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의 해에 바란다.
박정진 / 세계일보 문화부장
올해는 국악 중흥의 원년
1994년은 문화체육부에 의해 '국악의 해'로 결정되었다.
오늘날 '음악'하면 으레 '서양음악'이고 전통음악은 특별히 인디언 보호구역처럼 '국악'이라는 이름으로 음악의 하위분야로 왜소하게 자리매김되고 있다.
이것은 서구문화의 압도적 위세에 의해 우리의 전통이 단절되었음을 의미할 뿐 아니라, 우리의 전통 음악이 세계음악속에서 하나의 주변문화(marginal culture)일 뿐 아니라 자국에서까지도 주변적 위치에 있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인류학적으로 볼 때 '한 문화'(one culture)는 '하나의 체계'(one system)라는 명제를 적용한다면, 오늘의 한국음악은 하나의 음악으로 되기에는 결격사유가 있는 셈이다.
문화의 교류와 변동에도 여러 유형이 있지만 서구문화와 한국문화, 서구음악과 한국음악과의 문화접변(acculturation)현상은 매우 한국문화의 서구종속적 상황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음악이 문화적 생태학 속에서 거의 멸종될 정도로, 또는 서구 음악에 흡수될 정도로 약하고 전통이 없는 것이라면 차라리 서구화로 만족할 수도 있다.
그러나 5천여 년의 긴 역사와 문화적으로 끈질긴 자생력을 가진 한국음악은 그렇게 쉽사리 서구화에 만족할 수 없게 한다. 지금은 전통을 살려내기가 힘겨울지 몰라도 언젠가 다시 서구음악의 영향을 자기 강화로 소화한 역사적 층위를 확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포기하기엔 우리는 너무 강한' 것이다. '국악의 부흥'을 위해서는 이제 서구음악과 한국 전통음악의 가역반응 속에서 오늘의 새로운 한국음악을 창조해내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이러한 '한국 전통음악[<-->]서구음악=오늘의 한국음악'도식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오늘의 음악인과 그것을 즐기는 한국국민, 그리고 문화적 자생력이 약한 후진 문화가 자기회복의 메커니즘으로 흔히 활용하는 정부의 지원정책이 삼위일체가 되어야 한다.
국악에 대한 학문적 정리, 유능한 실기자의 양성, 그리고 국악에 대한 문화적 기층의 확보가 국악중흥의 내용이 되어야 할 것이다.
최근 서구문화의 거대한 중심화(집중화) 현상의 폐해가 속속 문제가 되면서 주변문화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되고 있다.
세계적인 문화의 통합(integration)과 함께 주변문화의 새로운 인식이라는 지구적 차원의 '문화통합과 분열'은 동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것은 집단과 집단간, 집단과 개인간의 보편적 역학관계의 산물이다.
국악을 보존하는 것과 함께 국악을 현대적으로 발전시키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예컨대 판소리의 경우 광복 후 이준·유관순·안중근 열사를 소재로 한 '신판 판소리'인 열사가가 보다 적극적으로 창작·보급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창작국악의 활성화로 음악의 양을 확대해야 한다. 양이 확대될 때 질이 높아지는 것은 순서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악은 과거 어느 세대에 정지되거나 박제된 죽은 생명이 아니다. 국악은 서양음악의 제물이 아니라 그것을 소화하며 생명력을 확대·강화시켜야 한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현실적 방안으로 대학에서 국악과의 증설과 함께 실기위주의 대학과정 '전통예술원'(conservatory)의 설립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느껴진다. 또 국악에 대한 국민적 공감과 이해를 높이기 위해 초·중등교육 과정의 국악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
국악이 양악보다 수준이 낮은 과거의 음악이 아니라 음악의 체계가 다른, 즉 다른 종류의 음악이며 우리 조상들은 대대로 국악과 더불어 살아왔음을 깨달을 때 국악이 우리 생활 가까이에 호흡하는 것이 될 것이다.
국악이 하나의 '민족음악'(ethnological music)으로 우리에게서까지 폄하당하는 한 우리 문화의 독립은 요원한 것이 된다. 우리에게 낯익은 '국악' '한(韓)의학'……그리고 종합적인 의미에서 '국학'을 계속 부르짖는 한 아니러니컬하게도 우리문화는 아직도 홀로 서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최근 전통적인 무당의 굿이 일종의 종합예술체로, 다시 말하면 예술(art)로서 취급되기 시작하고 있다. 옛부터 악·가·무(樂·歌·舞)가 하나인 것이 우리 전통예술의 큰 특징이다. 이것은 흔히 서구적 편견에 의해 미분화된 채로 전근대적인 열등한 것으로 취급되기 일쑤였는데, 오늘날 굿은 미분화된 것이 아니라 예술의 총체적인 것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비문화체, 총체예술 나아가 현대적 퍼포먼스(performance)개념으로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우리 전통음악의 특징을 모르고 전통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는 경우를 종종 본다. 이것은 악·가·무가 하나이던 특징을 고려하지 않고 노래와 춤이 별개로 된 '분화의 잘못된 예'가 될 것이다.
예술이야말로 산업과 달리 '분업'이 효과(생산)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총체'를 지향함으로써 산업의 기계적 메커니즘에서 오는 인간의 정신분열증을 치유하고 인간의 총체성(인간성)을 유지시키는 것인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국악전통은 후기 산업사회에 부활되어야 할 당위성을 갖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국악의 해'는 이에 걸맞는 크고 작은 행사도 중요하지만 행사보다는 국악중흥이라는 거대한 목표를 향한 원년(元年)이라 생각하고 국악의 학문적 정리, 교육제도의 정비, 국악의 대중화 사업을 계획하고 실천하는 첫걸음이 되었으면 싶다. 국악의 중흥이야말로 한해의 행사로 끝낼 수 없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애정이 요구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통을 보존한 국악인들이 사라지고 있다. 그들이 사라지면 국악도 사라진다.
경기무악의 지영희·정일동이 별세하고 올림채 도들이 장단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쉽게 말하면 우리 '장단' 하나가 멸종될 처지에 있는 것이다. 경기무악 장단의 무용음악은 도살풀이 때 쓰는 섭채를 비롯, 터벌림춤의 올림채·조임채·넘김채·견마치 등이 있는데 이것은 거의 사라졌다. 또 태평무의 진쇠장단은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김덕수가 진쇠장단을 정일동씨에게 배웠으나 어정가락이 아니라 농악가락이 많이 들어가 제맛을 못내고 있다.
국악의 현대화에 관한 한 남한이 북한보다 앞섰다고 하기가 어렵다.
지난 1990년 남북음악인이 만나 '범민족통일음악회'(평양)와 '1990 송년통일전통음악회'(서울)는 북한이 악기의 개량과 편곡에서 비록 사회주의 예술을 위한 목적에서였지만 활발했음을 알 수 있었다.
한국의 음악계는 이론이나 작곡에 비해 연주에 편중되어 있다. 연주도 중요하지만 연주(performance)의 텍스트가 되는 작곡에도 관심을 기울일 때가 되었다.
박범훈·김영재·김광복·김영동·이강덕씨 등이 있지만 좀더 작곡쪽을 강화하고 후진을 양성함으로써 국악의 지평과 용적을 넓혀가야 한다.
판소리의 남창(男唱)이 점차 사라지고 여창(女昌) 일색으로 되는 것은 판소리의 발전이 아니라 변질이거나 쇠퇴이다. 판소리가 소리의 기교에 치중하는 것도 판소리 예술의 타락이라는 측면이 있다. 판소리 남창 후계자가 거의 없는 것도 오히려 <서편제>의 붐과는 달리 판소리의 위기로 받아들여진다.
국악의 중흥은 일시적인 붐이나 단발의 행사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는다.