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축제의 가능성
오세영 / 서울대 교수
문학의 축제도 가능한가 하는 의구심은 매우 일반화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여러 유형의 축제에 있어서 문학은 거의 배제되어 있다. 가령, 우리의 경우에도 대한민국 무용제·음악제·연극제·미술 전람회·민속제 등은 있으나 대한민국 문학제라는 것은 있는 것 같지가 않다.
그것뿐만 아니다. 매년 정기적으로 행해지는 여러 형태의 예술제나 문화 행사에서도 문학부문은 대체로 생략되거나 설령 포함된다하더라도 잔칫상의 양념 정도의 역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실정이다.
문학이 이처럼 축제로부터 거리가 먼 장르로 인식된 것은 물론 문인들 자신이 축제에 대해 갖는 냉담한 태도와 축제 관리자들의 문학에 대한 무관심에서 오는 것도 적지는 않겠지만, 그 보다는 본질적으로 문학이 갖는 예술적 속성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것은 문학이 넓은 의미에서 예술에 포함된다 하더라도 좁은 의미에서는 무용이나 음악과 같은 유형의 예술은 아니라는 사실에 관련되는 말이다. 즉 무용·음악·미술과 같은 예술이 물질예술(physical art)이라면 문학은 관념예술(idea art)로 둘은 구별된다. 미학에서 오랫동안 문학을 예술에 포함시킬 것이냐 아니냐에 대해 논쟁을 벌여왔던 까닭도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시로부터 비롯된 모든 예술
고대 그리스적 개념으로 말한다면 물질예술의 본질은 '모방(mimesis)'으로 이루어지며 관념예술은 '언어의 모방(diegesis)'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모든 모방은 감각적인 매체에 의해서 실천되는 까닭에 구체적 형상성을 지니고 있다. 가령 그림이 직접적으로 우리의 면전에 시각적 사물을 보여준다던가 음악이 우리의 청각을 직접 자극한다던가 하는 것 따위이다.
그러나 문학은 항상 그것을 기호(언어)라는 간접 매체를 통해 2차적으로 우리의 마음속에 형성시킨다. 즉 전자는 향수자가 예술을 직접 그 자체의 감각성으로 수용하지만 후자는 기호라는 매체로 간접화되는 방식을 통해 2차적으로 인지하게 된다. 그런데 현대에 있어서 축제란 일종의 행위 예술이며 놀이이다. 그리고 행위 혹은 놀이란 예술이 직접성으로, 달리 말해 감각성 그 자체로 제시되는 방식을 뜻하는 것이지 기호화를 통해 간접성으로 제시되는 방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축제는 '모방'을 본질로 하는 예술이 보다 적합성을 지닐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 까닭에 문학의 경우에도 청각 영상 즉 소리 그 자체의 미의식이 중요한 시가소설과 같은 장르보다 축제에의 참여 가능성이 더 높은 것이다.
그러나 문학이 다른 예술에 비해 본질적으로 행위로써의 성격에 한계성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그러한 이유로 인해 축제 혹은 예술제와 같은 문화행사에서 천대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문학이 기타 예술들의 핵심 혹은 정수에 자리잡고 그것들을 정신적으로 동어하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문화의 꽃은 예술이고 예술의 꽃은 문학이며 문학의 꽃은 시라고 말한다. 그것을 궁극적으로 모든 예술은 시가 중심이며 좁은 의미의 시가 그것을 형상화시키는 기호를 떨쳐버리고 감각의 옷으로 갈아입을 때 구체적인 미메시스의 예술이 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라 할 수 있다.
가령 시가 소리로 표현되면 음악이 되고 색채로 표현되면 미술이 되고 행위로 표현되면 무용이나 연극이 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물론 모든 축제는 물질 예술로 구현되지만 본질적으로 그 역시 문학 혹은 시의 토대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은 이런 추상적인 관점에서가 아니라 다른 예술과 독립된 장르로서 문학이 현대의 축제에 어떻게 부활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필자가 여기서 굳이 '부활'이라는 말을 쓴 것은 현대 축제의 비조라 할 고대의 '제의(祭儀)'에서는 문학이 중심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가령 오늘날 서구의 축제들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고대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제전'은 그 자체가 문학의 구연이었다. 그 합창가는 시였으며 그 지휘자와 합창대 사이의 대화는 오늘의 드라마에 해당하였다.
따라서 오늘날의 축제에 있어서도 문학의 적극적 참여는 필요하며 또 그것의 축제화도 충분히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전문가가 아닌 필자로서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제안을 가지고 있지 못하나 이에 대한 참고 자료로 필자가 체험한 한 유럽의 문학 축제를 소개함으로써 이를 대신하고자 한다.
'스투루가 시의 축제'의 경우
필자가 오랜 전통을 가진 동유럽의 문학축제 '스투루가 시의 축제(Struga Poets Festival)'에 참여한 것은 아직 유고슬라비아의 내전이 격화되기 직전인 1991년 여름이었다. 스투루가는 유고슬라비아의 한 연방, 마케도니아에 있는 작은 그러나 매우 아름다운 도시이다. 매년 여름 이곳에서 시의 축제가 개최되어 '스투루가 시의 축제'라는 이름이 생긴 것이다.
이 시의 축제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어 필자가 참여했을 때는 벌써 30주년이 되던 해였다. 그럼에도 그간 우리에게 알려지지 못했던 것은 냉전 이데올로기로 인해 유고슬라비아와 우리 나라 사이에 국교가 단절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제 정세의 변화에 따라 1990년 우리나라와 국교가 트이면서 문화 교류의 일환으로 이 축제에 한국의 시인을 초청하게 되었고 필자가 마침내 참여할 기회를 갖게되었던 것이다.
시의 축제는 4일 동안 여러 다양한 행사-예컨대 세미나·시집·전시·문학박물관 개장·시 비디오 오디오 도서관 개장·작가와 독자의 대화·샹송 발표회·그림 전람회·무용 발표회 패션 쇼 및 '황금 화환상'(Golden Wrath Prize: 권위 있는 국제문학상으로 세계의 위대한 시인들이 수상하였음 필자가 참여했던 해는 노벨 문학상 수상 시인인 조셉 부로드스키가 이 상을 받았다) 수여식 등이 있으나-가 있었으나 필자는 이 중에서 가장 뜻깊었던 전야제의 이벤트에 국한하여 기술하기로 한다.
스투루가 시의 축제 전야제는 자연환경의 이점을 최대한 살리는 데 키포인트가 있었다. 그것은 스투르가라는 도시가 아름다운 호반에 자리잡은 관광도시라는 점을 지적한 말이다. 유고슬라비아는 남부 마케도니아에 세계적으로 이름 있는 아름다운 호수 오히리드를 가지고 있다. 이 호수는 불가리아와 그리스 그리고 유고슬라비아와 절경을 이루고 있는데 이곳은 역사적으로 마케도니아 제국의 발상지로서, 기타 이슬람 문화와 비잔틴 문화의 혼합된 문화유산의 전승지로서 매우 유서 깊은 곳이다.
이 오히리드 호수에서 발원하여 오히리드 강이 에게해로 흐르고 있는데 바로 그 오히리드 강이 발원하는 입구의 호반에 인구 2만에 가까운 소도시 스투르가가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호수의 물은 오염이 되지 않아 눈부시게 푸르르며 폭이 80미터 내외인 오히리드 강은 더할 수 없이 맑다. 아이들은 이 강과 호수에서 하루 종일 수영을 하거나 보트 혹은 요트 놀이를 하거나 낚시질을 하면서 평화롭게 세월을 보내는 것 같았다.
스투르가 시의 축제 전야제는 이 오히리드 강가에서 개최되었다. 호수와 강이 만나는 바로 그 지점이었다. 그곳은 또한 이 도시의 중심거리이기도 하였다. 시인들이 시를 낭독할 무대는 호수와 연해 있는 오히리드 강의 다리에 높다랗게 가설되었다. 객석은 별도로 마련되지 않았고 강 언덕의 풀밭과 강둑의 길 그리고 강둑과 연속되어 있는 소공원의 잔디밭으로 대신하였다.
마침내 기다리던 시간이 되었다. 유난히도 별들이 쏟아질 듯 반짝거리는 밤 9시쯤이었다. 우리 시 낭독자들은 안내에 따라 무대의 정해진 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다리 아래를 내려가 보니 가로등 불빛 아래 이미 몇 만 명이 운집해 있는 듯 싶었다. 이 도시의 인구가 2만 명 내외임을 감안하면 온 시민이 다 나왔을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어린아이들도 눈에 많이 띠었다. 일부 아이들은 마치 개구리처럼 밤에도 다리 아래 오히리드 강속에 뛰어들어 멱을 감고 있는 것이 보였다.
조금 있으려니 일단의 신사들이 정복을 입고 강 언덕에 마련된 벤치에 착석하는 것이 보였다. 유고슬라비아어로 안내 방송이 있었으나 무슨 뜻인지 몰라 옆 사람에게 물어보니 마케도니아 대통령 일행이라고 하였다. 군중들 사이에 크지 않은 박수소리가 있었으나 곧 잠잠해지고 대통령도 평범한 시민의 일원이 되어 그들 틈에 끼여 앉아 행사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갑자기 객석의 조명과 시민들이 앉아 있는 장소의 전등이 일시에 꺼졌다. 하늘의 명멸하는 별빛 이외에 사방은 어둠 속에 묻혀버렸다. 모든 사물은 일시에 그 운동이 정지된 듯 온 누리는 정적에 휩싸였다. 오직 오히리드 강의 물결 소리이외엔 들리는 것은 없었다. 잠깐동안이었다. 이윽고 어디선가 한줄기의 조명 불빛이 깜깜한 호수의 먼 수면 쪽을 향해 비쳤다.
객석의 시인들과 아래의 시민들이 일시에 그 불빛이 이끄는 대로 시선을 향했다. 아득한 곳에서 희미한 어떤 움직임이 있었다. 그것은 배였다. 호수의 저편에서부터 하얀 배가 한 척 노를 저어오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배의 실체가 확연히 드러났다. 고대 그리스의 정녀(貞女·vesta·신전의 불을 지키는 여사제)들을 태운 배였다. 하얀 그리스 여사제복을 입은 11명의 정녀들이 어둠 속에서 신비스러운 자태로 배를 타고 오는 것이다. 그들이 마침내 무대의 뒤쪽으로 올라와서 한켠에 도열해 서는 순간 하늘에는 수백 발의 꽃불이 수를 놓고 축포가 터지기 시작하였다. 호수의 물빛과 하늘의 별빛 그리고 꽃불이 한가지로 이루어낸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이 꽃불놀이가 끝나자 어둠 속에서 무대 위로 희미한 불빛이 타올랐다. 무대에 이른 정녀들이 불을 지키는 고대 그리스의 예배 의식을 갖는 것이다. 불빛은 점점 밝아오고 마침내 무대 위의 등불이 모두 켜졌다. 동시에 몇 군데의 다른 방향에 장치된 조명이 현란한 빛의 물살을 이루었다. 그 조명 아래 서있는 정녀들의 모습이 아름답고 환상적으로 보였다. 무대 아래에서 일시에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윽고 정녀들은 뮤즈, 음악과 시의 신에게 보내는 무용을 하고 이어서 뒤에 도열된 합창대들이 시의 축가와 마케도니아 국가 등을 노래하였다. 이로서 비로써 시 낭독을 위한 의식이 끝난 것이다. 이후의 진행은 마케도니아 국영 텔레비전의 남녀 아나운서가 맡았다.
이렇게 매년 개최되는 시의 축제가 생방송으로 마케도니아 전역에 방영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회자의 호명에 따라 마이크 앞에선 각국의 시인은 자신의 모국어로 시를 낭독한다. 그러면 이 시인과 그 나라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더불어 지정된 통역자(성우)가 마케도니아어로 다시 낭독을 한다. 그 중간 중간에 간단한 음악과 무용이 곁들였음은 물론이다.
2시간 이상 진행된 이 시의 낭독이 끝나자 그 열기는 거리에서 다시 계속되었다. 마케도니아 민속춤과 노래가 한판 어우러진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나라의 대통령과 각료들이 행사에 누가 되지 않도록 소리 없이 들어와 격의 없이 시민들과 어울리고 또 퇴장할 때도 알게 모르게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이다.
국민적 문학축제를 바란다
내가 체험한 이와 같은 이벤트는 사실 신기할 것도 또한 독창적일 것도 없다. 기왕에 행해졌던 우리의 시 낭독 역시 이와 유사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굳이 이를 소개하는 것은 문학과 시를 사랑하는 마케도니아인의 국민적 분위기와 이를 토대로 해서 성실한 노력으로 문학 애호 운동을 벌리는 이들의 의식이 부러웠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진정하게 문학을 사랑하고 또 이를 국민적으로 향유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이와 같이 매년 정기적으로 전국적인 규모의 문학 축제를 개최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 장소를 꼭 서울로 한정시킬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매년 제야에 봉덕사 종이 울리는 토함산 석굴암 앞에서도 할 수 있을 것이며, 단옷날 향그러운 봄밤에 남원의 광한루에서 할 수도 있을 것이며, 또 단풍이 한껏 물든 가을날 설악산 대청봉에서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날 전국민이 사랑하는 시인 하나를 골라서 계관 시인의 작위를 줄 수 있다 현, 매일 매일 상업방송과 오락 프로에만 전념하는 공영 TV의 어느 하나가 이날만은 두어 시간정도를 할애하여 시 낭독을 생방송 할 수 있다면, 국사로 항상 바쁜 대통령이겠지만 이 날만은 한번쯤 시인과 어울려 애송시나 혹은 자작시를 국민들 앞에서 자랑스럽게 낭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