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기획 / 미술

경기의 침체와 화단의 침체




서성록 / 미술평론가


전반적 침체로 요약되는 한 해

너무 인색한 표현인지 모르지만, 1993년은 눈여겨볼 만한 새 동향도, 문제제기도, 작품도 나오지 않은 해로 요약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예년 이맘 때 같으면 많은 얘기 보따리를 풀어놓을 수 있었지만, 올해에는 관점 빈곤에다 화단 침체, 그리고 창작 열의의 감퇴까지 겹쳐 어떤 생산적인 결실을 맺을 수 없었던 듯이 보인다. 이렇듯 화단이 침체에 빠지는 데에는 몇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원인들을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전반적으로 불어닥친 화랑 불경기이다.

이름 깨나 있는 작가에서부터 원로, 중진 작가에 이르기까지 수장가들의 작품 구입이 뚝 끊겨 화랑은 몸살을 앓아야 했다. 화랑측에서는 잡아 둔 기획전을 무기한 연기하거나 포기하는 등 자구책을 강구해야 했고 그 대신 작품성을 중시하는 젊은 작가들이 그 공백을 메우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한냉기류' 속에 머물러 된서리를 맞아야만 했다.

물론 이러한 경기 침체는 작품 구입을 결정적으로 어렵게 만든 금융 실명제 실시에도 문제가 있지만, 작년부터 급속히 냉각되기 시작한 과열 기미의 진정, 그간 너무 치솟은 작품 가격 등이 도사리고 있다.

둘째, 분명한 방향이 제시되지 못한 채 미술 운동이 지지부진해졌다는 점이다.

문민정부의 출범을 맞아 그간 현실 참여와 기존 화단에 문제제기를 해 온 민중미술은 명분 상실과 소재 고갈로 급격히 침체 국면에 빠져들었으며, 그에 반해 실생활의 정서에 기초를 둔 신세대 미술, 즉 키취 작가들은 각종 혼합 매체, 상업 광고 이미지, 문화적 대중주의, 그리고 통속화된 미감 등을 통해 신장을 계속해 갔지만, 그 어느 쪽도 새로운 이슈를 제기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셋째, 그 어느 때보다 약화된 작가 의식이다.

미술 활동의 위축은 직접적으로는 외부 환경에서 오는 것도 있지만, 간접적으로는 마땅한 주제를 찾지 못하거나 문제의식이 희박해진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도 있다.

근래의 미술 활동은 개인화·개별화되는 양상이었지만, 정작 중시되어야 할 개인의 정체성을 심화시켜 내는 데는 크게 미흡했다. 즉 양적 개념으로서 집단에서 개인으로 이행은 보였지만, 질적 개념으로 개인 의식·작가 의식으로 발전되지는 못했다는 얘기이다. 이 점은 특히 젊은 세대에게 두드러진 현상으로 사회적으로 긴장 이완에 따른 문화적 자유방임 또는 지적 댄디즘 때문인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세 원인 외에도 활동 부진, 화단의 냉기류가 몰아닥친 이면에는 누적한 한국 화단의 구조적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고 여겨지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주요 행사 또는 사실이 1993년도 화단 속을 관통하였음을 지적해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첫째, 국외에서 활동하던 작가들의 전시가 비교적 활발했다는 점이다.

캘리포니아의 곽훈전과 김봉태전, 뉴욕의 백남준전, 김영길전, 이병용전, 그리고 파리의 손동진전 등 특히 1975년 미국에 건너가 짧은 기간 내 미국 화단에서 탄탄한 입지를 굳힌 곽훈 작품전의 경우, 초기에 제작했던 〈부활〉, 〈기〉에서 근래의 〈겁〉에 이르기까지 그의 일 관성 있는 작품 세계와 흐름을 일목 요연하게 보여주었다면, 김봉태의 회고전의 경우는 60년대부터 판화 매체라는 한 가지 장르를 기하학적 구성과 '한 정신' 추구를 통해 끈질기게 발전시켜 온 그의 예술적 여정을 만날 수 있게 해주었다.

둘째, 알찬 몇몇 기획전이 펼쳐졌다는 점이다.

신세대 미술을 짜임새 있게 정리해 준 '성형(成形)의 봄전'과 '신촌전', 대전세계박람회 기간에 자연과 테크놀로지라는 주제를 갖고 개최된 '테크노 아트전', 문예진흥원이 30대 작가들을 위해 기획한 '도시, 그 삶의 공간전', 남북미술인들(남한 민족미술협의회, 북한 미술가 동맹)이 해방 후 처음으로 만남의 장을 연 '코리아 통일 미술전', 2백 50명의 작가가 동원되어 통일과 환경을 위한 한마당을 이룬 '비무장지대 예술문화운동 작업전' 등 이밖에도 '한국 미술 2천년대의 도전전', '한국청년미술제-서울에서의 만남', '책 속의 미술, 미술 속의 책', '현대미술의 기호와 상형 전', '김환기 탄생 80주년 기념전', '한국현대판화 40년전', '마음으로 보는 감동, 눈으로 읽는 감동전' 등이 열렸다.

이중 '성형의 봄전'(오상길·신현중·조덕현·윤동천·이불 등)과 '신촌전'(이형우·최승호 ·홍성도·이수홍·이홍수·김영진)은 그간 뚜렷한 자기 조형 논리를 갖춘 작가들의 전시로 모두 다변화하는 한국 미술의 동향에 초점을 맞추었고, '도시, 그 삶의 공간전'이 급격히 팽창하는 도시와 그 도시의 스펙터클에 주제를 맞추어 그 속에서 변모하는 삶과 일상의 문제를 살펴보기 위해 개최되었다면, '코리아 통일 미술전'은 비록 그것이 일본(도쿄 센트럴미술관, 오사카 부립미술관)에서 열려 관람이 어려웠지만 그간 전무했던 남북 미술 교류의 가능성을 비추어 준 행사로 평가받을 만하다. 한편 '한국 현대 판화 40년전'은 판화가 인쇄술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이유로 등한시되기 쉬운 판화 매체의 보다 풍부하고 깊은 예술성을 입증해 준 계기였다.

셋째, 괄목할 만한 국제전을 유치하여 현대미술의 내용을 좀더 풍부하게 해주었다는 점이다. 호암미술관의 '마르크 샤갈전', '미국의 포스트 모던 대표 작가 4인전', 선제미술관의 '임멘도르프전', 예술의 전당의 '플럭서스전', 동아미술관의 '카미유 클로델과 로댕전', 최근 미국 미술의 현황을 점검할 수 있었던 '휘트니 비엔날레 서울전' 등이 그것인데, '미국 포스트 모던 대표 작가 4인전'에 대해서는 상반된 두 가지 평가가 교차되었다.

하나는 미국 포스트 모던 자체가 시류적일 뿐만 아니라 충격 효과만 노린 미술이라는 평가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 미술 특유의 현실과 접맥된 사회 비판적 요소가 두드러졌다는 또 다른 평가이다. 따라서 전시에 출품된 에릭 피슬·데이비드 살·줄리앙 쉬나벨·로버트 롱 고 등이 공통적으로 구사하는 '차용'에 대해서도 부정적 입장에서는 '무개성의 혼성모방'으로 보는 반면, 긍정적 입장에서는 '열린 시각'으로 간주하는 관점 차이를 노출했다. 하지만 이 논쟁은 에릭 피슬·로버트 롱고 등의 작품이 보여 주듯 '차용'이 현실 비평이란 측면에서 기용되었다는 측면에서 후자의 관점이 더 온당한 주장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휘트니 비엔날레의 경우는 다인종 문화를 특성으로 지닌 미국 미술의 속성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문화적 배경의 차이로 생겨난 이질감, 또 미국 작가에 한정하여 초대하는 '미국인들만의 잔치'를 수입해 올 필요가 과연 있는지를 참가 작가 문제로 남겼다. 이번 휘트니 비엔날레 의 주제가 '복합문화주의'에 관한 것이기는 하나 우리의 정서를 거스르는 작품이 다수 포함되어 있음은 예술에는 국가의 경계를 넘어 공유 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있지만, 도저히 섞일 수 없는 이질성도 있다는 사실을 교훈으로 남겼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새로운 영상 매체와 과학기술의 과감한 수용, 또 그 속에 담긴 사회 문화적 맥락, 예술의 사회적 기능 등은 두고두고 생각해 볼 만한 문제였던 것 같다.

그에 반해 한국 미술의 해외 진출은 상대적으로 미약했는데, 베니스 비엔날레(하종현), 루브리아나 국제 판화 비엔날레 (김승연), 아시아태평양 트리엔날레(구본창·김관수·박관욱·우순옥·이불·임옥상·조덕현), 고지판화트리엔날레, 몬 테카를로 국제현대미술제, 후쿠이 국제 비디오 비엔날레, 방글라데시 비엔날레, 그리고 일부 화랑의 국제 아트페어 진출 등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넷째, 여성 미술에 대한 새로운 조명 작업이 활발해졌다는 점이다.

여성신문사 주최의 '한국 여성 작가전'(김점선·김원숙 등), '30 캐럿전'(김미경·박지숙·안미영·염주경·이승연·이현미·임미령·최은경·하민수·하상림), '여성 작가 7인의 개인전'(차명희·손의옥·이민주·백순실·하수경·이인옥·박이선) 등 비록 본격적인 의미에서 '여성 문제'를 다룬 행사는 아니었지만, 또 이 중 어떤 것은 성별 일체성만이 전시 개최의 요건인 전시도 있지만, 제도적 불이익을 받는 여성과 여성 미술에 대한 조심스런 문제제기를 했던 것으로 기록할 만하다.

여성 미술에 대한 관심 고조와 함께 한국미술평론가 협회는 '페미니즘'을 주제로 세미나(발표자: 송미숙·김홍희·김영순)를 열어 페미니즘의 정체, 한국 화단의 실상, 그 의미와 가능성 등을 토론할 예정이고, 「월간미술」에서는 '한국 미술을 움직이는 여성 작가 30인'을 특집으로 꾸며 고조되는 여성 미술가들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했다.

한편 미술 문화에 대한 폭넓은 관심을 반영하듯 보도기관에서 미술 현안이나 화단 문제를 다룬 기획물을 방영하기도 했다. MBC의 '집중 조명 오늘'이란 프로그램과 KBS가 특집 기획한 '포스트 모던'이 그러한데, 전자에서 공모전 심사의 불합리, 화랑의 편의주의, 이중섭의 위작 시비를 다루었다면, 후자는 한국 문화계에서 일고 있는 포스트 모던의 경향의 잘못된 점만을 꼬집어 냈다. MBC·KBS의 기획은 보기 드물게 미술 문화의 문제를 도출하고 이의 시정을 촉구했다는 점에서 얼마간 성공적이었다고 보이나, 그 평가는 지극히 임의적인 것이어서 객관성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

가령 이중섭 위작 시비를 다룬 전자의 겨우, 한국화랑협회 산하 '감정위원회'에서 위작으로 판정한 작품을 일방적으로 의뢰자측의 입장을 편들어 주는 대신 감정위원회의 입장을 일체 부정하는 편집구성법을 적용, 보도의 비공정성을 문제삼은 한국화랑협회로부터 강력한 시정을 요구받아야 했고, 포스트 모던 특집의 경우, 표피적·자극적 장면만을 임의적으로 방영하면서 그 부정적 측면을 일깨워 주는데는 얼마간 성공했을지 모르나 포스트 모던에 관한 종합적 접근이 없었고 그와 관련된 연구 저술마저 '돈벌이 방편'내지는 일부 이론가들의 '출세욕'에 기인한 것으로 매도함으로써 오히려 포스트 모던의 실체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는 데는 크게 못 미쳤다.

위의 두 프로그램이 지닌 문제는 충분한 자료 검토 없는 졸속 편집, 시청률만 노린 흥행 위주의 발상, 일부 전문인들의 시각만을 담아 낸 형평성 잃은 구성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부 TV의 경우, 세계 유수의 미술관·박물관 소장품을 영상 감상하는 일련의 교양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볼거리'를 제공하는 노력을 엿보이기도 했다.

특별한 이슈 없이 흘러간 한 해였지만, 예년과 달리 그간 '제도권'밖에 머물러 있었던 민중미술의 '제도권 진출' 속도가 무척이나 빨라졌다. 그에 따라 그들의 작품도 그 외양면에서 한결 부드러워졌다.

농촌 현실을 형상화했지만 투쟁 일변도에서 삶의 애환·향수를 담아 낸 김정헌, 여성 해방을 요구하지만 시적 함의성을 띠기 시작한 윤석남, 역사 기록화에서 소시민의 행복을 실어 낸 김호석, 비극적 현실에서 낙천적 현실로 화풍을 바꾼 김봉준, 시대적 무게를 보다 풍부해진 감성 위에 옮긴 이철수, 자연 풍상을 구수한 단색 판화로 포착해 낸 김준권, 오염된 물질 사회의 모럴을 윤기 있는 포토콜라주 수법으로 해석한 박불똥 등.

민중미술의 화랑 진출이 활발했지만, 이 말은 뒤집어 보면 더 이상 마땅한 소재 거리가 없어지거나 운동권에 폭넓게 퍼져 있는 존립 위기의 반증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제도 편입'이라는 자체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화랑에 들어오는 데는 달리 민중미술이 맞이한 침체를 타개할 돌파구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전시장 공략 자체 외에는 운동으로서의 민중미술이 나가야 할 방향이 아직 준비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과 맥을 같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민중미술에 위기를 가져온 원인을 좀더 구조적으로 살펴보면, 문민정부 수립으로 자신들의 문제가 상당 부분 해소되었다는 점, 어떤 식으로든 편재해 있는 도식주의는 극복되어야 한다는 생리적 자각, 진보의 지평은 계급 해방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 환경 파괴, 유보된 전통 계승, 여성문제, 물량화 된 현실 등 여러 곳에 산재해 있다는 사실의 인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화단에 민중미술의 자리가 적지 않았고, 따라서 그 침체의 여파가 적지 않을 것임을 감안할 때 향후 민중미술의 방향 설정은 주목되는 부분임에 틀림없다.

현대 미술쪽 역시 당면한 침체를 좀처럼 벗어날 조짐을 보이지 않았다. 신진 작가들이 늘 그래 왔듯이 그룹 단위로 전시를 열었지만, 문제의식이 약하고 작품 자체도 성실성과 치밀성이 부족해 신선한 발언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정창섭·하종현·김차섭·김재관·김태정 ·최만린·심문섭·김선회 등을 빼놓는다면, 중견·중진 작가들은 '전시 기피'라 표현할 만큼 발표회를 갖는 자체에 소극적이었다.

철저한 작가 정신을 바란다

한편 주요 단체전이 예년처럼 잇달아 열렸다. '묵우회 회원전', '한지 작가 협회전', '현대 한국화 작가전', '로고스와 파토스전', '서울 한국화 비엔날레전', '서울 현대 미술제', '오리진전', '에콜드 서울전', '레알리테 서울' 등 단체전이면서 단체전이 쉽게 빠질 수 있는 정형화·타성화의 위험을 '로고스와 파토스전', '레알리테 서울'은 성실한 준비와 뼈대있는 작품으로 모면할 수 있었다.

공모전의 경우, 'MBC 미술대전', '중앙미술대전', 그리고 '대한민국 미술대전'이 연례 행사로 개최되었고, 특히 '대한민국 미술대전'의 경우 올해부터 '구상'과 '비구상'으로 나누어 개최, 외형상 응모 부문을 이원화함으로써 많은 신진들의 기대에 부응한 것처럼 보였지만, 정작 출품작의 내용면에서 보면 형상·추상 부문에 상을 하나씩 더 보태 준 격에 지나지 않을 만큼 수준 이하의 것이 많아 안타까움을 샀다. 형상·추상의 구분을 둔화시켜 가는 화단 추세에 비추어 간판격 공모전이라 할 수 있는 미술대전의 이원화는 시대 역행적 발상임이 분명하다.

그나마 활기를 불어넣은 것은 30∼40대에 속한 젊은 작가들로 한차례씩의 개인전을 열었다. 그 중 기억나는 작품전을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김선형·문주·문범·신범상·김와곤· 차명희·이석주·임종두·이승일·황원철·서정태·오원배·서용선·황주리·조덕현·이형우·신옥주·임승오·성동훈·권기윤·임영길·강성원·곽남신·조성애·최기석·김근중 이희중·최인선·김춘수·김미경·송중덕 등 이들이 속한 영역이나 추구하는 방향이 각각 달라 무어라 단정할 수 없지만, 90년대 들어와 개인 활동이 빈번해졌다는 사실과 아울러 관심사도 퍽 다양해 졌다는 점, 올해 들어 유난히 젊은 작가들의 동태가 기민해졌다는 점이 시선을 끌었다. 동태가 기민해졌지만 대부분 상업 화랑의 구속에 얽매여 진취성을 찾기 힘들며, 단련된 개인기가 두드러졌던 대신 이들 작가들의 전시회 속에서 문제의식을 추출하기란 어렵다.

굳이 '의미 있는 문제의식'을 찾고자 한다면, 우리 사회가 맞이하고 있는 문제를 주제로 삼아 한 차례씩의 전시를 가진 오상길·안원찬·이희섭·이재복·신영성 등의 전시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체제 안의 진취적 작가들'로 이름 붙일 수 있는 위의 작가들은 주제의 명확성과 심화된 미의식을 동시에 견지하면서 사회 비판성을 표출하였다.

물상 제시를 통해 이성이 지닌 또 하나의 얼굴인 야만을 폭로한 오상길, 산업화로 인해 황폐화된 도시 공간을 문제삼은 안원찬, 역시 인공의 도시 공간을 자연 이미지와 배치시켜 '잃어버린 꿈'을 환기시킨 이희섭, 상실된 전통을 새로운 시각으로 복구시키려고 시도한 이재복, 일상용품을 끌어 모아 고도의 물질 사회 속의 축소된 인간의 모습을 각성시킨 신영성 등 방식상 설치, 오브제, 어셈블리지를 택하거나 또 재료상 음향, 슬라이드 프로젝트, 폐품 등을 사용하여 날로 물화 되어 가는 사회 현실을 예의 주시 하면서 그에 대해 예각적 언어로 대응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비판 정신을 두드러지게 표출한 사례로는 '후기미술작가협회'가 주축이 되어 기획한 두 차례의 '불모전'(소나무 갤러리·공평미술관), '대각선으로부터 부는 바람 전'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젊은 작가들의 이러한 대쪽같은 정신과 안일한 화단 세태에 쉽게 편승하지 않는 비타협의 자세야말로 우리 미술의 미래를 한층 밝게 해 준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다만 그것이 저변 확대되지 못하고 일부 작가들에 의해서만 근근히 이어져 가고 있다는 점이 몹시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