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싹

1994년 '한국음악의 해'가 지니는 문화사적 의의와 좌표




한명희 /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1994년은 '한국음악의 해' 즉 '국악의 해'로 지정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간 문화체육부는 매년 문화예술계의 특정 장르를 집중지원 분야로 선정하여 정부차원의 여러가지 지원정책을 펼쳐오고 있는데, 1994년은 연극, 무용, 책에 이어서 전통음악 분야를 그 대상으로 선정했다. 따라서 1994년 한해는 한국음악 분야에 대한 정부와 공공단체의 크고 작은 지원사업들이 적지 않게 펼쳐질 것이며, 여러 가지 공연활동이나 기획 행사들이 풍성하게 줄을 잇게 될 것이다. 그래서 모르긴 해도 한국음악분야는 다시 한번 지난 1988년 서울올림픽 때와 같은 뜨거운 국민적 관심은 물론 그 화려한 외관을 선명히 드러내게 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무엇보다도 먼저 곰곰이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다. 한해의 기획사업을 잘 치르고 못 치르고의 성패에 앞서 확고하고 투철하게 자각하고 들어가야 할 절대절명의 명제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곧 지난날 화려했던 행사들의 허점을 보완하고 외화내빈을 드러냈던 숱한 시행착오들의 전철을 배제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으로 거쳐야 할 근본적인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바로 그것은 1994년 한국음악의 해가 지니는 시대사적 의의를 확연히 포착하고 명확한 좌표를 설정하는 일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한마디로 1994년 한국음악의 해만은 지금까지의 관행과는 달리 무언가 남다른 역사적 비전과 투철한 문화사적 소신에서 치러져야겠다는 사실이다.

1994년 '한국음악의 해'가 갖는 시대사적 속성과 문화사적 당위성

분명 '한국음악의 해'가 지니는 문화사적 의미는 여타의 장르와는 확연히 다르다고 하겠다.

거기엔 같은 예술 분야였던 연극의 해나 춤의 해와도 구별되는 본질적인 성격이 내재해 있다고 하겠는데, 그것은 곧 20세기 후반의 한국 문화예술계가 공통으로 안고 있는 갈등 구조 바로 그것임에 틀림없다. 다시 말해서 1994년의 '한국음악의 해'는 외래와 전통, 양악과 국악이 라는 이분법적 대립구조의 연장선상에서 치러지는 것임을 직시해야겠다는 점이다.

한국음악계가 지니는 이 같은 중층 구조야말로 '한국음악의 해'가 여느 예술의 해와 근본적으로 구분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려니와, 또한 '한국음악의 해'가 스스로 풀어가야 할 막중한 예술적 과제요 문화사적 과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1994년 '한국음악의 해'를 생각 할 때 우리는 '한국음악의 해'라는 명제 외에도 1994년이라는 시대적 의미를 십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분명 20세기 말엽 한국문화사에서 차지하는 1994년의 의미망이란 단지 물리적인 시간관(Kronos)을 훨씬 뛰어넘는 가치론적인 시간관(Kairos)의 중차대한 내용들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비단 금년이 '서울 정도 6백 주년'을 기념하는 해이며 관광차원의 '한국방문의 해'라서만이 아니다. '한국음악의 해'의 접두어로 등장한 1994년의 시대적 의미는 그것을 훨씬 능가하는 데 있음이 분명하다.

그것은 곧 지금까지의 문화발전의 지체요인으로 등장했던 외래와 전통, 서구문화와 한국문화와의 갈등구조를 변증법적 역사논리로 지양해야 하고 또한 지양할 수 있는 제반 여건이 성숙되어 있다는 점에 있다고 하겠다. 주지하다시피 60년대만 해도 국악이라는 단어를 떳떳하게 입밖에 내지를 못했다.

그것은 곧 멸시와 모멸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70년대쯤 와서는 겨우 명분상이나 정책차원에서 국악이라는 말에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또한 자문화에 대한 자각의식이 제법 팽배해지던 80년대에는 몇몇 국악공연 부문에는 자못 괄목할 만한 관중세가 형성되기도 했다. 바로 이 같은 우여곡절과 상승곡선의 연장선상에서 우리는 21세기를 준비해야 할 세기말의 마지막 10년인 90년대를 맞은 것이다. 저간의 한국음악계의 이 같은 시대상을 감안할 때 1994년도가 지니는 시대적 혹은 문화사적 의미란 앞서 지적한 바처럼 자명해지는 셈이 아닐 수 없으며, 이래서 1994년의 '한국음악의 해'가 지니는 의의란 별다른 데가 있는 것이다.

1994년의 '한국음악의 해'가 스스로 내포하는 이 같은 시대사적 의의를 전제로 한다면 앞으로 '한국음악의 해'가 지향해야 할 문화좌표 역시 자명해지는 셈이 아닐까 한다. '한국음악의 해'의 제반행사는 바로 이 같은 시대사적 속성과 문화사적 당위성을 떠나서 존립할 수는 없겠기 때문이다.

한국음악의 토착화·세계화를 위한 기념비적 원년이 되어야

여기 주관적이나마 '한국음악의 해'가 지향해야 할 궁극의 좌표를 제시해 보면 첫째로, 1994년의 '한국음악의 해'는 무엇보다도 국악이 명실상부한 국민의 음악이요 나라의 음악이 되도록 그 위상을 확고히 정립해야겠다는 점이다.

국악은 한국음악의 줄임말로서 글 뜻 그대로 나라의 음악, 국민의 음악을 의미한다. 그러함에도 한국현대사에서의 국악의 위상이란 나라의 음악이요 국민의 음악은커녕 소외계층의 더부살이 인생인 양 사시와 냉대와 무관심 속에서 음지의 삶을 힘겹게 엮어온 게 사실이다. 비근한 예로 한국사회에서 '음악'하면 이는 곧 서양 음악을 의미하고 국악음악은 따로 국악이라 명명된다.

대한민국 음악제와 대한민국 국악제가 그 예이며 예총 산하의 음악협회와 국악협회의 명칭 구도가 그 본보기이다. 당연히 국악이 자리해야 할 음악이라는 일반명사의 자리에 엄연히 외래음악이 군림하고 있다. 이것이 20세기 후반 한국 문화예술계의 구조적 자화상이다.

이 같은 시대상황 속에서라면 국악이 당당한 나라의 음악은커녕 그 연명에도 힘겨웠음은 짐작코도 남는 일이라고 하겠다. 따라서 여기 국악의 제자리 찾기 작업이란 곧 문화구조의 개편과 예술 풍토의 개편 작업이 선행되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겠다.

한편 나라음악으로서의 국악이라는 개념 속에는 비단 명칭상의 문제와 전도된 위상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것은 국악이 실천적인 측면에서 국민정서의 자양분이 되고 예술정신의 귀감의 되는 우리네 삶과 밀착되는 음악예술로의 활성화가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특정 전문가들의 음악만도 아니요 국수적 에고이즘에 매몰된 핏기없는 과거지향적 국악도 아닌, 바로 오늘을 호흡하는 오늘의 우리네 생활 속에 삼투되는 그 같은 생기 있는 국악이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겠다.

한마디로 1994년 '한국음악의 해'는 국악이 명실공히 국민의 음악, 나라의 음악으로 탈바꿈하는 문화적 원년이 되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 1994년 '한국음악의 해'는 새로운 민족음악 창조를 위한 역사적 전기의 한해가 되어야겠다는 점이다. 역사는 항상 새롭게 창조되어 왔고 또한 창조되어가고 있다. 따라서 여기 새로운 민족음악의 창조라는 낱말도 그 같은 일상적인 창조개념과 동일선상의 범주로 받아들여지겠지만, 실은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 내용이어야 할 것이다. 한마디로 과거의 전통을 온고지신으로 하는 점진적 발전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앞서 언급한 변증법적인 발전모델, 즉 전통의 바탕에 서구적 외래문화 요소가 융해되어 제3의 참신한 문화지평을 제시해내는 그 같은 차원의 민족음악의 창조를 지칭함은 두말한 나위가 없겠다.

사실 이같은 발전 논리를 전제로 한다면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허다한 논란과 수많은 시행착오를 야기시켰던 외래문화의 급격하고도 과도한 수용문제 역시 오히려 긍정적인 문화현상으로 자리매김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상호이질적인 문화요소들의 결합이란 제3의 참신한 문화를 창출해낼 가능성과 개연성이 그만큼 농후하기 때문이며, 이 같은 시각에서 보면 생소한 체질의 서구 문화가 도도히 유입되었다는 사실은 어쩌면 문화적 호재임에도 분명하겠기 때문이다. 음과 양의 결합으로 전혀 다른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자연의 섭리처럼, 상반된 개성의 문화조류들이 창조적으로 융합되어 독특한 인류문화를 형성해낸 사례를 우리는 어제의 역사 속에서 익히 읽어 내고 있는 터이다.

여기 새로운 민족음악의 창조를 위한 대칭적 문화개념으로는 비단 서구문화만을 지칭해서도 안 될 것이다. 민족통일이 절실한 민족사적 과제로 부상되는 시점에서 우리는 마땅히 북한의 음악, 북한의 음악 정서를 충분히 하나의 발전적 융합대상으로 상정해야 함은 물론이라고 하겠다. 흔히 언급되는 남북간의 동질성 회복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상호이질성을 보다 높은 문화 발전의 차원으로 승화시킨다는 차원에서 더욱 그러하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지정학적으로 인접한 동아시아 문화권의 음악들도 좋은 예술적 발전요소로 원용하고 활용해야 함도 두말할 나위가 없겠다. 한마디로 같은 혈통의 전통적 한국음악의 테두리 속에서만의 발전 모색이 아니라, 이의 한계와 범주를 뛰어넘는 참신하고도 과감한 발전의 이정표를 세워야겠다는 점이다.

결국 오랜 전통의 토양에 이질적 서구음악과 색다른 북녘의 정서와 개성적인 인접 민족의 음악을 응용시킬 수 있는 한국적 음악 상황이야말로 어쩌면 가장 독특하고 가장 신선한 제3의 음악 문화를 창출해 낼 최적의 조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1994년 '한국 음악의 해'는 한마디로 새로운 민족음악 창조를 위한 정초의 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로 1994년 '한국음악의 해'는 언필칭 국제화의 시대를 맞아서 한국음악의 세계화를 위한 결정적 한해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음악의 국제화라는 명제는 몇 가지 관점에서 시급하고도 긴요한 현안이 아닐 수 없다. 우선 한국음악의 예술적 진가를 널리 선양하며 인류문화에 기여한다는 차원에서 그러하고, 순수한 예술을 통한 상호이해의 폭을 넓힌다는 견지에서 그러하며, 또한 문화산업이니 문화외교니 하는 측면에서 고려될 수 있는 현실적인 이해득실에서도 그러하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궁극의 지표로 삼아야 할 한국음악의 세계화란 그 목표가 보다 높고 원대함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곧 한국음악이 세계음악의 중요한 조류의 한 갈래로 부상함을 의미한다. 결코 허황된 진단이 아님은 작금의 세계음악계의 풍향을 민감하게 조감해보는 입장이라면 누구나가 인정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세세한 예증을 나열할 겨를은 없지만 그만큼 저간의 세계적 음악계의 추세는 동양지향적이며 동양선호적임에 분명하다. 바로 이같은 역사의 진운을 확연하게 포착하고, 이같은 예술기류에 한국음악의 개성을 조화시키며 강력한 구심력을 모아간다면, 결코 한국음악이 세계음악의 커다란 주류를 이루지 못할 리도 없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1994년 '한국음악의 해'는 한국음악의 세계화를 향한 기념비적 원년으로 선언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1994년 '한국음악의 해'가 지향해야 마땅할 서너 가지 잠정 목표를 개진해 보았다. 명실상부한 국민의 음악, 나라의 음악으로 국악이 그 위상을 굳혀야겠다는 점이 그 첫째이고, 전통과 외래라는 상호 극단적인 문화요소를 근간으로 해서 새로운 민족음악을 창조해 가야겠다는 점이 그 두 번째이며 ,국제화의 환경 속에서 한국음악의 세계화는 물론 궁극적으로는 세계음악 조류의 핵심으로 자임 할 수 있는 역사적 전기를 마련해 보자는 점이 그 세 번째이다. 바로 이같은 당면 과제의 실현을 위해서는 또한 다음과 같은 실천적 정지 작업이 필요함도 아울러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각종 사업기획에 전제되어야 할 실천적 선행조건들

첫째, 모든 편견으로부터의 탈출이 곧 그것이다. 서구 문화가 우월하다는 맹목적 편견으로부터의 탈출, 국악은 퇴영적 낡은 예술이라는 편견으로부터의 탈출, 악기하면 피아노를 먼저 연상하고 음악가 하면 베토벤을 먼저 떠올리는 무의식으로부터의 탈출, 예술이 밥 먹여 주느냐는 문화경시 풍조로부터의 탈출, 자기 전공만이 제일이라는 아집과 독선으로부터의 탈출......... 일찍이 F.베이컨은 기존의 관습이나 도그마에 물든 나머지 자신의 객관적 사리판단이 불가능함을 일러 '극장의 우상(Idolatheatri)'이라고 했다. 바로 이 같은 극장의 우상에서 탈출하여 왜곡·전도되었던 모든 가치관과 예술관을 바로 세우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선행 요건이 아닐 수 없다.

둘째, 일반용어와 관행의 교정이 필요하다. 앞서의 음악과 국악의 용례에서처럼 사물의 실체에 합당하지 못한 언어 관행이 우리의 주변에는 즐비하며, 이 같은 용어의 도착은 결국 우리의 의식의 왜곡을 초래하고, 의식의 왜곡은 끝내 문화 현상의 가치전도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기실 외래 문화를 하나의 선진 모델로 받아들였던 20세기 한국문화의 기저에는 본말이 뒤바뀐 바탕에서 숱한 조어가 탄생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굳이 철학에서 운위되는 정명사상이 아니더라도 용어와 관행의 정확한 교정은 결국 국악의 정당한 위상을 정립시키는 기반 중의 기반작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셋째, 음악교육의 혁신이 주창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껏 초·중·고교 과정의 음악 교육이 그 양적인 면이나 질적인 면에서 전통 음악을 턱없이 소홀히 다뤄왔음은 누누히 지적되어 왔었다. 그럼에도 흡족한 개선안이 마련되지 않고 있음은 원대한 역사인식과 균형 있는 문화감각이 결여된 우리 모두의 불찰이요 부끄러움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예술교육을 거론하는 입장에서 부언해야 할 점은 현대사회와 같은 생활구조 속에서는 정규학교 교육과 함께 필히 사회교육·가정교육 차원에서의 국악 교육방법과 궤도가 모색되어야겠다는 사실이다. 국악교육이 학교와 사회와 가정에서 공히 보편적으로 실시되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전통 예술의 개화는 명약관화한 일이라고 하겠다.

넷째, 매스미디어의 역할 분담이 더욱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익히 실감하듯이 정보사회에서의 매스미디어의 위력이란 여간 대단한 게 아니다. 한 민족의 문화 창달의 관건이 매스컴의 문화인식과 탁월한 역사관에 있다고 볼 때, 우리의 매스컴들은 주체적 문화의식을 한층 높여가며 자문화 발전에 적극 기여해야 할 것이다.

다섯째, 선행되어야 할 문제는 우리의 일상적 생활의 질적 변화를 꾀해야겠다는 점이다. 소위 경제발전에 밀려 문화가 외면된 게 이제까지의 우리네 실상이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의 사정은 판이하게 달라져 가고 있다. 비단 경제문제가 호전되었다고 해서만이 아니다. 이제는 생활의 질을 우선시킬 만큼 우리의 의식도 성숙한 것이다.

한 나라의 문화예술의 성숙 뒤에는 그 나라 일반 국민의 질 높은 문화생활이 원동력이 되고 목표가 되어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국악의 발전이란 곧 국민적 문화생활의 정착이 필수적으로 전제되지 않을 수 없는 터이다.

지금까지 '한국음악의 해'가 지니는 문화사적 의의와 그 좌표를 간략하게 개진해 보았다. 한마디로 1994년 '한국음악의 해'는 국악이 나라음악으로 정착하는 문화적 원년이 되어야 하고, 새로운 민족음악의 창조를 위한 정초의 한해가 되어야 하며, 국악의 세계화를 향한 기념비적 원년이 되어야 함을 제안해 보았으며, 이를 위한 실천적 선행조건으로 다섯가지의 기초작업들을 열거함으로써 '한국음악의 해'에 있을 각종 사업기획의 타산지석으로 삼아보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