에 필요한 시간적 경제적 손실을 줄이는 편리함을 목적으로 하는 스크린 북 시스템은 무엇보다 동일한 내용의 책을 종이 책 가격의 절반 정도면 살 수 있다는 장점을 갖는다.
혜택은 독자만이 받지 않는다. 출판사도 제작비와 기타 간접비, 그리고 서점 마진을 줄일 수 있고, 저자의 입장에서도 서점 이외의 유통망을 통해 독자를 확보한다는 점에서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이 시스템을 실용화하기 위해서는 저작권 문제, 복제방지 등의 과제도 남아 있다. 또 서점과의 마찰을 줄일 방안도 검토되어야 한다. 운용면에서는 스크린 북 시스템에 알맞은 장르를 개발하는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스크린 북만 봐도 책은 어제의 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