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나는 서울, 문화도시로의 새로운 탄생
김문환 / 서울대교수
서울 6백 년 기념사업은 아직 시의회를 통과하지 못한 상태에 있다. 따라서 계획(1992년 10월) 안에 포함되어 있는 항목들 중 어느 것이 확정될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계획은 그 자체로서 검토 대상이 될 만하기 때문에, 이 글은 기본계획안 중 '문화도시로의 새로운 탄생'을 목표로 한 '신명나는 서울'이라는 사업계획안에 대한 소개와 논평으로 짜여지게 될 것이다.
이 대목은 다시금 서울문화경진, 서울 6백 년 대동제, 그리고 서울 문화센터 설립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서울문화경진을 살펴보도록 한다.
서울문화경진
이 사업은 서울의 얼굴과 표정을 만드는 도시문화에 많은 시민의 호응과 관심을 이끌어내면서 능동적 참여를 유도하고 주변에서 쉽게 만나는 생활공간을 문화공간으로 개발·활용함으로써 도시문화와 시민이 하나되는 연결고리를 마련하고, 일상생활 속에서 문화의 뿌리를 내리고 문화향수권과 참여권을 신장하여 서울 특유의 생활문화를 정립하기 위한 것으로 그 취지가 요약된다. 이를 위해 다시금 네가지 행사가 계획되고 있다.
①우리 마당 작은 축제
이는 공원·고궁·거리·광장·아파트 마당·구민회관·도서관·대학교 등 옥외공간을 우선으로 하여, 문화예술 각 장르별 전시·공연·이벤트·퍼포먼스를 펼쳐 보이자는 것인데, 음악회·전통 및 현대 무용·사물놀이·미술·잡희·시낭독·독서 토론·영상쇼 등이 예시된다. 이를 위해 문화예술 전문단체는 물론 예술동호인 모임, 대학의 동아리, 그리고 악사·화가·거리의 홍행사 등 자원봉사 예술가의 참여가 유도된다.
이를 위해서는 시는 문화촉매단을 구성·운영하고, 구는 '작은 축제위원회'를 구성·운영한다. 전자는 행사기획·전문업체·문화예술 전문가·시민 등으로 구성되는 한편, '문화프로그램 은행'을 마련하여 구 등에 다양한 문화행사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또한 모델 프로그램을 만들어 축제인력·세트·의상들을 확보하며, 이동공연이 가능토록 한다. 후자는 행사장소·프로그램 내용들을 선정하고, 실제행사를 기획·추진하는 한편, 인근 대학교의 축제나 다음에 설명되는 '나도 예술가 페어' 등과 연계·추진함으로써 효과를 극대화하도록 한다.
②'나도 예술가 페어'
이 행사는 시민이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라 적극적인 동참자로 문화 행사에 쉽게 출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문화예술가를 매개로 도시와 교감하고, 서울과 시민이 하나되는 계기를 마련코자 한다. 그러자면 '페어'라는 외래어보다는 난장(亂場)이라든지, 야시(夜市) 등의 우리말을 쓰는 것이 더 좋을 듯하다.
구체적인 사업내용으로는 시민이 찍은 서울영상전(사진 및 비디오), 우리 동네 글짓기 및 그리기 대회(어린이 대상), 주부 생활민예 폐어, 동네문화 야시장 등이 포함된다. 이 중 마지막 것은 시민이 사용하던 헌책이나 여러 문화상품(전통 생활용품·예술품·영상 음반물· 장식품·고안품 등)을 교환하거나 염가 판매하는 야시장을 뜻한다.
심사단을 구성하여 심사·시상하고 전시회 개최 및 모음책자 등을 발간·배부하는 추진방법을 고려중에 있다.
③'기업문화 페어'
여기에는 상업공간 문화행사 페어, 우리 건물 새단장 경진, 우수 환경조형물 경진 등이 포함되어 있다. 설명이 별로 없고, 일부는 이미 실행 중에 있다.
④'서울문화상품 페어'
이는 서울의 개성을 조형언어로 표현하는 창조적인 문화상품의 발굴을 유도하기 위한 사업이다. 서울을 소재로 하는 조각품·사진 엽서·책자·기념품·민예품·홍보물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대감각에 맞는 서울 특유의 디자인 개발 사례에 대해 시상하거나 유통을 지원하는 것이 그 내용으로 되어 있다.
관련 문화예술 단체가 자율적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문화활동을 유도하고자 하는 이 사업은 예컨대 연말연시의 각종 카드를 개발하는 것으로 이미 시작되었어야 하는데, 시기를 놓치고 있는 듯하다.
서울6백 년 대동제
서울 전역을 체험적 도시축제의 장으로 설정하고 시민이 6백 년 역사의 숨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도시예술을 한데 어우르는 대동제를 4계절에 걸쳐 펼침으로써, 참여와 교감을 통해 내 고향 의식을 드높이고 문화가 살아 움직이는 서울을 창출해 보자는 것이 기본 취지이다.
이를 위해 서울 자연제·역사향토제·시민 문화축제·도시예술제 등을 대규모적으로 계획하고 있다.
서울자연제에는 6백 년 나무심기.산수제례·봉화올리기·성곽돌기 등 일련의 행사와 함께 4계절에 걸쳐 서울의 특정 산하·수목·동물들을 주제나 소재로 한 예술공연(한강 선상음악회, 백송신록 사물놀이 등)이 서울자연예술제라는 이름으로 포함되어 있다. 역사향토제는 서울성장사 재현놀이·사물놀이 등이 서울자연예술제라는 이름으로 포함되어 있다. 역사향토제는 서울성장사 재현놀이·세시풍속놀이·전통예술·체육경연을 포함한다.
시민축제에는 서울의 도시공간을 방위별로 4분하고, 남대문 등의 구심지대를 설치하여 특화된 행사를 동시에 실시한 후 화합한마당 축제를 꾸미는 서울 거리 한마당. 한강축제·6백 년 기념일 경축공연을 포함한다.
도시예술제는 '서울문화경진'의 우리 마당 작은 축제의 발전된 형태로 설정된 서울거리예술제와 세계민족 필름제와 세계 공연예술제, 문학축제 및 인형극제 등의 장르별 기획공연· 전시가 포함된다.
이 모든 행사들은 자칫하면 들뜬 분위기 속에 식상을 일으키는 프로그램들의 반복이 우려된다. 따라서 신명과 함께 품위가 지켜질 수 있는 규모를 갖추는 데 관심을 모으는 동시에, 정기적으로 개최 가능한 특색있는 사업 선정에도 많은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 관점에서 필자는 서울 문화 센터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서울문화지원재단의 창설
필자는 이에 관한 최초의 제안에서 특수 법인의 성격을 띤 서울문화지원재단의 창설을 강조한 바 있다. 센터라는 명칭은 자칫 또 하나의 건물을 연상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즉, 시민들의 다양한 개성과 생활권에 맞는 문화생활의 영위가 가능하도록 문화 행정과 시민 중간 영역에 문화의 생산과 향수(또는 소비)를 연결하는 매개적 기구를 설립하여, 시민문화의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동시에 도시문화 진흥책을 수립하는 21세기 서울문화창달의 중심기구가 되자는 취지가 재대로 살자면, 명칭부터가 소프트웨어 중심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로서는 예컨대 '예술의 전당'같이 하드웨어 중심적인 발상의 결과가 충실한 문화내용과 연결되자면 그와 같은 매개기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명칭이야 어떻든 시민들의 문화 활동을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기구가 창설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우선 계획된 사업내용을 살펴보도록 한다.
여기에는 서울 문화행정, 서울문화 기획연구, 서울 문화예술 정보 자료실, 그리고 서울문화 사랑방이 포함되어 있다. 편의상 간단하게 파악될 수 있는 정보자료실과 문화 사랑방부터 검토해 본다. 정보자료실 계획은 문화예술 관련 문헌자료와 미디어 산물을 수집·보관·열람하는 자료관과 문화공간, 문화행사의 일정 및 내용 등 정보의 보급·전파에 중심을 두면서 전산자동화시스템과 상호연결망을 구축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문화사랑방은 자체공간 및 시설을 활용하여 시민에게 문화향수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시민을 찾아가는 이동문화사랑방을 운영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래서 전시장·공연장·영상실·음악실이 갖춰진 건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은연중에 전제로 한다.
필자는 바로 이와 같은 내용 때문에 '센터'라는 발상에 반대했던 것이다. 지원을 우선으로 해야 할 기구가 자체 사업을 벌이기 시작할 때 생겨날 수 있는 부작용은 너무나도 크다. 자료기능 역시 우선순위로 볼 때, 지원 체계 확립에 비해 급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필자의 관심은 문화창달 지원기구로서의 운영에 쏠려 있다. 거기에서는 문화시설 종합관리와 서울특별시 문예진흥기금의 조성·관리, 그리고 문예활동 지원과 도시문화진흥 정책 수립과 관계된 업무가 핵심이 되어야 한다. 특히 서울의 장단기 도시문화 정책을 수립하고 지역별·계층별·집단별로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을 개발·연구하며, 문화행정요원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는 기능은 별도의 부설기관을 마련해서라도 추진되어야 한다.
필자는 이와 같은 기구의 운영에서는 어디까지나 민간 부문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문화 정책의 대강이 무너질 염려가 있다.
서울 6백 년을 기념하는 사업이 부디 문화체육부가 주관하는 각종 '무슨 무슨 해'처럼 장기적인 문화계획과의 연계가 느슨한 상태에서 행사들만 요란해지지 않게 되기를 바라는 심정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