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기획 / 출판

'책의 해'가 남긴 교훈




이중한 / 출판평론가·책의 해 조직위원

'책의 해' 프로그램의 하나로 한국출판연구소가 용역을 받았던 '제 1회 국민독서실태조사'가 11월에 그 결과를 내놓았다. 그간 이런저런 독서 실태 조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그 중 가장 광범위하게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문항들을 가졌다는 점에서 유의할 만한 작업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참담했다. 성인들에 있어 지난 한 달 동안 단 한 권의 책도 안 읽었다는 사람이 54%나 되었다. 알고 있었던 사실이라 하겠으나, 그리고 양심적으로 답을 해 주었다는 의미도 부여할 수 있으나, 여하간 책은 지금 우리에게서 책의 문화라고 말할 만한 처지에 있지 않음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일이었다.

성인들은 지금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있는가. 매체별로 보아 하루에 소비하는 시간량은 다음과 같이 나타났다.

평일(괄호 안은 주말) TV·비디오 시청이 1시간 45분(1시간 53 분), 라디오·음악 듣기 1시간 3분 (45분), 책·만화 읽기 33분(32분), 신문 보기 32분(30분), 영화 관람 8분(23분), 잡지 읽기 10분(10분)이다.

평일 매체 수용 시간이 4시간 11분(4시간 13분)이나 되긴 하는데 책은 만화까지를 포함해서 30분이라는 답이다.

여기에 고교생과 초등학교 학생을 좀 들여다봐야겠다. 고교생은 TV·비디오 1시간 35분, 공부 1시간 26분, 라디오·음악 1시간 20분, 독서 51분이다. 초등학교 학생은 TV·비디오 1시간 38분, 공부 1시간 33분, 학원·과외 1시간 18분, 독서 1시간 5분으로 나타났다.

독서를 가장 많이 하고 있는 것은 초등학교 학생이다 고교생까지도 실은 공부보다 더 많은 시간을 TV·비디오에 쓰고 있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오늘의 매체 상황일 수 있다. 그러나 매체별로 균형이라는 측면에서 과연 책에 쓰이는 시간이 적절한가라는 질문에 아직 우리는 어떤 견해도 갖고 있지 않다. '책의 해'를 만든 것은 아마도 이 균형에 답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책을 읽어야 할 뿐 아니라 좀더 읽어야 하겠다는 의지가 '책의 해'를 조직하게 한 동인이었다는 것을 누구도 부정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너무 늦었던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만을 더욱 확실하게 키웠다고 해야겠다. '책의 해' 행사들은 물론 성대하게 진행됐고 반응도 열렬했다. 11월에 막을 연 '한국의 책 문화 특별전-출판 인쇄 1천 3백년'만 해도 끊임없이 줄을 서서 11월 8일∼12월 19일이라는 장기 전시임에도 전시 기일을 더 늘려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하고 있는 중이다.

전국 도서 거점에 1백만 권 책 보내기 운동도 실현됐고, 재고 도서를 싸게 나누어주는 특별 판매는 마치 전쟁터처럼 사람을 들끓게 했다. 이것만을 보고 있으면 책의 문화는 새삼 희망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만약 이를 보고 단지 즐거워한다면 그것은 크나큰 오류일 수 있다.

책의 해가 남긴 과제

무엇보다 '책의 해'는 실제로 '책의 해'가 해야 했던 중요한 일을 성사시키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그 중요한 일은 무엇이었는가.

첫째는 뉴 미디어 시대에 있어 책의 지위가 변화되고 있고, 이 변화 속에서 '인쇄된 책'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다 넓게 인식시키는 일이었다. 전자책도 책이니까 그것을 보는 일도 책을 보는 일이라고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어떤 환상적 발전을 하더라도 전자책은 결국 지식의 매개이다. 책읽기는 그러나 지식의 매개체이기 때문에 권장되고 또는 위대한 문명의 이기라고 부르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개개인에게 있어 사고력과 창조력, 그리고 상상력을 스스로 키우게 하는 매체이기 때문에 강조되는 것이다. 또 한편 기능적 지식을 뛰어넘어 자신의 정신을 성장시키는 삶의 충실화와 내면화의 매체이기도 하다. 이것까지 전자책들이 해 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아직 없다.

이점을 논의한 프로그램도 있기는 있었다. 'ISPBAH(International Symposium on the Prospects for the Book in the Age of Multi-Media)'라는 국제 심포지엄이 그것이다. 이 심포지엄은 참가자가 세계적 출판계 인사들로 조직되어 내실 있는 모임이 되기는 했으나 일반적으로는 전혀 관심사가 되지 못했고 또 홍보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둘째는 한국 출판계의 현시점에서 책의 질에 관한 반성과 평가라는 과제가 있었다.

우리에게 지금 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끊임없이 베스트셀러도 나타나고 있고 또 몇십 만 권씩 파는 양적 신장도 만드는 책들도 있다. 종이에 잉크가 묻었다고 해서 모두가 책은 아니다. 책이라고 말하는 것은 책의 형태이기 전에 책의 내용에 기준이 있다.

이 기준의 좋은 책은 지금 우리에게 어떻게 있는가. 좋은 책은 지금 서점에서 찾기가 어렵다. 조금 밖에 팔리지 않으므로 서점 구석에 있거나 아니면 아예 비치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도서관에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책의 경우 열심히 만들어서 서점으로 배본하면 다음날 즉각 반품으로 되돌려지고, 그러고 나서 창고로 갔다가 폐지화 되는 경우까지 있다.

이 책들을 모아 염가에 판매를 하려 해도 이는 또 서적상들의 반발로 불가능하다. 이들 책이 어느 구석엔가 있기는 있다는 것을 알리는 정보 채널의 조직도 물론 없다.

이 질적인 책을 보다 잘 알리고 유통되게 하자는 것이 책의 해의 또 하나의 지향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지향 역시 성공하지는 못했다. 책의 총판매량에서도 책 시장에서는 책의 해에 결코 책 수요가 늘었다는 증거를 찾기는 어렵다.

책의 질은 올해에도 더욱더 감각적인 대중문화적 차원으로 내려앉았다. 책의 해에 계속해서 확대된 책의 목록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연예인들의 자서전이나 수필집류였다. 이 책들도 물론 독서 목록에 들어가고 책읽기 시간 조사에 포함된다. 그러니까, 질적인 책을 몇 권이나 읽었는가에 대한 조사를 한다면 우리의 독서 실태는 더욱 참담해질 것이다.

많은 신문 지면들이 '책의 해'에 그 나름대로의 성의 있는 참여를 했다. 일 년 내내 책에 관한 기사를 시리즈화 했다. 그러나 여기서도 아쉬운 점은 있다. 명작과 고전을 다시 해설하는 시리즈들에 있어 그 목록의 재해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고정 관념적으로 있어 왔던 지난 시대의 고착된 목록을 반복했다.

이 목록들은 그러나 그 책들의 원산지에서 조차 이제는 별로 굳이 읽히려 하지 않는 책들이다. 변화를 읽는 일에 우리는 너무 게으른 것이다.

따라서 '책의 해'는 그 외형적 성공에 비례해서 내용적 실패가 동률이었다는 자성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책의 해'는 이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어야 할 당위가 있다. 가능한 한 철저한 이해와 반성을 통해서 진정한 '책의 해'는 지금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생각하며 살고, 정신적 가치의 귀중함을 더 사랑하며, 내면적인 충실화를 열망하는 사람들만이 이 세계를 창조하며 이끌 수 있다는 것과, 이 사람 만들기에 책의 문화는 중요하며 필요한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