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기획

영화의 경제학




강한섭 / 영화평론가

극장에서 관객이 입장료를 지불하고 감상하는 한편의 영화는 개인과 소집단의 영역을 벗어난다. 영세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한국 영화의 평균 제작비도 3억 원에 이르고 있으며,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할리우드 영화의 평균 제작비는 2천만 불(1백 60억 원)을 쉽게 넘어버린다. 그런데 이러한 액수는 어디까지나 평균 제작비다. 관객들이 선택하는 일급의 한국영화의 제작비는 5억 원대를 넘나들며 할리우드의 소위 블록버스터 영화들은 5천만 불 이상의 자본을 필요로 한다.

이렇게 영화와 산업의 만남은 필연적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까지 이에 대한 논의가 학문적인 수준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영화제작의 현장에서도 낭만적인 생각이 지배하고 있으며 이러한 생각들이 영화의 산업화를 방해하고, 질 높은 영화의 제작에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왜냐하면 영화는 기본적으로 자본과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종합예술이기 때문이다.

영화 산업의 영역

영화 경제학자들은 요즘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자신의 학문 영역이 하루가 다르게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제의 통계와 이론의 틀로는 오늘의 상황을 설명할 수 없고 내일을 예측한다는 것은 거의 만용이 되고 있다. 영화의 시장이 경이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한편의 미국영화는 극장에서 개봉된 이후 비디오·케이블 텔레비전·네트워크 텔레비전 등의 부수 시장으로 팔려 나간다. 기본적으로는 9개의 매체를 통해 상영되지만, 그 판권의 수는 셀 수 없을 정도다. 즉 외국 극장상영에 관계하는 판권만도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국가의 수를 곱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제는 영화의 쌍방 커뮤니케이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그래서 미국 영화 산업의 전체적인 외형은 극장과 부수 시장의 수입을 합쳐 1백 60억 달러(1992년)에 이르고 있으며 매년 10∼15%의 비율로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이러한 통계가 제대로 집계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별표와 같은 수치는 어디까지나 산업 종사자들의 추정에 근거한다. 우선 한국 영화산업은 아직까지 매체의 다양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극장 부문의 해외진출도 지지부진한 상태이며 케이블과 인공위성과 같은 뉴 미디어 매체를 통한 시장의 확대는 이제 겨우 발아하고 있는 정도다. 그러므로 한국 영화산업의 주 수입원은 극장과 비디오 그리고 네트워크 텔레비전에 한정되고 있다.

극장 부문의 경우 전체 외형은 약 1천 6백억 원(약 2억 달러)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이 수치는 연간 극장을 찾는 총 관객 수 5천만 명에 평균 관람 요금 3천 2백 원을 곱한 수치다. 그러나 실제의 규모는 이것보다 훨씬 크다. 아직까지 대도시의 일류 극장을 제외하고는 관람자 수를 축소해 신고하기 때문이다.

80년대 중반 이후 급성장한 비디오 시장은 지난 1988년 극장산업의 외형을 넘어선 이래 해마다 급성장하여 대여시장 6천억 원과 판매시장의 4천억 원을 합쳐 약 1조원대의 엄청난 외형을 기록하고 있다.

4개의 텔레비전이 주당 평균 7∼8회 편을 편성하는 '주말의 영화' 프로그램에 공급되는 한국영화는 연간 평균 50편대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영화의 수준에 따라 판매가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전체적인 외형이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한 통계가 나오지 않고 있다. 또 해외시장에의 수출액은 평균 50만 불에도 이르지 못하고 있으며, 뉴 미디어 시장도 아직 본격적으로 형성되어 있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한국 영화산업의 총 외형은 1조 2천억 원 정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한국영화 시장 개관

년도

인구(천명)

제작편수

영화관수

입장인원(명)

방화입장

인원(명)

외화입장

인원(명)

평균

관람

81

38,308

87

423

44,443,122

21,346,232

22,937,410

1.2

82

39,641

97

404

42,737,086

21,914,424

20,780,259

1.1

83

40,264

91

450

44,036,426

17,539,164

26,483,052

1.1

84

40,361

81

534

43,917,379

16,886,914

27,030,465

1.1

85

40,466

80

561

48,098,262

16,425,345

31,662,560

1.2

86

41,826

73

640

47,278,807

15,617,955

31,660,706

1.1

87

42,082

89

673

48,592,841

13,106,887

35,485,954

1.2

88

42,593

87

696

52,230,524

12,164,830

40,065,694

1.2

89

43,847

110

772

55,306,458

11,153,353

44,154,105

1.3

90

43,520

111

789

53,459,280

10,811,019

42,648,261

1.2

91

43,862

121

762

52,196,654

11,060,848

41,135,806

1.2



영화의 수요

영화 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기본적인 요소가 바로 수요와 공급의 관계다. 얼마나 많은 영화적 수요가 한 사회에 존재하는가를 예측하고 그것에 맞춰 공급량을 결정하는 일이야말로 영화 경제학의 시작이요 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비디오 시장이 1조원에 이르렀지만 한국 영화산업이 불황에 허덕이고 있는 것은 영화상품에 대한 수요 예측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영화적 수요를 결정짓는 변수들을 살펴보자.

① 여가 시간-사람들이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유로운 시간이 필요하다. 이 휴식의 시간을 요즘 말로는 '여가 시간(leisure time)'이라 부른다. 이 여가시간이란 그냥 노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내일의 삶을 위한 '재충전 시간(recreation time)'이기도 하다. 이 여가 시간은 그런데 '노동 시간'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왜냐하면 수면이나 식사 그리고 교통에 소요되는 시간은 거의 변동할 수 없는 '고정시간'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여가시간은 계속 늘어가고 있지만 그 시간 중에 영화가 차지하고 있는 시간은 줄어들고 비디오 매체를 통한 영화감상 시간은 늘어나고 있다.

② 소득-시간이 남아돌아도 모두가 영화관에 가서 입장권을 구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락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충분한 소득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문화산업은 존재할 수 없다. 선진국의 경우 사람들은 여가활동에 점점 더 많은 돈을 소비하고 있다. 인간의 기본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의복비와 식비 그리고 주택비 지출을 하고 나서도 사람들은 여가활동에 쓸 돈을 따지게 된 것이다. 미국의 경우 여가활동비는 전체 개인 소비액의 8%대에 이르고 있다. 60년대의 5%에서 세월이 흐를수록 그 비율이 높아져가고 있는 것이다.

③ 경기순환-일반적으로 영화산업은 일반 경제의 경기 상태와 반대되는 주기로 변화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즉 경제가 불경기로 접어드는 초기에 소비자들은 좀더 값싼 비용의 오락과 집 근처(closer-to-home)에서 할 수 있는 오락의 수단으로 옮겨갈 뿐 전체적인 오락비용의 지출은 별 변동이 없게 된다. 그러나 불황이 말기에 이르게되면 소비자들의 지출형태는 오락비를 줄이고 내구재 구입 쪽으로 변화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 시기에 오면 주택의 천장이 새거나 자동차가 덜덜거리게 되기 때문이다. 내구재의 구매와 수리가 불황 때문에 그 동안 계속 연기되어 왔기 때문이다. 즉 영화산업의 불황은 일반 경기의 불경기가 끝나는 시점에서 시작되어 일반 경기가 정점에 이르게 되는 시점에서 끝나게 된다.

④ 계절적 변동-계절적 변동은 영화에 대한 수요를 결정짓는 변수가운데 가장 이해하지 쉽다. 왜냐하면 이 변수를 우리는 매일 극장의 매표구에서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소위 말해서 4대 대목이 영화의 수요가 가장 강한 계절이다. 즉 크리스마스와 신정, 구정, 여름 휴가철 그리고 추석이야말로 영화계의 공인 받은 대목이다. 이에 비해 ,3월과 4월 그리고 11월은 영화계의 비수기에 해당한다. 최근의 경우 전체 입장객 5천 3백여 만 명 중 12월과 1월이 1천 1백만(20.5%), 2월에 4백 50만(8%), 여름에 1천 6백만(30%) 그리고 추석에 4백 50만(8%) 정도로 나뉘어진다.

⑤ 입장료-일반적으로 입장료의 변동이 전체 매상액에 미치는 영향은 다른 요인들보다 크지 않다. 그러나 개별적으로는 입장료의 높고 낮은 요인에 영향을 받는 영화도 있고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 영화도 있다. 즉 상품적 가치가 좋은 영화 즉 할리우드의 소위 블록버스터 영화나 비평계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은 영화들은 입장료의 변화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영화들은 입장료의 고저에 영향을 받는다. 즉 킬링타임용 영화로 낙인 된 영화들은 다른 저가격의 오락상품들과 치열한 경쟁 관계에 빠지기 때문이다.

⑥ 인구 구성비의 변화-인구학은 만물의 척도라는 말이 있다. 인구 구성비의 변화가 역사적으로 사회변동의 가장 큰 변수로 자리잡아 왔기 때문이다. 인구학적 변천이 그 동안 문화산업에 미치는 결과에는 다음과 같은 예가 있다. 즉 미국의 경우 2차 세계대전 직후는 베이비 붐의 시대였다. 그때 태어났던 아이들이 60년대에는 하이틴과 청년기가 되었고 70년대에는 결혼해 가정을 가지게 되거나 분주한 샐러리맨이 되었다. 이런 특이한 인구변화가 미국의 오락산업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을까 ?

60년대에는 하이틴 인구의 급증으로 음반 산업은 급성장했지만 영화산업은 이 호기를 텔레비전과의 경쟁에서 밀려 오히려 불경기로 접어들에 된다. 또 이들 베이비 붐 세대가 결혼해 가정을 갖게 된 70년대는 미국의 핵가족이 전성기를 맞이한 시기로 디즈니랜드와 같은 가족 단위의 테마 파크 산업이 호경기를 구가하게 되었다.

영화의 공급과 수익성

위에서 설명한 영화의 수요 변수에 의해 영화산업은 영화의 제작편수와 규모를 결정하게 마련이다. 한국 영화의 제작은 시장개방 이후인 1987년부터 꾸준히 증가하여 평균 1백 10편대에 이르렀다가 최근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다. 제작자 유화의 열기가 시장상황의 냉엄한 현실에 밀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영화산업은 국민들의 문화 소비비 지출의 증가와 새로운 매체를 통한 시장 확대라는 호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산업의 참여자 모두에게 이러한 기회의 문이 열리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 와서 '흥행의 양극화' 현상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서울 흥행에서만 1백만 관객을 기록하는 영화가 나오는가 하면 평균적인 수준의 영화들은 흥행에서 더욱 고립되는 양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서편제〉의 경우 전국적으로 2백 50만 명 정도의 관객 기록을 세웠다. 극장 부문에서만 흥행수입이 1백억 원에 이른 것이다. 여기다가 비디오와 텔레비전 부문을 합치면 〈서편제〉의 총 흥행수입은 1백 10억 원대에 이를 전망이다. 극장 수입의 50%를 극장과 배급업자의 몫으로 계산해도 제작자의 수입은 50억 원대를 상회하게 된다. 〈서편제〉의 제작비와 홍보비를 합쳐도 6억 원 정도이기 때문에 생산비의 무려 8배 이상의 수익을 얻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극히 예외적인 경우다. 한국영화 한편의 평균 관람객 수는 전국적으로 보아도 6만 명 정도다. 그러므로 극장 부문의 흥행수입 2억 4천만 원, 비디오 판권 1억 원을 합쳐 총수입은 3억 4천만 원에 이른다. 그러나 여기에서 극장 수입의 절반은 극장이나 배급자의 몫이다. 평균적인 한국 영화의 실제 수입은 평균 제작비 2억 5천만 원에도 못 미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현재의 한국 영화산업은 수익성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최근의 한국 영화 제작 편수의 급격한 감소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영화의 제작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어쩌면 신비한 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