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 / 대구

시민과 함께 하는 예술, 달구벌예술제




서재환 / 영남일보 문화부 기자

대구 시민의 화합과 애향심을 고취하고 정서 함양을 위한 달구벌예술제가 제12회 달구벌 축제 기간 중에 열렸다.

10월 7일 밤 전야제를 시작으로 막이 오른 달구벌축제는 17일까지 2백 30만 대구 시민들의 참여로 문화예술회관·시민회관·두류 주차장 야외 무대 등에서 펼쳐졌다.

올해 달구벌예술제는 지난 8월에 열렸던 제1회 대구 시민 야외 음악회의 경험을 되살려 시민들의 참여도가 높은 야외 공연을 대폭 늘린 것이 특징. 또 시각장애인음악회·전국시조경창대회·가훈전시회·시민영화감상회 등 예년에 없던 9개 행사를 신설해 장애인과 노인 등 소외 계층의 참여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애쓴 흔적이 보였다.

7일 전야제는 오후 7시부터 달구벌예술제의 주 행사장인 문화예술회관 일원과 시민회관에서 축제등이 점등되면서 시작됐다.

점등과 함께 두류공원 주차장에서는 인기 가수 및 성악가, 1백 20여 명의 대구시경 경찰관현악단이 참가하는 애창곡의 밤이 열려 인기 가수 김수희씨가 〈애모〉를 부르고 바리톤 김원경, 테너 임정근, 소프라노 강희주씨 등이 〈거문고 뱃노래〉 등의 주옥같은 노래들을 들려주었다.

한국영화인협회 대구지부가 주최하는 '93 대구영화제전은 '시민영화감상회', '좋은 영화보기 및 감상문 공모전', '노천 영화제', '제2회 대구영화제 및 시상식' 등 4개 분야로 나눠 7일부터 10월말까지 대구시민회관 대·소강당 및 두류공원 주차장에서 다채롭게 펼쳐졌다.

7일 열린 '시민영화감상회'에서는 〈유니버설 솔저〉가 상영되었으며, 9일부터 대구시민회관 소강당에서 막을 올린 '좋은 영화보기 및 감상문 공모전'에는 〈아래층 여자와 위층 남자〉, 〈하얀 전쟁〉 등 2편의 방화가 상영되어 고등부와 일반부로 나눠 감상문을 공모했다. 이 밖에도 〈석별〉, 〈돌아이〉, 〈검사와 여선생〉(무성영화) 등 흘러간 방화와 어린이용 영화를 상영하는 '노천 영화제'가 두류공원 주차장에서 열려 인기를 끌었다.

9일 오후 7시 두류 주차장 야외 무대에서 막을 올린 '국악한마당'은 윤영구(경북대 교수)씨가 지휘하는 대구시립국악단의 화려하고 장중한 〈수제천〉으로 시작되었다. 이어 방경숙·김행옥씨 등의 남도민요와 가야금병창, 대금연주자 김경애씨의 한주환류 대금산조 등과 대구시립국악단의 흥겨운 국악관현악 〈신모듬〉 등이 연주돼 1부를 장식했다.

박인희 무용단의 화사한 부채춤으로 시작된 제2부에서는 인간문화재 박동진씨의 판소리와, 이호연·김혜란씨의 경기 민요 등 초청 국악인들의 무대가 이어졌다. 이밖에도 김수배씨 외 10명의 〈날뫼 북춤〉이 특유의 남성적인 멋을 선사했으며, 김신효씨 외 20명의 강령탈춤, 김수기씨 외 4명의 사물놀이도 청중의 흥을 더 해줘 국악한마당은 그야 말로 출연자와 시민이 어우러지는 자리였다.

테너 박인수(서울대 교수)씨를 제외하고는 출연자 모두가 시각 장애인인 '시각 장애인 음악가 초청 연주회'는 시민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안겨 주었다.

10일 오후 4시·8시 대구시민회관에서 두 차례 공연된 이 연주회는 장애인에 대한 예술적 편견의 벽을 허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재혁씨의 피아노 독주, 한국 장애인 소리예술선교단의 금관 5중주 연주, 셀라합주단의 실내악 합주 등 시각 장애인 연주자들이 그 동안 점자로 된 악보를 통해 갈고 닦은 수준 높은 기량을 선보였다. 이들 중 이재혁씨는 중앙대 음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재원이며, 사물놀이패 '다스름'은 전국 사물놀이 겨루기 한마당에서 최우수상을 두 번이나 수상하는 등 출연진들의 실력이 일반 연주자들에 비해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았다.

이 연주회의 수익금은 시각 장애인들의 학업에 필요한 점자 프린트기를 구입하는데 쓰여지는데, 소년·소녀 가장 1백 50명과 시설 아동 6백 명을 무료 초청해 시각 장애인들의 희망에 찬 멜로디를 들려주었다.

봉산문화거리 발전위원회가 주최하고 대구시가 후원하는 '93 봉산 미술제에는 19개 화랑과 1개 액자점, 9개 고미술전문점이 참여했다. 대구의 화랑들이 밀집되어 대구시가 문화 거리로 지정한 봉산동 일대에서 열린 이 미술제는 한국화·서양화·조각 공예·서예 등 5개 분야에 걸쳐 작가 49명의 작품전과 고미술품 합동전으로 꾸며졌다.

7일 오후 1시부터 시작된 개막 행사로는 풍물 극단 '함께 하는 세상'의 길놀이, 행위 미술가 최재정씨의 개막 고사 해뜨님, '92독일 카셀도큐멘타 참여 작가 육근병씨의 퍼포먼스, 8명의 거리 미술전, 이 행사에 참가한 화랑과 일반 예술 애호가들이 함께 하는 열린 마당, 지신밟기 등이 4시간 가량 거리에서 열렸다.

이번 봉산미술제의 참여 작가는 청년 작가 위주로 구성된 것이 특징이었다.

12일∼13일 오후 7시 대구 시민회관 대강당에서 막을 올린 국립 극단의 〈피고 지고 피고 지고〉는 〈그것은 목탁 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 〈불좀 꺼주세요〉로 최근 연극계의 주목을 받아 온 극작가 이만희씨와 연출가 강영걸 콤비가 내놓은 세 번째 창작극. 나이 70을 바라보는 도굴범 세 노인이 일확천금을 노리고 3년 동안 굴을 파오면서 시작되는 이 연극은 이문수·김재건·오영수·손봉숙씨가 출연했다.

인물의 성격과 극적 상황에 따른 매우 현실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연극 언어적 대사가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극작가 이만희씨는 '어린이의 순수가 본능과 무지에서 오는 것이라면, 노인네의 것은 질곡의 역사를 체험하고 뒤안길을 바라보며 세속의 껍질을 하나하나 벗겨 낸 '순수'라며 순리에 순응하는 노인들 특유의 순수한 정서를 담았다'고 밝혔다.

13일 오후 7시 대구문화예술회관 특설 무대에서 열린 '시와 음악이 흐르는 밤'은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 파묻혀 지내는 도시인들에게 모처럼 시와 음악의 운율 속에 잠기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 행사에는 1천여 명의 시민들이 몰려 깊어 가는 가을밤의 정취를 즐기느라 2시간 여 동안 자리를 뜰 줄을 몰랐으며 순수 예술의 대중화 시도가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얻었다.

시와 음악과 무용이 고향을 주제로 함께 어우러진 이날, 시민들은 행사 시작 전부터 몰려들어 무대 앞 광장을 가득 메웠다.

일찌감치 아이들 손을 잡고 널찍한 앞자리를 차지한 젊은 부부, 학교에서 곧바로 달려온 듯 가방을 둘러멘 중·고교생들, 소란스런 이들과는 멀찍이 떨어져 어깨를 맞대고 호젓하게 서서 바라보는 중년 부부, 이들은 누구나 가슴 한구석에 시심 한 자락을 묻어 두고 사는 사람들이었다.

전현구씨가 지휘하는 대구 필하모니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시인 서정윤·곽흥란씨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홀로 서기」를 낭독하자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이어 김소월· 이기철·이장희·김춘수씨 등의 대표작을 송종규·이명주·김봉연씨 등 여류 시인들이 낭송하고, 신권자·박영국·박말순·김완준씨 등 성악인들이 독창을 들려주었다.

행사 끝 부분에는 가수 해바라기와 대구시립 소년소녀합창단이 귀에 익은 동요와 가요 등을 부를 때는 청중도 다 함께 따라 불러 열린 무대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주로 이 지역에 연고를 둔 시인들의, '고향'을 생각케 하는 작품들이 낭송되자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 읊조리는 시민들도 많았다.

아직은 대부분의 시 낭송회가 시인들이 혼자 뻣뻣이 서서 시를 읽어 내려가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음악과 함께 하는 이 날 행사는 시의 효과를 총체적으로 전달하면서도 시 낭송회가 대중적인 행사로 자리잡을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특히 대형 멀티비전을 통해 낭송자 뿐만 아니라 자막으로 시를 소개함으로써 청중들의 이해를 한층 도왔다.

이날 '내 마음의 고향'이란 짤막한 강연으로 대구 지역 독자들과 만난 소설가 이문열씨는 '시와 음악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행사는 보기 드문 것'이라며 '무대 위의 낭송자나 연주자들뿐만 아니라 청중들의 진지한 태도에 놀랐다'고 말했다.

주최측인 문협 대구지회 관계자들도 '비록 이 행사가 달구벌 축제 행사의 하나로 열렸지만 예술 행사로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이밖에도 8일부터 12일까지 대구 문화예술회관에서는 시립오페라단의 〈춘향전〉 공연이 열렸고, 시립중앙도서관에서는 책의 해를 기념해 제1회 향토문인도서전이 개최돼 시민들의 발길을 끌었다.

대구 시립오페라단의 제3회 정기 공연 무대인 〈춘향전〉은 이 오페라단이 처음으로 우리 고전을 소재로 꾸민 오페라란 점에서 기대를 모았으며 향토문인도서전은 이 지역 문학사를 한눈에 조명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